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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8일 목요일

자녀의 미국 시민권 관련 잡담

10여년 전 지인과 자녀의 시민권 관련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어렴풋이 생각나는게 있어서 그때의 대화를 각색해서 더 늦기 전에 그때의 기록을 남겨둡니다.

출처 : pixabay.com

대화 (feat. 미국시민권)


+ : 저, = : 지인
대화 시기 : 2010년대 초반

질적, 구조적으로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중인 한국 사회


+ 형, 곧 따님 출산하시죠?
= 응.
+ 형수님 미국에서 공부하시니까 아이도 미국 시민권 따겠네요.
= 응, 그렇겠지. 근데 미국 시민권이 예전만큼 값어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 값어치가 있죠. 왜 없어요.
= 아들도 아니고, 아들이라면 군대라도 뺄텐데 (웃음)
+ 형. 저출산 기조가 계속 강해지고 있으니 지금 태어나는 여자 아이들도 군대에 가게될걸요?
= 설마, 여자애들을 징병할까?
+ 지금 추세면 2030~40년쯤엔 해야하지 않을까요? 만에하나 혹시라도 북한하고 전쟁이 나든, 아니면 통일 후 내전이 일어나든 절대적인 숫자의 보병은 필요한데, 남아들의 숫자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할거에요. 여자를 비전투요원으로 채워야 할지도 모르죠.
= 기계나 로봇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 일부 대체되긴 할텐데..
= 우리나라는 군문제는 민감하잖아.
+ 그렇긴하죠. 딸래미 정치 시킬거에요?
= 아니, 슈퍼개미시킬건데.
+ 푸하하. 그럼 뭐 형 하시고 싶은대로 하는거죠.
= 국가를 위한 마음을 갖고 살아야지.
+ 당연하죠. 저는 군복무도 마쳤고, 지금껏 국가에 연금이며 세금도 잘 내고 있는걸요. 그리고 당연히 내나라 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 의무는 이행했으니 자유는 제 권리죠?
= 그래. 할말은 없네. 그런데, 너도 아이는 미국 시민권 가질 기회가 있으면 갖게 하고 싶다고?
+ 네, 기회가 있다는 전제하에서요. 그리고 꼭 미국 시민권을 딴다고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죠. 편견이에요.
= 그건 그렇지.
+ 그리고, 우리나라는 얼마간 고령사회가 지나면 인구가 다시 줄어들거에요.
= 응. 그건 누구나 아는거잖아.
+ 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나라 밖에서 돈 벌어오는 게 더 중요해질거에요. 미국 시민권자라고해서 매국노라고 꺼지라고 배척하는 문화는 바뀌어야죠. 시민권을 갖고 있어도, 해외에서 살아도 한국을 사랑하는 한국 사람들인걸요.
= 그건 맞지.
+ 그리고 그 사람들이 해외에서 좋은 걸 많이 배우고, 또 그걸 한국에 전파하면 한국 본토에도 이익이죠.
= 응.
+ 해외에서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가지고 오면 그것도 한국 본토에 이익이죠.
= 그래 네 말에 일리는 있는데, 요즘 국적이 크게 상관이 있나. 한국 국적만 갖고도 잘 살 수 있어. 우리나라 여권으로 나갈 수 있는곳도 많고.
+ 네, 맞아요. 제 말은 억지로 원정출산을 하자는게 아니라, 지금 형수님처럼 기회가 된다면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죠.
= 그래그래.
+ 그리고 커레이저스 채널이라고 들어보셨죠?
= 아니? 그게 뭔데
+ 유사시 한반도에 있는 미국인들을 일본이나 괌으로 탈출시키는 작전인데요. 뭐 그런 혜택도 받을 수 있지 않나요? 우리나라는 이념 대립의 화약고라서 늘 전쟁의 리스크가 있잖아요.
= 그렇군. 근데 나라에 일이 생기면 도망가라고?
+ 고려, 조선때부터 지금까지 국가 유사시 국가가 개인들 챙기던가요? 우리 몸은 우리 스스로 챙겨야 됩니다.
= 난 싸울건데?
+ 형이랑 저는 싸우고 딸래미는 해외에서 후방 지원 시키면 되죠.
= 하하.
+ 우리도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을 벤치마크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 영토는 한반도 뿐 아니라 세계무대로 생각하고 살아야 하고, 한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침투해서 뿌리를 내려야합니다. 특히 미국 주류 사회에서 힘을 키울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이왕이면 아이들도 일찌감치 넓은 나라에서 교육도 시켜보고 더 큰 세상 물 먹여가며 경험을 쌓게해주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하구요.
= 그건, 옛날부터 사람들이 하던 소리네. 그리고 딸래미 낳는거 하나 가지고 생각이 너무 원대하게 뻗어나가는거 아니야? (웃음)
+ 네, 너무 당연한거니까요.
+ 아. 그리고 세금이요. 사람들이 지는 세금 부담이 계속 높아지는 추세에요. 형이나 제가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나중에 급여의 절반이나 절반 이상을 세금으로 떼이게 될거에요.
= 그건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야?
+ 지금 얼마 떼가는지 보세요. 그리고 큰 숫자는 추세가 잘 안 깨지고 움직이니까 계산한번 해보시면 답 나오죠. 저출산 고령화도 심해지고요. 기업들이 벌어오는 돈은 줄어드는데, 안에서 부양해야 하는 인구는 늘어나는 추세고..
= 그건, 나중에 집에가서 해볼게.
+ 네, 우리가 금수저나 다이아몬드 수저면 상관없어요. 그런데, 오히려 그렇지 않기 때문에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봐요.
= 응, 그래.
+ 그리고 영어요. 국가에서 영어 교육에 쓰는 시간과 돈이 천문학적이잖아요. 그래도 영어를 잘 못하는 신기한 나라죠. 근데 돈이든 사람이든 해외로 나가야 하는 압력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비교적 어릴때부터 많이들 해외로 나갈거에요. 그리고 걔네가 성인이 되었을 때 해외 무대가 우리집 앞마당인냥 누벼야 하구요. 내수가 쪼그라드니까 당연히 그렇게 될건데. 영어를 못하면 까막눈으로 살아야 하는거에요. 영어 잘하고 못하는게 지금도 어느 정도 빈부격차 척도는 되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거에요.
= 영어는 외국서 공부하는 와이프도 골치 아파해. 앞으로 참 여로모로 걱정이야. 우리 아이들 세대는. 그런데 너는 그렇게 생각이 많아서 머리 안 아프니? (웃음)
+ 네, 이런저런 생각하는 게 재밌어요. 어쨌든 형수님이 미국서 공부중이셔서 아이 보험하나 들어준다 생각하고 독수리 여권 만들어서 오시면 되겠네요.
= 니가 잔소리 안해도 알아서 할거야.

