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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4일 수요일

사람이 살아가는 저마다의 동력


일본의 한 요양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약간 각색하여 글을 쓴다. 

요양원의 어르신들은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저 식사 때가 되면 밥을 먹는다. TV 시청을 하거나 가끔 동네 골목이나 정원을 산책하는 정도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료타 할아버지, 자주 씻으셔야 해요. 그게 건강에도 좋단 말이에요. 어제도 오늘도 안 씻으셨죠?"

어르신들을 돌보는 직원들은 늘 할아버지들께 잔소리한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들은 "아이구 귀찮어" 하시며 손사래를 치신다.

할머니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젊고 예뻤던 시절에는 그렇게 열심히 꾸몄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기력도 없다. 무기력한 어르신들이 오늘도 요양원에서 하루를 보낸다. 억지로 장기를 두거나, 꽃을 가꾸며 즐거운 척해보지만 그래도 활력 없음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루는 요양원 직원인 미즈키가 료타 할아버지와 케이코 할머니를 소개해 드렸다. 두 분은 오래된 부부인 양 금방 친해지셨다. 미즈키에게 소개를 받은 이후 두분은 항상 붙어 다니셨다. 젊은 연인이 부럽지 않았다. 두 분은 근교로 놀러 다니시기도 하고, 매일 손을 잡고 근처에 산책하러 다니셨다.

두 분께는 놀라운 변화도 생겼다. 작년에 여든을 넘기신 케이코 할머니께서 화장하기 시작하셨다. 이제 자기를 예쁘게 꾸미는 데 꽤 시간을 쓰신다. 변화는 료타 할아버지에게도 생겼다. 일주일에 한 번을 씻을까 말까 하던 료타 할아버지.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직원들에게 매일 혼나던 그 료타 할아버지께서 매일 샤워를 한다. 이제는 옷도 다려 입는다. 매일 몸을 청결하게 하고, 나름대로 옷도 꾸며 입으시려고 노력한다. 멋쟁이 할아버지가 되셨다.

두 분은 외로움을 크게 타는 분들이다. 그래서 좋은 친구가 되실 거라는 생각에 미즈키는 두분을 소개해 드렸다. 하지만 미즈키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놀라운 변화를 보면서 기분 좋은 요즘이다.

두분의 연애(?)가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마코토 할아버지가 케이코 할머니에게 호감을 표했다. 케이코 할머니는 친구가 많아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케이코 할머니는 료타 할아버지와도 연애를 하고, 마코토 할아버지와도 연애를 했다. 할머니는 두 할아버지들한테서 큰 사랑을 받았다. 할머니는 날로 더 생기가 넘쳐 보였다. 두 할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어르신은 활력이 넘쳤다.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노년이 이런 것이라는 모습을 보여 주시는 듯 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삼각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터졌다. 케이코 할머니가 마코토 할아버지와 따로 만나는 걸 알게 된 료타 할아버지가 마코토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당신! 케이코 한테서 떨어져!"

마코토 할아버지가 말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나?"

료타 할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좋아 그럼 우리 맨 주먹 싸움으로 승부를 보자. 남자답게 말이야."
"그래 해보자. 나도 그쪽은 자신 있다구."

료타 할아버지는 사무라이 출신이었다. 마코토 할아버지는 평생 사무직으로 일을 하다가 은퇴를 하신 분이다. 당연히 평생 운동을 한 료타 할아버지에게 싸움으로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케이코 할머니를 잃고 싶지 않았던 마코토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다투었다. 할아버지들의 싸움이었지만 그래도 꽤 소란스러웠다.

결국 싸움은 사무라이로 살아 온 료타 할아버지의 당연한 승리로 끝났다. 

꽤 소란스러운 사건이었다. 요양원장인 타다요시의 귀에 사건의 전말이 모두 들어가게 되었다. 타다요시는 한참을 고민했다. 결국 료타 할아버지, 마코토 할아버지, 케이코 할머니를 모두 요양원에서 퇴소시키기로 결정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하지만 세분이 함께 계시면 요양원은 계속 소란스러워질 터였다. 다른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녕을 위한 조치였다.

