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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3일 토요일

19대 대선 결과, 문재인의 불안과 안철수의 희망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는 마음으로 인물을 보고 안철수를 찍었던 한 사람으로서 19대 대선 결과는 아쉬운 마음이 조금 남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 원칙대로 뽑힌 대통령이니 문재인 대통령께서 태평한 치세를 만들어 주시길 절박한 마음으로 부탁드립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몇몇 종목들이 정치권의 말 몇마디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정치에 아예 신경을 안 쓸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등한시 하지는 않았지만 공개적으로 대놓고 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었습니다. 해봐야 개인적으로 좋을 것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왕왕 저의 투자와 조금 더 내밀한 경제 상황 예측을 위해서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정치 이야기도 가볍게 해보고자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가누굴 지지하고 말고도 자유이고, 정치적 견해는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각이 다소 다르더라도 그것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사람 또한 진짜 민주시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에 방문해주시는 여러분들의 넓은 마음을 믿습니다. 참고로 저는 좌파, 우파와 같은 진영 논리는 그다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저 같은 사람을 '부동층' 또는 '중도층'이라고 부르더군요. 친구들은 박쥐라고 부르고요. 보수 친구들은 저를 빨갱이, 진보 친구들은 저를 수꼴이라고 부르니 양쪽에서 쥐어터지는 입장입니다.

상황에 따라, 정책에 따라, 인물에 따라. 진영 논리 없이 누구나 더 좋아 보이는 사람을 자유롭게 찍어 왔습니다. 최근까지는 투표를 할 때 늘 차악을 선택해왔는데 처음으로 최선의 후보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중도'라고 하는 안식처가 생겨서 편안한 마음도 있었고요.

투표율 <출처 : 네이버, 선관위>

총 유권자 4,248만명 중에서 3,281만명의 유권자가 투표를 하였습니다. 투표율은 77.2%로 생각보다 높지는 않았습니다.

총 득표율 <출처 : 네이버, 선관위>

모든 후보들이 사퇴나 단일화 없이 완주를 하였습니다. 단일화나 사퇴가 있었다면 문재인 후보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었을 겁니다. 2, 3위 표를 합하면 1,400만표가 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단일화 하지 않은 상태에서 모두 완주해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 후보와 500만표 이상의 차이를 내면서 당선되었습니다.

문재인 후보를 뽑은 이유 <출처:JTBC>

문재인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은 사람들이 34.2%, 당을 보고 전략투표를 한 사람들이 66.8%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물보다는 외부적인 요인들을 보고 한표를 찍어 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홍준표 후보를 뽑은 이유 <출처:JTBC>

이건 좀 의외인데요. 홍준표 후보의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은 유권자 비율이 47.6%입니다. 문재인 후보의 34.2%보다 높은데요. TV토론에서 인간적인 매력도를 많이 높였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스트롱맨 컨셉을 충실히 지켜내서 보수층의 호감을 얻은데 성공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홍준표 후보를 찍은 분들 중 10.5%는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찍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안철수 후보를 뽑은 이유 <출처:JTBC>

안철수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은 74.9%가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었다고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안철수 후보를 찍은 유권자들의 사고방식으로 선거가 진행되어야 앞으로 우리나라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도 조금 더 선진화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속 정당 의석 수 대로 득표율이 나온다면 선거를 치르는 의미를 찾기도 힘들 뿐더러, 계속 당파 정치, 계파 정치, 패거리 정치에 머물 가능성이 높습니다. 늘 정치공학적으로 움직이고, 싸움만 할게 아니라 정치가 국민을 위해 진짜로 일을 하게 만들어야겠죠.

이 선거의 결과는 문재인의 불안, 부활의 불씨를 살린 홍준표, 희망을 본 안철수, 정도로 요약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후반으로 가면서 선거 프레임은 진보-보수간의 싸움으로 진행됐습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 프레임을 깨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이 프레임을 깨지는 못했습니다. '홍준표가 급부상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보수층은 홍준표에게 표가 갈려 나갔습니다. 특히, '적폐청산' 구호가 먹힌 반 자유한국당 진영 지지자들은 문재인으로 결집하였습니다. 특히, 호남의 표가 홍준표를 막기 위해 전략적으로 결집한 것이 국민의당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은 중도층을 중심으로 온건진보와 온건보수를 아우릅니다. 지지층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습니다. 그래서 이번 선거에서도 여기저기에서 뜯겨져 나가는 표가 많았습니다. 선거 후반으로 가면서 다른 후보들에게 계속 표를 빼앗겼습니다. '진보와 보수는 모두 기득권 적폐 세력이며, 이들 누가 되더라도 과거로 돌아간다.'고 설파하던 안철수 후보의 외침은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700만표나 받은 안철수 후보는 사실 대단합니다. 오롯이 자신의 네임밸류로 얻은 표 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상 당이나 캠프가 안철수 후보에게 도움이 거의 되지 못했으며, 폐를 끼친 부분도 있다고 보는 것이 안팎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물론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한 부분은 있겠지만요..

