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전업투자 10년차가 된 해네요

서류를 정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과거 직장에 다닐 때 받던 급여명세서도 다시 정리하였습니다. 그걸 정리하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2월이 제가 전업투자를 시작한지 10년째 되는 달이었습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지난 시간들에 대한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20살이 되기 전 까지는 전쟁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위협받던 어린 나날들이었습니다. 집이 부자가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만 먹고 자랐으면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보낸 10대 시절이었습니다.

20대 때는 군 전역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 부터 생업 전선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는 친구들과 만들었던 벤처기업의 창업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도 몇번의 작은 창업과 실패를 연속으로 겪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역량이 너무나 부족한 시기였습니다. 백기투항한 저는 스타트업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스타트업을 발판으로 중견기업도 5년 남짓 다녔습니다. 조직에서 일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좋은 사람들, 많은 배움, 감사했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홀로 낭인이 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때는 삶의 기반을 많이 쌓아 두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형님이 창업한 회사에 다닐 때는 완전히 충성하며 다녔습니다. 새벽에 연락이 와도 자다가 튀어 나갔습니다. 시키는 건 무엇이든 했습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습니다.

회사 밖에서는 개인 커리어도 열심히 개척했습니다. 투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소비도 극도로 절제했습니다. 극빈층 모드로 살았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으고 굴렸습니다. 사이드 잡을 되는대로 잡아서 처리하면서 현금흐름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거의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잠을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에 수영을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20대때 현명한 여성을 만나서 결혼도 하였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주머니에 고향서 상경하는 버스비만 달랑 들고 올라왔던 서울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알게 된 사람들, 손에 쥔 것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30대 때는 무작정 열심히 사는 것은 내려놓았습니다. 30대 이후로는 '설렁설렁 열심히' 사는 모드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심적으로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음 외적인 부분도 물론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면 제가 사는 걸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할 건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설렁설렁 열심히' 이게 남들이 보면 유유자적처럼 보입니다. 물론 제 마음 속에서도 많은 여유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것저것 열심히 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충되는 말이지만 당분간도 '설렁설렁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유튜브와 같은 소소한 소일거리도 하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설렁설렁 열심히'에 걸맞게 더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텔레그램 등을 통해서 소통해 주시는 다른 투자자들께도 늘 감사드립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도 즐겁고, 활자를 읽는 것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설렁설렁 열심히' 살다가, 또 제가 진정 투신할 일거리가 발견되면 20대때 처럼 열정을 불태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꾸준히 한걸음씩 조용히 따박따박 걸어가겠습니다.

사진 : 송종식

덧1) 앞으로 어디가서 '전업투자자'라고 저를 소개하는 걸 줄일까도 생각합니다. '전업투자'라고 하면 의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화면 앞에 붙어서 주식을 사고 팔며 전쟁을 하는 사람'. 하지만 저는 HTS는 아예 사용을 안합니다. MTS도 가끔만 확인합니다. 주식 매매는 1년에 몇 번 하지도 않습니다. 주식을 사고 파는데 인생을 전혀 쓰고 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화면 밖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화면 앞에 앉아 있을 때도, 가끔 팔로업 하는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글을 쓸 때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전업투자'에 갇히는 것도 지양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이미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고, 벌일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2) 전업투자 초기 시절.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투자자 형들과 태국 여행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지명도 생소한 곳을 지나다가 즉석으로 러시아식 사우나에 들렀습니다. 그곳의 샤워장은 야외에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하늘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예뻤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내 머리 위에 누가 없는 것도 다 행복했습니다. 오래도록 제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도 꼭 그런 삶의 여유가 생기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 해봅니다.

2024년 10월 17일
송종식 드림


댓글 25개:

  1. 댓글을 안달 수 없는 필력과 치열하게 살아오신 삶의 부러움과 존경을 담아 리스펙트 합니다.

    답글삭제
    답글
    1. 따뜻한 댓글 남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삭제
  2. 전업투자자가 아니라도 주식투자 한다고 하면 하루종일 매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설럴설렁 열심히' 참 좋네요^^

