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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전업투자 10년차가 된 해네요

서류를 정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 직장에 다닐 때 받던 급여명세서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그걸 정리하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2월이 제가 전업투자를 시작한지 10년째 되는 달이었습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20살이 되기 전 까지는 전쟁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위협받던 어린 나날들이었습니다. 집이 부자가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만 먹고 자랐으면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보낸 10대 시절이었습니다.

20대 때는 군 전역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 부터 생업 전선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는 친구들과 만들었던 벤처기업의 창업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도 몇번의 작은 창업과 실패를 연속으로 겪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역량이 너무나 부족한 시기였습니다. 백기투항한 저는 스타트업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스타트업을 발판으로 중견기업도 5년 남짓 다녔습니다. 조직에서 일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좋은 사람들, 많은 배움, 감사했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홀로 낭인이 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때는 삶의 기반을 많이 쌓아 두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형님이 창업한 회사에 다닐 때는 완전히 충성하며 다녔습니다. 새벽에 연락이 와도 자다가 튀어 나갔습니다. 시키는 건 무엇이든 했습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습니다.

회사 밖에서는 개인 커리어도 열심히 개척했습니다. 투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소비도 극도로 절제했습니다. 극빈층 모드로 살았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으고 굴렸습니다. 사이드 잡을 되는대로 잡아서 처리하면서 현금흐름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거의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잠을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에 수영을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20대때 현명한 여성을 만나서 결혼도 하였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주머니에 고향서 상경하는 버스비만 달랑 들고 올라왔던 서울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알게 된 사람들, 손에 쥔 것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30대 때는 무작정 열심히 사는 것은 내려놓았습니다. 30대 이후로는 '설렁설렁 열심히' 사는 모드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심적으로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음 외적인 부분도 물론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면 제가 사는 걸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할 건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설렁설렁 열심히' 이게 남들이 보면 유유자적처럼 보입니다. 물론 제 마음 속에서도 많은 여유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것저것 열심히 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충되는 말이지만 당분간도 '설렁설렁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유튜브와 같은 소소한 소일거리도 하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설렁설렁 열심히'에 걸맞게 더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텔레그램 등을 통해서 소통해 주시는 다른 투자자들께도 늘 감사드립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도 즐겁고, 활자를 읽는 것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설렁설렁 열심히' 살다가, 또 제가 진정 투신할 일거리가 발견되면 20대때 처럼 열정을 불태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꾸준히 한걸음씩 조용히 따박따박 걸어가겠습니다.

사진 : 송종식

덧1) 앞으로 어디가서 '전업투자자'라고 저를 소개하는 걸 줄일까도 생각합니다. '전업투자'라고 하면 의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화면 앞에 붙어서 주식을 사고 팔며 전쟁을 하는 사람'. 하지만 저는 HTS는 아예 사용을 안합니다. MTS도 가끔만 확인합니다. 주식 매매는 1년에 몇 번 하지도 않습니다. 주식을 사고 파는데 인생을 전혀 쓰고 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화면 밖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화면 앞에 앉아 있을 때도, 가끔 팔로업 하는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글을 쓸 때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전업투자'에 갇히는 것도 지양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이미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고, 벌일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2) 전업투자 초기 시절.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투자자 형들과 태국 여행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지명도 생소한 곳을 지나다가 즉석으로 러시아식 사우나에 들렀습니다. 그곳의 샤워장은 야외에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하늘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예뻤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내 머리 위에 누가 없는 것도 다 행복했습니다. 오래도록 제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도 꼭 그런 삶의 여유가 생기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 해봅니다.

2024년 10월 17일
송종식 드림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살을 빼라더니

"살을 뺍시다. 못 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딱 5kg만 빼 봐요."

내 건강을 관리하시는 선생님께 근 10년 가까이 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살은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살을 안 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고 농담삼아 겁도 주셨다.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곧 40대에 접어드니 만큼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실제 몇가지 지표들을 면밀하게 관찰중이기도 하다.

그렇게 안 빠지던 살이 근 몇달 간 양평에 머물면서 쭉쭉 빠졌나 보다. 아마도 새롭게 시작한 등산. 그리고 다시 시작한 여러가지 운동들. 그리고 워낙에 먹을 것을 많이 줄였다. 혼자서 하루 식비만 5~10만 원씩 써댔으니 살이 안 찔리가. 이제는 가급적 배에 꼬르륵 소리가 나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실제로 그러고 있다. 몸이 한결 가볍다.

이번에 검진을 받았다. 체중을 재는 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으셨다.

"살이 너무 많이 빠지셨는데요?"
"얼마나요?"
"한 6kg 정도요."
"제가 최근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먹을 것도 많이 줄였어요. 그 영향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이유일 수도 있어요."

나는 의아했다. 아니 그렇게 살을 안 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더니. 이제는 6kg이 빠졌다고 걱정을 하시면. 내 체중의 적정주가는 다시 3kg 정도를 찌우면 되는걸까?

이번에 검진을 하니 시력은 향상됐다. 체중도 다른 이유는 없고 관리를 잘 해서 적당히 잘 빠진 것 같다. 몇 주 전에 오른쪽 귀에 이명과 이중들림 현상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것도 잠을 잘 자니 지금은 괜찮아졌다. 검사결과도 좋다.

양평에 사니까 건강에는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다. 눈을 어디에 둬도 화보다. 뻥 뚫린 목가적인 자연 경관을 매일 즐긴다. 이래서 시력이 회복이 된 건가? 양평에서는 3~4억 선이면 사람들이 꿈꾸는 그림 같은 작은 집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목가적인 뷰를 얻는다. 아마 서울에서 같은 뷰를 얻으려면 족히 20~30억 원은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기도 좋아서 머리도 항상 맑다. 근처에 운동삼아 탈만한 해발 1,000m 남짓되는 산도 많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도시가스가 안 들어온다. 그래서 가스비가 비싸다. 생활물가도 많이 비싸다. 누가 서울의 물가가 비싸다고 했었나. 양쪽 물가를 모두 체감하고 있는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양평의 생활물가가 더 비싸다. 양평에서 지내면 소소하게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외롭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서울에 몰려 있다. 한번 왔다갔다 하면 휘발유 5만 원은 그냥 증발이다. 왕복하는데 시간도 꽤 든다. 일산에서 처리해야 할 일도 좀 있다. 그런데 일산은 아예 가지를 못하고 있다. 한번 다녀오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몇 번 왕복했더니 거의 제주도에 갔다 오는 느낌이다.