어쨌든 안철수 후보가 득표한 이 700만표는 앞으로 안철수 후보의 정치 생명에 있어서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작용할 표 입니다. 진영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철수 후보를 지지해줬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민주당에서 안철수 후보를 정계에서 은퇴시키고 국민의당을 흡수하기 위한 정치 공작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700만표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얻은 것을 최대의 성과로 삼아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에는 투표한 유권자 중 41%의 지지를 받았습니다만 과반 득표에 실패한 것은 물론이고 펼쳐졌던 환경에 비해서도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한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촛불정국,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오면서 얻은 버프, 그리고 홍준표 후보가 급부상하면서 안철수 후보의 표가 더욱 쪼개지는 버프 등 여러가지 버프가 있었는데도 41%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위기의식이 없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상상력을 동원해서 아마 같은 자리에 안철수 후보가 출마를 했다면 그보다 훨씬 높은 득표율을 기록 했을거라는 건 누구나 알 것 입니다.

어설펐던 국민의당과 다르게 250만이 넘는 거대한 당원 수, 전국에 촘촘하게 퍼져 있는 엄청난 조직들, 유능한 젊은 인재들과 자원봉사자들, 막대한 선거자금,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온갖 사회 시대상과, 선거 구도의 버프. 이런 각종 빵빵한 지원을 보급받고도 문재인 후보는 결과적으로 1,342만표를 획득했습니다. 전체 유권자의 31%만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건데 지지 기반이 취약해서 국정 운영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민주당의 의석수도 혼자서 뭔가 하기엔 역부족인 상태이구요.

앞서 인물과 정책을 보고 지지했다는 응답률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문재인 후보는 459만표를 이 기준으로 획득, 안철수 후보는 524만표를 획득했습니다. 인물 호감도는 문재인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가 높은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내 안철수 죽이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집중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공격했습니다. '좌파', '종북'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쓰면서 보수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마지막에 진영 프레임으로 선거 구도가 급속히 전환되면서 보수들의 표가 홍준표 후보에게 결집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초반에는 선거 비용도 보전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던 자유한국당이 부활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을 지지하지 않는 분들 입장에서는 문재인 후보 측 캠프에서 홍준표 후보가 선전하도록 방조하거나 도운 측면이 있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안철수 후보 측에서는 이를 '적대적 공생관계의 부활'이라 하며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인물의 진정성과 의정활동 실적, 살아 온 길과, 정책의 혁신성과 꼼꼼함, 그리고 기본적으로 자수성가한 타입인데다 생각 자체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유 등을 전체적으로 평가해서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아가길 바랬지만 좌절되었네요. 제 생각에는 '적폐청산'이라는 것도 결국은 정치 세력간 보복전에 불과하고, 지금과 같은 양당제는 서로간 공생하면서 밥그릇을 나눠먹는 것이기 때문에 안철수 대통령이 아닌 이상 세상은 크게 안 변할거라 보았습니다.

어쨌든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과정으로 선출된 새 대통령을 응원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국정운영을 잘 하셔서 '진보-보수 싸움만 하다가 과거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사람들의 우려를 시원하게 불식시키셨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우리나라를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17년 5월 13일
송종식 드림

2015년 5월 3일 일요일

호암자전 - 삼성 창업자 호암 이병철 자서전

어떤 세력이 규모를 키우면 반드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세력은 사회에 밝은 면을 남길 뿐 아니라 어두운 면을 남길 수도 있다. 삼성이 남긴 밝은 면 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다.

그리고 자서전은 기본적으로 저자의 주관에 따라 쓰여지고 실제와 다른 왜곡된 내용도 있을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감안해 가며 본 자서전을 읽었다.

