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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 목요일

오징어게임, 돈과 인간 그리고 이념에 대한 잡생각 (Squid Game)

* 본 포스팅에는 결말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신작인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부분적으로 세상살이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아주 높은 사고 수준을 요구하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재미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뻔했습니다. 그래도 뻔한 내용에 뻔한 소리를 질러대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름대로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반추하는 기회로 삼아 보았습니다.

권력은 총과 돈, 격리에서 나온다


게임 참가자는 다수입니다. 게임 운영자들은 소수입니다. 그렇지만 소수의 게임 운영자들이 다수의 참가자를 지배합니다. 그들을 굴복하게 만든 힘은 1차적으로는 총입니다. 총칼 앞에서 대부분은 굴복합니다. 그 다음 통치 수단은 바로 돈입니다. 참가자들 내면 깊숙한 곳의 탐욕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노예의 길로 걸어가게 만듭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사는 늘 다수의 대중을 소수의 지배자가 총칼과 돈으로 지배해 왔음을 게임에서도 보여줍니다. 금권과 군사권을 쥔자가 인간사회의 권력을 쥡니다.

중간에 몇번의 사소한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총칼 앞에서 곧 진압됩니다. 만약, 대규모 봉기가 성공했더라도 그 다음은 고립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서울대 상우는 본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룬것인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증권맨 상우는 게임에서도 상위 0.43% 안에 들어갑니다. 참가자 465명 중 2등까지는 살아 남아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상우는 매사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입니다. 그는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가 여기까지 살아 남아서 올라온 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행운은 전혀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루었다고 강한 확신에 빠져 있는 상우를 통해서, 황동혁 감독은 실제 세상은 노력만으로 돌아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력만을 강조하는 세태를 꼬집으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울대 상우는 자신을 친형처럼 믿고 따르던 알리를 속이고 배신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참가자를 밀어 추락사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식으로 게임의 최종 승리자 직전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서울대 상우에게는 그런것도 노력이면 노력이라고 믿는 게 아닐지 안타까웠습니다.

실제 극 막판에 기훈은 상우에게 말합니다.

"너처럼 그렇게 잘난 새끼가 왜 여기서 머리 나쁘고 능력도 없는 나하고 이러고 있냐"고.

바깥 세상에서 상우는 횡령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노력과 과도한 탐욕의 결과였습니다.

주인공 기훈은 본인의 노력만으로 465억 원을 얻은 것인가?


서울대 상우와 달리 기훈은 자신의 생존이 자기 능력 덕분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게임 운영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기훈을 부추기는 발언들을 합니다. 기훈이 파이널리스트까지 올라간 것은 누구의 덕도 아닌 기훈 본인의 노력 덕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기훈은 첫번째 게임에서 조기 탈락할 운명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외국인 노동자 알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첫번째 게임을 통과합니다. 이런식으로 기훈은 매순간 주변의 도움으로 '운 좋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운영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게임의 결과만을 중시해서 그 결과에 대한 몫은 오롯이 기훈의 몫이며 모두 기훈의 노력만으로 얻은 것이라고 치켜세웁니다.

노력 만능주의 사회, 결과주의 사회에 대한 감독님의 비판적인 의견이 느껴졌습니다.

작은 게임마저도 복잡계다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세상에 비하면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게임들은 조건도 심플하고, 결과도 심플합니다. 세상의 극히 일부분을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축소시켜 놓은 작디작은 모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고작 465명이 참가하는, 룰조차 너무 간단한 이 게임의 결과는 복잡계의 산물로 탄생합니다.