멋진 자연경관과 건강을 얻은 대신 외로움을 얻었다.

최근에는 서울에 근거지를 하나 만들까 싶은 생각도 든다. 다시 서울로 복귀할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차 안 막히고, 사람 없고, 어딜가나 여유있는 삶을 즐길 수 있어서 좋지만, 반대급부도 확실히 있다. 애증의 양평 생활.

뭐 나야 몸이 어디서 지내든 크게 구애 받는 사람은 아니다. 맥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구 어디서든 방랑하며 살 수 있다. 서울 복귀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 내리면 빠르게 행동에 옮기도록 하자. 사람은 생각보다 한 곳에 몸이 머물면 그 일정 반경 밖으로 잘 안 움직이게 된다.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이제 이동하면서 빠지는 비용들도 좀 세이브를 좀 해야겠다. 미친듯이 돌아 다녀서 귀한 시절에 현금누수가 너무 많았다.




사진 : 송종식


2022년 12월 12일 월요일

지금도 누군가는 영웅을 꿈꾸고, 난세는 현재진행형이다

자료 : SBS

행적이 묘연하던 빌라왕의 근황이 보도되었다. 그 빌라왕은 사망했다. 빌라 1,139채를 무자본으로 매입하여 언론으로부터 '빌라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전세금으로 투자하고, 다시 그것을 레버리지 삼아 다음 주택을 매입하는 식의 연쇄갭투자로 빌라를 매입하였다.

이것은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레버리지 사용행태이다. 이 사람이 빌라와 오피스텔 한 채당 1,000만 원씩 남기고 모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순자산 100억 원이 넘는 자산가가 되었을 것이다.

반대로 주택경기가 냉각되어 집값이 떨어지면 이 사람의 인생은 정확히 그 반대가 된다. 집값이 하락하고 중간에 현금흐름이 막혔다. 국세도 미납되기 시작했다. 계약이 끝난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한동안 잠적했다. 그 결과로 이 사람은 죽음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피해자에게 살해를 당한 것인지, 신변을 비관하여 자살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40대의 젊고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둘 중 하나로 사망하였으리라.

한편, 경찰은 804명의 전세금 갭투자 사기꾼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세입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해 피소를 당했다. 집이든 뭐든 자산 가격은 언제든지 하락할 수 있다. 이들은 그것을 망각했다. 무자본으로 무리하게 갭투자하여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오늘 검거된 사람 중에서는 자기 돈을 한푼도 들이지 않고 3,493채의 빌라를 매입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사람도 한채당 1,000만 원만 남기고 되팔기 한 사이클을 성공했다고 가정하면 순자산 300억 원대의 자산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의 결말도 교도소행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출소하면 이 사람이 가진 3,493채의 주택은 모두 경매를 통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 있을것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이다.

자료 : 삼국지 전략판

조조가 원소 진영의 오소를 불태우러 갔던 도박은 대성공했다. 하지만 적벽대전 도박은 80만 대군을 거의 잃을 정도로 실패했다.

일개 백수였던 유방은 진시황의 명령으로 장정들을 이끌고 수도 함양으로 가던 중 진시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도주하는 도박을 선택한다. 

"어차피 진나라의 법이 엄격하니 이렇게 함양에 가봐야 개죽음 밖에 더 당하겠냐. 거기서 죽나 여기서 죽나 똑같다. 관리들을 죽이고 우리는 각자의 갈길로 흩어지자!" 

이 작은 도박을 시발점으로 유방은 훗날 한나라를 건국하는 초대 황제가 된다.

인생을 건 도박의 결과가 몇 번만 성공하면 황제가 탄생한다.

반면에, 이릉대전에서 주력군을 붙에 타 죽게 만든 유비처럼 실패한 도박의 결과는 처참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수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장사로, 또 어떤 사람은 투자로, 또 어떤 사람은 사업으로, 그리고 정치분야에서, 과학분야에서, 체육분야에서..

앞선 갭투자자들도 원대한 꿈을 안고 도박을 하였으리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그것이 잘 되면 소황제가 되어 멋진 인생을 살았을것이다. 하지만 실패하였을 때는 죽음과 교도소 뿐이다!

수 많은 타인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저들을 옹호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같은 난세가 아닌 듯 난세인 시대. 기득권의 패권이 공고한 시대에, 왕후장상의 씨를 물려 받지 못한 사내들이 원대한 꿈을 품고 위로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가면 강남 부자집 자제들을 이길 수 있는가? 정석으로만 간다고 중산층 이상의 풍요로운 사람들의 삶을 추월하고 꺾어낼 수 있는가? 

빈민들의 출세 전략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살찐 상류층의 허를 찔러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변칙술을 잘 쓰던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걸어 승부를 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그런 숱한 시도를 하다가 피흘리고 쓰러져간 모든 사람들의 최후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한편, 그런 술법으로 빠르게 기득권을 무너뜨리며 치고 올라간 사람들도 있다. 김범수, 권혁빈, 서정진, 고 김정주 회장님 같은 분들이다.

지금도 수 많은 사내들은 영웅이 되는 것을 꿈꾸고, 지금보다 잘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난세는 지금도 조용히 진행중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나는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현재 속도로 가면 안락하기는 하다만, 목표로 한 고지에 도달할 수는 있겠는가? 자문자답을 해본다.

2022년 12월 12일
송종식


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산과 들, 길거리가 울긋불긋



사진 : 송종식

새해 해돋이 보러 동해바다에 다녀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해가 다 지나가네. 설악산은 대설주의보도 떴다.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참 빠르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더 귀하다.

2022년 10월 26일
송종식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고속도로 위에서의 망상 (스트레인저, 어나니머스, 대중과 개인, 인연에 대해)

#1

유튜브에 재미있는 영상이 업로드 된다. 영상의 조회수는 1회, 10회, 100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1만회, 10만회, 100만회가 되기도 한다. 숫자만 보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 영상을 본 100만 명에게는 100만 개의 인생이 있다.

