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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23일 목요일

오징어게임, 돈과 인간 그리고 이념에 대한 잡생각 (Squid Game)

* 본 포스팅에는 결말과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신작인 오징어게임을 보면서 부분적으로 세상살이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아주 높은 사고 수준을 요구하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재미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다소 뻔했습니다. 그래도 뻔한 내용에 뻔한 소리를 질러대는 드라마를 보면서 나름대로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반추하는 기회로 삼아 보았습니다.

권력은 총과 돈, 격리에서 나온다


게임 참가자는 다수입니다. 게임 운영자들은 소수입니다. 그렇지만 소수의 게임 운영자들이 다수의 참가자를 지배합니다. 그들을 굴복하게 만든 힘은 1차적으로는 총입니다. 총칼 앞에서 대부분은 굴복합니다. 그 다음 통치 수단은 바로 돈입니다. 참가자들 내면 깊숙한 곳의 탐욕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노예의 길로 걸어가게 만듭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사는 늘 다수의 대중을 소수의 지배자가 총칼과 돈으로 지배해 왔음을 게임에서도 보여줍니다. 금권과 군사권을 쥔자가 인간사회의 권력을 쥡니다.

중간에 몇번의 사소한 봉기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총칼 앞에서 곧 진압됩니다. 만약, 대규모 봉기가 성공했더라도 그 다음은 고립에 대한 이슈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서울대 상우는 본인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이룬것인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인 증권맨 상우는 게임에서도 상위 0.43% 안에 들어갑니다. 참가자 465명 중 2등까지는 살아 남아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상우는 매사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입니다. 그는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가 여기까지 살아 남아서 올라온 것은 스스로의 노력과 능력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그 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행운은 전혀 따르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이루었다고 강한 확신에 빠져 있는 상우를 통해서, 황동혁 감독은 실제 세상은 노력만으로 돌아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력만을 강조하는 세태를 꼬집으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울대 상우는 자신을 친형처럼 믿고 따르던 알리를 속이고 배신하기도 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참가자를 밀어 추락사 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런식으로 게임의 최종 승리자 직전까지 올라온 것입니다. 서울대 상우에게는 그런것도 노력이면 노력이라고 믿는 게 아닐지 안타까웠습니다.

실제 극 막판에 기훈은 상우에게 말합니다.

"너처럼 그렇게 잘난 새끼가 왜 여기서 머리 나쁘고 능력도 없는 나하고 이러고 있냐"고.

바깥 세상에서 상우는 횡령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곡된 노력과 과도한 탐욕의 결과였습니다.

주인공 기훈은 본인의 노력만으로 465억 원을 얻은 것인가?


서울대 상우와 달리 기훈은 자신의 생존이 자기 능력 덕분이라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게임 운영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기훈을 부추기는 발언들을 합니다. 기훈이 파이널리스트까지 올라간 것은 누구의 덕도 아닌 기훈 본인의 노력 덕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기훈은 첫번째 게임에서 조기 탈락할 운명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외국인 노동자 알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첫번째 게임을 통과합니다. 이런식으로 기훈은 매순간 주변의 도움으로 '운 좋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운영자들을 비롯한 사람들은 게임의 결과만을 중시해서 그 결과에 대한 몫은 오롯이 기훈의 몫이며 모두 기훈의 노력만으로 얻은 것이라고 치켜세웁니다.

노력 만능주의 사회, 결과주의 사회에 대한 감독님의 비판적인 의견이 느껴졌습니다.

작은 게임마저도 복잡계다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세상에 비하면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게임들은 조건도 심플하고, 결과도 심플합니다. 세상의 극히 일부분을 엄청나게 정말 엄청나게 축소시켜 놓은 작디작은 모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고작 465명이 참가하는, 룰조차 너무 간단한 이 게임의 결과는 복잡계의 산물로 탄생합니다.

이를테면, 기훈과 상우가 최종 우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론상 465명이 만들 수 있는 21만 5,000가지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을 얻었다는 이야기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게임에 적용되는 여러가지 확률까지 더하면 이들이 살아 남아서 상금을 거머 쥘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합니다.