이를테면, 기훈과 상우가 최종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상 465명이 만들 수 있는 21만 5,000가지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을 얻었다는 이야기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게임에 적용되는 여러가지 확률까지 더하면 이들이 살아 남아서 상금을 거머 쥘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확률에 도전하는 지능 또는 성향의 문제가 있으니 참가자들은 바깥에서도 늘 돈 때문에 걱정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박성향은 인생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어쨌든 강화유리와 일반유리를 구분하는 게임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기훈이 이 게임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앞선 플레이어들이 일으킨 여러가지 효과 덕분입니다. 그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얽히고 설킨 관계들,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페르소나들. 그런 것들이 짬뽕처럼 조화되어 기훈이 해당 게임을 통과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 변수들 중 작은 것 하나만 틀어졌어도 기훈은 해당 게임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작은 게임조차도 매우 복잡계입니다. 하물며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복잡계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매사 노력하고 옳은 구조와 틀을 짜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개인의 모든 성공을 오롯이 자기 자신의 공덕으로만 돌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반대로 모든 실패 역시 내탓으로만 돌리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겸손과 용기, 그리고 자존감을 잘 믹스하여 현명하게 살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요.

가난한 자와 부자의 공통점에 대한 1번 할아버지의 뼈 있는 이야기


1번 할아버지는 극 후반부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가난한 자와 돈이 넘쳐서 감당이 안되는 부자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다."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가난한 사람은 삶이 지옥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생존만을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 나가야 하니 삶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올라가고 싶은 이상이 높을수록 더욱 그렇겠죠.

부자들 역시 다른 쪽으로 삶이 무료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극중에 나오는 VIP들 정도 되는 재력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원하는 집, 차, 심지어 회사나 미녀, 맛있는 음식..? 그 무엇도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희망이 삶의 동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VIP들은 그런 간절함이 전혀 없습니다. 원하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삶이 무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징어게임 드라마에서 이 부자들은 자신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대량살상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현실 세계에서 인성이 망가진 일부 부자들은 대부분 주색에 빠지거나 주색 조차 지루하게 느껴지면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확실한 삶의 나침반이 없이 단지 명문대 입학만이 목적인 수험생은 목표로 하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 목적이 달성되며 삶의 방향타를 잃어 버립니다.

강력한 기대감을 모멘텀으로 품은 주식은 그 모멘텀이 실현되면 되레 주가가 폭락합니다.

오로지 인생의 목표가 돈인 사람은 실제 돈을 손에 쥐고 나면 위와 같이 망가지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회복탄력성과 평균회귀 능력이 아주 좋습니다. 큰 사고를 겪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불행은 잊혀 집니다. 큰 행운을 얻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기쁨과 슬픔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극중 VIP들과 같이 반사회적 행동들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는 돈미새들이 많습니다. 돈미새에 해당하는 분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큰 부를 얻고도 매일같이 하하하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자 지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돈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 동안 번돈을 사회에 돌려주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청년 사업가들에게 투자와 멘토링을 하고, 대중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사회의 많은 부분에 알게 모르게 기부를 하면서 유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부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힌트를 얻는 것도 좋아보입니다.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VIP들처럼 극단의 쾌락을 좇다가 살인기계가 되거나, 현실속에서 주색과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좇는 것도 좋지만,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늘 사색하고 통찰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자가 아니지만 제 경우에 추천드리는 것은 매일매일의 소일거리들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쓰는 것, 책을 써 보는 것, 집 앞의 정원과 화단을 애정을 갖고 꾸며 보는 것, 코딩을 배워서 앱을 만들어 보는 것, 악기를 배우는 것 등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연속적인 행복의 요소들은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네 삶이 어린 아이들 놀이나 쇼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집니다. 아수라장이 되고 여기저기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배경음악은 해맑기만 합니다. 거대한 수용소이자 살상의 장소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들이 널부러져 있고, 색감도 러블리 하기만 합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의 삶을 아이들의 장난 수준으로 바라 볼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데, 오징어게임의 감독님이 연출하신 분위기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회사에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가 매우 막혔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는 것 모든게 꾸며진 연극같다"