<출처:네이버 책>
어쨌거나 이 책은 매우 가치 있다. 회사를 만들고, 이를 한 국가의 최고 규모로 키운 선배 기업가이자 투자가가 직접 쓴 글을(물론 이병철 전 회장님의 구술을 최우석 전 삼성경제연구소장님이 손으로 받아썼지만) 단돈 25,000원에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시대가 준 큰 혜택이다. 만나기도 힘든 재벌 총수인 데다가 이미 돌아가셔서 만나려도 만날 수 없는 창업자의 생각을 안방에 앉아서 흡수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25,000원에 이런 귀한 경험을 거저 먹는다는 생각도 들고... 큰 인물들의 자서전을 읽으면 숨겨놨던 야망도 싹터서 더 없이 좋다.

호암자전은 원래 비매품이다.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소량만 인쇄를 했고 현재 남아 있는 책은 몇 권 없다고 한다. 비매품 원본은 중고품 시장에서 35만 원까지 거래가 되고 있다.

재벌 창업자들 앞에서 실패를 논하지 말라(?)


많은 창업자들이 롤모델로 꼽는 정주영 회장님. 아마 실패의 대명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일것이다. 잘 나가는 쌀가게 복흥상회는 키워 놨더니 중일전쟁으로 쌀 배급제가 시행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인수한 자동차 수리 공장은 인수 한지 한달도 안돼 불에 타서 전소해버리고, 재건해 영업이 좀 된다 싶으니 일본이 기업정리령을 내걸고 회사를 빼앗어버렸다. 몇 번씩 빈털터리가 되면서도 새로이 사업을 일구는 저력은 후배 기업가들에게 귀감을 주고 있다.

소작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정주영 회장님과 달리 대대로 부유한 집안이었던 이병철 회장님은 별로 실패를 안 했을 것 같은 이미지다. 하지만 책을 보니 이병철 회장님 역시 무수한 실패를 경험한 인물이었다. 특히 회사를 만들어만 놓으면 국가에 몰수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기업 경영의 의지가 꺾일 만도 하다. 그런데도 계속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회사를 키운다. 조용하지만 저돌적인 인물이다.

이병철 회장님의 실패 목록은 다음과 같다.

  • 중일전쟁으로 식산은행의 대출이 중단, 토지사업이 청산됨
  • 남북전쟁 중 삼성물산공사를 공산당에게 몰수당하고 빈털터리로 대구에 피난
  • 삼성이 소유했던 한일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이 국가에 몰수돼 국유화 됨
  • 서구에 대규모 차관 약속까지 받아놓은 세계최대규모의 비료공장 건설이 국내 정치 상황으로 인해 수포로 돌아감
  • 전쟁 당시 세법인 순이익의 120% 세율을 감당하지 못해 세금 납부에 문제가 있었는데, 이로 인해 탈세 및 부정축재자로 낙인찍혀 수배자가 됨
  • 10년에 걸쳐 숱한 시련과 장애물을 넘어가며 건립한 세계최대의 한국비료 지분을 전량 국가에 헌납(?) 당함
  • 국가에 헌납할 한국비료 지분 51%를 채우기 위해 동양생명의 지분, 동양화재보험 지분, 현 한진빌딩 대지 등을 매각
  • 인장을 갖고 있던 한 직원이 삼성 전체 재산의 1/3을 횡령
  • 동양방송(TBS)이 강제로 국유화 돼, KBS에 합병됨

돈 몇 푼을 잃었다고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주영 회장님이나 이병철 회장님의 시련을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고 느껴진다.

사업 패턴


전 후 모든 물자가 부족했던 당시 제일제당을 설립하면서 3백산업에 투신한다. 제일제당은 공장을 가동하자마자 수요가 폭발해서 삼성이 자본을 급격하게 축적하는 계기가 된다.

이병철 회장님의 사업 전략은 대부분이 이런 패턴이다. 1) 큰 수요가 확실한 시장을 찾는다. 2) 해외차관이나 정부 지원 등 외부 자금을 유치한다. 3) 공장 건설에 착수한다. 4) 자본을 축적한다. 5) 큰 수요가 확실한 시장을 다시 찾아본다.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사업 패턴이다. 다만 자세히 뜯어보면 이병철 회장님의 몇 가지 독특한 성향이 보인다. 1)번 과정에서 엄청난 리서치를 동반한다. 각계 전문가는 모조리 만나서 의견을 청취하고, 활자는 모두 읽고, 필요하다면 해외 탐방도 적극적으로 한다. 공장 건설을 결의하기까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만큼 리서치는 꾸준하고 집요하게, 그리고 철저히 하는 성격인 것 같다.