역설적으로 이런 확률에 도전하는 지능 또는 성향의 문제가 있으니 참가자들은 바깥에서도 늘 돈 때문에 걱정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박성향은 인생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어쨌든 강화유리와 일반유리를 구분하는 게임만 놓고 봐도 그렇습니다. 기훈이 이 게임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던 것은 앞선 플레이어들이 일으킨 여러가지 효과 덕분입니다. 그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얽히고 설킨 관계들, 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인의 페르소나들. 그런 것들이 짬뽕처럼 조화되어 기훈이 해당 게임을 통과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 변수들 중 작은 것 하나만 틀어졌어도 기훈은 해당 게임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작은 게임조차도 매우 복잡계입니다. 하물며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복잡계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매사 노력하고 옳은 구조와 틀을 짜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개인의 모든 성공을 오롯이 자기 자신의 공덕으로만 돌리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반대로 모든 실패 역시 내탓으로만 돌리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겸손과 용기, 그리고 자존감을 잘 믹스하여 현명하게 살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요.

가난한 자와 부자의 공통점에 대한 1번 할아버지의 뼈 있는 이야기


1번 할아버지는 극 후반부에 의미심장한 말을 남깁니다.

"가난한 자와 돈이 넘쳐서 감당이 안되는 부자의 공통점은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다."

의미심장한 이야기입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가난한 사람은 삶이 지옥일 것입니다. 그야말로 생존만을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 나가야 하니 삶이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올라가고 싶은 이상이 높을수록 더욱 그렇겠죠.

부자들 역시 다른 쪽으로 삶이 무료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극중에 나오는 VIP들 정도 되는 재력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죠. 원하는 집, 차, 심지어 회사나 미녀, 맛있는 음식..? 그 무엇도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희망이 삶의 동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러나 VIP들은 그런 간절함이 전혀 없습니다. 원하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으니 삶이 무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징어게임 드라마에서 이 부자들은 자신들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대량살상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현실 세계에서 인성이 망가진 일부 부자들은 대부분 주색에 빠지거나 주색 조차 지루하게 느껴지면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의약품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확실한 삶의 나침반이 없이 단지 명문대 입학만이 목적인 수험생은 목표로 하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 목적이 달성되며 삶의 방향타를 잃어 버립니다.

강력한 기대감을 모멘텀으로 품은 주식은 그 모멘텀이 실현되면 되레 주가가 폭락합니다.

오로지 인생의 목표가 돈인 사람은 실제 돈을 손에 쥐고 나면 위와 같이 망가지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회복탄력성과 평균회귀 능력이 아주 좋습니다. 큰 사고를 겪어도 시간이 흐를수록 불행은 잊혀 집니다. 큰 행운을 얻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기쁨과 슬픔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면 극중 VIP들과 같이 반사회적 행동들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에는 돈미새들이 많습니다. 돈미새에 해당하는 분들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큰 부를 얻고도 매일같이 하하하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자 지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돈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 동안 번돈을 사회에 돌려주는 재미로 살아갑니다. 청년 사업가들에게 투자와 멘토링을 하고, 대중들을 상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사회의 많은 부분에 알게 모르게 기부를 하면서 유의미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부자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힌트를 얻는 것도 좋아보입니다.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VIP들처럼 극단의 쾌락을 좇다가 살인기계가 되거나, 현실속에서 주색과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좇는 것도 좋지만, 삶의 본질에 대해서도 늘 사색하고 통찰하는 시간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부자가 아니지만 제 경우에 추천드리는 것은 매일매일의 소일거리들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블로그에 글을 매일 쓰는 것, 책을 써 보는 것, 집 앞의 정원과 화단을 애정을 갖고 꾸며 보는 것, 코딩을 배워서 앱을 만들어 보는 것, 악기를 배우는 것 등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하지만 연속적인 행복의 요소들은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네 삶이 어린 아이들 놀이나 쇼 같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집니다. 아수라장이 되고 여기저기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이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배경음악은 해맑기만 합니다. 거대한 수용소이자 살상의 장소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들이 널부러져 있고, 색감도 러블리 하기만 합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모두의 삶을 아이들의 장난 수준으로 바라 볼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그런데, 오징어게임의 감독님이 연출하신 분위기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회사에 출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가 매우 막혔습니다. 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는 것 모든게 꾸며진 연극같다"