세세한 부분은 각색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화의 큰 기조는 저랬습니다. 저 생각은 지금도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다보면 가끔 깜짝깜짝 놀랄때가 있습니다. 제가 위에서 말씀드렸던 부분들 대부분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현실화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서글프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다시 펀더멘털이 빠르게 회복돼서 일어서야 할텐데 말입니다. 누군가는 지난 대선이 우리나라의 골든타임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고 아주 한참후에 기저효과를 통한 반등을 노려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저녁에, 제가 좋아하는 슈퍼개미 형님 한분이 그랬습니다. "여론 조사 결과로 보면 아마 다음 정권은 문재인 정권이 무난히 들어설거야.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 군사, 문화 지표가 문재인 정권때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탈거라고 생각해. 이전에 해둔 것들이 있어서 그나마 그때까지는 엔진이 돌아가는거지. 그리고 내리막길을 타는건 누구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야." 참고로 이 형님은 정치 이야기로 싸우길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현상을 냉정하게 보려고 노력하시는 분입니다.

우연히 맘카페 글을 보는데..


글을 게시하기전에 추가적으로 쓰는 부분입니다. 글을 다 쓰고나서 미국 시민권과 관련해서 뭘 좀 찾아보려고 검색엔진에서 미국 시민권 관련 글들을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미국에서 아이 낳는 것과 관련해 몇가지 질문들이 여러 카페마다 올라와 있었습니다.

우선, 강남쪽 엄마들이 모인 카페는 분위기가 호의적이었습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그리고 또 어떤 꿀팁들이 있는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분위기였습니다.

반면에, 약간 낙후된 지역이나 전국구 맘카페에서는 분위가가 정반대였습니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범죄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것은 매국이다.', '한국에서 꺼져라. 외국으로 꺼지고 우리나라에 치료 받으려고 들어오지마라'는 식의 저주섞인 댓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집값 몇푼으로 편가르기 하는 걸 싫어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무언가를 바라보는 태도와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는곳에 따라 해외 출산에 대한 인식이 저렇게나 다른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위의 대화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 재외국민의 숫자는 이제 곧 1,000만을 넘보고 있습니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단지 한반도에 살지 않는 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을 해서는 안될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력이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그들을 우리나라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원동력이 되도록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내수만으로는 더욱 답이 없기 때문에 해외에 있는 동포들의 자원과 네트워크의 중요도가 더 높아질것입니다.

2019년 11월 28일
송종식 드림


2017년 9월 5일 화요일

포브스 부호 명단에서 보는 한국, 베트남의 미묘한 경제 변화

베트남


9,000만의 인구를 갖고 있으면서도 작고 빈곤한 경제 때문에 정상적인 투자나 사업으로 억만장자를 내지 못하던 베트남. 도이머이 이후, 경제는 개방됐고 베트남 경제는 고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사업 성공으로 부를 획득하는 부자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포브스 억만장자 명단에 베트남 사업가 2명이 올라왔습니다.

베트남의 억만장자 2인 <출처 : 포브스>

팜 녓 브엉(빈그룹, 부동산과 건설)


세계 랭킹 867위, 베트남 랭킹 1위의 팜 녓 브엉 회장(Pham Nhat Vuong)은 부동산 개발과 투자 사업을 영위하는 빈 그룹(Vingroup)을 통해서 개인의 부를 창출하였습니다. 빈 그룹은 베트남에서 가장 큰 회사입니다. 주택 건설과 분양에서부터 호텔과 쇼핑몰, 전국에 1,000개가 넘는 슈퍼마켓인 빈마트와 빈마트+ 그리고 물류사업과 농업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사업 분야를 영위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주지하듯 베트남의 경제는 고도 성장중입니다. 일자리는 풍부하고 인프라는 부족합니다. 집은 계속 지어야 하고, 자산 가치도 당분간은 꾸준히 오를것입니다. 그리고 도로, 공항, 항만 등 교통 인프라역시 부족해서 건설 섹터는 베트남 경제의 성장과 함께 일정 기간은 꾸준히 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베트남 사람들의 소비 성향 역시 날로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물류와 유통 사업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하리라 생각합니다. 팜 녓 브엉 회장이 실수를 하거나 더욱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으면 빈 그룹은 당분간 승승장구할 확률이 높고, 팜 녓 브엉 회장의 재산 순위도 계속 베트남 최상위권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해 49세의 팜 녓 브엉 회장은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부를 창출한 주요 섹터는 부동산과 건설이며 자수성가한 억만장자입니다. 근거지는 베트남 북부의 하노이입니다.