'소중한 내 삶을 왜 이렇게 정체된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하는지. 저 수 많은 사람들은 또 왜 그래야 하는지. 정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잠을 줄여가면서 치열하게 살아야만 해결되는 문제인지. 우리는 누구의 통제로, 무엇의 지시로 이렇게 레밍떼처럼 아침 저녁으로 삶을 버려 가며 이동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출퇴근을 안하면 안되는지. 진학, 취업, 출퇴근.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이 모든 틀을 깨고 나가면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닌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외의로 먹고 살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 거대한 연극같은 세상에 그렇게 발버둥치고 매달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게 연극이고 쇼라고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뭔가 명확해지는 아이디어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피가 난무하는 상황과 달리 해맑고 밝기만 한 오징어게임의 연출을 보면서 묘하게 그때 했던 생각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시스템이 대중을 조종하고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인간의 본성은 단지 선과 악으로만 구분짓기는 어렵습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 먹는다고 해서 그것을 악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고도화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본능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의 펀더멘털은 결국에는 본성에서 나옵니다.

오징어게임과 같이 극단적 환경에서는 이런 태도가 가슴 속 바깥으로 꺼내져서 적나라하게 표출됩니다.

단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밀린 월급만을 받기를 원했던 알리는 본의 아니게 사장을 장애인으로 만듭니다. 탈북녀 새벽은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서 모은 돈을 계속해서 사기를 당해 날려버립니다. 이런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징어게임에 들어오면서 말 그대로 생존본능을 발현하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게임을 하나씩 진행하면서 점점 괴물로 변하갑니다.

다만, 사람들이 놓친 부분도 있습니다. 

모두가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면 가급적 사망자를 줄이고 많은 사람들이 승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스템이 구상한대로 서로 죽이고 싸우면서 혼자만 살겠다고 사투를 벌입니다. 시스템의 계획에 말려든 것입니다. 

더욱 극단적인 카드도 있었습니다. 총칼이 무섭겠지만 게임 운영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판을 뒤집어 버릴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분열하고 반목하며 서로 믿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통제 당하는 것 처럼요.

뭐, 민주국가들도 마찬가지기는 합니다. 시스템이 의도적인 메시지 하나를 대중에게 던지면 대중들을 그것을 덥썩 물고 서로 찢어 죽일 듯 싸우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분할하고 지배하는 것, 그리고 분할하고 통치하는 것'. 이것이 시스템과 지도자들이 대중들을 다루는(?) 기본 전략입니다. 인간은 서로 믿지 못하고, 반목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이것을 깨고 유일하게 협력의 열쇠를 쥐고 움직인 사람이 극중에서는 기훈이었습니다.

판을 뒤집는 게 쉬운 것도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극 중에서 룰브레이커가 몇 명 나옵니다. 의사가 한명 나오는데 게임 참가자이기도 했습니다.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장기를 해체해서 게임 운영자들의 장기매매를 도와줍니다. 그러면서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 미리 내부자 정보를 획득해서 생존을 이어가죠. 편법을 쓰는 룰브레이커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도 탈락합니다.

경찰 준호는 애초에 게임 참가자도, 운영자도 아닌 스파이로 섬에 잠입합니다. 그 역시 룰브레이킹을 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운영자들을 하나씩 죽이지만 결국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채 프론트맨에 의해서 사망합니다.

총칼 앞에서 판을 뒤집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님을 새삼 느꼈습니다.

시스템은 당신의 성공을 두고 보지 않는다


유리판독 게임에서 전직 유리 기술자였던 참가자는 해당 게임의 법칙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를 두고 보지 않습니다. 즉시 해당 참가자가 찾아낸 비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전에 인타임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가난한 노동자였던 저스틴 팀버레이커가 무명의 부자로부터 막대한 자산을 증여받자, 시스템은 즉시 그를 체포해서 자산(시간)을 도로 빼앗으려고 합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수저인 여러분이 크게 성공한다면, 수 많은 기득권이 당신이 이룬 성취를 빼앗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대처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시스템은 흙수저가 어떤 치트키를 찾아서 크게 성공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어떤 꼬투리라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기득권을 위한 시스템의 수호자인 국세청과 경검찰은 치트키를 발견해서 성공한 흙수저를 밟아 없애기 위해서 늘 출동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게임 규칙은 제 멋대로 변하고 일관성도 없었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렇습니다. 최고 권력층에게 법은 자기보호 수단입니다. 자기 입맛대로 바꾸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다지 지키지 않아도 돈, 권력, 인맥으로 처벌을 피해갑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과 서민들에게는 엄격한 통제의 수단입니다. 시스템이 만든 사소한 규칙이라도 어기게 되면 칼같이 처벌합니다. 