요양원은 다시 조용해졌다. 3개월 후 요양원 직원들은 어떤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3개월 전 퇴소한 료타, 마코토 할아버지와 케이코 할머니에 대한 소식이었다. 세 분 모두 요양원 퇴소 후, 삶의 의욕을 극도로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줄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세 분의 퇴소를 결정한 타다요시 원장은 큰 죄책감에 빠졌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냥 그 어르신들이 옥신각신 하시도록 둘 걸 그랬나..' 큰 후회를 하였다고 한다.

2023년 5월 24일
송종식


2022년 2월 3일 목요일

(약19금) 성과 인간, 그리고 사회적 행태

본 글은 학문적인 내용이 아니다. 나는 관련 전공자도 아니다. 독백에 가까운 글이다. 내가 아는 약간의 상식과 나의 편견을 버무려서 작성하는 글이다. 감안해서 읽어주시면 좋겠다.

인간은 왜 그 힘든 유성생식을 하는가?


무성생식은 다른 개체의 유전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 번식한다. 유성생식 개체들보다 번식 속도가 빠르다. 아메바, 곰팡이류도 무성생식 개체이다.

인간은 유성생식 동물이다. 번식을 하기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한번 번식하는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얼핏보면 인간의 유성생식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그러면 인간은 왜 효율적인 무성생식 방법을 놔두고 유성생식을 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외부의 바이러스, 각종 미생물, 중금속, 방사선 등의 공격으로부터 더 잘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성생식 동물의 유전형질은 단 하나이고 변하지 않는다. 부모와 동일한 유전형질을 보유한다. 따라서, 해당 유전형질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공격에 해당 무성생식 생명체는 궤멸될 수 있다.

그러나 유성생식 동물의 유전형질은 다양하다. 서로 다른 유전형질을 가진 암수가 만나서 그것을 버무린 후 자녀에게 물려준다.

유성생식 동물들은 다양한 유전형질을 가진 수 많은 개체들이 살아가므로 외부의 미생물, 바이러스, 방사선과 같은 공격에 궤멸 당하지 않고 잘 생존해 나갈 수 있다.

여담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 식물, 미생물의 무게를 합하면 이 중에서 무게의 60%를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미생물이다. 당연히,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의 몸무게를 합한 것 보다 미생물의 무게를 합한 것이 비교도 안될만큼 무겁다. 그만큼 지구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미생물이 살아간다.

그래서 혹자는 지구를 미생물의 행성, 바이러스의 행성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고 자신의 종을 지켜내는데는 무성생식을 하는 동물들 보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이 유리하게 진화하였다.

Unsplash @huuduong

왜 피스톤 운동을 해야하는가?


이 부분은 많은 사람이 궁금한 부분일 것이다. 예외도 있지만 보통 수컷의 성기는 밖으로 돌출되어 있다. 그리고 암컷은 이것을 받아 들이는 구조다. 인간도 이런 구조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수컷이 팽창하면 암컷이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사람의 남녀간 생식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사랑을 나누는 동안 왜 생식기의 피스톤 운동을 하는가?

인간이 진화해 온 시간에 비하면 인간집단이 문명사회를 이루고 법과 제도의 통제를 받으면서 살아온 기간은 아주 짧다. 일부일처제 등 법과 제도가 자리를 잡기 전에 우리의 오래전 조상은 비교적 난잡한 성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육아도 지금처럼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명의 암컷은 다양한 수컷과 성적 관계를 즐겼다. 

뉴욕 주립대의 고든 갤럽 교수는 남성의 성기가 버섯 모양을 닮고, 귀두에 볼록 튀어 나온 부분이 있는 것은 진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암컷의 몸에 있는 다른 수컷의 정액을 빼내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1) 피스톤 운동을 하는 것이며, 2) 귀두의 끝 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버섯 형태의 생식기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고든 갤럽 교수의 실험결과 지금 남성 성기모양처럼 귀두가 있는 경우 이전에 들어 온 정액 중 91%를 긁어내는 데 성공했고, 귀두가 없는 밋밋한 모양의 경우 35%밖에 긁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남성의 길이와 굵기가 중요한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여성은 성관계의 효능감을 느끼는데 단지 기술적인 것 만을 중시하지는 않는다. 분위기, 상대와의 관계와 신뢰, 사랑의 크기 등 다양한 외부 요소가 중요하다. 일단 그런것은 차치하고 기술적인 부분만을 놓고 보자면 여성들은 남성의 작은 성기보다는 굵고 큰 성기를 선호한다.

