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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빚 24억 원을 1년 11개월만에 갚은 방법

모두가 은퇴 걱정을 할 때, 그는 음반을 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 표현할 방뻡이 없네"

광고 카피 하나로 전국구 인사가 된 사람. 전 천호식품 회장이자 창업자인 김영식 회장이다. 그를 만나면 늘 유쾌하고 즐겁다. 온몸에서 즐거움과 긍정의 에너지가 솟구쳐 넘친다. 옆에 있는 사람도 절로 어깨춤을 추게 만든다.

모두가 은퇴 걱정과 노후 걱정을 할 나이에 그는 음반을 냈다. 그냥 돈만 많은 부자가 아니다. 사회에 여러가지 기여를 하고 있으며, 취미로 음악 활동도 하고 있다. 모두가 꿈꾸는 노후, 모두가 꿈꾸는 삶이 아니던가?

10미터만 더 <노래 : 김영식, 작곡 : 김정택, 작사 : 김영식>

그의 뮤직비디오다. B급 감성이 묻어난다. 멜로디도 흥이 난다. 그러나 가사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작사는 김영식 회장 본인이 직접했다. 작곡은 김정택 SBS 명예예술단장이 맡았다.

누구의 말마따나 이 노래는 아침 기상용 알람으로 딱이다.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들으면 정말 흥이난다. 그냥 내가 하는 일이 다 잘 되어야만 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등으로 힘든 국민들에게 작으나마 힘을 주고 싶어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평소에도 국가를 위해 크고 작은 봉사와 후원을 많이 하고 있다.

곡은 태진미디어와 금영의 노래방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어렵지 않은 노래이니 흥을 돋구어야 하는 자리에서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

제대 5일만에 시작한 첫 사업


'김영식 회장'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 '뚝심', '추진력', '부지런함'이다. 그에 걸맞게 그는 군 제대 5일만에 첫 사업을 시작했다. 학습지 영업을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매일 하루에 100km씩 다니며 영업을 했다. 그 결과 그는 전국에서 학습지 판매부수 1위 사업자에 올랐다. 돈도 벌렸고 사업도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24살때 벌인 학습지 사업으로 돈이 벌리자 그는 사업을 확장했다. 80년대 초에는 '세계 금연의 해' 슬로건을 포착하고 금연파이프 사업을 진행했다. 금연파이프로 6개월도 되지 않아 현금 6,000만 원을 넘게 벌었다. 그 외에도 신발 밑창 사업도 했는데 사업이 잘 되었다. 1980년대 초에는 일반 회사원의 한달 봉급이 40만 원 수준이었으니 젊은 나이에 가히 어마어마한 돈을 번 것이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잠시 뿐. 첫 번째 시련이 찾아왔다.

금연파이프는 히트를 치자 짝퉁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우선 짝퉁 제품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전문 분야가 아닌 다양한 사업에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집중력을 잃었다. 무엇보다 큰 교통 사고를 당하면서 그의 첫번째 사업은 그렇게 망하고 만다.

달팽이로 부산에서 100등 안에 드는 부자가 되다


교통사고로 고생을 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달팽이를 먹게 된다. 달팽이를 먹으면서 크게 부러졌던 그의 팔은 기적적으로 치료가 된다. 흡사 종교 단체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마케팅 천재인 그가 마케팅을 위해서 달팽이의 효능을 과장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 팔이 나을 타이밍이었는데 우연히 달팽이를 섭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달팽이가 효능이 있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그는 1994년 이를 계기로 달팽이액기스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달팽이액기스 사업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판매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파산에 몰린 그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강력한 마케팅, 그 한방이 필요했다.

타고난 천재 마케터이자 승부사인 그는 KBS를 목표물로 삼았다.

현재도 방영중인 <6시 내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는 무작정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담당 PD등을 만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김영식 회장을 쳐다 보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6시 내고향>은 당시에는 인기도 많고 파급력도 큰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6시 내고향에 출연하려고 줄을 선 사업가가 어디 김영식 회장 한 사람뿐이었으랴.

어쨌든 김영식 회장은 6시 내고향이 아니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2주에 한번씩, 한달에 한번씩 6시 내고향 팀을 찾아갔다. 방송국에 발이 닳도록 꾸준히 찾아갔다고 한다.