'소중한 내 삶을 왜 이렇게 정체된 도로 위에서 보내야 하는지. 저 수 많은 사람들은 또 왜 그래야 하는지. 정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잠을 줄여가면서 치열하게 살아야만 해결되는 문제인지. 우리는 누구의 통제로, 무엇의 지시로 이렇게 레밍떼처럼 아침 저녁으로 삶을 버려 가며 이동해야 하는 것인지. 그냥 출퇴근을 안하면 안되는지. 진학, 취업, 출퇴근.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이 모든 틀을 깨고 나가면 자유를 얻는 것은 아닌지?'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외의로 먹고 살기 위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이 거대한 연극같은 세상에 그렇게 발버둥치고 매달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게 연극이고 쇼라고 생각해보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뭔가 명확해지는 아이디어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피가 난무하는 상황과 달리 해맑고 밝기만 한 오징어게임의 연출을 보면서 묘하게 그때 했던 생각들이 다시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시스템이 대중을 조종하고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인간의 본성은 단지 선과 악으로만 구분짓기는 어렵습니다. 사자가 얼룩말을 잡아 먹는다고 해서 그것을 악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고도화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본능을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의 펀더멘털은 결국에는 본성에서 나옵니다.

오징어게임과 같이 극단적 환경에서는 이런 태도가 가슴 속 바깥으로 꺼내져서 적나라하게 표출됩니다.

단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밀린 월급만을 받기를 원했던 알리는 본의 아니게 사장을 장애인으로 만듭니다. 탈북녀 새벽은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서 모은 돈을 계속해서 사기를 당해 날려버립니다. 이런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오징어게임에 들어오면서 말 그대로 생존본능을 발현하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칩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게임을 하나씩 진행하면서 점점 괴물로 변하갑니다.

다만, 사람들이 놓친 부분도 있습니다. 

모두가 협동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면 가급적 사망자를 줄이고 많은 사람들이 승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스템이 구상한대로 서로 죽이고 싸우면서 혼자만 살겠다고 사투를 벌입니다. 시스템의 계획에 말려든 것입니다. 

더욱 극단적인 카드도 있었습니다. 총칼이 무섭겠지만 게임 운영자들을 모두 살해하고 판을 뒤집어 버릴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분열하고 반목하며 서로 믿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통제 당하는 것 처럼요.

뭐, 민주국가들도 마찬가지기는 합니다. 시스템이 의도적인 메시지 하나를 대중에게 던지면 대중들을 그것을 덥썩 물고 서로 찢어 죽일 듯 싸우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분할하고 지배하는 것, 그리고 분할하고 통치하는 것'. 이것이 시스템과 지도자들이 대중들을 다루는(?) 기본 전략입니다. 인간은 서로 믿지 못하고, 반목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요. 

이것을 깨고 유일하게 협력의 열쇠를 쥐고 움직인 사람이 극중에서는 기훈이었습니다.

판을 뒤집는 게 쉬운 것도 아닌 것은 사실이다


극 중에서 룰브레이커가 몇 명 나옵니다. 의사가 한명 나오는데 게임 참가자이기도 했습니다.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장기를 해체해서 게임 운영자들의 장기매매를 도와줍니다. 그러면서 다음 게임이 무엇인지 미리 내부자 정보를 획득해서 생존을 이어가죠. 편법을 쓰는 룰브레이커입니다. 그러나 그는 중도 탈락합니다.

경찰 준호는 애초에 게임 참가자도, 운영자도 아닌 스파이로 섬에 잠입합니다. 그 역시 룰브레이킹을 하면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운영자들을 하나씩 죽이지만 결국 그 어떤 것도 바꾸지 못한채 프론트맨에 의해서 사망합니다.

총칼 앞에서 판을 뒤집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님을 새삼 느꼈습니다.

