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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8일 화요일

인간보다 더 우월한 존재에게 우린 그냥 도축되는 존재라면?


오늘 임플란트 2차 수술을 받았다. 1차 수술 때 식립한 나사는 뼈에 유착이 아주 잘 되었다고 한다. 젊고 건강하니 큰 걱정은 없다고 하셨다. 2차 수술을 받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언제나 치과는 나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공간이다. 의사 선생님과 치위생사 선생님들이 나는 못 알아 들을 전문 용어를 주고 받으면서 분주히 움직이셨다. 내가 한 건 그저 입을 벌리고 가만히 누워있는 것 뿐이었다.

뭔가 이런 저런 기계들이 '윙~ 윙~' 돌면서 살을 째고, 뼈에 뭔가 하는 것 같았다. 마취가 잘 되어 있어서 별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문득 또 이런 망상이 들었다.

'우리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해서, 우리를 사육하거나 잡아다가 도축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 내가 치과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도축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해괴한 상상력이 마구 돋아 나갔다. 

나는 지금과 같은 이성, 지금과 같은 감성, 지금과 같은 지능이 유지된 상태이겠지만 몸은 도축되기 위해 어떤 기계 장치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인간들이 줄줄이 그 기계 장치에 걸려 있는 모습도 상상했다. 살이 찢겨 나가고, 목이 달아 나기 전 까지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온갖 상상을 다 동원하여 그 짧고도 긴 시간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도축 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그 인간들은 사육된 것이 아니라 포획된 것이라면, 출신 성분이 다양할 것이다. 지능도 다양할 것이며, 각자의 능력도 다채로울 것이다. 누구는 서울대를 나왔을 수도 있고, 누구는 중졸일 수도 있을테고, 누구는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일 수 있고, 누구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얼굴이 잘 생겼을 수도 있고, 누구는 못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 중에는 범죄자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봉사활동을 평생 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의 식량이 되기 위해서 기계에 줄줄이 매달려 도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다 부질없지 않은가? 어차피 몇 분 후면 모두 목이 달아나고 부위별로 썰려 식재료로 변해 있겠지.

가끔 일부러 고급호텔을 이용한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서 함께라면 금전적으로 아깝지도 않을테지만 혼자서 종종 호텔에 가서 잠도 자고, 호텔 사우나도 이용하고, 호텔에서 밥도 먹는다. 

가끔 시그니엘과 같은 초호화 호텔의 스파와 사우나를 이용하다 보면 '참 사람의 몸이 볼품없음'을 느낀다. 나도 붕알 두 짝, 저 중년 아저씨도 붕알 두 짝, 저 할아버지도 붕알 두 짝. 엉덩이는 내가 저 할아버지보다는 조금 더 젊어서 탄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의 벗은 모습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속된 말로, '부자도 죽창 한방, 가난한 사람도 죽창 한방'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잘 떠오르는 곳이 이곳이다.

알몸으로 있을 때는 볼품 없던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 옷 입으신 걸 보니 귀티가 난다. 딱 봐도 비싼 옷이다. 옆에서는 할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자연 상태에서는 너도 죽창 한방, 나도 죽창 한방이지만, 소셜포지션이 입혀지면 그때는 죽창으로 저 사람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없어진다.

뭔가 일을 할 때, 세상을 대할 때, 사람을 볼 때 간판과 소셜포지션에 압도되면 일단 지고 들어간다. 상대의 실력이 파악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그런 것에 위압감을 느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주영 회장님이 쌀가게 입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면서도 탈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입사했던 일화를 기억하는가? 자전거에 쌀을 실어 배달을 나가면서 수 십번 넘어진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실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이때 정주영의 사고회로는 2가지였다. 1) 일단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2) 그래 남들도 다 타는 자전거, 내가 왜 못 타?! 내가 왜 못해?! 그러니까 나도 타야지!