신사업에 투신하기로 결의했다면 모든 것을 건다. 차관도 최대한 받고 규모는 최대를 지향한다. 주식투자자로 치면 얻을 수 있는 모든 레버리지를 얻어 한 종목에 집중하는 투자자랄까.

사업 진행 과정에서는 '의인물용, 용인물의(疑人勿用, 用人勿疑)'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수들이 모든 사업 과정에 본인이 개입해 업무를 진행하는 반면에 최고수 기업인들은 여지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믿고 맡기고 시스템이 일을 처리하도록 만든다. 이병철 회장님의 경우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믿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쓰지를 않고, 쓰기로 결정한 사람은 믿고 큰 일을 모두 맡기는 위임 경영을 잘 했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은 빠른 속도로, 그리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분명하지만 시스템이 할 수 있는 일은 무한하므로. 위임 경영의 포인트는 시대 흐름과 사업을 보는 눈이고,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눈을 갖추어야 한다. 사람을 등용하는 것, 그리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은 기업 경영 최고의 난이도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분명 이병철 회장님의 용인술이 뛰어났음을 증명한다.

사업의 지분을 대량으로 취득하고 모든 실무는 시스템과 구성원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실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매 분기나 매해 사업의 결산과 중요사항을 보고 받는다. 이런 사업 방식은 워런버핏과 비슷한 면이 보인다. 차이라면 버핏은 자신이 신규로 시작한 사업은 투자업뿐이다. 버핏은 기존 사업을 인수하는 형태로 몸집을 불렸다. 이병철 회장님은 자신이 신규로 사업을 시작한 케이스가 많기는 하다. 어쨌든 이병철 회장님의 사업 패턴을 보면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투자가에 가까운 면모도 보인다.