시스템은 당신의 성공을 두고 보지 않는다


유리판독 게임에서 전직 유리 기술자였던 참가자는 해당 게임의 법칙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아주 쉽게 게임을 진행합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이를 두고 보지 않습니다. 즉시 해당 참가자가 찾아낸 비법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전에 인타임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가난한 노동자였던 저스틴 팀버레이커가 무명의 부자로부터 막대한 자산을 증여받자, 시스템은 즉시 그를 체포해서 자산(시간)을 도로 빼앗으려고 합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수저인 여러분이 크게 성공한다면, 수 많은 기득권이 당신이 이룬 성취를 빼앗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대처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늘 상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시스템은 흙수저가 어떤 치트키를 찾아서 크게 성공하는 것을 가만히 두고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일단 어떤 꼬투리라도 잡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기득권을 위한 시스템의 수호자인 국세청과 경검찰은 치트키를 발견해서 성공한 흙수저를 밟아 없애기 위해서 늘 출동할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게임 규칙은 제 멋대로 변하고 일관성도 없었습니다. 현실에서도 그렇습니다. 최고 권력층에게 법은 자기보호 수단입니다. 자기 입맛대로 바꾸고 해석할 수 있으며 그다지 지키지 않아도 돈, 권력, 인맥으로 처벌을 피해갑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과 서민들에게는 엄격한 통제의 수단입니다. 시스템이 만든 사소한 규칙이라도 어기게 되면 칼같이 처벌합니다. 

또한, 누구하나가 성공하면 을끼리 꼬투리를 잡아서 시스템에게 신고하고 처벌을 종용하는 기현상도 생깁니다. 시스템은 즉시 성공한 을을 심판하기 위해 출동합니다.

퇴사할 것인가? 계속 다닐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 현실 세계를 회사라 치면, 오징어게임장은 퇴사한 사람들의 모임 같았습니다.

"회사는 정글이지만 밖은 지옥이다."

정말로 그것이 잘 묘사된 드라마였습니다.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 파이어족이라는 단어에 세뇌된 분들은 한번쯤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유능하다고 알려졌던 몇몇 투자자들 조차도 지옥에서 견디지 못하고 유료리딩방 사업을 합니다. 지옥에서는 생존이 일단의 지상과제가 됩니다.

지나친 권선징악 (유비의 촉한은 망했지만, 기훈은 승리했다)


'사람들이 반목하지 않고 협력하여 승리를 이끌어 낸다'. 이상적입니다. 실제 세상도 그렇게 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감독님의 그런 바람이 드라마에 녹여진 것 같습니다.

흡사,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과 오징어게임 감독님이 바라는 이상향이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관중 역시 지나친 현실주의자이자 실리주의자인 조조를 희대의 악당으로 만들었습니다. 반면에, 후퇴하는 길에 노인과 여자 등 백성들까지 일일이 챙긴 유비는 한껏 치켜 세웠습니다.

오징어게임 감독님을 나관중이라고 본다면 주인공인 기훈은 유비 캐릭터에 가까웠습니다. 남을 이기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을 도왔을 뿐인데, 게임의 승리자가 됩니다. 물론 기훈도 중간에 할아버지에게 한번 사기를 치기는 합니다만, 기훈은 전반적으로 살상도 하지 않을 뿐더러 사람들을 도와 가면서 끝까지 함께 가기를 바라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어디 그렇던가요?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유비형 캐릭터보다 조조형 캐릭터들이 더 성공합니다. 또한, 유비라고 어디 인의만 따질까요? 유비도 상당히 난폭한 성격의 소유자이며 흉악한 권모술수를 가진 정치가였습니다.

드라마 초반부터 느껴지는 권선징악의 향기에서 저는 게임의 최종승자가 기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사실 초반부터 알아버렸습니다. 권선징악을 기반으로 한 뻔한 전개는 김이 새는 부분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를 엎어버리자? 따뜻한 자본주의 체제를 이어가자?


저는 드라마 초반부에서 이 게임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소한 것이라고 봤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을 기획한 것은 음모론자들이 좋아하는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초권력, 초세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실제 VIP들이 서양인(G2국가인 중국인 1인 포함)인 것을 확인하고 더욱 그런 마음을 갖고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또한, '서양의 초국제세력이 만든 판에서 우리 동양인들이 죽어 나가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혹은 강대국들이 약소국을 갖고 노는 설정은 아닐까?'라는 의구심도 마음 한켠에 가지고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너무 사악하고 나쁜 서구식 자본주의 혹은 초강대국들을 비판하기 위한 내용일까 싶었습니다.

나중에야 한국인인 1번 할아버지도 게임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왜 재미로 동족을 살상하며 쾌락을 즐긴 것인가?