응우옌 티 프엉 타오(비엣젯항공, 항공운수)


세계 랭킹 1,678위, 베트남 랭킹 2위인 응우옌 티 프엉 타오 회장(Nguyen Thi Phuong Thao)은 비엣젯항공(VietJet)의 상장으로 1조 4천 억대의 재산을 보유한 억만장자 명단에 올라왔습니다. 억만장자 두 사람 모두 40대의 나이로, 젊은 베트남 인구와 경제에 걸맞게 젊은 창업자 회장들입니다.

비엣젯항공은 국책 항공사였던 베트남항공(현재는 민영화)을 단숨에 위협한 것은 물론 상장 후, 첫 거래일에 우리나라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불을 넘으면 사람들이 항공여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0~3,000불 사이입니다. 그러나 하노이와 호치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이미 5,000불을 넘어섰습니다.

따라서, 많은 항공 수요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특히 LCC 항공사인 비엣젯항공의 인기는 치솟았습니다. 그러면서 아시아 주요 도시들에도 운항하기 시작하면서 덩치는 급격히 커지고 있습니다. 베트남의 철도와 도로 시스템은 아직 너무나 부족한 상태이며 남북으로 길쭉한 국토의 특성상 국내선 이용자도 점유율 4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국내선 점유율은 조만간 50%를 넘으며 베트남항공을 추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하루 국내선 운항횟수는 300회입니다.

크게 성공한 비엣젯항공의 비키니 승무원 마케팅 <출처 : Vietjet Aviation>

비엣젯항공은 고속성장 중이며 현재 항공기 380대 이상을 추가로 주문해 둔 상태입니다.

응우옌 티 프엉 타오 회장은 현재 소비코홀딩스의 주식 90%를 보유한 최대주주입니다. 소비코홀딩스는 호치민에 있는 드래곤시티 지분 90%를 갖고 있으므로 드래곤시티도 사실상 응우옌 회장의 소유입니다. 응우옌 회장은 3개의 리조트와 HD은행에도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응우옌 회장은 동남아 최초로 여성의 몸으로 자수성가 한 억만장자 입니다. 베트남에는 응우옌 회장 이외에도 맨손으로 자신의 회사와 부를 일으킨 큰 여성부자들이 많습니다. 여성들의 생활력과 독립적인 경향이 강한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가 나오지 않는 척박한 환경을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대체로 동남아가 모계사회인 특성을 감안해서라도요.

응우옌 회장은 현재 47세이며 슬하에 자녀 2명을 두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62위에 랭크돼 있고, 거주지는 베트남 남부 호치민시 입니다.

한국


2017년 현재 포브스지에 등재된 한국인 억만장자는 36명 입니다. 한국인들 TOP 50 명단만 업데이트 되었는데, 거길 보면 약간의 재산 변동과 순위 변동은 있습니다만, 큰 이변은 없는 듯 합니다.


한국의 50대 부자 <자료출처 : 포브스>

최상위 10명만 놓고 보면 다소 변화가 있습니다.

최상위 자수성가 비중


얼마전까지만해도 우리나라 최고 부자 10명 중 자수성가 부자는 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2015에 다시 조사했을 땐,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가 10위 안으로 들어오면서 자수성가 부호가 한명 등장하였습니다.

이번 자료를 보면 10위 안에 들어간 자수성가 부자는 총 3명으로 자수성가 부자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임


우리나라의 자수성가 부자 1위와 2위가 모두 "게임"을 통해서 큰 부를 획득한 사람들입니다.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한 권혁빈 대표님과 NXC의 김정주 의장님이 순위의 변동은 있으나 확실하게 자수성가 부자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통의 강호, 재벌 후손들 사이를 파고 들어서 우리나라 전체 부호 2~3위권 수준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부호 순위 23위에 위치한 김택진 대표님 역시 엔씨소프트 창업자로서 게임 회사를 창업하여 자수성가 한 부호입니다. 24위의 방준혁 의장님은 넷마블로 부호 순위에 올랐습니다. 42위의 이준호 NHN Ent 회장님도 한게임의 수장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수성가 부호들은 게임으로 부를 이룬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는 게임 강국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 체질은 이미 변하는 중?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우리나라의 중후장대 산업들이 죽는동안 게임 산업은 크게 치고 올라왔습니다. 경제의 체질이 하드파워에서 소프트파워로, 육체노동 산업에서 정신노동 산업으로 이미 이동중인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앞서 살펴봤던대로 게임으로 자수성가하여 부를 이룬 분들이 대거 억만장자 상위 랭크에 포진해 있습니다. 그리고, 14위의 김범수 카카오 의장님, 34위의 NHN 이해진 의장님, 36위의 옐로모바일 이상혁 대표님, 41위의 김범석 대표님은 웹/모바일 서비스로 억만장자 상위에 랭크되었습니다.

금융투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8위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님과, 바이오시밀러 의약품으로 12위에 랭크된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님도 자수성가 억만장자로 눈에 띕니다.

확실히, 자수성가 부자들은 전통 부자들이 미처 손쓰지 못하는 틈을 노려 게임이나 포털사이트 등의 지적 저작물을 통한 사업으로 순식간에 기존 부자들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중후장대 산업에서 경박단소 산업으로, 전통 제조업에서 지식기반 산업으로 돈이 흐르는 것은, 인구감소로 노동자의 숫자가 줄어드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SW, 모바일, 인터넷, AI, 바이오테크, 금융 등 한 사람이 수천만 달러를 벌 수 있는 섹터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게 국가의 미래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2017년 9월 5일
송종식 드림