    답글삭제
    답글
    1. 제 기억이 맞다면, 혹시 가투소의 인여유수님 맞으신가요? 너무 반갑습니다. 주식투자를 한다고 하면 참 여러가지 소리를 듣게 되는데, 나중에는 점점 입을 열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주식투자를 한다고 해도 백인백색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 것인데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답답할 때가 많죠. 남들 일일이 신경 쓸 겨를 없이 우리 인생이 쭉 잘 풀리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삭제
  3. 매일 컴컴하고 조용한 새벽에 출근하던 어느시절을 벗어나
    파란하늘에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 학교를 데려다주고
    아이와 안아주고 인사하면서 느꼈던 행복감이 문득 글을보고 떠오릅니다.
    같은시간 다른 장소에 있는것만으로도
    몰랐던것들을 느끼며 감사를 느끼게 해줄때가 있더라구요 .
    해야하는 일을 다하고 하고싶은일을 하시는 송쌤이 대단하고 부럽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경일이형도 이제 저하고 함께 공부하신지 참 오래되셨네요. 그 동안 경일이형의 삶의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덩달아 저도 기쁘고, 경일이형한테서도 너무 많이 배웁니다. 어두운 시절 묵묵히 잘 견뎌내시어 파란 하늘 보면서 사시는 지금의 삶을 응원합니다.

      삭제
  4. 글 잘 읽었습니다~!! 투자도 인생도 할건 하면서 여유롭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당

    답글삭제
    답글
    1. 불가근불가원 귀한 동반자 돌다리야 항상 고맙데이. 인생 지나고 나면 허무하니까 할 거하면서 재미있게 살자~

      삭제
    2. 할 거 하면서 재밌게~~! 항상 감사합니다 형님!

      삭제
  5. 마음따듯해지는 글이네요, 한편으로는 뜨거워지기도 하구요.. 이 글을 보고나니 종식형님과 차한잔 하며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졌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치코님 오랜만입니다~ 어머님, 베트남 여행 건은 잘 진행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삭제
  6. 군 전역후 저는 치열하면서 떳떳하게 살겠습니다라는 전역사를 끝으로 사회로 나왔습니다
    30중반 떳떳하게 살고 있지만 치열하지 못한 저를 보곤합니다

    글을 읽으며 치열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수 있었습니다

    떳떳하게 사려면 치열하리만 했었고 잠시 저도 치열함을 내려 놓고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우리 PGR 형님이시면 안봐도 카메라입니다. 멋지게 사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사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는 구간도 좋습니다.

      삭제
  7. 그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답글삭제
    답글
    1. 제가 김과장형님을 항상 존경합니다! 그리고 늘상 고맙고 사랑합니다!

      삭제
  8. 너무 재미있는 글이네요. 글에 나오는 할아버지 만큼 되려면 아직 멀었지면 가슴 속에 잘 갖고 있다고 꼭 저 할아버지처럼 찐으로 모든 걸 놓고 유유자적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업도 잘 되시고, 부캐로도 승승장구 하시며 가족들과도 잘 지내는 한걸음 형님이 항상 더 부럽답니다^^

    답글삭제
  9. 아차! 그리고 항상 제 수면 걱정해 주시는 한걸음형 & 경일이형 감사드려요!

    답글삭제
  10. 다음 10년... 설레입니다.

    답글삭제
  11. 다음 10년 설레입니다...!

    답글삭제
    답글
    1. 10년 후 곤조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무척 기대가 되는 부분~

      삭제
  12. 송샘의 치열했던 시간들이 더 궁금하네요. 사실 그런 시간들 없이 온실같은 곳에서만 자라서 잘 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하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끝내지 않고 더 좋은 길로 찾아서 열심히 살아온 송샘이였기에 지금의 모습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평탄하지만은 않은 시간들을 몇 번 지나봤지만 그때는 죽을 것 같은 시간들이 후에 제 삶을 살아가는데 오히려 영양분이 되더라는 경험을 합니다.

    늘 이런 좋은 마인드를 건드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하지는 말자고 말해주시니 좋습니다.
    인생이...그렇게 길지 않을 수도 있겠더라구요 ^^

    답글삭제
    답글
    1. 와이여사누님의 시종일관 에너제닉하고 긍정적인 면에 아마 용수동분들도 그렇겠지만 저도 정말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습니다. 저도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다 보니 지나간 세월이 찰나처럼 느껴집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 재미있고 소중하게 살겠습니다. 쭉 같이 행복하게 잘 지내 보아요~ 와이여사 누나도 용수동도 화이팅입니다!

      삭제
  13. 얼마나 힘드셨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저도 고향에서 상경해서 힘들고 치열했던 20대를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저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오신거 같습니다. 저도 30대... 곧 40대를 앞두고 있는 투자자이지만 살아온 길을 많이 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설렁설렁 열심히' 삽시다!

    답글삭제
    답글
    1. 빈 손으로 상경하셔서 치열한 20대 시절을 보내셨군요.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저의 인생도 그리고, 댓글 달아주신 분의 인생도 모두 화이팅입니다! 앞으로는 설렁설렁 열심히 살면서 행복하게 살아 보아요^^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