또한, 누구하나가 성공하면 을끼리 꼬투리를 잡아서 시스템에게 신고하고 처벌을 종용하는 기현상도 생깁니다. 시스템은 즉시 성공한 을을 심판하기 위해 출동합니다.

퇴사할 것인가? 계속 다닐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 현실 세계를 회사라 치면, 오징어게임장은 퇴사한 사람들의 모임 같았습니다.

"회사는 정글이지만 밖은 지옥이다."

정말로 그것이 잘 묘사된 드라마였습니다.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 파이어족이라는 단어에 세뇌된 분들은 한번쯤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유능하다고 알려졌던 몇몇 투자자들 조차도 지옥에서 견디지 못하고 유료리딩방 사업을 합니다. 지옥에서는 생존이 일단의 지상과제가 됩니다.

지나친 권선징악 (유비의 촉한은 망했지만, 기훈은 승리했다)


'사람들이 반목하지 않고 협력하여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상적입니다. 실제 세상도 그렇게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의 그런 바람이 드라마에 녹여진 것 같습니다.

흡사,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과 오징어게임 감독님이 바라는 이상향이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관중 역시 지나친 현실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인 조조를 희대의 악당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후퇴하는 길에 노인과 여자 등 백성들까지 일일이 챙긴 유비는 한껏 치켜 세웠습니다.

오징어게임 감독님을 나관중이라고 본다면 주인공인 기훈은 유비 캐릭터에 가까웠습니다. 남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을 도왔을 뿐인데, 게임의 승리자가 됩니다. 물론 기훈도 중간에 할아버지에게 한번 사기를 치기는 합니다만, 기훈은 전반적으로 살상도 하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을 도와 가면서 끝까지 함께 가기를 바라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디 그렇던가요?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유비형 캐릭터보다 조조형 캐릭터들이 더 성공합니다. 또한, 유비라고 어디 인의만 따질까요? 유비도 상당히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흉악한 권모술수를 가진 정치가였습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느껴지는 권선징악의 향기에서 저는 게임의 최종승자가 기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사실 초반부터 알아버렸습니다. 권선징악을 기반으로 한 뻔한 전개는 김이 새는 부분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엎어버리자? 따뜻한 자본주의 체제를 이어가자?


저는 드라마 초반부에서 이 게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소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기획한 것은 음모론자들이 좋아하는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초권력, 초세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실제 VIP들이 서양인(G2국가인 중국인 1인 포함)인 것을 확인하고 더욱 그런 마음을 갖고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또한, '서양의 초국제세력이 만든 판에서 우리 동양인들이 죽어 나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은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갖고 노는 설정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마음 한켠에 가지고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너무 사악하고 나쁜 서구식 자본주의 혹은 초강대국들을 비판하기 위한 내용일까 싶었습니다.

나중에야 한국인인 1번 할아버지도 게임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왜 재미로 동족을 살상하며 쾌락을 즐긴 것인가?

1번 할아버지는 국가, 민족, 인권 같은 것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 이른바 글로벌 기업가로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호화병상에 누운 모습과 창 밖을 통해서 보이는 길거리 노숙자의 모습이 의미심장했죠. 그리고 그 글로벌 기업가는 세계의 다른 글로벌 자본과 연합하여 사람들을 주무른다는 설정으로도 보였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한 사람의 성공에는 수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른다."
"수 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한 사람이 부를 독식한다."
"시작을 평등하게 하더라도 결과는 평등하지 못하다."

자본주의체제와 반자본주의 체제 모두에 대한 감독님의 회의주의가 느껴졌습니다.

다만,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감독님의 메시지에는 공감을 했지만 부자를 지나치게 악한 모습으로 설정한 부분에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VIP들은 대체로 살이 쪘는데, 게임 참가자들은 모두 비쩍 마른 사람이 많은 설정도 그렇습니다.

