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런 저런 기계들이 '윙~ 윙~' 돌면서 살을 째고, 뼈에 뭔가 하는 것 같았다. 마취가 잘 되어 있어서 별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문득 또 이런 망상이 들었다.
'우리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가 이 지구상에 존재해서, 우리를 사육하거나 잡아다가 도축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지금 내가 치과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도축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런 해괴한 상상력이 마구 돋아 나갔다.
나는 지금과 같은 이성, 지금과 같은 감성, 지금과 같은 지능이 유지된 상태이겠지만 몸은 도축되기 위해 어떤 기계 장치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나 말고 다른 인간들이 줄줄이 그 기계 장치에 걸려 있는 모습도 상상했다. 살이 찢겨 나가고, 목이 달아 나기 전 까지 극도의 공포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리고 온갖 상상을 다 동원하여 그 짧고도 긴 시간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도축 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그 인간들은 사육된 것이 아니라 포획된 것이라면, 출신 성분이 다양할 것이다. 지능도 다양할 것이며, 각자의 능력도 다채로울 것이다. 누구는 서울대를 나왔을 수도 있고, 누구는 중졸일 수도 있을테고, 누구는 다국어를 구사하는 사람일 수 있고, 누구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는 얼굴이 잘 생겼을 수도 있고, 누구는 못 생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개 중에는 범죄자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로는 봉사활동을 평생 해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의 식량이 되기 위해서 기계에 줄줄이 매달려 도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다 부질없지 않은가? 어차피 몇 분 후면 모두 목이 달아나고 부위별로 썰려 식재료로 변해 있겠지.
가끔 일부러 고급호텔을 이용한다. 사랑하는 애인이 있어서 함께라면 금전적으로 아깝지도 않을테지만 혼자서 종종 호텔에 가서 잠도 자고, 호텔 사우나도 이용하고, 호텔에서 밥도 먹는다.
가끔 시그니엘과 같은 초호화 호텔의 스파와 사우나를 이용하다 보면 '참 사람의 몸이 볼품없음'을 느낀다. 나도 붕알 두 짝, 저 중년 아저씨도 붕알 두 짝, 저 할아버지도 붕알 두 짝. 엉덩이는 내가 저 할아버지보다는 조금 더 젊어서 탄력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의 벗은 모습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속된 말로, '부자도 죽창 한방, 가난한 사람도 죽창 한방'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잘 떠오르는 곳이 이곳이다.
알몸으로 있을 때는 볼품 없던 할아버지가 밖에 나가 옷 입으신 걸 보니 귀티가 난다. 딱 봐도 비싼 옷이다. 옆에서는 할아버지를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자연 상태에서는 너도 죽창 한방, 나도 죽창 한방이지만, 소셜포지션이 입혀지면 그때는 죽창으로 저 사람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점점 없어진다.
뭔가 일을 할 때, 세상을 대할 때, 사람을 볼 때 간판과 소셜포지션에 압도되면 일단 지고 들어간다. 상대의 실력이 파악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그런 것에 위압감을 느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주영 회장님이 쌀가게 입사를 하기 위해 자전거를 탈 줄 모르면서도 탈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입사했던 일화를 기억하는가? 자전거에 쌀을 실어 배달을 나가면서 수 십번 넘어진다. 그러면서 나중에는 실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이때 정주영의 사고회로는 2가지였다. 1) 일단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2) 그래 남들도 다 타는 자전거, 내가 왜 못 타?! 내가 왜 못해?! 그러니까 나도 타야지!
살다 보면 사람들의 출발선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막대한 자본을 쥐고 저만치 앞에서 시작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살다가 집이 어려워져서 공부를 포기하고 저만치 후퇴하여 삶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알몸에 덧 씌워진 소셜포지션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자꾸만 의식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 모두 나처럼 붕알 두쪽이 전부다.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잡혀가 도축 당하기 직전이라면 너나나나 어차피 다 식재료에 불과하다. 좀 신기한 사고방식 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모든 것을 리셋하여 생각해 보면 뭔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의외로 명쾌한 답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란 별 것 없다. 우리네 삶도 덧 없다. 하고 싶은 건 당장하고, 이왕 했다면 무쏘의 뿔처럼 밀고 나가보고, 끓어오르는 감정이 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대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별 것도 없고, 덧 없는 인간의 삶이 그렇다고 긴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다만 허무주의에 빠지지는 말자. 마음먹기에 따라 매 순간 행복하게 살고자, 의미있게 살고자 한다면 그 또한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2022년 10월 18일
송종식
좋은글 감사합니다.! 임플란트에서 죽창 그리고 붕알에서 깨달음! 전혀 관련 없는 단어들을 소셜과 믹스해서 연결한 글의 흐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글쓰기 능력과 통찰력 본받고 싶네요~~
답글삭제요약해 주신 것을 보니 글이 되게 중구난방이었네요^^;; 멋진 요약 감사합니다!