2017년 5월 13일 토요일

19대 대선 결과, 문재인의 불안과 안철수의 희망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는 마음으로 인물을 보고 안철수를 찍었던 한 사람으로서 19대 대선 결과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 남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 원칙대로 뽑힌 대통령이니 문재인 대통령께서 태평한 치세를 만들어 주시길 절박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몇몇 종목들이 정치권의 말 몇마디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치에 아예 신경을 안 쓸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등한시 하지는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대놓고 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었습니다. 해봐야 개인적으로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왕왕 저의 투자와 조금 더 내밀한 경제 상황 예측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정치 이야기도 가볍게 해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가누굴 지지하고 말고도 자유이고, 정치적 견해는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다소 다르더라도 그것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사람 또한 진짜 민주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에 방문해주시는 여러분들의 넓은 마음을 믿습니다. 참고로 저는 좌파, 우파와 같은 진영 논리는 그다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저 같은 사람을 '부동층' 또는 '중도층'이라고 부르더군요. 친구들은 박쥐라고 부르고요. 보수 친구들은 저를 빨갱이, 진보 친구들은 저를 수꼴이라고 부르니 양쪽에서 쥐어터지는 입장입니다.

상황에 따라, 정책에 따라, 인물에 따라. 진영 논리 없이 누구나 더 좋아 보이는 사람을 자유롭게 찍어 왔습니다. 최근까지는 투표를 할 때 늘 차악을 선택해왔는데 처음으로 최선의 후보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중도'라고 하는 안식처가 생겨서 편안한 마음도 있었고요.

투표율 <출처 : 네이버, 선관위>

총 유권자 4,248만명 중에서 3,281만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였습니다. 투표율은 77.2%로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습니다.

총 득표율 <출처 : 네이버, 선관위>

모든 후보들이 사퇴나 단일화 없이 완주를 하였습니다. 단일화나 사퇴가 있었다면 문재인 후보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2, 3위 표를 합하면 1,400만표가 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단일화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 완주해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 후보와 500만표 이상의 차이를 내면서 당선되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뽑은 이유 <출처:JTBC>

문재인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은 사람들이 34.2%, 당을 보고 전략투표를 한 사람들이 66.8%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물보다는 외부적인 요인들을 보고 한표를 찍어 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홍준표 후보를 뽑은 이유 <출처:JTBC>

이건 좀 의외인데요. 홍준표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은 유권자 비율이 47.6%입니다. 문재인 후보의 34.2%보다 높은데요. TV토론에서 인간적인 매력도를 많이 높였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스트롱맨 컨셉을 충실히 지켜내서 보수층의 호감을 얻은데 성공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준표 후보를 찍은 분들 중 10.5%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찍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안철수 후보를 뽑은 이유 <출처:JTBC>

안철수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74.9%가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었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안철수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의 사고방식으로 선거가 진행되어야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도 조금 더 선진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속 정당 의석 수 대로 득표율이 나온다면 선거를 치르는 의미를 찾기도 힘들 뿐더러, 계속 당파 정치, 계파 정치, 패거리 정치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 정치공학적으로 움직이고, 싸움만 할게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위해 진짜로 일을 하게 만들어야겠죠.

이 선거의 결과는 문재인의 불안, 부활의 불씨를 살린 홍준표, 희망을 본 안철수, 정도로 요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후반으로 가면서 선거 프레임은 진보-보수간의 싸움으로 진행됐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 프레임을 깨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이 프레임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홍준표가 급부상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보수층은 홍준표에게 표가 갈려 나갔습니다. 특히, '적폐청산' 구호가 먹힌 반 자유한국당 진영 지지자들은 문재인으로 결집하였습니다. 특히, 호남의 표가 홍준표를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결집한 것이 국민의당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중도층을 중심으로 온건진보와 온건보수를 아우릅니다. 지지층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뜯겨져 나가는 표가 많았습니다. 선거 후반으로 가면서 다른 후보들에게 계속 표를 빼앗겼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모두 기득권 적폐 세력이며, 이들 누가 되더라도 과거로 돌아간다.'고 설파하던 안철수 후보의 외침은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700만표나 받은 안철수 후보는 사실 대단합니다. 오롯이 자신의 네임밸류로 얻은 표 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상 당이나 캠프가 안철수 후보에게 도움이 거의 되지 못했으며, 폐를 끼친 부분도 있다고 보는 것이 안팎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한 부분은 있겠지만요..

어쨌든 안철수 후보가 득표한 이 700만표는 앞으로 안철수 후보의 정치 생명에 있어서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작용할 표 입니다. 진영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철수 후보를 지지해줬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민주당에서 안철수 후보를 정계에서 은퇴시키고 국민의당을 흡수하기 위한 정치 공작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700만표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얻은 것을 최대의 성과로 삼아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에는 투표한 유권자 중 41%의 지지를 받았습니다만 과반 득표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펼쳐졌던 환경에 비해서도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촛불정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오면서 얻은 버프, 그리고 홍준표 후보가 급부상하면서 안철수 후보의 표가 더욱 쪼개지는 버프 등 여러가지 버프가 있었는데도 41%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위기의식이 없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아마 같은 자리에 안철수 후보가 출마를 했다면 그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을 기록 했을거라는 건 누구나 알 것 입니다.

어설펐던 국민의당과 다르게 250만이 넘는 거대한 당원 수, 전국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엄청난 조직들, 유능한 젊은 인재들과 자원봉사자들, 막대한 선거자금,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온갖 사회 시대상과, 선거 구도의 버프. 이런 각종 빵빵한 지원을 보급받고도 문재인 후보는 결과적으로 1,342만표를 획득했습니다. 전체 유권자의 31%만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건데 지지 기반이 취약해서 국정 운영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민주당의 의석수도 혼자서 뭔가 하기엔 역부족인 상태이구요.