또, 드라마에서는 부자, 남자, 서울대, 여의도 금융권,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 등은 강자로 또는 악인으로 묘사됩니다. 탈북민, 이슬람계 외국인 노동자, 여자, 고졸 공장 노동자 등은 선하거나 의리가 있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묘하게 PC주의로 공격받을 수 있는 지점들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실제로는 악마같은 부자들보다 따뜻한 부자들이 더 많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사람 목숨조차 자신들의 유희를 위한 장난감 정도로 생각한다는 설정도 섬짓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이 체제와 판을 뒤집어 버려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만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당연히 안되겠죠. 그러나 드라마는 지나치게 돈과 금융,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주의와 악마화가 느껴져서 큰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시즌2가 나온다면 시즌2에서는 기훈이 게임의 판을 뒤집는데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해보았습니다. VIP들을 사로잡은 뒤 게임판의 말로 만들어서 자신과 사람들이 당했던 것을 똑같이 되갚아 주면서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로 세상이 바뀌는 걸까 싶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세상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고속도로 위에서의 망상 (스트레인저, 어나니머스, 대중과 개인, 인연에 대해)

#1

유튜브에 재미있는 영상이 업로드 된다. 영상의 조회수는 1회, 10회, 100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1만회, 10만회, 100만회가 되기도 한다. 숫자만 보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 영상을 본 100만 명에게는 100만 개의 인생이 있다.

1,000,000회라는 조회수를 숫자만 놓고 보면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667,521번째 누군가를 콕 집어서 만나보면 그 사람도 우리처럼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똑똑한 누군가 일것이다.

#2

서울서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움직인다. 멀고 노곤한 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 많은 차량들이 내 옆을 스쳐간다. 그 안에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근거리에 내 옆에 지나가는 것 자체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량들이 내 옆을 슝슝 지나가면 서로의 존재 여부도 알지 못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실수를 해서 나와 사고를 내면 나는 그 사람과 실질적 인연으로 엮인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묘하다.

누군지도 모를 수 많은 차량들을 도로에서 지나친다. 그 차량 중 아무 차량이나 세워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도 역시 나 처럼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숫자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수 백만대의 차량 중 한 대일 뿐이겠지만, 어느 차량 한대만 콕 집으면 각자의 인생과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자료 : 연합뉴스

#3

민족성과 언어라는 것도 신기하다. 30년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다. 30대 중반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알게 돼 친구가 되었다. 친해진 다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80, 90년대 이야기들이 나온다. 국민학생 시절의 생활, 그때 유행하던 유행가 등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수 백,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기억, 동일한 정서,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서로는 살면서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수 많은 차량들. 그 중 아무 차량이나 한대를 세워 말을 건다. 한국어를 쓴다. 말이 통한다. 해외 여행을 하다가 한국인을 만난다. 말을 건다. 나는 지방 출신인데 그 친구는 서울 출신이다. 한국말이 통한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하나의 언어로 생각이 통한다는 사실에도 가끔 놀라운 경이로움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가 '언어는 사람 버전의 프로토콜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정말 프로토콜처럼 느껴진다.

#4

운명과 인연이란 하늘이 주는 것인가? 내가 만드는 것인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만나는 수 많은 차는 나에게는 가상의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도로 위의 아이템들이다. 수 많은 자동차와 거기에 탄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차로 달려가 돌격해서 접촉사고를 일으키면 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된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인가? 아니면 그것 조차 하늘이 계획한 인연인가?

#5

특정 주제를 목적으로 카카오톡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곳에는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 와 있다. 전원이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대화명은 제 각각이다. '농부', '삐약삐약', '곰탱이', 'ㅇㅇ', '웃으며살자' 등. 필명 앞에는 카카오가 만든 귀여운 캐릭터들이 붙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와 있지만 저런식으로 나열된 익명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 감흥이 없다. 그저 PNG 이미지 한장에 필명 텍스트 한 줄이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을 끄집어 내보면 확실히 그 사람은 자기만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똑똑한 어떤 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연의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메타버스가 이런 무한대의 것들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똑똑한 지인들이 익명으로 여러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그들은 그 방에서 말도 안한다. 어찌보면 병풍이나 허수아비 같다. 그러나 그 지인들은 실제로는 매우 멋들어진 집에 살고 있으며, 생각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떠드는 사람은 소수이고 저런식으로 지켜보는 조용한 다수가 아주 많다는 것을 느끼고 또 그것이 무섭게 여겨진다.

