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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1일 토요일

내가 이게 절제가 되다니 (feat. 건강관리)

내 몸무게 변천사


어머니께서는 평생 마른 체형으로 사셨다. 아버지 역시 한번도 살이 찐 적이 없으시다.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아버지의 머리숱은 풍성하다. 물론 흰머리 하나 없는 흑발이다. 

그래서일까. 유전자는 못 속인다. 나는 어려서부터 머리숱이 정말 많았다. 나이를 먹으면서 머리카락이 가늘어져 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숱은 많은 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탈모걱정은 별로 안한다.

체형 역시 그랬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기 전 까지는. 물론 아이를 내가 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의 체형도 그 시기즈음 변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10대


10대 때는 말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적정 체중인 것 같다. 살이 조금 있어야 남자들 세상에서는 고개를 들고 다닌다. 나는 당시 처음보는 수컷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말랐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주 빼빼 마른 것은 또 아니었다. 건강하게 잘 마른 체형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살이 붙은 적이 있었다. 대학에 일찌감치 합격하고 몇달 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때 정말 놀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니 순식간에 살이 불은 적이 있었다. 70kg 초반대를 유지하던 체중이 90kg을 뚫고 올라갔다. 물론 이 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다시 살이 빠졌다. 이때 나는 '내가 고무줄 체형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것을 살짝 느꼈다.

20대


20대 때 체형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내 사업을 몇번 말아 먹고 남 밑으로 들어갔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시기에는 말 그대로 '워크 앤 하모니' 상태로 살았다. 내 회사는 아니었지만 하루에 10시간 넘게 일을 했다. 새벽에도 대표님이 호출하면 달려 나갔다. 자기 관리도 꽤 열심히 했다. 오전 6시에 칼 같이 수영을 했다. 하루도 빠짐없었다. 근력 운동을 따로 한 것은 아니지만 수영은 열심히 했다.

허리 20인치 중후반대 시절. 매끈한 피부에 잘록한 허리. 하루종일 수영을 해도, 하루에 3시간 자고 일에 매진을 해도 지치지 않던 시절이었다.

믿기지 않고 재수도 없겠지만, 이 당시엔 인기도 좀 있었던 것 같다. 10대 때는 컴퓨터에 몰두했다. 20대엔 일과 운동에만 몰두했고, 거의 일에 미쳐서 살았다. 여자에 관심이 없던 건 아니지만 애써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도 안했다. 여자들 뒷꽁무니를 따라 다니거나 여자에게 에너지 들이는 행동을 안했다. 여자보다 일과 꿈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술이나 유흥을 즐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억지로 여자를 만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연애는 꾸준히 했다. 내가 먼저 여자에게 대시해서 사귀자고 한 적이 없다. 여자친구들이 먼저 대시해서 연애를 시작했다. 심성이 착하고, 외모도 예쁘고, 인간적으로도 좋은 친구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꿈 같은 시절이기는 하다.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여자에게 무관심하니 여자가 생기는 아이러니한 시절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도 옆 매장 누나들에게 이쁨을 많이 받았다. 누나들이 먹을 걸 많이 챙겨줬다. 엉덩이가 튼실하다고 이래저래 추행과 희롱도 많이 당하면서 살았던 기억도 난다. 누나들이 나를 예뻐해서 그런거라고 좋게 생각했다.

결혼 후, 출산 전후


결혼 후 살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장모님께서 한식을 잘 하셨다. 혼자 살 때 보다 확실히 잘 챙겨 먹었다. 그리고 마음도 편해졌다. 그랬는지 결혼하고 나서 살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정기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에서 생전 받아본 적 없는 '다소 비만입니다'라는 판정도 결혼후에 받았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살이 급격하게 쪘다. 임신도 출산도 당연히 내가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면서 배도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슬금슬금 아저씨가 되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이 나를 보던 눈빛도 10대, 20대 시절과 많이 달라졌음을 이 즈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심지어 50~60대 할머니들도 나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다. 여자들이 나에게 호의적이고 친절했던 시절이 가끔 그리웠다. 내가 늙고, 살찌고, 아저씨가 되긴 했나 보다 하면서 현실직시를 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이다.

30대


그래도 다행히. 겉보기에 심각한 뚱보까지는 안갔다. 하지만 조금씩 지속해서 살이 붙었다. 사람들은 '남자가 그 정도면 딱 통통하고 좋지'라고 말하지만 내 건강에는 계속 악영향을 미쳤다.