삭제인간이 누군가에게 잡아먹히는 존재라면? 어릴때 가끔 해보던 상상입니다ㅎㅎ 저는 송선생님처럼 철학적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어느 부위가 맛있을까? 이런 생각만 했던것 같네요^^.
답글삭제지금 되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그것이 돈이 되든 안 되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던 때 였던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무언가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것이 어려워 짐을 느낍니다.
송선생님 글을 읽고 불끈 용기가 생기네요. 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집중할 수 있는 소일거리가 있을 때, 인간이 정말 행복해지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부위는 음... 음...~
삭제우리 회사 매출액 상대 회사 매출액에 따라 괜히 지고 들어가거나 친구나 친척사이임에도 비굴해질때가 많은데 저쪽도 붕알 두쪽 나도 붕알 두쪽임을 계속 상기해야겠네요 ㅎㅎ
답글삭제윤님 맞습니다! 상대도 붕알두쪽이 전부입니다. 맞서 싸워서 이겨내세요!
삭제마흔넘어서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어려운데 ㅎㅎ 약간 소년같은 모습을 송쌤에게서 종종 봅니다 ㅎㅎㅎ
답글삭제시작이 늦고 자본도 미미한 이들(예를 들면 저같은...^^)
미리 쫄지말고 행복하게 투자공부해야겠네요.
인생 덧없고 우주아래 점 하나인데,
아둥바둥 때론 힘들지만 오늘의 가을 햇살 느끼며
아직은 어려운 투자공부하며
오늘을 즐겁게 보내야겠는데...(계좌가 너무 마이너스...)
좋은 날 오겠죠?
그럼요~ 좋은 날은 꼭 올거에요!
삭제글을 읽고 있자니 간츠란 일본 만화가 생각납니다. 인간들이외계인에게 납치되어 도축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그 긴박한 상황에서 똑똑한 동경대생이 사람들을 격려하고 앞장서서 이끌며 타계할 방법을 찾다가 어느 순간 도축(?)되어 매달린 장면이 생각나네요 ㅎㅎ. 그거 보면서 똑똑해봤자 앞도적인 문명과 힘 앞에서는 다 소용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ㅎㅎ. 전쟁이나 싸이코살인마를 만나지않는한 그런 공포와 절망을 느끼지않을수 있다는걸 생각하면 인간으로 태어난게 참 복입니다.^^
답글삭제우와! 흥미로운 주제네요. 좋은 작품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킵 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 찾아서 봐야겠네요~
삭제개인적으로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답글삭제물론 그 만큼의 내공이 있어야겠지만요 ㅎㅎ
말씀대로 인간은 어쩌면 허무한 존재이지만 그래서 모든 것이 벗겨졌을 때(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혹은 위기에 처했을 때) 풍기는 아우라가 있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벤야민이 이야기한 것처럼 아무리 감추고 감추어도, 어딘지 모를 아우라를 풍기는 그런 사람이 있고 또는 그것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있죠.
되게 비과학적인 말이지만 벤야민은 이것을 꽤나 깊게 분석했는데요.
어쩌면 제 상상이지만 정주영 회장님은 자전거를 못타는 걸 거짓말해서 입사했지만 쌀가게 사장님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주영 회장님 정도의 마음가짐이라면 풍기는 아우라가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겉모습 겉치장에 신경쓰는게 아니라 정말 깊은 내면을 갈고 닦고 싶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ㅎㅎ
우매한 원글에, 멋진 해설을 달아 주시어 고맙습니다. 문화인류학도님은 정말 우리나라의 보물!
삭제효수를 ㅠㅠㅋㅋㅋ 과찬 감사합니다. 항상 즐겁게 잘 배우고 있습니다 ㅎㅎ 정말 나라의 보물이 되고 싶어요!
삭제정말 귀한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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