1번 할아버지는 국가, 민족, 인권 같은 것은 별로 중시하지 않는 이른바 글로벌 기업가로 설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호화병상에 누운 모습과 창 밖을 통해서 보이는 길거리 노숙자의 모습이 의미심장했죠. 그리고 그 글로벌 기업가는 세계의 다른 글로벌 자본과 연합하여 사람들을 주무른다는 설정으로도 보였습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메시지는 명확했습니다.

"한 사람의 성공에는 수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른다."
"수 많은 사람의 희생 위에 한 사람이 부를 독식한다."
"시작을 평등하게 하더라도 결과는 평등하지 못하다."

자본주의체제와 반자본주의 체제 모두에 대한 감독님의 회의주의가 느껴졌습니다.

다만, 따뜻한 세상을 만들자는 감독님의 메시지에는 공감을 했지만 부자를 지나치게 악한 모습으로 설정한 부분에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VIP들은 대체로 살이 쪘는데, 게임 참가자들은 모두 비쩍 마른 사람이 많은 설정도 그렇습니다.

또, 드라마에서는 부자, 남자, 서울대, 여의도 금융권, 대한민국, 중소기업 사장 등은 강자로 또는 악인으로 묘사됩니다. 탈북민, 이슬람계 외국인 노동자, 여자, 고졸 공장 노동자 등은 선하거나 의리가 있는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묘하게 PC주의로 공격받을 수 있는 지점들이라고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실제로는 악마같은 부자들보다 따뜻한 부자들이 더 많을텐데 말입니다. 그리고 부자들은 사람 목숨조차 자신들의 유희를 위한 장난감 정도로 생각한다는 설정도 섬짓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이 체제와 판을 뒤집어 버려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만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당연히 안되겠죠. 그러나 드라마는 지나치게 돈과 금융,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주의와 악마화가 느껴져서 큰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시즌2가 나온다면 시즌2에서는 기훈이 게임의 판을 뒤집는데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도 해보았습니다. VIP들을 사로잡은 뒤 게임판의 말로 만들어서 자신과 사람들이 당했던 것을 똑같이 되갚아 주면서 복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다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로 세상이 바뀌는 걸까 싶은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세상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기는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2020년 7월 18일 토요일

강민경의 PPL,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연예인들까지 흡수중인 유튜브


연예인들이 대거 유튜브로 넘어왔습니다.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진 연예인들도 상당수 넘어왔습니다. 그들은 일반인과 다릅니다. 광고를 붙이기 위해서 구독자 1,000명을 어떻게 모을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무슨 컨텐츠를 할지에 대해서도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 자체가 컨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 걱정 할 필요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예인들은 영상을 올리자마자 엄청난 세간의 관심을 모읍니다. 비교적 가장 최근에 유튜브를 시작한 A급 인지도 연예인으로 노홍철씨가 있습니다. 첫 영상 하나로 조회수 10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구독자는 단숨에 3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유튜브 진입 시 가장 국내에서 파급력이 쎘던 사람으로는 백종원 대표님이 있습니다. 하루만에 구독자 100만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노홍철씨의 경우에는 영상 5개로 벌써 월 2천만 원이 넘는 광고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지도는 돈인 시대입니다. 인지도 높은 연예인을 왜 걸어다니는 중소기업이라고 부르는지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강민경씨는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된 강민경씨도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활동을 한지는 대략 1년 정도 됩니다. 주로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거나 노래를 불러 올립니다. 강민경씨 역시 인지도가 높은 연예인입니다. 그러다보니 영상마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채널 역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방문하시는 분들 중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압니다. 마케팅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강민경씨와 같은 사람이 유튜버라면 군침이 도는 대상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또 그게 당연한 시장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강민경씨와 같은 셀레브리티들은 유튜브 영상 재생을 통한 광고 수입 뿐아니라 PPL을 통해서도 상당한 수입을 올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저 역시 이번 일이 불거지기 전 부터 이미 그러하리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PPL 논란에 휩싸이는 강민경씨를 보면서 갸우뚱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광고주가 돈을 주고서라도 강민경씨를 통해 광고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강민경씨를 섭외합니다. 강민경씨는 이에 응합니다. 그러면 쌍방 간 계약이 체결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강민경씨는 유튜브를 통해서 자신의 사생활을 노출합니다. 이것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상당한 리스크를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팬들과 일부 소통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노래도 불러서 올립니다. 나름대로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서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공짜로만 보려고합니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수익을 내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오롯이 강민경씨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비난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채널을 통해서 팬들과 소통하고 노래도 하며, 일상도 공유하고 있다
<자료 : 유튜브 강민경 채널>

당연히 수익을 얻고자 한다면 능력안에서 최대한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영상 한 편당 천만 원을 받든, 1억 원을 받든 그것은 거래 쌍방의 자유입니다. 그것이 위법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고, 시장질서에도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인 파워유튜버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광고비, 슈퍼챗, 무통장후원, PPL, 강의, 인세, 쿠팡이나 아마존의 어필리에이트 참여 등 다양한 루트로 수익을 창출합니다.