한번은 군시절에 입던 군복 바지를 입으려고 시도했다. 바지춤을 허리까지 올리는 것도 곤욕이었다. 바지를 잠그려고 하는 시도는 애초에 포기했다. 허리단이 내 양쪽 허리에서 멈췄다. 남북관계 마냥 버튼들은 양쪽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예 서로 마주칠 수도 없었다. 정말 살이 엄청나게 쪘구나 하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관심없던 다이어트가 화두가 된 이유


검진을 주기적으로 받는다. 30대 중반 쯤 지방간 초기 판정을 받았다. 그 전엔 검진을 받으면 몸의 모든 곳이 건강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어디 하나 문제없이 완벽했다. 그런데 30대가 되니 드디어 '지방간 초기'라는 판정 문구 한 줄이 추가되었다. 그때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며칠 전, 검진결과는 그야말로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몸 여기저기에 문제 신호가 발생하고 있었다. 뭐가 주렁주렁 더 적히기 시작했다. 다른 부분들이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도 지방간이 '중등'으로 진행되어 있었다. 간 건강이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간이 진행되면 간을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오로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 밖에는 답이 없다고 했다. 1) 하루 6~7시간의 충분한 수면, 2) 규칙적인 식사, 3) 체중감량. 이것 3개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나는 젊어서 부터 거의 잠이 없이 살아왔다. 이제 그 생활을 청산할 때가 된 것 같다. 몸이 무한정 버티던 나이는 끝났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별 일이 없으면 12시를 전후하여 잠자리에 들기 위해 의식적으로 눕는다.

사실 10년 전에 AFP라는 간암 인자 수치가 엄청나게 높아진 게 하나 있었다. 정상 범위의 수치보다 수십배 높았다. 간에 있어서 한국 최고의 명의이신 백용한 선생님께서는 이것만으로 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AFP 수치는 과할 정도로 높았지만 그 이후 검진 때 마다 계속 내려가는 추세였다. 그래서 그 부분은 지속 감시는 하되, 크게 문제 삼지는 않으셨다.

문제는 6~7년 전쯤 처음 발견된 지방간 초기 증상이었다. 백용한 선생님께서는 이건 아주 좋지 않으니 살을 빼자고 하셨다. 당시에는 7~8kg 정도 감량하고 생활습관 개선을 요구하셨다. 그 이후에도 정기검진을 받을 때 마다 백 선생님의 톤은 점점 높아지셨다. '살을 안 빼시면 죽을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살을 빼셔야만 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생활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존경하는 교수님의 조언을 진작 이행하지 못해서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이제는 말 잘 듣겠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검사 때 까지 살은 지속해서 불어났다. 이제는 권장 감량 체중이 13kg까지 늘어났다.

나도 이제는 크게 경각심을 느낀다. 체력이 좋다고 자부하고 살았기 때문에 자만심도 있었다. 이제는 그 자만심도 버렸다. 20대 이후에 끊고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수영을 재등록했다. 한동안 멈췄던 등산도 다시 시작했다. 근력 운동도 더 꾸준히 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수면습관과 식습관 개선이 시급했다. 하루 6~7시간 이상의 수면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식습관을 고치는 게 어려웠지만 잘 해내고 있다.

카페에 가면 항상 단 음료를 먹었다. 그것도 벤티 사이즈로만. 그걸 다 끊었다. 이제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노 작은 것을 마신다. 처음에는 곤욕이었지만 하다 보니 할 만하다. 잘 거르던 아침 식사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 주로 샐러드로 식단을 짰다.

군것질과 주전부리를 아주 즐겼는데 모두 끊어냈다. 그 좋아하는 야식도 끊었다. 음식을 시키면 메인에 온갖 사이드까지 시켜서 배가 터지도록 먹는 버릇도 고쳤다. 간소하게 하나만 시켜서 소량만 먹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잘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잔반 남기는 걸 싫어한다. 아버지께 그렇게 교육 받았기 때문이다. 밥알 하나도 안 남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이라도 배가 불러오면 남은 음식은 그냥 놔두고 손을 놓는다.

호텔에 가면 탄산음료며 커피가 제공되는 곳이 많다. 예전엔 그걸 꾸역꾸역 다 먹었다. 다 먹지 못하면 어떻게든 집으로 챙겨왔다. 요즘엔 그냥 손을 안댄다. 다 버리고 온다. 물만 마신다.

음식료를 구매하기 전에는 영양소를 보는 습관도 생겼다. 가격표는 안 봐도 영양성분표는 꼭 확인한다. 그 좋아하는 백반집 왕래도 줄이고 있다. 좋아하는 면 음식도 대폭 줄였다.

내가 이런 것들이 절제가 되다니 스스로 놀랍다. 인간이 살아가는 여러가지 즐거움 중 먹는 즐거움의 비중이 크다.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지만 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해야만 한다.

내년까지 몸무게 앞자리 숫자를 8에서 7로 일단 바꾸는 것이 목표다. 이 글은 내 다짐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나중에 들춰보기 위해서.

