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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30일 목요일

도로, 보행, 운전문화가 점점 더 어질어질해진다

나의 운전, 보행 스타일


저는 차분하고 수비적으로 삽니다. 투자를 할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보행자일 때입니다. 앞에서 사람들이 오면 무조건 비켜 줍니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상 속 마찰 스트레스를 크게 줄여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그렇고 상대에게도요. 우리나라 사람들 참 길 안 비켜 줍니다. 여자건 남자건, 아이건 어른이건 앞에서 사람이 와도 기싸움을 합니다. 제가 먼저 비켜 주는 태도가 아니었다면 많은 충돌이 있었을 것입니다.

문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에 사람이 가면 먼저 훌쩍 보냅니다. 앞 사람이 문을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 사람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혼자 문을 통과합니다. 반대로 제가 앞 사람이 되면 다릅니다. 저는 뒤에 사람이 오면 문을 한참이라도 잡고서 기다려 줍니다. 뒷 사람들은 절반은 고마워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당연하다는 듯 인사도 없이 지나갑니다.

도로를 건널 때도 그렇습니다. 어디서든 자동차, 이륜차 등과 조우하면 먼저 보내 줍니다. 혹시라도 길을 건너는데 차량이 기다려 주면 운전자에게 꼭 90도로 인사를 하고 지나갑니다. 그리고 차량이 너무 오래 기다리지 말라고 종종 걸음으로 뛰어서 빨리 횡단보도를 건너가 줍니다.

제가 운전자일 때는 반대입니다. 사람들이 길을 건널 것 같으면 항상 끝까지 기다려 줍니다.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제가 일찌감치 양보를 하고 기다립니다. 차선은 바꿀 때 마다 바꾸고 나서 감사의 비상등을 켜줍니다. 경적은 운전을 하면서 일절 쓰지 않습니다. 경적이 상대 기분을 얼마나 해치는지 아니까요.

고속도로를 탈 때는 1차로를 쓰지 않습니다. 1차로는 추월할 때만 씁니다. 고속도로 규정 속도로만 다닙니다. 하여튼 저의 운전습관과 보행 스타일은 이토록 조심스럽습니다. 제가 과도하게 상대들의 기분을 신경쓰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다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것도 큽니다. 나아가, 저 하나가 그렇게 하고 다니면 다른 분들께도 좋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누구도 지키지 않는 횡단보도


저를 올려치고 남을 내려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것은 저 스스로도 불편합니다. 다만, 기초 질서와 관련한 글은 꼭 한번 기록을 남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작은 질서들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합니다. 사람들의 애티튜드도 날로 망가지고 있는 것도 보입니다. 세상엔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을 곳곳에서 목도합니다.

일례로 저희 동네 횡단보도입니다. 몇년을 지켜 보고 겪었습니다. 빨간불에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이고 어른이고 빨간불에 그냥 건넙니다. 정말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동네의 횡단보도 질서도 처음부터 무너졌던 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한명이 질서를 어기니 다른 사람도 어기고, 또 그걸 본 다른 사람이 어기고. 그런식으로 질서는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빨간불에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단횡단해서 지나 다닙니다. 그러면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습니다. 나만 손해보는 느낌도 날 수 있습니다. 그런식으로 한 두명씩 질서를 어기다가 이 지경까지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저는 묵묵히 빨간불 앞에 서서 신호를 기다립니다. 아이들이 아랑곳 않고 빨간불에 길을 건넙니다. 어른들도 그럽니다. 저를 보고 한명이라도 분위기가 바뀌어 보길 간절히 바라 봅니다. 이 동네가 소위 말하는 못 사는 동네도 아닌데 민도가 왜 이런지는 의문입니다.

주말 운전 에피소드


주말에 문득 봉피양 냉면 한 그릇이 당겼습니다. 더우니 걸어 다니기는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일어나서 차를 끌고 길을 나섰습니다.

지도 : 카카오맵, 송종식

열심히 길을 가다가 차를 대기 위해 효뜨 방면으로 움직였습니다. 헌데, 지도의 동그라미를 친 부분에서 황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 차가 우회전을 하자마자 반대쪽 횡단보도에 사람들 네 명이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등은 빨간불이었습니다. 그래도 제 성격상 잠자코 보행자들을 기다려줬습니다. 보행자는 총 4명이었습니다. 2팀이었고 한팀은 남자 셋, 뒤 따르던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일행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남자 셋은 빨간불에 무단횡단 하는 게 미안했는지, 재빠르게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가 주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오는 여자가 느그적 느그적 세월아 네월아 걷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아주 당당했습니다. 정말 기다리는 차량들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급기야 성질급한 택시가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뒤에 있던 택시는 길거리가 떠나가라 경적을 눌러 댔습니다. 거의 당장이라도 저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기세로요.