앞서 인물과 정책을 보고 지지했다는 응답률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문재인 후보는 459만표를 이 기준으로 획득, 안철수 후보는 524만표를 획득했습니다. 인물 호감도는 문재인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가 높은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안철수 죽이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집중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좌파', '종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면서 보수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마지막에 진영 프레임으로 선거 구도가 급속히 전환되면서 보수들의 표가 홍준표 후보에게 결집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반에는 선거 비용도 보전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던 자유한국당이 부활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분들 입장에서는 문재인 후보 측 캠프에서 홍준표 후보가 선전하도록 방조하거나 도운 측면이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이를 '적대적 공생관계의 부활'이라 하며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물의 진정성과 의정활동 실적, 살아 온 길과, 정책의 혁신성과 꼼꼼함,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수성가한 타입인데다 생각 자체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유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해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길 바랬지만 좌절되었네요. 제 생각에는 '적폐청산'이라는 것도 결국은 정치 세력간 보복전에 불과하고, 지금과 같은 양당제는 서로간 공생하면서 밥그릇을 나눠먹는 것이기 때문에 안철수 대통령이 아닌 이상 세상은 크게 안 변할거라 보았습니다.

어쨌든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으로 선출된 새 대통령을 응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정운영을 잘 하셔서 '진보-보수 싸움만 하다가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우려를 시원하게 불식시키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우리나라를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7년 5월 13일
송종식 드림

2015년 9월 13일 일요일

나라별 10대 부자 (상속 vs. 자수성가, 그리고 나라의 역동성..)

포브스의 부호 랭킹은 재산을 주로 상장된 지분 가치로 계산합니다. 그래서 만수르, 로스차일드 가문의 일원, 부동산 부자들은 필터링이 되는 듯 합니다. 간혹 비상장 기업이라도 상장 기업에 준하는 가치가 있거나, 부동산도 랜드마크급 가치가 있어서 유명하거나 비싼 것들은 포함시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포브스의 부호 랭킹을 보면 한국과 긴밀한 주요 국가의 억만장자들은 자수성가 한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10대 부자 <출처:포브스>

미국의 상위권 부자들은 금융과 IT S/W카테고리쪽 비중이 높습니다. 1위~10위권을 보면 업종은 꽤 골고루 분산돼 있습니다. 우선은 샘월튼의 상속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자수성가로 재산을 형성한 사람들입니다. 월튼 가족들도 주가 흐름에 따라서 10위권 밖으로 밀렸다가 올라왔다가 합니다.

우리보다 부자나라이고 자본주의도 더욱 오래 지속한 나라인데 상속자가 수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중국의 10대 부자 <출처:포브스>

동북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늦게 개방된 나라라 그런지 10명 전원이 자수성가형 부자였습니다. 경제 개방 이후 자본가와 사업가들이 등장하고 폭발적으로 발생하는 부를 적극적으로 축적한 사람들이 현재 중국 재벌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문화적 여건을 볼 때, 이 창업 1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면 우리나라와 같이 2세들이 최상위권을 물려받을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입니다.

어쨌든 중국은 동북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임은 확실하고 이 랭킹이 그것을 반증하는 하나의 자료가 되기는 할 것 같습니다. IT쪽 부자가 절반 가까이 되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일본의 10대 부자 <출처:포브스>

일본이라고 하면 강하지만 정체된 느낌,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의외로 일본 최상위권 부자들은 대부분 자수성가로 부를 일궈낸 사람들입니다. 의외였고 놀랐습니다.

한국의 10대 부자 <출처:포브스>

우리나라는 최상위권 부자 대부분이 선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들입니다. 대부분이 재벌 2, 3세들이구요. 현재 일부 재벌들은 재벌 4세로 벌써 상속, 증여가 이뤄지는 가문들도 많습니다.

나라마다 사회, 경제, 정치, 법적 환경이 다르고 사람들의 정서도 다를 겁니다. 여러 가지 지표들을 들어서 분석도 필요할 테구요. 이것만 놓고, 우리나라가 '계층 이동이 정체된 사회다.'라고 단정 짓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 참고는 가능하리라 보입니다.

또 생각해야 할 점은 이건희 회장님 같은 경우 선대에서 물려받은 회사를 몇천 배로 성장시켰으니 일반적인 어감의 상속부자와는 경계를 둬야 하는 점도 맞습니다.

다만, 다시 생각해 볼 점은 거의 대부분 월급쟁이, 투자가, 사업가는 초반에 생계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생계 레벨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생계의 위협을 벗어나야 비로소 안정적인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상속부자들은 어찌 되었든 출발부터 생계 걱정은 덜고 시작하는 사람들이니 사회를 고착화하는데 일조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본인 능력에 따른 차등은 분명히 생겨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기회의 평등도 있어야겠지요. 누구는 출발부터 현찰 100억을 쥐고 사회에 뛰어들고, 누구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가난한 노부모까지 모시고 시작해야 한다면 이미 그들의 인생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시작부터 결판이 난 거라 봐도 되겠죠.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노력한 만큼의 기회의 평등은 최대한 누려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야 어떤 인재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인류의 미래에 기여도 할 테구요. 우리가 사랑하는 자본주의도 더욱 건강하게 오래 존속하겠죠. 

요즘 청년들 사이에서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와 같은 자학적 단어들이 유행합니다. 제 동생이 그런 단어를 쓰면서 남 탓을 하면 쥐어박아서라도 그러지 말라고, '잘 살고 못 사는 건 니 하기에 달렸다.'라고 혼낼 것 같습니다. 어떤 한 개인의 삶은 얼마든지 통계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뷰파인더를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넓혀서 본다면 청년들의 저런 자조는 분명 괜히 나오는 소리는 아닐 겁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실제로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 힘든 시대도 맞구요. 여러 가지 통계를 접해보면 그들 말대로 노력한다고 잘 사는 시대도 아닌 건 분명합니다.