그것이 진화론적 개념으로는 유전자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유리하다고 여긴 결과일 수 있다. 직전에 들어 온 다른 수컷의 정액을 긁어내기 쉽기 때문에.

여자의 외모, 남자의 능력을 보는 것은 본능이다


남자는 가슴과 골반이 크고 다리가 쭉쭉 뻗은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 반대로 여성은 가방끈이 길고 경제력이 있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 이것은 타고난 본능이다. 본능은 우리 종족을 지키기 위해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 코드이다.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다른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도하게 인간의 본능을 외면하고 억제시키는 사회도 건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능은 인간사회를 발전시키는 커다란 동력 중 하나이다.

남자가 여자의 가슴과 골반을 보면서 크기와 비율에 따라 성적 매력을 느끼는 구간이 있다. 대다수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비율과 크기를 가진 여성은 '아마도 아이를 잘 낳고,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을 것이다'라는 유전적 각인과 본능을 자극할 것이다.

반대로 여자는 어깨가 넓고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것이 과거 수렵-채집, 사냥을 하면서 유리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때 새겨진 유전적 각인이 현대 여성들에게도 본능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의 학력과 경제력을 보는 것 역시 종족의 번식과 더 나은 유전적 요인, 그리고 환경을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본능에 따른 것이다. 머리가 좋은 유전적 형질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본능,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은 영양소를 공급하고, 더 나은 교육을 시키기 위한 본능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PC주의가 득세하면서 인간의 이런 본능과 본성을 억제하려는 시도가 사회 전반에서 거세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본능을 어느 정도 억제하는 가?'하는 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본성을 법과 제도로 억압을 가하기만 한다면 그것 또한 '그 사회를 제대로 굴러가게 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도 생긴다.

선택권은 여성에게 있다


흔히 남자들은 '여자를 꼬신다'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선택권은 여성에게 있다. 남자들은 자신의 열정과 멋짐으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여성은 수 많은 남성들에게 일상적으로 대시를 받고 있고, 그 중에서 남성들을 저울질 한다.

왜 그런가? 정자는 하루에 3억개가 생산된다. 난자는 한달에 단 1개가 생산된다. 여성이 일생 생산할 수 있는 난자는 매우 한정적이다.

수요와 공급비가 상대도 안될 정도이며 하나의 난자를 얻기 위해 적게는 수 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마리의 정자가 경쟁하는 셈이다.

남자는 가급적 많은 정자를 가급적 많은 난자에게 뿌려대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려는 본능이 있다. 반면, 여성의 난자는 희소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아무 정자나 받아 들일 수 없다. 후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여성은 심사숙고 하고 또 숙고한다. 그래서 여성은 몸을 지키려고 하고, 남성은 그렇게 배출하려고 한다.

열정은 왜 식는가?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보통 남성의 초기 열정이 아주 뜨겁고 시간이 갈수록 여성 측 보다 먼저 식는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보자면 남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서 특히 '처음보는 여성'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상대로 아주 뜨거운 열정도 보여준다. 귀찮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남성은 연애 초기에(자신의 정자를 퍼트리기 전) 만큼은 여성에게 아주 크나 큰 열정을 보여준다.

고되고, 힘들고, 귀찮고,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몸을 정복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충분히 한 여성에게 배포하였을 즈음 남자측에서 열정이 식어가기 시작한다. 연애 초기의 열정은 옅어지고, 그런 모습은 여성측에서도 열정을 식게 만든다.

남성은 슬슬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사회적으로는 비난받을 일이지만, 그것이 본능이다. 다만 입 밖으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을 뿐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

존재의 이유와 죽음 이후..


왜 열심히 공부할까? 왜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 할까? 왜 돈을 많이 벌려고 할까? 매슬로우 욕구 단계에 의하면 가장 상층부에는 '자아실현'이라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있다.

그러나 숨겨진 또 하나의 연결지점을 찾자면 나는 자손번식과 유전자 각인을 꼽는다. 앞서 열거한 것들을 비롯해서 우리 행동의 거의 모든 동기의 정점을 찾아 들어가면 그 중 하나에는 자손번식이 있을 것이다. 혹자는, 짐승도 아니고 모든 것을 그쪽으로 연결짓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래서 단서를 단 것이다. 인간 욕구의 정점에 있는 것 중 '그 중 하나'라고. 