기억에 남는 구절


  • 의심이 가거든 사람을 고용 말라. 의심하면서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 그리고 고용된 사람도 결코 제 역량을 발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채용할 때는 신중을 기하라. 그리고 일단 채용했으면 대담하게 일을 맡겨라.
  • 벗이란 묘한 것인가 보다. 마산에서 사업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공동출자자 외에는 벗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친구가 늘어갔다. 그러나 부동산에서 일단 큰 실패를 겪자 그렇게 많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한 사람 떠나고 두 사람 떠나고 하더니 대구에서 양조업에 착수하면서부터 또다시 한두 사람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 그러나 친구들과 격의 없는 사이가 된 다음에도 나에게 분명히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드물었다. 누구나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귀에 거슬리는 충언을 삼가게 된다. 소원해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상관하지 않고, 편하게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역시 충언을 하기 싫어한다. 그래서는 참다운 벗이 못 된다. 충언을 서슴지 않는 벗이 참된 벗이다. 참된 벗을 만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 어떤 사업이건 실패의 위험은 뒤따른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것은 처음부터 실패의 여지가 있다는 불안을 안고 착수하는 것이다. 100%의 자신이 없으면 애초에 착수하지 말아야 한다. 마음속에 불안을 품은 채 착수하면 주저하여 전력투구를 못 하게 된다.
  • 빈곤과 청빈을 판별하지 못하고, 마치 남루한 옷을 걸치는 것이 청렴의 증좌인 양 여기는 그릇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남이 진취적으로 무슨 일에 도전하는 일에는 왈가왈부의 비평을 많이 하면서도, 스스로 도전해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편 기회만 있으면 남의 덜미를 잡고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획책하기도 한다.
  • 조선 중엽부터 싹튼 그칠 줄 모르는 사색당쟁에만 골몰하였던 관계로, 좌정관외격인 우를 범했고, 유약퇴영의 정신과 부정부패의 씨를 배태케하여, 국민의 이익을 등지는 무정부상태의 혼비를 거듭했다. 마침내 후반 50년에는, 선진 강국의 침략을 막지 못하여 일본의 힘 앞에 굴복하고 말았다. 일본은 우리를 그들 본국 경제를 위한 식민지 경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게 함으로써, 현대국가로서의 경제발전상 가장 중요했던 시기 36년간을 후진국의 경제 테두리 속에 얽매어 두고 말았다.
  • 고전적 코스를 따를 시간이 없다. 1770년대의 영국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서, 약 200년 전의 코스를 하나하나 밟아 내려올 시간적 여유가 없다. 우리는 너무나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무슨 비약적인 수단이나 방법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우리의 빈곤이나 산업 구조의 낙후성을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과감하게 그 순서를 바꾸어 대기업에서부터 출발하여, 중소기업으로 내려가는 방식을 취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을 건너 뛰고 공업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촌을 구제하는 길은 오히려 과감한 외자도입에 의한 공업화를 통해서만 가능함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아시아 반공 보루국으로서 수원 태세를 견실히 확립하고 조야가 합심하면 차관 기금의 10%에 해당하는 1억 달러의 차관을 매해 확보 가능하다. 운영 실적이 좋으면 그 이상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10년간 10억 달러의 차관 획득도 꿈은 아니다. 한일 회담이 원만히 타결되면 일본에서 10년간 6억 달러 도입도 큰 문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의 움직임을 보아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서 10년 동안 5억 달러의 차관을 확보하는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를 합치면 10년간 대략 21억~23억 달러의 외자를 도입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 흐름으로 보아 전기, 도로, 수도, 와사 등 민생에 직결되는 사회 공공사업의 개발 자금 차관은 비교적 용이하므로 덴마크, 네덜란드, 포르투칼 등 각국에서 1,700만 달러씩 도합 약 1억 3천만 달러를 차관으로 도입하는 것도 좋으리라 믿는다.
  • 이상에서 말한 외자도입이 원활하게 달성되면서 3년만 지나면, 이미 건설 완료한 공장에서는 수익이 나오게 된다. 그것을 매년 2억 달러 내외로 보고 이 자금을 다시 민간사업에 재투자 할 것 같으면 10년 동안 15억~20억 달러에 해당하는 공장건설 자금을 확보하는 결과가 된다.
  • 이 구상이 제대로 진척되면 36억~43억 달러의 투자가 가능하다. 이를 약 40억 달러로 추정하면 4백만 달러 규모의 공장 1천 개를 건설할 수 있다. 그렇다면 투자 총액의 70%에 해당하는 연간 생산증가는 곧 같은 액의 GNP증가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1인당 국민 소득은 현재 50달러에서 100달러로 무난하게 두배가 증가할것이다.
  • 또한 이들이 한 공장에 500명씩 고용한다고 치더라도 고용 증가는 50만명에 달할 것이며, 부양가족을 5인 평균으로 친다면 250만 명이며, 그 밖의 하청 중소공장과 유통단계에서의 고용을 합치면, 무려 500만 명의 고용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즉, 농가 인구를 공장에 흡수하여 그들의 생활이 보장받을 수 있게 될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장 하나에 부과되는 세금을 200만 원으로 추정하면 세금 총액이 20억원이 되는 바, 이렇게 되면 정부의 세수입은 배증한다. 공무원의 급료도 배액 이상 지불할 수 있게 되어서 점차로 부정부패도 일소될 수 있고, 사회도 명랑하고 건전하게 될 것이다. 1,500만 농민의 1/3에 해당하는 500만명을 공업에 흡수함으로써, 현재 420평에 불과한 1인당 경지면적을 630평으로 확대시켜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한편, 농산물 생산비에 절대적 영향을 주는 비료나 농기구 등을 국내 공장에서 염가로 생산 공급하는 공업화를 촉진함으로써, 농민들이 간접적으로 공업화에 의한 파급 혜택을 받도록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 사업은 반드시 시기와 정세에 맞추어야 한다. 이것부터 우선 인식하고 나서 사업을 운영할 때는 첫째, 국내외의 정세 변동을 정확히 통찰해야하며 둘째, 무모한 과욕을 버리고 본인의 능력과 그 한계를 냉철히 판단해야 하고 셋째, 요행을 바라는 투기는 절대로 피해야 하며 넷째, 직관력의 연마를 중시하는 한편 제2, 제3의 대비책을 미리 강구하여 대세가 기울어 이미 실패라고 판단이 서면 깨끗이 미련을 청산하고 차선의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 모사는 재인이고 성사는 재천이라고 한다. 희망이나 꿈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에너지이며, 언제나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성취하면서 살아가려는 인간의 통성이기도 하다.