GNI 리니어(좌), GNI 로그(우) <출처:Google public data explorer, 세계은행>
한국 재벌은 해외 차관, 공적자금(국민세금) 등을 레버리지 또는 백기사로 이용해 고속 성장을 해왔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기업들의 자본이 해외로 이전되는 요즘, 국민들의 피땀으로 일궈낸 성장의 과실은 과연 누가 다 따먹고 또 어디로 다 갔을까요? <클릭하면 커집니다>

그 옛날 임금이 실정을 하면 어린이들 사이에서 임금을 욕하는 뉘앙스를 품은 노래들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눈치 빠른 임금들은 그런 아이들의 노래에 귀 기울였구요. 청년들 사이에서 저런 자조적인 단어가 유행한다면 눈치 빠른 리더는 빨리 그 부분을 캐치해서 대응책을 만들어야겠죠. 

국가의 밝은 미래와 건전하고 오래가는 자본주의(그리고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서도 부가 한곳에 집중돼 고인 물로 썩어가는 것은 좋은 징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 9월 13일
송종식 드림

2015년 5월 3일 일요일

호암자전 - 삼성 창업자 호암 이병철 자서전

어떤 세력이 규모를 키우면 반드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세력은 사회에 밝은 면을 남길 뿐 아니라 어두운 면을 남길 수도 있다. 삼성이 남긴 밝은 면 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서전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주관에 따라 쓰여지고 실제와 다른 왜곡된 내용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감안해 가며 본 자서전을 읽었다.

<출처:네이버 책>
어쨌거나 이 책은 매우 가치 있다. 회사를 만들고, 이를 한 국가의 최고 규모로 키운 선배 기업가이자 투자가가 직접 쓴 글을(물론 이병철 전 회장님의 구술을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장님이 손으로 받아썼지만) 단돈 25,000원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시대가 준 큰 혜택이다. 만나기도 힘든 재벌 총수인 데다가 이미 돌아가셔서 만나려도 만날 수 없는 창업자의 생각을 안방에 앉아서 흡수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25,000원에 이런 귀한 경험을 거저 먹는다는 생각도 들고... 큰 인물들의 자서전을 읽으면 숨겨놨던 야망도 싹터서 더 없이 좋다.

호암자전은 원래 비매품이다.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소량만 인쇄를 했고 현재 남아 있는 책은 몇 권 없다고 한다. 비매품 원본은 중고품 시장에서 35만 원까지 거래가 되고 있다.

재벌 창업자들 앞에서 실패를 논하지 말라(?)


많은 창업자들이 롤모델로 꼽는 정주영 회장님. 아마 실패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일것이다. 잘 나가는 쌀가게 복흥상회는 키워 놨더니 중일전쟁으로 쌀 배급제가 시행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인수한 자동차 수리 공장은 인수 한지 한달도 안돼 불에 타서 전소해버리고, 재건해 영업이 좀 된다 싶으니 일본이 기업정리령을 내걸고 회사를 빼앗어버렸다. 몇 번씩 빈털터리가 되면서도 새로이 사업을 일구는 저력은 후배 기업가들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소작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정주영 회장님과 달리 대대로 부유한 집안이었던 이병철 회장님은 별로 실패를 안 했을 것 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책을 보니 이병철 회장님 역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특히 회사를 만들어만 놓으면 국가에 몰수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기업 경영의 의지가 꺾일 만도 하다.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키운다. 조용하지만 저돌적인 인물이다.

이병철 회장님의 실패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중일전쟁으로 식산은행의 대출이 중단, 토지사업이 청산됨
  • 남북전쟁 중 삼성물산공사를 공산당에게 몰수당하고 빈털터리로 대구에 피난
  • 삼성이 소유했던 한일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이 국가에 몰수돼 국유화 됨
  • 서구에 대규모 차관 약속까지 받아놓은 세계최대규모의 비료공장 건설이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감
  • 전쟁 당시 세법인 순이익의 120% 세율을 감당하지 못해 세금 납부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탈세 및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수배자가 됨
  • 10년에 걸쳐 숱한 시련과 장애물을 넘어가며 건립한 세계최대의 한국비료 지분을 전량 국가에 헌납(?) 당함
  • 국가에 헌납할 한국비료 지분 51%를 채우기 위해 동양생명의 지분, 동양화재보험 지분, 현 한진빌딩 대지 등을 매각
  • 인장을 갖고 있던 한 직원이 삼성 전체 재산의 1/3을 횡령
  • 동양방송(TBS)이 강제로 국유화 돼, KBS에 합병됨

돈 몇 푼을 잃었다고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주영 회장님이나 이병철 회장님의 시련을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느껴진다.

사업 패턴


전 후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당시 제일제당을 설립하면서 3백산업에 투신한다. 제일제당은 공장을 가동하자마자 수요가 폭발해서 삼성이 자본을 급격하게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이병철 회장님의 사업 전략은 대부분이 이런 패턴이다. 1) 큰 수요가 확실한 시장을 찾는다. 2) 해외차관이나 정부 지원 등 외부 자금을 유치한다. 3) 공장 건설에 착수한다. 4) 자본을 축적한다. 5) 큰 수요가 확실한 시장을 다시 찾아본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사업 패턴이다. 다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병철 회장님의 몇 가지 독특한 성향이 보인다. 1)번 과정에서 엄청난 리서치를 동반한다. 각계 전문가는 모조리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고, 활자는 모두 읽고, 필요하다면 해외 탐방도 적극적으로 한다. 공장 건설을 결의하기까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만큼 리서치는 꾸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철저히 하는 성격인 것 같다.