살다 보면 사람들의 출발선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막대한 자본을 쥐고 저만치 앞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살다가 집이 어려워져서 공부를 포기하고 저만치 후퇴하여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알몸에 덧 씌워진 소셜포지션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자꾸만 의식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 모두 나처럼 붕알 두쪽이 전부다.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잡혀가 도축 당하기 직전이라면 너나나나 어차피 다 식재료에 불과하다. 좀 신기한 사고방식 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리셋하여 생각해 보면 뭔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의외로 명쾌한 답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란 별 것 없다. 우리네 삶도 덧 없다. 하고 싶은 건 당장하고, 이왕 했다면 무쏘의 뿔처럼 밀고 나가보고, 끓어오르는 감정이 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별 것도 없고, 덧 없는 인간의 삶이 그렇다고 긴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허무주의에 빠지지는 말자. 마음먹기에 따라 매 순간 행복하게 살고자, 의미있게 살고자 한다면 그 또한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2022년 10월 18일
송종식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고속도로 위에서의 망상 (스트레인저, 어나니머스, 대중과 개인, 인연에 대해)

#1

유튜브에 재미있는 영상이 업로드 된다. 영상의 조회수는 1회, 10회, 100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1만회, 10만회, 100만회가 되기도 한다. 숫자만 보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 영상을 본 100만 명에게는 100만 개의 인생이 있다.

1,000,000회라는 조회수를 숫자만 놓고 보면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667,521번째 누군가를 콕 집어서 만나보면 그 사람도 우리처럼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똑똑한 누군가 일것이다.

#2

서울서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움직인다. 멀고 노곤한 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 많은 차량들이 내 옆을 스쳐간다. 그 안에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근거리에 내 옆에 지나가는 것 자체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량들이 내 옆을 슝슝 지나가면 서로의 존재 여부도 알지 못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실수를 해서 나와 사고를 내면 나는 그 사람과 실질적 인연으로 엮인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묘하다.

누군지도 모를 수 많은 차량들을 도로에서 지나친다. 그 차량 중 아무 차량이나 세워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도 역시 나 처럼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숫자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수 백만대의 차량 중 한 대일 뿐이겠지만, 어느 차량 한대만 콕 집으면 각자의 인생과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자료 : 연합뉴스

#3

민족성과 언어라는 것도 신기하다. 30년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다. 30대 중반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알게 돼 친구가 되었다. 친해진 다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80, 90년대 이야기들이 나온다. 국민학생 시절의 생활, 그때 유행하던 유행가 등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수 백,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기억, 동일한 정서,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서로는 살면서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수 많은 차량들. 그 중 아무 차량이나 한대를 세워 말을 건다. 한국어를 쓴다. 말이 통한다. 해외 여행을 하다가 한국인을 만난다. 말을 건다. 나는 지방 출신인데 그 친구는 서울 출신이다. 한국말이 통한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하나의 언어로 생각이 통한다는 사실에도 가끔 놀라운 경이로움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가 '언어는 사람 버전의 프로토콜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정말 프로토콜처럼 느껴진다.

#4

운명과 인연이란 하늘이 주는 것인가? 내가 만드는 것인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만나는 수 많은 차는 나에게는 가상의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도로 위의 아이템들이다. 수 많은 자동차와 거기에 탄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차로 달려가 돌격해서 접촉사고를 일으키면 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된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인가? 아니면 그것 조차 하늘이 계획한 인연인가?

#5

특정 주제를 목적으로 카카오톡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곳에는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 와 있다. 전원이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대화명은 제 각각이다. '농부', '삐약삐약', '곰탱이', 'ㅇㅇ', '웃으며살자' 등. 필명 앞에는 카카오가 만든 귀여운 캐릭터들이 붙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와 있지만 저런식으로 나열된 익명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 감흥이 없다. 그저 PNG 이미지 한장에 필명 텍스트 한 줄이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을 끄집어 내보면 확실히 그 사람은 자기만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똑똑한 어떤 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연의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메타버스가 이런 무한대의 것들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똑똑한 지인들이 익명으로 여러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그들은 그 방에서 말도 안한다. 어찌보면 병풍이나 허수아비 같다. 그러나 그 지인들은 실제로는 매우 멋들어진 집에 살고 있으며, 생각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떠드는 사람은 소수이고 저런식으로 지켜보는 조용한 다수가 아주 많다는 것을 느끼고 또 그것이 무섭게 여겨진다.