이때도 그의 영리한 영업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방송국 PD들에게 찾아가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들은 바쁘다. 그래서 김영식 회장은 일단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우선은 매일 찾아가는 것을 삼갔다. 대신 잊을만 하면 찾아갔다. 찾아가서도 절대로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PD와 제작팀의 책상에 달팽이 액기스 하나씩을 조용히 올려두었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가면서 고개숙여 크게 인사했다고 한다.

"달팽이 왔다갑니다!"

방송국에 그토록 정성을 썼건만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 문을 곧 닫을 판이었다. 그러던 몇달 후, 하늘이 도왔을까?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달팽이씨 방송 한 번 해봅시다."

PD님도 김영식 회장의 끈질긴 태도에 감복했다고 한다. 방송으로 달팽이엑기스를 주문할 수 있는 전화번호도 송출이되었다. 방송이 나가고 달팽이엑기스 구매 문의 전화로 전화기가 불통이 되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주문에 그야말로 대번에 기사회생했다. 그의 간절함과 승부수가 통한것이다.

1992년부터 2년 동안에만 무려 현금으로 50억의 순수익을 남겼다. 열심히 사업을 했고 현금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머지 않아 기관에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줬다.

"김영식씨, 부산에서 현금 부자 100등 안에 들었네요."

여세를 몰아 그는 사업을 확장했다. 황토방, 찜질방, 서바이벌 게임장 등 할 수 있는 사업은 닥치는대로 확장을 했다. 첫 사업에서 그는 비전문분야에 대한 문어발식 투자로 주저 앉았다. 그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그에게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웠다. 그가 비전문분야에 대한 사업 확장을 하는 동안 IMF 사태가 터졌다.

순식간에 알거지가 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 그의 가슴에 아로 새겨진 문구가 아닐까? 떵떵거리며 살던 그는 순식간에 알거지가 된다. 불과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는 어딜가나 VIP였다. 먹고 싶은 것은 다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에 남은 것은 돈 2,000원이 전부였다.

길을 걷고 있는데 국밥집이 보였다. 국밥집에서 사람들이 맛있게 국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 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 국밥 한 그릇조차 사 먹을 돈이 없었다. 600원짜리 소시지 하나와 소주 한병을 사들고 기거중인 여관방으로 향했다.

방값을 내기조차 버거웠다. 소시지를 먹으면서 눈물을 그렇게 흘렸다. 문득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겠노. 마 죽자.'

여관 창문을 열고 한쪽 다리를 난간으로 내 밀었다. 나머지 다리 한쪽만 난간 밖으로 내밀면 떨어져 죽는다. 최후의 순간에는 그도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마침 세무서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체납세금 납부독촉 전화였다. 돈이 많을 때는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것 처럼 굴던 사람들이 싹 변했다. 세금을 그렇게 많이 냈는데도 힘들어지고 나니 가차없이 밟아댄다.

세무서 직원은 통화중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김영식 회장에게 물었다.

"자살하시려고요? 그러면 저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 안됩니데이."

그 이야기에 김영식 회장은 정신이 번쩍들었다. 웃음도 나고 화도 났다. 

"그래 다시 한번 해보자!"

빚 22억 원을 1년 11개월만에 다 갚고 재기하다


무일푼인 김영식 회장에게 남은 건 결혼반지 뿐이었다. 그것을 전당포에 맡기고 130만 원을 확보한다.

얼마전에 큰 딸이 '아빠 우리집이 그렇게 가난해?'라고 물었다. 우선 그는 그 130만 원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딸이 보는 앞에서 만원 짜리를 하나씩 뿌렸다. 총 130장을 뿌렸다. 그랬더니 비좁은 방이 만 원짜리로 가득 찼다. 철 없고 어린 딸은 '우리집 부자네'하면서 좋아했다. 김영식 회장은 가슴이 아팠지만 그렇게 딸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다.

이제 그는 한 우물만 파기로 결심한다. 원래의 전문분야인 건강기능식품 시장으로 돌아왔다. 130만 원을 투자해서 강화사자발쑥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 박스를 들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쑥 색상의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입고 아침마다 전단지를 돌렸다. 원래도 넉살 좋은 그였지만 이때는 부끄럽고 뭐고도 없었다. 생존 자체가 절박했다. 

"쑥쑥 쑥자로 끝나는 말은~ 이쑥 저쑥 들쑥 날쑥 몸에 좋은 쑥~"

익숙한 멜로디에 나름대로 가사를 붙여서 강남역 앞에서 열심히 불렀다. 사람들이 전단지를 버리면 그걸 주워와서 다시 돌렸다. 죽기 살기로 영업했다. 변변한 매장하나 구할 돈이 없었다. 제품을 강남역에 쌓아놓고 팔았다.