1,000,000회라는 조회수를 숫자만 놓고 보면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667,521번째 누군가를 콕 집어서 만나보면 그 사람도 우리처럼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똑똑한 누군가 일것이다.

#2

서울서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움직인다. 멀고 노곤한 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 많은 차량들이 내 옆을 스쳐간다. 그 안에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근거리에 내 옆에 지나가는 것 자체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량들이 내 옆을 슝슝 지나가면 서로의 존재 여부도 알지 못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실수를 해서 나와 사고를 내면 나는 그 사람과 실질적 인연으로 엮인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묘하다.

누군지도 모를 수 많은 차량들을 도로에서 지나친다. 그 차량 중 아무 차량이나 세워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도 역시 나 처럼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숫자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수 백만대의 차량 중 한 대일 뿐이겠지만, 어느 차량 한대만 콕 집으면 각자의 인생과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자료 : 연합뉴스

#3

민족성과 언어라는 것도 신기하다. 30년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다. 30대 중반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알게 돼 친구가 되었다. 친해진 다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80, 90년대 이야기들이 나온다. 국민학생 시절의 생활, 그때 유행하던 유행가 등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수 백,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기억, 동일한 정서,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서로는 살면서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수 많은 차량들. 그 중 아무 차량이나 한대를 세워 말을 건다. 한국어를 쓴다. 말이 통한다. 해외 여행을 하다가 한국인을 만난다. 말을 건다. 나는 지방 출신인데 그 친구는 서울 출신이다. 한국말이 통한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하나의 언어로 생각이 통한다는 사실에도 가끔 놀라운 경이로움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가 '언어는 사람 버전의 프로토콜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정말 프로토콜처럼 느껴진다.

#4

운명과 인연이란 하늘이 주는 것인가? 내가 만드는 것인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만나는 수 많은 차는 나에게는 가상의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도로 위의 아이템들이다. 수 많은 자동차와 거기에 탄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차로 달려가 돌격해서 접촉사고를 일으키면 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된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인가? 아니면 그것 조차 하늘이 계획한 인연인가?

#5

특정 주제를 목적으로 카카오톡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곳에는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 와 있다. 전원이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대화명은 제 각각이다. '농부', '삐약삐약', '곰탱이', 'ㅇㅇ', '웃으며살자' 등. 필명 앞에는 카카오가 만든 귀여운 캐릭터들이 붙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와 있지만 저런식으로 나열된 익명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 감흥이 없다. 그저 PNG 이미지 한장에 필명 텍스트 한 줄이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을 끄집어 내보면 확실히 그 사람은 자기만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똑똑한 어떤 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연의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메타버스가 이런 무한대의 것들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똑똑한 지인들이 익명으로 여러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그들은 그 방에서 말도 안한다. 어찌보면 병풍이나 허수아비 같다. 그러나 그 지인들은 실제로는 매우 멋들어진 집에 살고 있으며, 생각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떠드는 사람은 소수이고 저런식으로 지켜보는 조용한 다수가 아주 많다는 것을 느끼고 또 그것이 무섭게 여겨진다.

#6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상 80억 명은 각자의 인생들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성공적인 삶을, 누구는 힘든 삶을, 또 누구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또 누구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삶을 조목조목 상상해보면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똑똑하다. 돈이라는 자원을 함부로 길 바닥에 버리는 바보는 없다.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차량 조작법을 알고 교통체계를 이해하고 움직인다.

실제로도 5200만 명의 대중들 중에서 3,970만 1121번째 사람을 콕 찍어서 새롭게 사귀어 인사를 나누어 보면 바보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저 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열심히들 살아간다. 모두 자기 생각이 있고, 스펙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삶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것이 있다. 왜 그렇게 개인만 놓고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대 대중으로 뭉치면 개인일 때 보다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되는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다 나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못 났다. 그런데, 그런 개개인이 대규모로 뭉친 대중들은 왜 고작 나보다도 멍청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7 

고속도로가 꽉 막혀있다.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내 어깨 위에 날개가 돋아난다. 고속도로 위로 스윽 날아오른다. 그 엄청난 차량들 중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두명이라도 알아보면 정말 신기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날아오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또는 유재석씨 같은 인지도 99.99%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볼 것이다. 유명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저들을 모르는데, 저들은 모두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쌍방향 인연일까? 단방향 인연일까?

오늘의 두서없는 망상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망상 끝.


2021년 3월 28일 일요일

돈 벌기 좋은 시대 일수도 아닐수도 (자산투자 예외)



어떤 음성 대화방에 50대 선배님께서 들어와 다양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중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우리 (젊을)때 비하면 지금은 확실히 돈 벌기 쉬운 시대가 된 것 같다. 돈을 벌 수 있는 문도 많이 열려있다."

우선 이 이야기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대의 생각도 갖고 있습니다. 이 인생 선배님의 이야기처럼 지금이 개인들에게 돈 벌기가 좋은 시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돈을 벌 수 있는 문이 많이 열려 있다' 이 이야기는 정말 공감합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와 같은 고전적 1인 미디어 채널 부터 시작해서, 출판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늘었고, 또 앱이나 웹서비스를 만들어서 수입을 창출할 수도 있고 잘되면 초대박을 칠 수도 있습니다. OEM, ODM 제조 공장들도 늘어서 아이디어만 있으면 당장 화장품이든 뭐든 시제품을 출시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온라인에 스토어를 열어서 대기업의 유통망에 올라 타기도 쉬워졌습니다. 굳이 내가 뭘 팔지 않아도 쿠팡이나 아마존의 어필리에이트가 되어서 돈을 벌어도 됩니다.

하고자 하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 이것들을 '돈을 벌기 위해서 열려있는 문'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런 문이 개인에게도 숱하게 열려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돈 벌기 어려울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지금은 마음만 먹고, 즉시 시작할 수 있다면 0에서 시작해서 1을 만들기는 쉬워졌습니다. 열려 있는 문이 많다보니 어떤 문을 통하더라도 즉시 숫자 0에서 1 이상은 찍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새롭게 시작한 유튜브 채널의 조회수나 구독자 수든, 야심차게 만들어서 올려둔 앱의 다운로드 숫자이든, 아니면 걸어 둔 애드센스 수입이든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0에서 시작해 1을 찍고, 그 숫자를 무한히 키워서 유의미한 숫자로 키우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튜브로 떼돈을 버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야심차게 유튜브를 시작합니다. 시작 하기는 쉽습니다. 구독자 0명에서 1명을 만들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꾸준히 잘 해내서 구독자를 1000명을 만들고, 1만 명을 만들고 나아가 10만 명, 100만 명을 만들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렇게 해내는 사람들도 적습니다.