저는 샌드위치였습니다. 앞에서는 무단횡단 하는 여자분이 세월아 네월아 치고 갈거면 치고 가라는 식으로 느그적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보행자는 수십년 동안 운전을 하면서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충격적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차량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도 '뭐 어쩌라고' 하는식으로 무신경 했습니다. 뒤에서는 택시가 저를 죽이겠다는 기세로 경적을 눌러 댔습니다.

저는 질서를 잘 지키려고 꽤나 노력합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도로 상황에 잘 녹아 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남들에게 피해나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도 않고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됩니다. 물론 내려서 보행자와 싸우거나, 뒤의 택시와 다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참 충격적인 민도였습니다. 너무나 당당하게 무단횡단을 하면서 남들에게 '알빠노'하는 식의 표정과 행동을 보이던 여자분. 그리고 그 잠시를 못 참고 사람을 치고 가라는 듯 경적을 눌러대던 택시. 이번 뿐만이 아닙니다.

길이건 공공장소에서건 전에 없던 무질서와 소란을 자주 봅니다. 길거리가 점점 지저분해지는 것도 느낌상 감지가 됩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이게 정말 전부 우리 한국인들의 짓일까'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동북아시아는 인종이 같으니 누가 얼마나 섞여 사는지 표시도 안나서 더욱 궁금합니다. 설마 우리 국민들이 민도가 점점 이렇게 떨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싶지가 않습니다.

저는 남들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고 먼저 양보하며 질서를 지킵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서서 기다리다 안내를 받습니다. 음식을 먹고 나면 사장님께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하며 90도로 인사를 건넵니다. 뭐 어디를 가나 이런식입니다. 아이에게도 이러길 가르쳤더니 아이 엄마가 너무 과도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남에게 과도할 정도로 친절하게 하는 게 차라리 낫습니다. 그게 일단 내 마음도 편합니다. 그리고 상대도 기분이 좋아 서비스를 더 잘해줍니다. 사람들은 왜 그걸 모를까요? 저의 태도가 한국에서는 유별날 정도의 행동이 됩니다.

그러나, 가까운 일본에 가면 거의 모든 일본인이 저처럼 합니다. 그래서 너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것이 혼네든, 다테마에든 저는 일본에 가면 마음이 편안한 것을 느낍니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합니다. 서로 인사도 잘 건넵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되레 갈수록 더 각박해지고 무질서 해지는 느낌이라 마음이 아픕니다. 일본인 만큼은 바라지도 않지만, 서로 상냥한 사람들이 되면 좋겠어요.

허울뿐인 소리가 되겠지만 우리나라도 서로 조금씩만 더 존중하는 공공질서 분위기를 갖추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26년 7월 30일
송종식 드림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고속도로 위에서의 망상 (스트레인저, 어나니머스, 대중과 개인, 인연에 대해)

#1

유튜브에 재미있는 영상이 업로드 된다. 영상의 조회수는 1회, 10회, 100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1만회, 10만회, 100만회가 되기도 한다. 숫자만 보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 영상을 본 100만 명에게는 100만 개의 인생이 있다.

1,000,000회라는 조회수를 숫자만 놓고 보면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667,521번째 누군가를 콕 집어서 만나보면 그 사람도 우리처럼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똑똑한 누군가 일것이다.

#2

서울서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움직인다. 멀고 노곤한 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 많은 차량들이 내 옆을 스쳐간다. 그 안에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근거리에 내 옆에 지나가는 것 자체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량들이 내 옆을 슝슝 지나가면 서로의 존재 여부도 알지 못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실수를 해서 나와 사고를 내면 나는 그 사람과 실질적 인연으로 엮인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묘하다.