#6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상 80억 명은 각자의 인생들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성공적인 삶을, 누구는 힘든 삶을, 또 누구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또 누구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삶을 조목조목 상상해보면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똑똑하다. 돈이라는 자원을 함부로 길 바닥에 버리는 바보는 없다.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차량 조작법을 알고 교통체계를 이해하고 움직인다.

실제로도 5200만 명의 대중들 중에서 3,970만 1121번째 사람을 콕 찍어서 새롭게 사귀어 인사를 나누어 보면 바보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저 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열심히들 살아간다. 모두 자기 생각이 있고, 스펙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삶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것이 있다. 왜 그렇게 개인만 놓고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대 대중으로 뭉치면 개인일 때 보다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되는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다 나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못 났다. 그런데, 그런 개개인이 대규모로 뭉친 대중들은 왜 고작 나보다도 멍청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7 

고속도로가 꽉 막혀있다.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내 어깨 위에 날개가 돋아난다. 고속도로 위로 스윽 날아오른다. 그 엄청난 차량들 중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두명이라도 알아보면 정말 신기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날아오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또는 유재석씨 같은 인지도 99.99%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볼 것이다. 유명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저들을 모르는데, 저들은 모두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쌍방향 인연일까? 단방향 인연일까?

오늘의 두서없는 망상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망상 끝.


2021년 3월 23일 화요일

한국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것 3가지

정의의 여신상 유스티치아 <자료 : pixabay>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역린이 몇가지가 있다.

"아이는 건드리지 마라" 이런 것 정도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문명화가 된 나라라면 어디서든 통용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건드리면 안되는 독특한 역린 몇가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군대문제, 자녀들의 대학 입시문제, 나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편법을 써서 돈을 버는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의 공통점은 '공정성'과 관련된 것이다. 물론 공정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그 공정함의 잣대가 특히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분야가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 문제에서 열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구나 다 나의 의사에 반하여 군대에 소위 '끌려간다'. 가장 꽃다운 나이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 2~3년의 시간을 증발 시켜버린다. 군대에서 배운 것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대에 안 갔으면 배우는 것과 쌓이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편법을 쓰거나, 사회지도층 부모의 백과 힘으로 군대에 빠지는 행위를 국민들은 참지 못한다. 군대 문제가 생기면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직업은 못한다고 봐도 된다.

자녀들의 대학입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부부들을 보면 내 자식은 애지중지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다른 자식에 대한 속마음은 그야말로 뚱하게 생각하는 경우들을 본다. 그거야 동물의 유전자 복제 본능에 따라서 그럴 수 있고 그게 당연한거라고 본다.

내 자식은 다른 집 자식보다 하나라도 더 좋은 걸 먹여야 하고, 하나라도 더 잘 해서 가급적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게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갈수록 자녀를 낳는 수도 줄어서 자녀는 더욱 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정성에 대해서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자녀들과 관련된 입시문제, 그리고 먹을 것이 가득 들어차 있는 직장으로의 취업문제다.

이 부분도 부모의 능력이나 편법을 이용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혹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고 싶어하는, 돈 많이 주고 앞날이 탄탄하게 보장된 직장에 낙하산으로 취업하는 경우에는 온 국민이 공분하며 들고 일어선다.