블로그나 앱에 광고를 붙여서 돈을 벌겠다고 부푼 꿈을 안고 시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광고비를 천원이나 만원 정도는 벌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한달에 100만원, 1000만원, 1억원을 버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문은 많이 열려있는데, 대부분 얕은 문입니다.'

과거처럼 무언가를 하려면 대규모 자본금을 확보해서 공장을 짓고 하던 시대는 확실히 아닙니다. 손에 쥔 스마트폰 한대, 노트북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잠재력이 있는 무언가를 시도해보기 좋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열려 있는 문이 많은 만큼, 나 말고 다른 이들의 도전도 거셉니다.

따라서, 캐릭터나 컨텐츠 그리고 제품은 확실하게 세그멘테이션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진심을 담아서 더 끈기 있게 꾸준히 해야하는 것도 당연하게 느겨집니다. 대부분은 열려 있는 수 많은 문을 잠깐 두드리다가 맙니다. 한번 두드렸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장을 보고 두드리는 분들이 지금 불과 2~3년 만에 잘 되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2021년 3월 28일
송종식 드림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빚 24억 원을 1년 11개월만에 갚은 방법

모두가 은퇴 걱정을 할 때, 그는 음반을 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뻡이 없네"

광고 카피 하나로 전국구 인사가 된 사람. 전 천호식품 회장이자 창업자인 김영식 회장이다. 그를 만나면 늘 유쾌하고 즐겁다. 온몸에서 즐거움과 긍정의 에너지가 솟구쳐 넘친다. 옆에 있는 사람도 절로 어깨춤을 추게 만든다.

모두가 은퇴 걱정과 노후 걱정을 할 나이에 그는 음반을 냈다. 그냥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다. 사회에 여러가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취미로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 모두가 꿈꾸는 노후, 모두가 꿈꾸는 삶이 아니던가?

10미터만 더 <노래 : 김영식, 작곡 : 김정택, 작사 : 김영식>

그의 뮤직비디오다. B급 감성이 묻어난다. 멜로디도 흥이 난다. 그러나 가사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사는 김영식 회장 본인이 직접했다. 작곡은 김정택 SBS 명예예술단장이 맡았다.

누구의 말마따나 이 노래는 아침 기상용 알람으로 딱이다.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들으면 정말 흥이난다. 그냥 내가 하는 일이 다 잘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힘든 국민들에게 작으나마 힘을 주고 싶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국가를 위해 크고 작은 봉사와 후원을 많이 하고 있다.

곡은 태진미디어와 금영의 노래방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어렵지 않은 노래이니 흥을 돋구어야 하는 자리에서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제대 5일만에 시작한 첫 사업


'김영식 회장'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뚝심', '추진력', '부지런함'이다. 그에 걸맞게 그는 군 제대 5일만에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학습지 영업을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매일 하루에 100km씩 다니며 영업을 했다. 그 결과 그는 전국에서 학습지 판매부수 1위 사업자에 올랐다. 돈도 벌렸고 사업도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24살때 벌인 학습지 사업으로 돈이 벌리자 그는 사업을 확장했다. 80년대 초에는 '세계 금연의 해' 슬로건을 포착하고 금연파이프 사업을 진행했다. 금연파이프로 6개월도 되지 않아 현금 6,000만 원을 넘게 벌었다. 그 외에도 신발 밑창 사업도 했는데 사업이 잘 되었다. 1980년대 초에는 일반 회사원의 한달 봉급이 40만 원 수준이었으니 젊은 나이에 가히 어마어마한 돈을 번 것이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잠시 뿐.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금연파이프는 히트를 치자 짝퉁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우선 짝퉁 제품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전문 분야가 아닌 다양한 사업에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집중력을 잃었다. 무엇보다 큰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그의 첫번째 사업은 그렇게 망하고 만다.

달팽이로 부산에서 100등 안에 드는 부자가 되다


교통사고로 고생을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달팽이를 먹게 된다. 달팽이를 먹으면서 크게 부러졌던 그의 팔은 기적적으로 치료가 된다. 흡사 종교 단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마케팅 천재인 그가 마케팅을 위해서 달팽이의 효능을 과장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팔이 나을 타이밍이었는데 우연히 달팽이를 섭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달팽이가 효능이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는 1994년 이를 계기로 달팽이액기스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달팽이액기스 사업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판매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파산에 몰린 그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강력한 마케팅, 그 한방이 필요했다.

타고난 천재 마케터이자 승부사인 그는 KBS를 목표물로 삼았다.

현재도 방영중인 <6시 내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는 무작정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담당 PD등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김영식 회장을 쳐다 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6시 내고향>은 당시에는 인기도 많고 파급력도 큰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6시 내고향에 출연하려고 줄을 선 사업가가 어디 김영식 회장 한 사람뿐이었으랴.

어쨌든 김영식 회장은 6시 내고향이 아니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주에 한번씩, 한달에 한번씩 6시 내고향 팀을 찾아갔다. 방송국에 발이 닳도록 꾸준히 찾아갔다고 한다.

이때도 그의 영리한 영업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방송국 PD들에게 찾아가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들은 바쁘다. 그래서 김영식 회장은 일단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우선은 매일 찾아가는 것을 삼갔다. 대신 잊을만 하면 찾아갔다. 찾아가서도 절대로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PD와 제작팀의 책상에 달팽이 액기스 하나씩을 조용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가면서 고개숙여 크게 인사했다고 한다.

"달팽이 왔다갑니다!"

방송국에 그토록 정성을 썼건만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 문을 곧 닫을 판이었다. 그러던 몇달 후, 하늘이 도왔을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달팽이씨 방송 한 번 해봅시다."

PD님도 김영식 회장의 끈질긴 태도에 감복했다고 한다. 방송으로 달팽이엑기스를 주문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송출이되었다. 방송이 나가고 달팽이엑기스 구매 문의 전화로 전화기가 불통이 되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주문에 그야말로 대번에 기사회생했다. 그의 간절함과 승부수가 통한것이다.