선촬영 후입금에 대한 논란은 남아


다만, 갑론을박의 여지가 남은 부분은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만큼 강민경씨 역시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하며 살고 있습니다. 브이로그 영상에는 사용하고 있는 제품들이 당연히 노출될테구요. 산에서 알몸으로 살지 않는 한 그럴 것입니다.

강민경씨 본인 이야기로는 광고 목적없이, 아무 생각없이 편안하게 영상들을 찍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 영상안에 노출된 제품을 만든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자사 제품이 노출되었는데 고마워서 광고 계약을 하고 싶다고요.

아마 이런 경우가 없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 강민경씨가 영상을 수정해서 광고임을 나중에라도 알렸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있습니다. 유튜브는 영상을 수정할 수 없으므로 제목이라도 수정했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습니다.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강민경씨와 이를 비판하는 논리가 모두 팽팽합니다.

기부 이벤트는 전통적으로 훌륭한 마케팅 기법


강민경씨는 유튜브 영상 재생 전 나오는 광고비 3,000만원 가량을 소아암 재단에 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영상을 통해서 팬들에게 알렸습니다.

유튜브 광고 수익을 본인과 구독자 명의로 기부하였다
<자료 : 강민경 유튜브 채널>

사람들이 비판하는 지점은 이렇습니다.

'광고수익 3,000만원 기부한다고 쇼하고 뒤로는 PPL로 수 억을 챙겼네. 훌륭한 연기자다!'

그런데, 이건 사람들의 비판이 과합니다. 이건 기업이든 셀럽이든 누구든 자주쓰는 마케팅 방식입니다. 심지어 사기에 가까운 유사투자자문업을 하는 사람들도 뒤로는 개미들로 부터 수십억의 회비를 뜯어내면서 앞으로는 억대의 기부를 했다고 홍보를 하기도 합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부한 마케팅입니다. 그리고 이 마케팅이 죽을 죄를 지은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그들이 이렇게라도 기부 이벤트를 하는 것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점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부분은 강민경씨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연예인들도 사람이고, 기업가들도 사람입니다. 수익화를 하면 온갖 악담을 퍼붓고, 기부를 하면 박수를 보내는 문화는 바뀌어야 합니다. 수익화도 기부도 모두 그들 자유입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유튜버와 세트로 묶이다


이번에 함께 논란이 된 인물은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씨입니다. 8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셀럽입니다.

한혜연씨는 확실히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황입니다. 영상에는 수 많은 PPL 상품들이 노출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이게 영상인지 광고판인지 모르겠다'라고 토로하는 시청자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혜연씨는 이 상품들은 '내돈내산' 즉, 내돈 주고 내가 산 물건들이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게다가 '유료 광고' 문구도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입니다.

유튜브 채널 '슈스스TV'를 운영하는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씨는 돌아선 팬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자료 : 유튜브 채널 슈스스TV>

이것은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많은 구독자가 성토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은 시장원리를 떠나서 시청자를 속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혜연씨 본인도 이번에 고개를 숙이며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였습니다.

문제는 D언론사의 보도가 강민경씨에게 다분히 악의적이었다는 점입니다. 기사 제목은 강민경씨와 한혜연씨를 하나로 묶어서 둘을 마치 '내돈내산이라 해놓고 뒷돈을 받았다'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썼습니다. 당연히, 대중들은 기사를 보고 이들에게 돌을 던지기 바빴습니다.

강민경씨 입장에서는 기사가 조금 악의적으로 나갔습니다.

왜 무형자산은 공짜여야 하나?