#6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상 80억 명은 각자의 인생들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성공적인 삶을, 누구는 힘든 삶을, 또 누구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또 누구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삶을 조목조목 상상해보면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똑똑하다. 돈이라는 자원을 함부로 길 바닥에 버리는 바보는 없다.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차량 조작법을 알고 교통체계를 이해하고 움직인다.

실제로도 5200만 명의 대중들 중에서 3,970만 1121번째 사람을 콕 찍어서 새롭게 사귀어 인사를 나누어 보면 바보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저 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열심히들 살아간다. 모두 자기 생각이 있고, 스펙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삶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것이 있다. 왜 그렇게 개인만 놓고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대 대중으로 뭉치면 개인일 때 보다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되는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다 나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못 났다. 그런데, 그런 개개인이 대규모로 뭉친 대중들은 왜 고작 나보다도 멍청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7 

고속도로가 꽉 막혀있다.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내 어깨 위에 날개가 돋아난다. 고속도로 위로 스윽 날아오른다. 그 엄청난 차량들 중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두명이라도 알아보면 정말 신기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날아오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또는 유재석씨 같은 인지도 99.99%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볼 것이다. 유명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저들을 모르는데, 저들은 모두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쌍방향 인연일까? 단방향 인연일까?

오늘의 두서없는 망상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망상 끝.


2020년 1월 7일 화요일

조 단위 부자도, 대통령도 하늘이 낸다

마이애미 부촌의 한 개인주택 <출처 : home-designing.com>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들을 추종합니다. 워런버핏이 한마디 던지면 그 이야기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전파됩니다. 투자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투자분야 뿐만 아닙니다. 어떤 분야든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가장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추종합니다. 그나마 그 사람의 철학을 제대로 추종하고 뽑아먹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보이는 많은 초보투자자분들의 행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수의 사고방식이나 철학 중 배울점이 있다면 배우려고 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뭔가 즉각적으로 이익을 줄만한 이야기를 하는지, 그것에 더 목을 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투자의 경우에도 천천히 바닥부터 배워 올라가고, 시장에서 경험을 쌓아서 내 스스로 훌륭한 투자자가 되려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계시지만, 많은 투자자가 남들이 던져주는 종목을 소위 '받아 먹으려고' 추종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자기 성장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늘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다니는 허수아비 인생밖에 살지 못하지요.

또, 사람들의 목표가 너무 높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제 주변에는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을 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기업에 들어갈 정도면 일단 샐러리맨 중에서는 상위 5%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장급~임원급으로 정년 퇴직을 하였으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꽤 안정된 삶을 살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퇴직 후 어르신들의 삶은 의외로 비참하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월급 1~200짜리 아르바이트급 일자리에 재취업을 하시거나 그 마저도 못하시는 분들은 골방에서 하루하루 시간만 때우는 분들이 적지 않으셨습니다.

직장을 다닐때 재테크나 부업으로 퇴직 이후의 삶을 잘 마련하셨다면 좋았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이번 글에서는 논외입니다. 상위에 속하는 근로자들의 삶도 저렇습니다. 그런데 저 정도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는 백 억을 벌거야, 천억을 벌거야, 조를 벌거야..'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그야말로 현실 파악을 못하는 것입니다.

금융자산을 11억 원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100억 자산가는 5,500여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1%입니다. 흙수저 사람이 100억 부자가 되기란, 고교생이 서울대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보다 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200억대 이상의 부자는 800여명 정도 된다고하니 그 확률은 더 떨어집니다.