1992년부터 2년 동안에만 무려 현금으로 50억의 순수익을 남겼다. 열심히 사업을 했고 현금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머지 않아 기관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줬다.

"김영식씨, 부산에서 현금 부자 100등 안에 들었네요."

여세를 몰아 그는 사업을 확장했다. 황토방, 찜질방, 서바이벌 게임장 등 할 수 있는 사업은 닥치는대로 확장을 했다. 첫 사업에서 그는 비전문분야에 대한 문어발식 투자로 주저 앉았다. 그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에게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가 비전문분야에 대한 사업 확장을 하는 동안 IMF 사태가 터졌다.

순식간에 알거지가 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그의 가슴에 아로 새겨진 문구가 아닐까? 떵떵거리며 살던 그는 순식간에 알거지가 된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어딜가나 VIP였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에 남은 것은 돈 2,000원이 전부였다.

길을 걷고 있는데 국밥집이 보였다. 국밥집에서 사람들이 맛있게 국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 국밥 한 그릇조차 사 먹을 돈이 없었다. 600원짜리 소시지 하나와 소주 한병을 사들고 기거중인 여관방으로 향했다.

방값을 내기조차 버거웠다. 소시지를 먹으면서 눈물을 그렇게 흘렸다. 문득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노. 마 죽자.'

여관 창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난간으로 내 밀었다. 나머지 다리 한쪽만 난간 밖으로 내밀면 떨어져 죽는다. 최후의 순간에는 그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침 세무서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체납세금 납부독촉 전화였다. 돈이 많을 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처럼 굴던 사람들이 싹 변했다. 세금을 그렇게 많이 냈는데도 힘들어지고 나니 가차없이 밟아댄다.

세무서 직원은 통화중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김영식 회장에게 물었다.

"자살하시려고요? 그러면 저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안됩니데이."

그 이야기에 김영식 회장은 정신이 번쩍들었다. 웃음도 나고 화도 났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빚 22억 원을 1년 11개월만에 다 갚고 재기하다


무일푼인 김영식 회장에게 남은 건 결혼반지 뿐이었다. 그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130만 원을 확보한다.

얼마전에 큰 딸이 '아빠 우리집이 그렇게 가난해?'라고 물었다. 우선 그는 그 130만 원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딸이 보는 앞에서 만원 짜리를 하나씩 뿌렸다. 총 130장을 뿌렸다. 그랬더니 비좁은 방이 만 원짜리로 가득 찼다. 철 없고 어린 딸은 '우리집 부자네'하면서 좋아했다. 김영식 회장은 가슴이 아팠지만 그렇게 딸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한 우물만 파기로 결심한다. 원래의 전문분야인 건강기능식품 시장으로 돌아왔다. 130만 원을 투자해서 강화사자발쑥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 박스를 들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쑥 색상의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입고 아침마다 전단지를 돌렸다. 원래도 넉살 좋은 그였지만 이때는 부끄럽고 뭐고도 없었다. 생존 자체가 절박했다. 

"쑥쑥 쑥자로 끝나는 말은~ 이쑥 저쑥 들쑥 날쑥 몸에 좋은 쑥~"

익숙한 멜로디에 나름대로 가사를 붙여서 강남역 앞에서 열심히 불렀다. 사람들이 전단지를 버리면 그걸 주워와서 다시 돌렸다. 죽기 살기로 영업했다. 변변한 매장하나 구할 돈이 없었다. 제품을 강남역에 쌓아놓고 팔았다.

그의 그런 노력은 1~2주 후 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제품은 서서히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첫달 매출 1,100만 원을 올리게 된다. 매출은 매월 수직 상승했다. 강남역에서 전단지를 돌린지 4개월 되던 때는 월 매출이 9,800만원, 6개월 째에는 2억 5,000만원, 그리고 다시 1년 뒤에는 월 매출 9억 8,000만원을 달성했다.

이렇게 '못 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한 박스 한 박스의 제품을 최선을 다해서 팔았다. 그 결과 그는 빚 22억 원을 1년 11개월 만에 다 갚았다. 매번 새로운 제품을 성공적으로 히트 시키며 2013년에는 매출액이 1,300억 원에 달하게 된다.

발 붙일 땅이 한 평 없어서 강남역에서 영업하던 그는 역삼동에 멋진 빌딩을 짓고 서울 사옥으로 만든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대한항공 탑승만 2,800회 넘게 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행기를 많이 탄 사람 중 한명이 되었다. 부산에는 공장이 있으며 서울과 부산에 수행비서와 고급 차량들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물론, 쑥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당포에 맡겨 두었던 결혼 반지는 다시 잘 찾았다.

그가 어렵던 시절 그의 오뚝이 같은 근성을 높게 본 탤런트 이순재씨는 천호식품이 안정될 때 까지 무료로 회사의 모델을 해주었다.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시절이다. 그러나 항상 돌파구는 있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즉시 행동으로 실천하자는 그의 외침에 호응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2020년 11월 19일
송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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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4일 토요일

내리막길에서 더 넓게 보인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주식 투자자는 상승장 보다는 하락장에서 더 많은 걸 배웁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승승장구 할 때 보다는 사업이 힘들 때 더 많은 걸 배웁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지난주에 제주에서 쉬면서 새삼 그걸 다시 느꼈습니다. 제주에서 두가지 일화가 있었습니다.

성산일출봉에서의 배움


아침 일찍 성산일출봉에 올랐습니다. 중국인 관광객 버스가 몇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들 일행과 섞여 함께 계단을 올랐습니다. 나이를 먹어서이기도 하지만, 올라가는 높이도 꽤 되었습니다. 그래서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는 동안에는 정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이는 건 오로지 다음 발을 디뎌야 할 계단과 앞 사람의 발 뒷꿈치 뿐이었습니다.

숨을 헐떡이고 올라가다 가끔씩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올라오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고도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제 시야에서 보이는 풍경도 점점 멋있어졌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다보니 이윽고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정상에 올라가니 별로 볼 건 없었습니다. 나무로 뒤덮힌 신기한 분화구만 구경했습니다. 다시 계단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신기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앞만 보고 걷느라 시야가 좁았습니다. 힘들어서 숨만 헐떡였습니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 오르기에 바빴습니다.