네티즌들의 화살은 반대로도 향했습니다. 유튜브 활동을 하면서 수익창출을 하지 않는 연예인들에게로 말입니다. 특히, 한예슬씨와 신세경씨에게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그들은 유튜브를 통해서 트래픽을 얻고 있음에도 수익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예슬씨와 신세경씨가 유튜브를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유튜브를 하는 게 재미있다는 게 진심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돈으로 바꾸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연결선 상에서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유튜브 운영을 아무런 이익도 노리지 않고 할리는 없습니다.

경제활동을 조금이라도 했거나, 사회 생활을 해보신 분이라면 이점을 모두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과 같은 찬사는 오히려 그녀들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차후 유튜브를 통해서 얻을 이익들을 얻지 못하게 되거나 소극적으로 얻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무형자산을 공짜 취급합니다. 공짜로 홈페이지나 앱을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영화나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불법복제로 상당수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나와서 노래를 하고, 일상을 찍어도 그것을 공짜로 소비하기를 바랍니다.

무형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기업들이 세계 최대 기업들로 올라 선 2020년입니다. 연예인들을 광대취급하고 광대 놀이는 공짜여야 한다는 인식은 시대 역행적인 인식입니다.

공짜 무형자산에 대한 이런 시각도


한편, 반대편에서는 이런 현상도 있습니다.

똑같은 품질의 컨텐츠가 있습니다. 한쪽은 무료로 접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쪽은 300만 원의 수강료를 내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무료 컨텐츠를 얕잡아 봅니다. 돈을 내면 '뭔가 더' 있을 거라는 기대에 돈을 냅니다. 그리고 돈을 내고 접한 컨텐츠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가 속한 주식시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세계적인 투자 구루들이나 국내에서 성공한 많은 선배님들이 양질의 컨텐츠를 무료로 공개했습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됩니다. 블로그, 카페, 유튜브, 팟캐스트 할 것 없습니다. 손만 뻗으면 양질의 가르침을 무료로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양질의 컨텐츠와 질 나쁜 컨텐츠는 혼재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는 질 나쁜 컨텐츠가 더 많습니다. 입문자들은 이것을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양질의 컨텐츠는 무료로 세상에 많이 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만 원의 수강료를 내야 들을 수 있는 주식 강의, 월 수백만 원을 내면 종목을 찍어준다는 사람들 등 온갖 유료 컨텐츠도 많습니다.

무료 컨텐츠 만으로도 이론적 토대는 쌓고도 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보다 질이 떨어지는 컨텐츠에 수십~수백만 원을 씁니다.

그렇게 돈을 쓰고 듣는 컨텐츠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리고 돈을 내고 접하는 컨텐츠는 더 집중해서 공부하게 되는 경향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형자산에 대해서 이런 이중적 행태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돈을 써야 할 컨텐츠는 공짜로 얻길 바라고, 공짜로 줘도 안 받을 컨텐츠에는 돈을 씁니다."

기회도 평등하지 않고 결과는 더 불평등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저렇게 공분하는 이유는 사실 다른데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밤낮으로 출퇴근하며 뼈 빠지게 일해도 한달에 돈 몇백을 쥐는데, 쟤네는 유튜브에 영상 하나 올리고 수천만 원을 받네. 아이고 배아파."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흙수저 출신이었다고 너희들도 할 수 있다'고 타인을 응원합니다. 저는 그런 흙수저 출신들도 부럽습니다. 저는 무수저로 자랐습니다.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는 부모님이라도 계시는 것과 안 계시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릴때는 저도 그런 생각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저렇게 편안하게 부모 손길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데, 나는 왜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나" 세상에 대한 불만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사회에 나오고 나서 바뀌었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불공평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내 안에서 변화가 일었습니다.

물론 사회가 붕괴되지 않게 하려면 기회는 가급적 공평한 것이 좋습니다. 그 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결과가 공평한 사회는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합니다. 모두가 평등한 결과가 나올 것을 알고 있다면 누구도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번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대중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노력으로 일군것에도 배아파하며 끌어내리려 합니다. 별다른 도전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입을 벌리고 누워서 남들과 똑같은 떡을 먹으려고 합니다.

화교상인, 오사카상인, 유태상인들의 상술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한상들의 상술이 한 수준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그네들은 대놓고 부를 추구해도 부끄럽고 거칠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수익화를 하려고 해도 사람들에게 극구 그것을 감추고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7월 18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