1) 먹고 살면서 기본적인 생존을 하기 위한 것, 2) 자아를 실현하는 것, 3) 후대에 내 유전자 정보를 넘겨주는 것. 인간행동의 거의 모든 동기는 저것 3개 중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어쩌면 인간 존재의 이유 중 하나는 아닐까?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2)번에 따라 무언가를 남기는 것을 상상해 본다. 그것은 아마도 유형자산이기 보다는 무형자산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사실은 그가 만든 무형의 업적이나 저작물이 남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 음악, 그림, 글, 기업체 따위의 것들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의 무형자산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영광스럽고 좋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은 쉽지 않다.

3)번은 보통사람들도 비교적 이루기가 쉽다. 짝짓기 경쟁에서 낙오한 개체가 아니고, 자녀를 남긴다면 내 유전자는 후대에 남는다. 나는 이것이 인간이 존재하다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길 수 있는 가장 유의미한 것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힘들고 귀찮은 그 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또 다른 동기로 인간은 성욕을 부여받았다.

그렇다면 1)번은? 뒤의 2) 3,)을 이루기 위해서는 죽지 않고 생존해야 하지 않나? 그러니 1)번은 그 어떤 본능보다 가장 강력한 본능이다. 굶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장나므로.


2021년 3월 23일 화요일

한국에서 건드리면 안 되는 것 3가지

정의의 여신상 유스티치아 <자료 : pixabay>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 건드리면 안되는 역린이 몇가지가 있다.

"아이는 건드리지 마라" 이런 것 정도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문명화가 된 나라라면 어디서든 통용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건드리면 안되는 독특한 역린 몇가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군대문제, 자녀들의 대학 입시문제, 나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편법을 써서 돈을 버는 문제 등.

이런 문제들의 공통점은 '공정성'과 관련된 것이다. 물론 공정성은 사회를 지탱하는 매우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그 공정함의 잣대가 특히 가장 엄격하게 적용되는 분야가 위에서 열거한 것들이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군대 문제에서 열외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누구나 다 나의 의사에 반하여 군대에 소위 '끌려간다'. 가장 꽃다운 나이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 2~3년의 시간을 증발 시켜버린다. 군대에서 배운 것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군대에 안 갔으면 배우는 것과 쌓이는 것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러하다 보니 편법을 쓰거나, 사회지도층 부모의 백과 힘으로 군대에 빠지는 행위를 국민들은 참지 못한다. 군대 문제가 생기면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직업은 못한다고 봐도 된다.

자녀들의 대학입시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부부들을 보면 내 자식은 애지중지 금지옥엽으로 키우면서 다른 자식에 대한 속마음은 그야말로 뚱하게 생각하는 경우들을 본다. 그거야 동물의 유전자 복제 본능에 따라서 그럴 수 있고 그게 당연한거라고 본다.

내 자식은 다른 집 자식보다 하나라도 더 좋은 걸 먹여야 하고, 하나라도 더 잘 해서 가급적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게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갈수록 자녀를 낳는 수도 줄어서 자녀는 더욱 귀한 존재가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정성에 대해서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자녀들과 관련된 입시문제, 그리고 먹을 것이 가득 들어차 있는 직장으로의 취업문제다.

이 부분도 부모의 능력이나 편법을 이용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경우, 혹은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고 싶어하는, 돈 많이 주고 앞날이 탄탄하게 보장된 직장에 낙하산으로 취업하는 경우에는 온 국민이 공분하며 들고 일어선다.

뭔가 그 자녀들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자녀들보다 별로 잘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 좋은 학교에 들어가? 그 좋은 직장에 들어가?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공정하게 경쟁해서 지더라도 수긍하기 힘든 것이 자녀와 관련된 것인데 상대의 편법으로 졌다고 생각하면 그 분노는 더 커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이번에 LH에서의 것과 같은 것이다. 뭔가 나보다 별로 특출난 것도 없는 인간들이 국토 개발 정보를 틀어쥐고 반칙을 써서 떼돈을 버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쎄거나 능력있는 사람에게는 복종한다. 그러나 자기와 별 다를 것 없이 애매한 사람이 뭔가 큰 돈을 벌면 그때부터 배가 아파 죽는다. 온갖 논리와 욕설을 만들어서 물어 뜯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어 물어뜯는다.