그의 그런 노력은 1~2주 후 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제품은 서서히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첫달 매출 1,100만 원을 올리게 된다. 매출은 매월 수직 상승했다. 강남역에서 전단지를 돌린지 4개월 되던 때는 월 매출이 9,800만원, 6개월 째에는 2억 5,000만원, 그리고 다시 1년 뒤에는 월 매출 9억 8,000만원을 달성했다.

이렇게 '못 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한 박스 한 박스의 제품을 최선을 다해서 팔았다. 그 결과 그는 빚 22억 원을 1년 11개월 만에 다 갚았다. 매번 새로운 제품을 성공적으로 히트 시키며 2013년에는 매출액이 1,300억 원에 달하게 된다.

발 붙일 땅이 한 평 없어서 강남역에서 영업하던 그는 역삼동에 멋진 빌딩을 짓고 서울 사옥으로 만든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대한항공 탑승만 2,800회 넘게 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행기를 많이 탄 사람 중 한명이 되었다. 부산에는 공장이 있으며 서울과 부산에 수행비서와 고급 차량들을 별도로 가지고 있다.

물론, 쑥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당포에 맡겨 두었던 결혼 반지는 다시 잘 찾았다.

그가 어렵던 시절 그의 오뚝이 같은 근성을 높게 본 탤런트 이순재씨는 천호식품이 안정될 때 까지 무료로 회사의 모델을 해주었다.

모두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는 시절이다. 그러나 항상 돌파구는 있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즉시 행동으로 실천하자는 그의 외침에 호응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2020년 11월 19일
송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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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7일 화요일

조 단위 부자도, 대통령도 하늘이 낸다

마이애미 부촌의 한 개인주택 <출처 : home-designing.com>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 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들을 추종합니다. 워런버핏이 한마디 던지면 그 이야기는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전파됩니다. 투자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투자분야 뿐만 아닙니다. 어떤 분야든 사람들은 그 분야에서 가장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추종합니다. 그나마 그 사람의 철학을 제대로 추종하고 뽑아먹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보이는 많은 초보투자자분들의 행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수의 사고방식이나 철학 중 배울점이 있다면 배우려고 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뭔가 즉각적으로 이익을 줄만한 이야기를 하는지, 그것에 더 목을 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투자의 경우에도 천천히 바닥부터 배워 올라가고, 시장에서 경험을 쌓아서 내 스스로 훌륭한 투자자가 되려고 하는 분들도 적지 않게 계시지만, 많은 투자자가 남들이 던져주는 종목을 소위 '받아 먹으려고' 추종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러면 영원히 자기 성장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늘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다니는 허수아비 인생밖에 살지 못하지요.

또, 사람들의 목표가 너무 높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제 주변에는 대기업에서 정년 퇴직을 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십니다. 대기업에 들어갈 정도면 일단 샐러리맨 중에서는 상위 5%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부장급~임원급으로 정년 퇴직을 하였으면 사회 전체적으로도 꽤 안정된 삶을 살았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퇴직 후 어르신들의 삶은 의외로 비참하신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월급 1~200짜리 아르바이트급 일자리에 재취업을 하시거나 그 마저도 못하시는 분들은 골방에서 하루하루 시간만 때우는 분들이 적지 않으셨습니다.

직장을 다닐때 재테크나 부업으로 퇴직 이후의 삶을 잘 마련하셨다면 좋았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는 이번 글에서는 논외입니다. 상위에 속하는 근로자들의 삶도 저렇습니다. 그런데 저 정도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는 백 억을 벌거야, 천억을 벌거야, 조를 벌거야..'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그야말로 현실 파악을 못하는 것입니다.

금융자산을 11억 원 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100억 자산가는 5,500여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01%입니다. 흙수저 사람이 100억 부자가 되기란, 고교생이 서울대 의대에 입학할 수 있는 확률보다 떨어진다는 소리입니다. 200억대 이상의 부자는 800여명 정도 된다고하니 그 확률은 더 떨어집니다.