신사업에 투신하기로 결의했다면 모든 것을 건다. 차관도 최대한 받고 규모는 최대를 지향한다. 주식투자자로 치면 얻을 수 있는 모든 레버리지를 얻어 한 종목에 집중하는 투자자랄까.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수들이 모든 사업 과정에 본인이 개입해 업무를 진행하는 반면에 최고수 기업인들은 여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믿고 맡기고 시스템이 일을 처리하도록 만든다. 이병철 회장님의 경우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쓰지를 않고, 쓰기로 결정한 사람은 믿고 큰 일을 모두 맡기는 위임 경영을 잘 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은 빠른 속도로, 그리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분명하지만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므로. 위임 경영의 포인트는 시대 흐름과 사업을 보는 눈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눈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을 등용하는 것, 그리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기업 경영 최고의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분명 이병철 회장님의 용인술이 뛰어났음을 증명한다.

사업의 지분을 대량으로 취득하고 모든 실무는 시스템과 구성원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실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매 분기나 매해 사업의 결산과 중요사항을 보고 받는다. 이런 사업 방식은 워런버핏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차이라면 버핏은 자신이 신규로 시작한 사업은 투자업뿐이다. 버핏은 기존 사업을 인수하는 형태로 몸집을 불렸다. 이병철 회장님은 자신이 신규로 사업을 시작한 케이스가 많기는 하다. 어쨌든 이병철 회장님의 사업 패턴을 보면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투자가에 가까운 면모도 보인다.

기억에 남는 구절


  •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 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그리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 벗이란 묘한 것인가 보다. 마산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공동출자자 외에는 벗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친구가 늘어갔다. 그러나 부동산에서 일단 큰 실패를 겪자 그렇게 많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한 사람 떠나고 두 사람 떠나고 하더니 대구에서 양조업에 착수하면서부터 또다시 한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 그러나 친구들과 격의 없는 사이가 된 다음에도 나에게 분명히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누구나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삼가게 된다. 소원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고, 편하게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충언을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는 참다운 벗이 못 된다. 충언을 서슴지 않는 벗이 참된 벗이다. 참된 벗을 만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 어떤 사업이건 실패의 위험은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의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안고 착수하는 것이다. 100%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 불안을 품은 채 착수하면 주저하여 전력투구를 못 하게 된다.
  • 빈곤과 청빈을 판별하지 못하고, 마치 남루한 옷을 걸치는 것이 청렴의 증좌인 양 여기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남이 진취적으로 무슨 일에 도전하는 일에는 왈가왈부의 비평을 많이 하면서도, 스스로 도전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편 기회만 있으면 남의 덜미를 잡고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획책하기도 한다.
  • 조선 중엽부터 싹튼 그칠 줄 모르는 사색당쟁에만 골몰하였던 관계로, 좌정관외격인 우를 범했고, 유약퇴영의 정신과 부정부패의 씨를 배태케하여, 국민의 이익을 등지는 무정부상태의 혼비를 거듭했다. 마침내 후반 50년에는, 선진 강국의 침략을 막지 못하여 일본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일본은 우리를 그들 본국 경제를 위한 식민지 경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현대국가로서의 경제발전상 가장 중요했던 시기 36년간을 후진국의 경제 테두리 속에 얽매어 두고 말았다.
  • 고전적 코스를 따를 시간이 없다. 1770년대의 영국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약 200년 전의 코스를 하나하나 밟아 내려올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너무나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무슨 비약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우리의 빈곤이나 산업 구조의 낙후성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과감하게 그 순서를 바꾸어 대기업에서부터 출발하여,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을 건너 뛰고 공업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을 구제하는 길은 오히려 과감한 외자도입에 의한 공업화를 통해서만 가능함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아시아 반공 보루국으로서 수원 태세를 견실히 확립하고 조야가 합심하면 차관 기금의 10%에 해당하는 1억 달러의 차관을 매해 확보 가능하다. 운영 실적이 좋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10년간 10억 달러의 차관 획득도 꿈은 아니다. 한일 회담이 원만히 타결되면 일본에서 10년간 6억 달러 도입도 큰 문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의 움직임을 보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10년 동안 5억 달러의 차관을 확보하는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를 합치면 10년간 대략 21억~23억 달러의 외자를 도입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 흐름으로 보아 전기, 도로, 수도, 와사 등 민생에 직결되는 사회 공공사업의 개발 자금 차관은 비교적 용이하므로 덴마크, 네덜란드, 포르투칼 등 각국에서 1,700만 달러씩 도합 약 1억 3천만 달러를 차관으로 도입하는 것도 좋으리라 믿는다.
  • 이상에서 말한 외자도입이 원활하게 달성되면서 3년만 지나면, 이미 건설 완료한 공장에서는 수익이 나오게 된다. 그것을 매년 2억 달러 내외로 보고 이 자금을 다시 민간사업에 재투자 할 것 같으면 10년 동안 15억~20억 달러에 해당하는 공장건설 자금을 확보하는 결과가 된다.
  • 이 구상이 제대로 진척되면 36억~43억 달러의 투자가 가능하다. 이를 약 40억 달러로 추정하면 4백만 달러 규모의 공장 1천 개를 건설할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 총액의 70%에 해당하는 연간 생산증가는 곧 같은 액의 GNP증가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1인당 국민 소득은 현재 50달러에서 100달러로 무난하게 두배가 증가할것이다.
  • 또한 이들이 한 공장에 500명씩 고용한다고 치더라도 고용 증가는 50만명에 달할 것이며, 부양가족을 5인 평균으로 친다면 250만 명이며, 그 밖의 하청 중소공장과 유통단계에서의 고용을 합치면, 무려 500만 명의 고용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즉, 농가 인구를 공장에 흡수하여 그들의 생활이 보장받을 수 있게 될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장 하나에 부과되는 세금을 200만 원으로 추정하면 세금 총액이 20억원이 되는 바, 이렇게 되면 정부의 세수입은 배증한다. 공무원의 급료도 배액 이상 지불할 수 있게 되어서 점차로 부정부패도 일소될 수 있고, 사회도 명랑하고 건전하게 될 것이다. 1,500만 농민의 1/3에 해당하는 500만명을 공업에 흡수함으로써, 현재 420평에 불과한 1인당 경지면적을 630평으로 확대시켜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농산물 생산비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비료나 농기구 등을 국내 공장에서 염가로 생산 공급하는 공업화를 촉진함으로써, 농민들이 간접적으로 공업화에 의한 파급 혜택을 받도록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추어야 한다. 이것부터 우선 인식하고 나서 사업을 운영할 때는 첫째, 국내외의 정세 변동을 정확히 통찰해야하며 둘째,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본인의 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히 판단해야 하고 셋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2, 제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하여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고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청산하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 모사는 재인이고 성사는 재천이라고 한다. 희망이나 꿈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이며, 언제나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성취하면서 살아가려는 인간의 통성이기도 하다.