누군지도 모를 수 많은 차량들을 도로에서 지나친다. 그 차량 중 아무 차량이나 세워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도 역시 나 처럼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숫자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수 백만대의 차량 중 한 대일 뿐이겠지만, 어느 차량 한대만 콕 집으면 각자의 인생과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자료 : 연합뉴스

#3

민족성과 언어라는 것도 신기하다. 30년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다. 30대 중반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알게 돼 친구가 되었다. 친해진 다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80, 90년대 이야기들이 나온다. 국민학생 시절의 생활, 그때 유행하던 유행가 등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수 백,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기억, 동일한 정서,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서로는 살면서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수 많은 차량들. 그 중 아무 차량이나 한대를 세워 말을 건다. 한국어를 쓴다. 말이 통한다. 해외 여행을 하다가 한국인을 만난다. 말을 건다. 나는 지방 출신인데 그 친구는 서울 출신이다. 한국말이 통한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하나의 언어로 생각이 통한다는 사실에도 가끔 놀라운 경이로움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가 '언어는 사람 버전의 프로토콜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정말 프로토콜처럼 느껴진다.

#4

운명과 인연이란 하늘이 주는 것인가? 내가 만드는 것인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만나는 수 많은 차는 나에게는 가상의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도로 위의 아이템들이다. 수 많은 자동차와 거기에 탄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차로 달려가 돌격해서 접촉사고를 일으키면 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된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인가? 아니면 그것 조차 하늘이 계획한 인연인가?

#5

특정 주제를 목적으로 카카오톡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곳에는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 와 있다. 전원이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대화명은 제 각각이다. '농부', '삐약삐약', '곰탱이', 'ㅇㅇ', '웃으며살자' 등. 필명 앞에는 카카오가 만든 귀여운 캐릭터들이 붙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와 있지만 저런식으로 나열된 익명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 감흥이 없다. 그저 PNG 이미지 한장에 필명 텍스트 한 줄이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을 끄집어 내보면 확실히 그 사람은 자기만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똑똑한 어떤 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연의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메타버스가 이런 무한대의 것들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똑똑한 지인들이 익명으로 여러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그들은 그 방에서 말도 안한다. 어찌보면 병풍이나 허수아비 같다. 그러나 그 지인들은 실제로는 매우 멋들어진 집에 살고 있으며, 생각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떠드는 사람은 소수이고 저런식으로 지켜보는 조용한 다수가 아주 많다는 것을 느끼고 또 그것이 무섭게 여겨진다.

#6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상 80억 명은 각자의 인생들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성공적인 삶을, 누구는 힘든 삶을, 또 누구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또 누구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삶을 조목조목 상상해보면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똑똑하다. 돈이라는 자원을 함부로 길 바닥에 버리는 바보는 없다.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차량 조작법을 알고 교통체계를 이해하고 움직인다.

실제로도 5200만 명의 대중들 중에서 3,970만 1121번째 사람을 콕 찍어서 새롭게 사귀어 인사를 나누어 보면 바보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저 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열심히들 살아간다. 모두 자기 생각이 있고, 스펙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삶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것이 있다. 왜 그렇게 개인만 놓고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대 대중으로 뭉치면 개인일 때 보다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되는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다 나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못 났다. 그런데, 그런 개개인이 대규모로 뭉친 대중들은 왜 고작 나보다도 멍청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7 

고속도로가 꽉 막혀있다.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내 어깨 위에 날개가 돋아난다. 고속도로 위로 스윽 날아오른다. 그 엄청난 차량들 중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두명이라도 알아보면 정말 신기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날아오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또는 유재석씨 같은 인지도 99.99%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볼 것이다. 유명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저들을 모르는데, 저들은 모두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쌍방향 인연일까? 단방향 인연일까?

오늘의 두서없는 망상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망상 끝.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길 위의 레밍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더욱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가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특히,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치안 좋기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리고 치안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소수의 레밍같은 사람들 때문에 길거리에 나서기가 두렵다. 앞서 말했듯 무섭기까지 하다.

#1

나는 운전대를 잡으면 가급적 양보를 하는 편이다. 좁은 길에서 다른 차와 마주 보는 경우라고 하자. 다른 차가 저 멀리서 골목에 진입하고 있으면 나는 진입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편이다. 먼저 지나가라고. 

이미 진입해서 앞차와 마주보고 있으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선에서 먼저 후진을 해서 차를 빼 주는 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게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도로를 수월하게 빠져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삶에서 괜한 분쟁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은 양보하면서 사는것이 밤에 두 발을 뻗고 자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의외로 마주보는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서로 차를 빼주기 싫어서 버티다가, 급기야는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본다. 서로의 시간 낭비이며,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가 아닌가? 말다툼을 해서 이긴들 남는 것이 무엇인가? 만에 하나 상호간 흉기 범죄라도 일어나면 남은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사람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터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레밍떼처럼 그렇게 돌격한다.