대통령과 조 단위 부자는 하늘이 낸다


몇천억, 몇조를 벌겠다는 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유동성의 팽창과 스타트업 진입의 용이성으로 조가 우스워진시대입니다. 그러나 조단위 부자는 내가 될 수 있다고 되는 것의 성격은 아닐것입니다. 조 단위의 재산을 가진 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자는 소리는 아닙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가슴속에 큰 꿈은 늘 품고 다녀야겠죠. 애초에 목표나 꿈이 없다면 작은 부자조차 되는 것이 불가능할테니까요. 꿈을 버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꿈은 가슴속에 묻어놓고 우리는 철저히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1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적지 않은 친구들이 '저는 25살쯤에는 성공해서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닐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20대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저는 40살 쯤에는 100억? 아무리 못 벌어도 20~30억은 벌고 넉넉하게 살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40~50대 선배님들은 집값이나 안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살아보니 세상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모난 돌은 정을 맞아 점점 둥글어집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청년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지만 삶은 늘 제자리입니다. 그런데, 학창시절부터 무식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웠던 친구는 별 것도 아닌(?) 장사를 하면서 나이 서른에 벌써 아파트 두채를 사고, 외제차를 두대나 굴리면서 아들딸 낳고 잘 삽니다. 가게도 벌써 몇개나 냈다고 합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친구는 억울해합니다. '나는 쟤보다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지식도 많고 훨씬 뛰어난데 왜 별 것 아닌 허드렛일을 하는 친구가 돈을 더 잘 버는가. 인생 현타온다'. 장사가 쉽다거나 장사하는 분들이 무식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니 맥락에서 벗어난 오해는 없으면 좋겠습니다.

재능과 끼가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끼를 믿고 너무 높은 이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현실에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많은 케이스가 위와 같은 케이스입니다. 그 친구들이 보기에 별 것 아닌 일이라도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 결국 작은 성과들을 쌓아갑니다. 그 성과들은 복리로 커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별 것 아닌 일을 하던 사람이 회장님 소리를 듣고 사는 것입니다. 떡볶이 장사, 치킨 장사, 학습지 팔이, SNS 바이럴 마케팅.. 단순한 업종에서 단순한일을 꾸준히 오랫동안 잘 해낸 사람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주식투자를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단단히 마음먹고 주식투자를 꾸준히 열심히 해야합니다.

어쨌든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은 더 피폐해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나이가 젊은 친구들일수록 그런 태도는 더 위험합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말해야 국가가 성장한다고들 하지만 오히려 그게 그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많이 봐왔습니다. 오히려 실현 가능한 눈앞의 작은 목표들을 잡고 작은 일들을 꾸준히 잘 해내는 사람들이 그 목표들을 키워가면서 더 잘되는 경우를 많이 봐 왔습니다.

너무 슈퍼개미나 대가들만 추종하기 보다는 일단 내 계좌를 5,000만원을 만들자, 1억을 만들자, 이후엔 3억을 만들자. 이런 작은 목표들에 집중하는게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빨리 가려고 욕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천천히 가도 됩니다. 천천히 가다보면 어떤 날은 스포츠카를 얻어 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행기를 얻어타기도 합니다. 천천히 가도 한번씩 계좌가 점프업 하는 날도 있습니다. 눈앞의 목표부터 천천히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게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남을 의식하지도 말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알차고 행복하게 보내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면 행복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에 쫓기고, 남들과 경쟁의식을 느끼는 순간 투자든 인생이든 망가집니다.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부록 : 성훈형님과 김영식 회장님


주식투자로 크게 성공해서 유명한 heyda(성훈)형님도 때마침 최근에 블로그에 이런 비슷한 글을 쓰셨습니다. 너무 큰 목표를 잡고 투자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꿈을 못 이룰 수 있다고요. 작은 목표, 할 수 있는 작은일 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언젠가는 그 이상의 위치에 올라 있을거라고요. 저도 동의합니다.

'남자한테 참 좋은데'라는 유행어로 유명하신 김영식 회장님은 어릴적부터 저의 멘토이셨습니다. 가난하고 힘들던 저의 사고방식을 많이 개조시켜주셨습니다. 그분과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습니다. 나중에 하나씩 글을 써 보겠습니다. 이번글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송군은 어른되면 뭐하고 싶노? 목표가 뭐고?"
"저는 금액으로는 40조 정도를 벌어서, 우주센터를 건립하고, 재능이 있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만그만. 목표를 그래 잡으면 아무것도 못한데이. 니가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그래이..."

그 이야기를 듣고 스무살의 저는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현금 1억부터 만드는 것으로요. 그리고 저는 20대에 순자산 1억을 만드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그 1억원이 저의 소중한 종자돈이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작은 일 부터 지금 당장 시작해서 그것을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요?

2020년 1월 7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