 목차

  • 서 序
  • 제 1 편 청소년 시절 
    • 제 1 장 한일합방 해에 출생 
    • 제 2 장 서당에서 학교로 
    • 제 3 장 결혼, 그리고 도쿄 유학 
    • 제 4 장 세계 공황하의 대학시절 
    • 제 5 장 졸업증서 없이 끝난 학업 
  • 제 2 편 사업에 투신 
    • 제 1 장 사업 투신의 결의 
    • 제 2 장 정미·운수업으로 출발 
    • 제 3 장 2백만 평의 대지주로 
    • 제 4 장 삼성의 모체 삼성상회 설립 
    • 제 5 장 고향에서 해방 맞아 
    • 제 6 장 사업보국의 신념을 굳혀 
    • 제 7 장 이승만 박사의 추억 
    • 제 8 장 삼성물산공사의 설립 
    • 제 9 장 해방 후의 첫 일본방문 
    • 제 10 장 6·25 동란 발발 
  • 제 3 편 수입 대체산업 
    • 제 1 장 빈손으로 대구에 피란 
    • 제 2 장 제조업을 결의 
    • 제 3 장 제일제당 설립 
    • 제 4 장 국내기술로 공장 완성 
    • 제 5 장 제일모직 설립 
    • 제 6 장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 제 7 장 유니언 잭 고지에 태극기를 
    • 제 8 장 산업자본의 형성 
  • 제 4 편 사회의 격동 
    • 제 1 장 시은의 대주주로 
    • 제 2 장 한국비료의 건설 추진 
    • 제 3 장 차관도입 교섭에 성공 
    • 제 4 장 120%의 세제 
    • 제 5 장 5·16 혁명 최고회의에 서한 
    • 제 6 장 박정희 부의장과의 첫 대면 
  • 제 5 편 우리가 잘 사는 길 
    • 제 1 장 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 제 2 장 울산공업단지의 조성 
    • 제 3 장 통화개혁과 삼분파동 
    • 제 4 장 [우리가 잘 사는 길] 기고 
    • 제 5 장 비료공장건설을 재추진 
    • 제 6 장 유솜과 일본업계의 반대 
    • 제 7 장 미쓰이물산과 차관교섭 
    • 제 8 장 한일회담의 이면 지원 
    • 제 9 장 세계최대의 단일 비료공장 
    • 제 10 장 정치기류에 휘말린 ‘한비사건’ 
  • 제 6 편 문화사업 
    • 제 1 장 문화재단 설립 
    • 제 2 장 교육과 도의문화의 진흥을 
    • 제 3 장 호암미술관 설립 
    • 제 4 장 매스컴의 경영 
    • 제 5 장 동양방송의 영상은 사라지고 
    • 제 6 장 용인자연농원에 건 꿈 
    • 제 7 장 위암 수술을 받고 
  • 제 7 편 전자중화학공업 
    • 제 1 장 전자, 그리고 중화학공업 시대로 
    • 제 2 장 조선 분야에 진출 
    • 제 3 장 플랜트 생산체제 갖추어 
    • 제 4 장 유화산업과 방위산업 
    • 제 5 장 생명보험과 백화점의 경영 
    • 제 6 장 한국의 얼굴 호텔신라 
  • 제 8 편 삼성의 장래 
    • 제 1 장 새로운 경영기법을 찾아서 
    • 제 2 장 반도체 개발을 결의 
    • 제 3 장 삼성반도체에 내일을 건다 
    • 제 4 장 기업은 영원한가 
    • 제 5 장 창업과 수성 
    • 제 6 장 보스턴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 제 9 편 취미 편력 
    • 수집으로 개성을 안다 
    • 생활 속의 골프 
    • 국악과 서예로 정심 길러 
    • 건축미에 매료되어 
    • 《논어》, 인간형성의 근원 
  • 후기 
  • 호암연보
<목차 출처 : 네이버 책>


저자에 대해


저자 이병철 전 회장님은 1910년 2월 12월에 경남 의령에서 출생했다. 다소 방탕하고 무의미한 10대와 20대를 보냈다고 본인 스스로 회고했다. 1936년에 첫 사업을 시작했고, 1938년 3월에 <삼성상회>라는 상호를 걸고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기업을 창업했다. 1953년에 제일제당 설립, 1954년에 제일모직을 설립했고 이후에 한국비료 등 굵직한 사업을 진행했다. 타계하기 전에는 천문학적인 자본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하이 리스크 산업인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국 경제가 IT기반 국가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삼성그룹을 창업한 1세대로서 삼성그룹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슬하에 4남 6녀를 두었고, 삼남 건희에게 사업을 승계했다. 1987년 11월,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인은 폐암이다.

2015년 5월 3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