뭔가 그 자녀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녀들보다 별로 잘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좋은 학교에 들어가? 그 좋은 직장에 들어가?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경쟁해서 지더라도 수긍하기 힘든 것이 자녀와 관련된 것인데 상대의 편법으로 졌다고 생각하면 그 분노는 더 커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번에 LH에서의 것과 같은 것이다. 뭔가 나보다 별로 특출난 것도 없는 인간들이 국토 개발 정보를 틀어쥐고 반칙을 써서 떼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쎄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는 복종한다. 그러나 자기와 별 다를 것 없이 애매한 사람이 뭔가 큰 돈을 벌면 그때부터 배가 아파 죽는다. 온갖 논리와 욕설을 만들어서 물어 뜯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어 물어뜯는다.

하물며 공정하게 돈을 벌어도 사람들이 배아파서 죽는판에, 국민들이 주는 세금을 먹고 사는 공기업에서 개발정보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짓을 했으니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남이 편법을 써 무엇인가 얻으면 떼로 몰려 들어 물어뜯고 화를 낸다. 반면에 자기 자신들이 얻는 편법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면도 있다. 

살다보면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서민들까지 다양한 편법을 저지르다 발각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들도 자기 위치에서 부지런히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남들이 새치기 하는 것에는 극분노하지만, 자신이 인맥을 동원해서 새치기를 하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본성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드러나면 공격 받는다. 그것이 이치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오해를 받고 있다. 그저 여분의 시간에 취미로 글을 쓰고, 취미로 영상을 만들고, 취미로 코딩을 한다. 단지 투자 공부를 오래했고, 투자를 좋아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모두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에 있는 것들이다 보니 조금씩 이름을 알아보는 분들도 생기고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도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영위하는 취미활동이 그저 사람들과 만나기 용이한 것들이다보니 그런 것이지 나는 부자가 아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요즘 유튜브나 미디어에 자기 자신이 부자라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진짜 부자인지 가짜 부자인지 알 길이 없다. 가짜 부자이면서 어그로 끌어서 돈을 벌기 위해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혹자는 그것도 사업적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내 경험상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람은 대부분 허당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부자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았다. 진짜 부자는 감추고 숨어야 하고, 가짜부자는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각자 자신의 최대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부를 과시하려는 분들도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대중들은 언제나 돌변한다는 것이다.

사랑해요, 존경해요를 외치다가도 순식간에 돌변하는 것이 대중이다. 그도 그럴것이 남들이 얼마든지 배아파 할 수 있는 돈 벌었다는 자랑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또한, 수 만~수 십만의 팔로워 중에서는 범죄자도 다수가 포함돼 있다.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지만 나부터도 항상 경계하고 주의하는 이유다. 마음 속 깊이 겸손한 사람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신이 아닌 이상은 겉으로라도, 겸손한 척이라도 하고 살아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다.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하다보면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올린 앱이 구글의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거나,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유튜브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는 사례는 많다.

그럴 때,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대응이 다르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내 앱이나 영상에 뭐가 문제가 있어?"라고 문의를 넣는 반면, 한국인들은 "쟤는 나보다 더 심하게 하는데 왜 내것만 삭제해? 쟤 것도 삭제해." 하면서 문의를 넣는다고 한다.

장사나 사업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멀리있는 대중들이 아니라,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장사를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행정제재가 들어오거나 힘든일이 생긴다면 근처에 다른 사장이 꼬투리를 잡아서 투고를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 이상한 악플과 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업에 타격이 받기 시작하면 내가 돈 잘 버는 것을 시기질투하는 나와 비슷한 연령과 처지의 친구거나 지근거리의 지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가 뭐하나 건수라도 잡히면 그들은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중들은 좀비떼처럼 몰려든다.

우선은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압도적인 내공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늘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몇몇 블로그들만 둘러보아도 얼굴 모를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상처를 주는 글을 심심찮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다 업보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내 자식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에 누구하나 만만한 사람은 없다. 적을 만들기 시작하면 삶이 고달파 진다. 사람들은 예민한 존재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여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적당히 주변과 나눌줄도 알아야 롱런한다. 보시 공덕이라는 것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먹으려하면 체하고, 나눠 먹으면 더 크게 성장한다.

애초에 남을 생각하고 의식하여 살 필요는 없지만 구태여 남에게 해를 끼쳐 남이 내 인생에 개입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된다.

2021년 3월 23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