하물며 공정하게 돈을 벌어도 사람들이 배아파서 죽는판에, 국민들이 주는 세금을 먹고 사는 공기업에서 개발정보를 사전에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짓을 했으니 이것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또, 사람들은 남이 편법을 써 무엇인가 얻으면 떼로 몰려 들어 물어뜯고 화를 낸다. 반면에 자기 자신들이 얻는 편법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면도 있다. 

살다보면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서민들까지 다양한 편법을 저지르다 발각된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극도로 분노하지만 정작 자신들도 자기 위치에서 부지런히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남들이 새치기 하는 것에는 극분노하지만, 자신이 인맥을 동원해서 새치기를 하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이 사람들의 본성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고, 드러나면 공격 받는다. 그것이 이치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런데 부자라고 오해를 받고 있다. 그저 여분의 시간에 취미로 글을 쓰고, 취미로 영상을 만들고, 취미로 코딩을 한다. 단지 투자 공부를 오래했고, 투자를 좋아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이 모두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에 있는 것들이다 보니 조금씩 이름을 알아보는 분들도 생기고 얼굴을 알아보는 분들도 생기는 것이다. 내가 영위하는 취미활동이 그저 사람들과 만나기 용이한 것들이다보니 그런 것이지 나는 부자가 아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요즘 유튜브나 미디어에 자기 자신이 부자라며 등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이 진짜 부자인지 가짜 부자인지 알 길이 없다. 가짜 부자이면서 어그로 끌어서 돈을 벌기 위해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혹자는 그것도 사업적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하더라.

내 경험상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사람은 대부분 허당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부자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지 않았다. 진짜 부자는 감추고 숨어야 하고, 가짜부자는 드러내고 알려야 한다. 각자 자신의 최대 이익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어쨌든 온라인에서 부를 과시하려는 분들도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대중들은 언제나 돌변한다는 것이다.

사랑해요, 존경해요를 외치다가도 순식간에 돌변하는 것이 대중이다. 그도 그럴것이 남들이 얼마든지 배아파 할 수 있는 돈 벌었다는 자랑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또한, 수 만~수 십만의 팔로워 중에서는 범죄자도 다수가 포함돼 있다.

그 사람들도 그 사람들이지만 나부터도 항상 경계하고 주의하는 이유다. 마음 속 깊이 겸손한 사람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신이 아닌 이상은 겉으로라도, 겸손한 척이라도 하고 살아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렇다.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하다보면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올린 앱이 구글의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거나,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유튜브 정책 위반으로 삭제되는 사례는 많다.

그럴 때, 한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대응이 다르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내 앱이나 영상에 뭐가 문제가 있어?"라고 문의를 넣는 반면, 한국인들은 "쟤는 나보다 더 심하게 하는데 왜 내것만 삭제해? 쟤 것도 삭제해." 하면서 문의를 넣는다고 한다.

장사나 사업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멀리있는 대중들이 아니라,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장사를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행정제재가 들어오거나 힘든일이 생긴다면 근처에 다른 사장이 꼬투리를 잡아서 투고를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

내 사업이 잘 되고 있는데 있지도 않은 이야기로 만들어 낸 이상한 악플과 악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업에 타격이 받기 시작하면 내가 돈 잘 버는 것을 시기질투하는 나와 비슷한 연령과 처지의 친구거나 지근거리의 지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가 뭐하나 건수라도 잡히면 그들은 대중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대중들은 좀비떼처럼 몰려든다.

우선은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압도적인 내공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늘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한다.

몇몇 블로그들만 둘러보아도 얼굴 모를 상대의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상처를 주는 글을 심심찮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다 업보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내 자식이 피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에 누구하나 만만한 사람은 없다. 적을 만들기 시작하면 삶이 고달파 진다. 사람들은 예민한 존재다. 그래서 조심 또 조심하여 살아야 한다. 그리고 적당히 주변과 나눌줄도 알아야 롱런한다. 보시 공덕이라는 것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먹으려하면 체하고, 나눠 먹으면 더 크게 성장한다.

애초에 남을 생각하고 의식하여 살 필요는 없지만 구태여 남에게 해를 끼쳐 남이 내 인생에 개입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된다.

2021년 3월 23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