성산일출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진 : 송종식>

내리막 길을 걷고보니 비로소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오르막 길에서, 그리고 정상에서 보지 못했던 멋진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내리막을 내려오면서 배운 건 '여유'였습니다.

살면서도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헐떡일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살짝 내리막을 타고 내려올 때 조급해 할게 아니라 오히려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조망하고 인생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형님과의 밤 산책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꽤 성공한 형님과도 만났습니다. 휴지기가 필요해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직원들 모르게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제주에서 만난 이야기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글에서 굳이 누군지는 밝히지 못하는 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형님과는 어릴적부터 가까웠지만 살면서 서로 바빠 간간히 연락하는 사이입니다. 가족들과 마침 제주에 캠핑을 왔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밤늦게 캔맥주를 나누며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지금보다 더 어린 날, 이 형님은 에고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글을 쓰면 형의 기분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본인도 그걸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형은 항상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독선과 고집도 있었습니다. 태도는 부드러웠지만 내면에는 그런 감정들이 었었지요.

그러나 최근 오랜만에 만난 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습니다. 승승장구 하던 사업이 최근 약간 부침을 겪었다고 했습니다. 주변을 가득 채우던 좋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났다고 했습니다. 지난 날 자신의 고집과 독선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형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격도 과거 보다 더 유연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소중함도 다시금 깨닫고 있다고 했습니다.

일출봉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일맥상통한 이야기를 형이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 뿐 아니라 투자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약세장에서는 '진짜' 배운다


투자를 하다보면 수 없이 많은 약세장과 강세장을 겪게 됩니다. 또 폭락장과 폭등장도 겪게 됩니다. 시장 경험이 풍부하면 이런 상황에 무덤덤하게 대응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투자자들은 공포에 질리거나 흥분하는 감정에 몰리게 됩니다.

다만, 시장에서 퇴출되지만 않는다면 시장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투자자들은 하락장과 약세장에서 배우는게 많습니다. 강세장에서보다 약세장에서 배우는 게 훨씬 많습니다. 강세장에서 아무 생각없이 수익을 내다가도 시장 자체가 약해져서 손실을 내게되면 그제서야 본질적인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잃지 않는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투자는 덧셈과 뺄셈의 게임이 아닙니다. 곱셉의 게임이고 복리 게임입니다. 따라서 잃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많은 투자 철학이 약세장에서 만들어집니다.

이번 급락장에서도 어김없이 주식을 손절하고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레버리지를 과도하게 쓰다가 화를 입은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이 어떻게든 잘 회복하고 복귀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강세장에서 수익을 자신의 실력으로, 약세장에서의 손실을 남탓으로' 돌리면 투자자로서의 성장은 영원토록 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수익은 시장이 주는것이고, 손실은 내가 내는 것이다. 다만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공부할 뿐이다.'라고요.

약세장에서 우리는 많은 걸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번의 약세장과 폭락장에서의 경험을 얻으면 우리는 튼튼한 투자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지금도 약세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약세장을 통해 책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평생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투자자로 조금씩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며칠 전, 코스닥이 폭락을 하던 시기에 올렸던 유튜브 영상을 하나 첨부합니다.


2019년 8월 24일
송종식 드림

2018년 5월 24일 목요일

노력은 운을 만나야 결실을 이룬다

노오오력이 부족하닷! vs. 암만 노력해도 안된닷!


노력론은 비교적 사회에서 크고 작은 성취나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자주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세상 탓 하지마라.', '노력해라, 안되면 더 노력해라. 그래도 안되면 더 노력해라.', '잘되는 건 운과 사회 탓으로 돌리고, 안되는 건 나의 노력탓을 해라..' 등등 이런 이야기는 특히 자기계발서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응당,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산다면 타인으로부터 찬사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도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런 애티튜드는 나에게만 적용하고 가슴속에 묻어둬야 합니다. 저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타인에게 하고 다니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최근에 부쩍 늘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구조적으로 지위 향상을 노력으로 해내는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당연히 타인에게 이래라저래라 강요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이글도 '이래라저래라'류의 글이 아닌, X세대 꼰대 젊은 아재가 자기 점검 차원이서 쓰는글이며 보팅이라도 좀 받아가면서 공감대 형성되는 분들끼리 위안이라도 해보자고 쓰는글입니다.

어느 분야나 기본적인 노력은 필요하다

로또 당첨이나 자다가 부모님 유산이 떨어진 경우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노력을 해야 기본적인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기틀은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언가 얻기를 위하면 평생 얻지는 못하고, 얻기를 위하다가 생을 마감하게됩니다. 얻으려면 시도를 해야합니다. 시도를 했으면 당연히 성실하게 노력을 해야합니다. 기본적인 노력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볼멘 소리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스스로의 가슴에 손을 얹고 노력을 했는지 돌아보는게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노력만이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인도하는건 아니다

노력은 기본중에 기본입니다. 기본적인걸 하네마네 논쟁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야만 성공하는건 아니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독서광 아닌 사람이 없다.' 이 말과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노력을 한다고 모든 사람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노력을 안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노력은 기본적으로 해야합니다.
그리고, 노력뒤에는 반드시 '운'이 따라야합니다. 운은 우리 삶에서 생각보다 꽤 큰 위력을 가합니다. 운의 기본적인 요소는 시간과 장소 즉, 시대가 주는 행운(때)과 그 시대의 행운이 따르는 장소가 핵심입니다. 큰 부자들에게 자문을 구해보면 이 '행운'조차도 확률의 범주에서 움직이며 삶에서 행운을 높여주는 방법들은 무수히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령,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이 대통령 눈에 띌려는 이상한 목표를 세웠다면 청와대 앞에 식당을 차려야됩니다. 저기 삼천포에서 식당을 차리지 말아야합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앞 개인 식당에서 밥을 먹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래야 측근들이나 직원들에 의해서든 대통령 눈에 띌 확률을 높이겠죠.
그리고, 기질과 재능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질에는 '지능', '끈기', '성실함', '임기응변' 등 온갖 요소들이 포함됩니다. 노력을 할 줄아는 기질, 운을 끌어내는 기질, 판을 보는 기질, 배팅하고, 실행하고 끈기 있게 해내는 기질, 얻은 운을 수성하는 기질 등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재능에는 특정 분야에 대한 남보다 조금 더 탁월한 능력들이 포함됩니다.
버핏이 부르는 '자궁로또'는 어떤 국가의 어떤 부모님 밑에서 태어 나는지를 유머러스하게 칭한 단어입니다. 정상적인 강대국의 학력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면 처음부터 인생에 날개를 달고 태어나는 것 처럼 보입니다만 그것은 앞서 말씀드렸던 '운'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노력 x 운 x 기질과 재능 = 성공확률