 목차

  • 서 序
  • 제 1 편 청소년 시절 
    • 제 1 장 한일합방 해에 출생 
    • 제 2 장 서당에서 학교로 
    • 제 3 장 결혼, 그리고 도쿄 유학 
    • 제 4 장 세계 공황하의 대학시절 
    • 제 5 장 졸업증서 없이 끝난 학업 
  • 제 2 편 사업에 투신 
    • 제 1 장 사업 투신의 결의 
    • 제 2 장 정미·운수업으로 출발 
    • 제 3 장 2백만 평의 대지주로 
    • 제 4 장 삼성의 모체 삼성상회 설립 
    • 제 5 장 고향에서 해방 맞아 
    • 제 6 장 사업보국의 신념을 굳혀 
    • 제 7 장 이승만 박사의 추억 
    • 제 8 장 삼성물산공사의 설립 
    • 제 9 장 해방 후의 첫 일본방문 
    • 제 10 장 6·25 동란 발발 
  • 제 3 편 수입 대체산업 
    • 제 1 장 빈손으로 대구에 피란 
    • 제 2 장 제조업을 결의 
    • 제 3 장 제일제당 설립 
    • 제 4 장 국내기술로 공장 완성 
    • 제 5 장 제일모직 설립 
    • 제 6 장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 제 7 장 유니언 잭 고지에 태극기를 
    • 제 8 장 산업자본의 형성 
  • 제 4 편 사회의 격동 
    • 제 1 장 시은의 대주주로 
    • 제 2 장 한국비료의 건설 추진 
    • 제 3 장 차관도입 교섭에 성공 
    • 제 4 장 120%의 세제 
    • 제 5 장 5·16 혁명 최고회의에 서한 
    • 제 6 장 박정희 부의장과의 첫 대면 
  • 제 5 편 우리가 잘 사는 길 
    • 제 1 장 경제인협회 초대 회장으로 
    • 제 2 장 울산공업단지의 조성 
    • 제 3 장 통화개혁과 삼분파동 
    • 제 4 장 [우리가 잘 사는 길] 기고 
    • 제 5 장 비료공장건설을 재추진 
    • 제 6 장 유솜과 일본업계의 반대 
    • 제 7 장 미쓰이물산과 차관교섭 
    • 제 8 장 한일회담의 이면 지원 
    • 제 9 장 세계최대의 단일 비료공장 
    • 제 10 장 정치기류에 휘말린 ‘한비사건’ 
  • 제 6 편 문화사업 
    • 제 1 장 문화재단 설립 
    • 제 2 장 교육과 도의문화의 진흥을 
    • 제 3 장 호암미술관 설립 
    • 제 4 장 매스컴의 경영 
    • 제 5 장 동양방송의 영상은 사라지고 
    • 제 6 장 용인자연농원에 건 꿈 
    • 제 7 장 위암 수술을 받고 
  • 제 7 편 전자중화학공업 
    • 제 1 장 전자, 그리고 중화학공업 시대로 
    • 제 2 장 조선 분야에 진출 
    • 제 3 장 플랜트 생산체제 갖추어 
    • 제 4 장 유화산업과 방위산업 
    • 제 5 장 생명보험과 백화점의 경영 
    • 제 6 장 한국의 얼굴 호텔신라 
  • 제 8 편 삼성의 장래 
    • 제 1 장 새로운 경영기법을 찾아서 
    • 제 2 장 반도체 개발을 결의 
    • 제 3 장 삼성반도체에 내일을 건다 
    • 제 4 장 기업은 영원한가 
    • 제 5 장 창업과 수성 
    • 제 6 장 보스턴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 
  • 제 9 편 취미 편력 
    • 수집으로 개성을 안다 
    • 생활 속의 골프 
    • 국악과 서예로 정심 길러 
    • 건축미에 매료되어 
    • 《논어》, 인간형성의 근원 
  • 후기 
  • 호암연보
<목차 출처 : 네이버 책>


저자에 대해


저자 이병철 전 회장님은 1910년 2월 12월에 경남 의령에서 출생했다. 다소 방탕하고 무의미한 10대와 20대를 보냈다고 본인 스스로 회고했다. 1936년에 첫 사업을 시작했고, 1938년 3월에 <삼성상회>라는 상호를 걸고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기업을 창업했다. 1953년에 제일제당 설립, 1954년에 제일모직을 설립했고 이후에 한국비료 등 굵직한 사업을 진행했다. 타계하기 전에는 천문학적인 자본과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하이 리스크 산업인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국 경제가 IT기반 국가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삼성그룹을 창업한 1세대로서 삼성그룹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슬하에 4남 6녀를 두었고, 삼남 건희에게 사업을 승계했다. 1987년 11월,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사인은 폐암이다.