대통령과 조 단위 부자는 하늘이 낸다


몇천억, 몇조를 벌겠다는 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유동성의 팽창과 스타트업 진입의 용이성으로 조가 우스워진시대입니다. 그러나 조단위 부자는 내가 될 수 있다고 되는 것의 성격은 아닐것입니다.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진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가슴속에 큰 꿈은 늘 품고 다녀야겠죠. 애초에 목표나 꿈이 없다면 작은 부자조차 되는 것이 불가능할테니까요. 꿈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꿈은 가슴속에 묻어놓고 우리는 철저히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적지 않은 친구들이 '저는 25살쯤에는 성공해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닐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2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저는 40살 쯤에는 100억? 아무리 못 벌어도 20~30억은 벌고 넉넉하게 살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40~50대 선배님들은 집값이나 안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살아보니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모난 돌은 정을 맞아 점점 둥글어집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청년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삶은 늘 제자리입니다. 그런데, 학창시절부터 무식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친구는 별 것도 아닌(?) 장사를 하면서 나이 서른에 벌써 아파트 두채를 사고, 외제차를 두대나 굴리면서 아들딸 낳고 잘 삽니다. 가게도 벌써 몇개나 냈다고 합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친구는 억울해합니다. '나는 쟤보다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지식도 많고 훨씬 뛰어난데 왜 별 것 아닌 허드렛일을 하는 친구가 돈을 더 잘 버는가. 인생 현타온다'. 장사가 쉽다거나 장사하는 분들이 무식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니 맥락에서 벗어난 오해는 없으면 좋겠습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끼를 믿고 너무 높은 이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현실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케이스가 위와 같은 케이스입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결국 작은 성과들을 쌓아갑니다. 그 성과들은 복리로 커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별 것 아닌 일을 하던 사람이 회장님 소리를 듣고 사는 것입니다. 떡볶이 장사, 치킨 장사, 학습지 팔이, SNS 바이럴 마케팅.. 단순한 업종에서 단순한일을 꾸준히 오랫동안 잘 해낸 사람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주식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단단히 마음먹고 주식투자를 꾸준히 열심히 해야합니다.

어쨌든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은 더 피폐해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이가 젊은 친구들일수록 그런 태도는 더 위험합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말해야 국가가 성장한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그게 그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오히려 실현 가능한 눈앞의 작은 목표들을 잡고 작은 일들을 꾸준히 잘 해내는 사람들이 그 목표들을 키워가면서 더 잘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너무 슈퍼개미나 대가들만 추종하기 보다는 일단 내 계좌를 5,000만원을 만들자, 1억을 만들자, 이후엔 3억을 만들자. 이런 작은 목표들에 집중하는게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가도 됩니다. 천천히 가다보면 어떤 날은 스포츠카를 얻어 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행기를 얻어타기도 합니다. 천천히 가도 한번씩 계좌가 점프업 하는 날도 있습니다. 눈앞의 목표부터 천천히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남을 의식하지도 말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쫓기고, 남들과 경쟁의식을 느끼는 순간 투자든 인생이든 망가집니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록 : 성훈형님과 김영식 회장님


주식투자로 크게 성공해서 유명한 heyda(성훈)형님도 때마침 최근에 블로그에 이런 비슷한 글을 쓰셨습니다. 너무 큰 목표를 잡고 투자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꿈을 못 이룰 수 있다고요. 작은 목표, 할 수 있는 작은일 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언젠가는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 있을거라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유행어로 유명하신 김영식 회장님은 어릴적부터 저의 멘토이셨습니다. 가난하고 힘들던 저의 사고방식을 많이 개조시켜주셨습니다. 그분과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습니다. 나중에 하나씩 글을 써 보겠습니다. 이번글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송군은 어른되면 뭐하고 싶노? 목표가 뭐고?"
"저는 금액으로는 40조 정도를 벌어서, 우주센터를 건립하고, 재능이 있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만그만. 목표를 그래 잡으면 아무것도 못한데이. 니가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그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무살의 저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현금 1억부터 만드는 것으로요. 그리고 저는 20대에 순자산 1억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 1억원이 저의 소중한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 부터 지금 당장 시작해서 그것을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요?

2020년 1월 7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