노력에도 방향과 전략이 필요하다

제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을 말씀드리려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지금도 도서관에 앉아서 엄청나게 노력을합니다. 실제로 그들이 생각하는 노력이란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시험공부'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현명한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에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여 노력하고자 하였다면 내 노력의 에너지를 쓸 방향성을 명확히 규정해야합니다. 그리고 전략적인 노력을 해야하지요.
"저는 람보르기니가 드림카입니다. 큰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여행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청년이 도서관에서 9급 공무원에 도전하겠다고 하루종일 도서관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으면 거기에 아무리 노력을 쏟아봤자 헛노력을 쓰는겁니다.
반대로, "저는 꿈이 크지는 않아요. 하루하루 내몸 건사하고, 휴일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다니는... 그 정도만 살아도 행복해요." 이렇게 말하는 친구가 창업을 하겠다고, 창업 전선에 도전해서 가게를 키우겠다고 에너지를 쏟으면 그 청년은 불행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에게 솔직해지기

투자도 그렇지만, 인생의 항로를 정할때는 더 그렇습니다. 먼저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누군지 스스로 정체성을 확실히 찾고 정립해야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 솔직해져야합니다.
이를테면, "남에게 꿀리기 싫어서 투자를 한다."거나, "남 밑에서 일하기 싫어서 창업을 한다"거나 한다면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밀어두는게 좋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적어도 사(士)자 직업은 가져야죠. 그래서 저는 열심히 공부했고 돈 많이 버는 의사할거에요." 이런 친구들도 더러 있었는데, 이러면 정말 자신을 속이는겁니다. 의사가 되더라도 인생이 행복할리가 없습니다.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서 살자

수명이 아무리 늘어도 대부분의 사람은 100살도 못삽니다. 게다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시간은 영유아기를 제외하면 30~40년도 되지 않습니다. 그 짧은 생을 '먹고 살려고' 살거나, '남들눈에 잘 보이려고' 산다면 스스로의 삶에 매우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세로토닌을 분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향점은 그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급적 젊을 때 1) 짧은 기간 폭발적으로 노력하고, 2) 전략적으로 노력하고, 3) 행운의 확률을 높이면서도 현재의 행복을 놓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살면 어떨까 싶습니다. 먹고, 여행하고, 사랑하고, 현재를 애정하며 사는 모습이 그것에 가까울까요? 궁극적인 인간의 삶은 '세로토닌을 분비하는 삶'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선악구도도, 영구적인 위대함과 찌질함의 구도도 어떤 것도 세로토닌 분비 논리 앞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는 듯 합니다.

노력과 운의 환상적인 콜라보

노력과 운에 대해 간략하게 작성한 지난 포스팅에서 하지 못했던 운에 대한 사례들을 조금 더 소개드려보고자 합니다. 열거하자면 무수히 끝도 없는 사례들이 있겠지만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몇가지 사례들만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운의 위력에 대해서 실감해 보시길 바랍니다.

유튜브 창업자, 카드 돌려막기와 억만장자 사이를 오가다

스티브 첸, 자웨드 카림, 채드 헐리 세 사람은 당시 1) 텍스트와 이미지 시대를 넘어 동영상 시대가 올것으로 내다봤고, 2) TV에서 방영하지 못하는 쓰나미 영상이 인터넷으로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것을 보면서 UCC 시대임을 느꼈고, 3) 컨텐츠 소비자가 생산자를 겸하는 프로슈머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셋은 의기투합해서 동영상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이용자들이 사이트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공유기능 덕분입니다. 동영상에 '공유' 버튼을 추가해서 동영상이 외부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 붙어서 돌아다니도록 만들어서 트래픽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역폭 문제가 커지자 서버를 수십대로 늘렸습니다. 하루 100만 건 정도의 동영상이 업로드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서비스를 운영했지만 유튜브는 하루에 1억 건이 넘는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시대는 이들의 부름에 응답을 했습니다.
서비스는 날로 성장했지만 별다른 수익원이 없었습니다. 엄청난 서버 비용과 회선 비용을 점점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창업자들은 카드 돌려 막기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렇다고 서비스를 이대로 없애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서비스가 더욱 인프라가 좋은 회사의 품에 안겨서 쭉쭉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벼랑끝까지 온 상황에서 유튜브는 야후, 구글과 매각 협상을 했습니다. 구글에 성공적으로 2조 원 정도를 받고 매각에 성공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인 2006년의 일이고 매각은 에릭슈미트와 창업자들이 만나서 거의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유튜브는 막대한 트래픽과 스토리지 비용으로 2009년까지도 연간 5,000억 원의 적자를 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유튜브 때문에 구글이 무너질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스티브 첸과 친구들의 노력 : 전재산을 걸었음, 회사에서 숙식해가며 코딩했음,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고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함, 카드 돌려 막기를 하면서도 서비스를 이 악물고 키움 등
스티브 첸과 친구들의 운 : UCC, 웹2.0, 소셜미디어, 웹 동영상 시대가 열리고 있었음, 구글의 에릭슈미트 회장을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었고 회사 매각에 대해서 합의함 등

한국인 박지현씨, 유튜브를 창업한 억만장자와 결혼하다

역삼동 구글코리아에서 제이미(Jamie)라고 불렸던 한국인 박지현씨는 월급쟁이에서 순식간에 억만장자의 아내로, 샌프란시스코 상류 사회의 구성원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유튜브 홍보 행사차 한국을 방문했던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은 구글코리아 사무실에서 박지현씨에게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이후 스티브 첸은 청혼을 했고 박지현씨는 수락하여 공식적인 부부가 됩니다.
박지현씨의 노력 : 열심히 공부해서 연세대학교에 들어갔음, 영어공부도 열심히 했음, 구글코리아에 입사했음, 유튜브 마케팅 업무를 열심히 했음 등
박지현씨의 운 : 부모님께서 스티브 첸의 이상형으로 태어나게 해주심, 스티브 첸이 억만장자일때 만남, 스티브 첸이 구글코리아에 왔을때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음 등