건강이 최고의 가치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말하고 강조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건강을 실제로 지켜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유전과 환경문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건강문제는 생활습관에서 오는 것 같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갖고 이를 꾸준히 이행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좋아하는 것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본능에 따라 사는 것도 자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잘 이행하여 건강하게 오래살아야 한다. 가치투자자는 그래야 한다. 그래야 복리 수익을 꾸준히 누릴 수 있으니.

요즘 살 빼는 약이 인기다. 나는 그런 것은 맞을 생각이 없다. 투자와 마찬가지로 삶의 모든 것에도 펀더멘털을 중시한다. 외부 요인에 의존하지 않고, 내 삶과 건강의 펀더멘털 자체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고 유지할 것이다.

2023년 10월 21일
송종식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살을 빼라더니

"살을 뺍시다. 못 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딱 5kg만 빼 봐요."

내 건강을 관리하시는 선생님께 근 10년 가까이 저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살은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살을 안 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라'고 농담삼아 겁도 주셨다.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곧 40대에 접어드니 만큼 비만이 만병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실제 몇가지 지표들을 면밀하게 관찰중이기도 하다.

그렇게 안 빠지던 살이 근 몇달 간 양평에 머물면서 쭉쭉 빠졌나 보다. 아마도 새롭게 시작한 등산. 그리고 다시 시작한 여러가지 운동들. 그리고 워낙에 먹을 것을 많이 줄였다. 혼자서 하루 식비만 5~10만 원씩 써댔으니 살이 안 찔리가. 이제는 가급적 배에 꼬르륵 소리가 나는 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실제로 그러고 있다. 몸이 한결 가볍다.

이번에 검진을 받았다. 체중을 재는 선생님께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으셨다.

"살이 너무 많이 빠지셨는데요?"
"얼마나요?"
"한 6kg 정도요."
"제가 최근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먹을 것도 많이 줄였어요. 그 영향은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이유일 수도 있어요."

나는 의아했다. 아니 그렇게 살을 안 빼면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더니. 이제는 6kg이 빠졌다고 걱정을 하시면. 내 체중의 적정주가는 다시 3kg 정도를 찌우면 되는걸까?

이번에 검진을 하니 시력은 향상됐다. 체중도 다른 이유는 없고 관리를 잘 해서 적당히 잘 빠진 것 같다. 몇 주 전에 오른쪽 귀에 이명과 이중들림 현상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그것도 잠을 잘 자니 지금은 괜찮아졌다. 검사결과도 좋다.

양평에 사니까 건강에는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다. 눈을 어디에 둬도 화보다. 뻥 뚫린 목가적인 자연 경관을 매일 즐긴다. 이래서 시력이 회복이 된 건가? 양평에서는 3~4억 선이면 사람들이 꿈꾸는 그림 같은 작은 집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목가적인 뷰를 얻는다. 아마 서울에서 같은 뷰를 얻으려면 족히 20~30억 원은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기도 좋아서 머리도 항상 맑다. 근처에 운동삼아 탈만한 해발 1,000m 남짓되는 산도 많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도시가스가 안 들어온다. 그래서 가스비가 비싸다. 생활물가도 많이 비싸다. 누가 서울의 물가가 비싸다고 했었나. 양쪽 물가를 모두 체감하고 있는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양평의 생활물가가 더 비싸다. 양평에서 지내면 소소하게 돈이 정말 많이 들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외롭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서울에 몰려 있다. 한번 왔다갔다 하면 휘발유 5만 원은 그냥 증발이다. 왕복하는데 시간도 꽤 든다. 일산에서 처리해야 할 일도 좀 있다. 그런데 일산은 아예 가지를 못하고 있다. 한번 다녀오면 하루가 다 지나간다. 몇 번 왕복했더니 거의 제주도에 갔다 오는 느낌이다.

멋진 자연경관과 건강을 얻은 대신 외로움을 얻었다.

최근에는 서울에 근거지를 하나 만들까 싶은 생각도 든다. 다시 서울로 복귀할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차 안 막히고, 사람 없고, 어딜가나 여유있는 삶을 즐길 수 있어서 좋지만, 반대급부도 확실히 있다. 애증의 양평 생활.

뭐 나야 몸이 어디서 지내든 크게 구애 받는 사람은 아니다. 맥북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지구 어디서든 방랑하며 살 수 있다. 서울 복귀 문제는 천천히 생각하고, 결정 내리면 빠르게 행동에 옮기도록 하자. 사람은 생각보다 한 곳에 몸이 머물면 그 일정 반경 밖으로 잘 안 움직이게 된다. 이번에 확실히 느꼈다. 이제 이동하면서 빠지는 비용들도 좀 세이브를 좀 해야겠다. 미친듯이 돌아 다녀서 귀한 시절에 현금누수가 너무 많았다.




사진 :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