#2

우리나라의 보도는 좁은 편이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자전거, 킥보드, 오토바이 등이 보도 이용에 합세하면서 가뜩이나 좁은 보도가 더 좁아졌다.

그래서 통행 시 특별히 유의하는 편이다. 길에서도 나는 극도로 조심하는 편이다. 앞에 누군가가 걸어오면 상대가 지나가기 편하도록 길을 바짝 비켜주는 편이다.

역시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반대로 내가 싸울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요즘 세상이 무섭다. 괜히 부딪혀서 적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어깨 부딪힘으로 하루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주보는 서로가 자기 갈 길로 쭉 가면 몸이 부딪히든, 어깨가 부딪히든 반드시 충돌하게 된다.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 치고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잘 비켜주고 지나간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기싸움이라도 걸 듯이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일부러 몸을 치고 가려고 작정하고 걸어오기도 한다. 이것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일부 남자분들만 그런 것 같지만 여자분들도 젊으나 연세가 있으나 의외로 걸어오는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돌격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돌격하는 레밍떼 같아서 무섭다.

#3

보행신호가 파란불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좌우를 충분히 살피고 길을 건넌다. 확실히 차량이 멈췄거나 오는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야 발걸음을 한다.

그리고 신호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차량이 보이면 차량을 우선 보내고 나중에 길을 건넌다. 혹시 내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차량이 오면 뛰면서 길을 빨리 건너 가 준다.

반대로, 운전자 입장에서는 탱크같은 보행자를 자주 목격한다. 내 차가 아직 정차하지도 않았는데, 무심한 듯 느그적느그적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에 하나, 운전자가 음주운전자거나 잠깐 다른 짓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냥 죽는다. 

혹시라도 보행자를 배려를 하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나처럼 조심하니까 보행자가 안 죽는 것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몸이 탱크도 아니고 무슨 배짱으로 차량이 오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도로위를 슬렁슬렁 건너 다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무단횡단을 하면서도 그러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소름 돋는다. 이들이야 말로 길 위의 레밍같다.

물론, 차량이 보행자를 배려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보행자도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자기만 손해이다.

#4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줄을 서 있다. 내 앞에는 한 사람이 서 있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앞 사람이 탄다. 나도 탄다. 그런데 문이 닫히면서 내 발이 걸린다. 왜 이렇게 문이 빨리 닫히나 봤더니, 앞서 탄 사람이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사람이 타고 있는데 버튼을 누르기 바쁜 사람이 적지 않다. 나는 탔으니 그만이라는거다. 반대로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닫힘 버튼을 막 누르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몇번은 엘리베이터를 잡아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가급적 뒷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편이다. 그게 차라리 기분이 낫다. 닫힘 버튼 그거 죽어라고 눌러봤자. 별 효과도 없다. 누르는 본인도 기분만 안 좋다.

닫힘 버튼 누른다고 어차피 엘리베이터 탈 사람이 안 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그 버튼을 눌러대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레밍같다.


#5

신호가 없는 동네 골목의 사거리. 골목 두 곳에서 차량이 온다. 이럴 때 어느 한쪽이 양보하면 수월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나 다른 골목에서 오는 차를 보고도 앞으로 돌격하는 차량들이 적지 않다. 저러다가는 사고가 날텐데 싶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두 차량은 사고 직전에야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건 서로 못 봐서 그런게 아니다.

이것도 일종의 기 싸움이며, 나부터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이기심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행동이다.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는 걸 이들도 알거다. 알면서도 일단 브레이크는 안 밟는다. 적지 않은 차량들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

무시무시한 레밍이다.

#6

길 위에서의 양보는 일단 나 자신에게 큰 이익을 준다. 배려가 손해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을 손해로 인식한다. 무조건 들이대고, 돌격하고, 구겨 파고 들고, 밀어 붙이면 되는 줄 안다. 그게 비단 성격이 급한 것 만의 문제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편하고 보자는 발생의 발로가 아닐까? 상대에 대한 배려 부족이 아닐까? 길에서 발생하는 작은 충돌로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무지가 아닐까?

길에서는 그렇게 1분이라도 빨리 이동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해놓고, 일상에서는 시간을 허비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차라리 일상에서 시간을 아껴쓰고, 길에서는 여유를 갖는 것이 어떨까? 후자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