테무진 vs. 자무카

초원 통일을 앞두고 테무진과 자무카는 일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테무진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만 자무카에 대한 인지도는 높지 않은데, 자무카는 테무진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기전에 존재하던 최고의 전사이자 전략가였습니다. 싸움으로는 초원에서 자무카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미 전투 능력만으로 스무살도 되기전에 자신의 세력을 만든 전쟁 천재였습니다.
테무진과 자무카는 안다(의형제)를 맺은 최고의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무카는 테무진의 장단점을 꿰고 있었습니다. 초원통일을 앞둔 중요한 전투(나이만과의 전투 이전)에서 테무진보다는 자무카가 이길 확률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컴컴해진 하늘에 천둥번개가 내리치면서 비가 내리고 바람이 테무진에게 유리하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테무진군의 활은 원래보다 더 멀리 날아갔고 자무카의 군은 맞바람을 안고 싸워야했습니다.
테무진은 날씨의 도움으로 자무카에게 승리하였습니다. 초원을 통일하고 징기스칸은 역사상 두번째로 영토가 넓은 제국을 만들어나갑니다.
테무진의 노력 : 가급적 사람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했음, 적군이라도 포용하려고 했음, 여러 최악의 상황에서도 늘 좌절하지 않았음, 사람들과 신의를 지키려고 노력했음 등
테무진의 운 : 여러 죽을고비마다 절묘하게 살아날 기회와 행운이 따랐음, 어린 시절에 자무카를 만나서 대번에 자무카군의 2인자로 올라섬, 자무카와의 마지막 일전에서 날씨의 큰 도움을 받음 등

한국전쟁 덕분에 부도를 코앞에 두고 살아난 도요타자동차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일본은 공장도 제대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나라 전체가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도요타자동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직원들의 대규모 파업까지 겹쳐서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습니다.
그런 위기의 와중에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미군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 군용트럭 제조를 요청합니다. 이때부터 도요타자동차는 극적으로 회생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도요타자동차뿐만 아니라 일본의 산업 전체가 한국전쟁 특수를 등에 업고 고도 성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전후 복구도 하지 못하던 나라가 한국전쟁 특수로 살아난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자동차 생산력이 엄청난 나라였습니다. 1949~50년대에 도요타자동차의 생산력은 하루 50대도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포드가 하루에 8,000대를 생산했던 걸 생각하면 미군이 직접 군수품을 생산했어도 되었습니다. 단지 지리적으로 미국 본토는 멀고 일본은 전장에서 가까웠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에 자동차 생산을 의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공산진영에 맞서고자 일본을 경제적으로 발전시킬 전략적 구상도 있었습니다.
도요타자동차의 운 : 부도직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해서 특수를 누림,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웠음, 미국이 정책적으로 공산주의를 막는 역할로 일본을 필요로 했음

히틀러의 입학을 거부한 비엔나 미술학원

히틀러는 1903년 아버지의 사망, 1905년부터 비엔나의 고아원의 손에서 자라납니다. 히틀러는 미술가로 살아가길 지망했습니다. 그는 당시 가장 저명한 미술학교 중 하나였던 비엔나 아카데미에 두번이나 지원했지만 모두 낙방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인 선생들로부터 인격 멸시를 당했다는 카더라도 있습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때 히틀러가 비엔나아카데미에 합격을 했다면 역사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행운에 따른 카더라가 하나 있는데, 통신병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영국 육군 소속의 헨리테디 이병은 히틀러를 사살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인류의 운 : 비엔나아카데미에서 히틀러의 입학을 허가해주었더라면..?

페이스북의 '알수도 있는 친구' 기능, 신문의 박스기사..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10년 넘게 연락도 없었고, 학창시절에도 별로 친하지 않았던 이성친구. 이 이성친구를 페이스북이 추천해주는 '알수도 있는 친구' 목록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잘 지내냐?'고. 이렇게 화면의 한 구석에서 우연히 만난 이둘은 이후에 결혼을 해서 부부의 연이 됩니다.
이 커플의 사례 뿐 아니라 수 많은 우연한 인간관계가 PC통신과 인터넷 세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라인게임에서 만나서 결혼하는 커플들도 자주 보았습니다.
어떤 큰 부자는 신문지상의 작은 박스기사 하나를 보고 투자 아이디어를 떠올려 해당 기업에 투자를 시작해서 큰 부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스쳐가는 작은 무엇하나가 우리의 삶과 운명 자체를 바꾸는 경우는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버핏과 멍거의 만남, 김택진과 송재경의 만남 등 우연한 만남을 통한 시대의 변혁도 많이 목격합니다.

시간, 운명, 역사는 모두 아날로그.. 그리고 운과 불운의 연속

작은 범주에서 개인의 운명, 큰 범주에서 역사, 그리고 더 큰 개념으로의 우주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모두 아날로그적입니다. 아날로그는 끝없이 흐릅니다. 흐름은 운과 불운의 지속적인 반복을 타고 갑니다. 그리고 운과 불운도 우리 시각에서의 기준일 뿐 우주적인 시각으로보면 중립입니다.
지구가 폭발하면 인류에게는 불운이지만 우주 전체적으로는 자연 생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운과 불운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지만 운을 특정할수는 없습니다. 제가 등산을 하다가 돌을 밟고 넘어져서 허리를 다쳤다면, 그 피해는 평생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운을 정의할 때 '돌을 밟은 행위'에만 둘수는 없습니다. 1983년에 제가 태어나서 움직여왔던 모든 요소들과 그 자리에 산이 생성되었던 수억년간의 요소, 그리고 하필 거기에 돌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요소를 모두 곱하면 운과 불운의 발생 확률은 0일수도 있고 무한대일수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운이나 불행같은 요행에 너무 목숨을 걸며 살 필요는 없다는 소리입니다.
강수진의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