2015년 5월 3일
송종식

2015년 4월 15일 수요일

암사도서관의 우산 도둑

여름으로 진입 중이다. 가뭄 해갈을 재촉하는 비가 자주 온다. 다행이다. 어제도 비가 많이 왔다. 그런데 어제 내린 비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는 꽤 아픈 비였다.

소희는 암사도서관 유아도서실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주 데려간다. 오전에는 내가 자주 데려가는데 어제는 와이프가 데려갔다. 책이 젖으면 안되므로 도서관 입구 우산 꽂이에 우산을 보관하고 입장한다. 당연한 규칙이다. 유아도서관은 어린이자료실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소희가 특별히 좋아하므로 어제도 와이프는 소희와 거기서 시간을 보냈나 보다.

한참을 놀다 나오니 우산이 없어졌단다. 소희와 와이프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귀가했다고 한다. 그 연락을 받고 암사도서관에 연락해서 CCTV 영상 열람을 요구했다.

CCTV 영상을 보니 우산 도둑은 의외의 사람이었다. 30대 중후반 ~ 40대 초반쯤 되는 아주머니였다. 위층 열람실에서 자연스럽게 내려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우산을 채갔다. 그렇다고 차림새가 허름하지도 않았다. 중산층 이상 되는 고급스러운 차림새였다. 와이프와 나는 소위 멘붕에 빠졌다.

우산만이라도 찾고자 했는데 아마도 우산을 못찾을 것 같다. 그 우산 도둑 아주머니는 단지 본인이 비를 맞기 싫어서 우리 우산을 훔친거다. 본인은 비를 피했겠지만 정작 우산 주인들은 비에 젖은 생쥐꼴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어쨌든 그러한 목적으로 우산을 훔쳤으니, 그 우산은 자기 집 근처 어디에서 처참하게 버릴것이 분명하다. 들고 다녀봐야 후한만 생길 테니. 속상하다. 흠.. 그런데 CCTV가 돌아간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나보다.

고급스러운 차림새의 아주머니가 단지 본인이 비에 젖기 싫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우산을 훔쳐가는 모습은 당분간 못 잊을 것 같다. 세상 참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지만..

나는 장중에 주식 매매를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낮에 소희와 있는 시간이 길다. 그리고 도서관에도 자주 간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 다니면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자주 본다. 아기 엄마들, 취업준비생, 재수생과 같은 사람들이다.

걱정스러운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아기 엄마들은 자기가 있던 자리를 어질러 놓고도 뒷정리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만나기만 하면 이것저것 자랑하기 바쁘고, 여러 가지 신경전에 온 정신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재미있다. 누가 학원을 더 많이 보내느냐 하는 의미 없는 이야기도 경쟁거리가 된다. 진학할 초등학교 학군에 대해 열띤 토론도 마다 않는다. 그게 무슨의미가 있지?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클까.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친구들보다 똑똑한 친구들일것이다. 공부를 하려는 의지들이 있으니. 그런데 '머리에 활자만 많이 밀어 넣으면 뭘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성공부'가 필요한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기가 지나가는데 유리로 된 두꺼운 문을 자기만 쏙 지나가고 그냥 놓고 가버려 사고 위험까지 몰고가는가 하면, 얼굴에는 웃음이나 여유를 찾기 힘든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일일이 다른 뒷 사람들이 지나가라고 문을 잡아주는 내가 바보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타인의 작은 실수는 곧잘 도서관 운영진에게 고발 형식으로 제출된다. 고발 내용을 보면 책장 넘기는 소리나 연필로 필기하는 소리도 시끄럽다고 한다. 필기도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한다. 이리저리 떠밀려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니 예민한 건 이해하지만 벼슬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는 청소하는 분에게 '청소따위나 하는게 자랑이냐'하는 이야기도 그 학생들(청년들?)입에서 나온다. 공부도 중요하고 실력도 중요하고 스펙도 중요하지만, 애티튜드가 엉망이라면 모래성 위에 쌓아올린 공든탑일 뿐이다.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인성과 애티튜드는 본인이 공부를 아무리 잘 해도 인생 언젠가 반드시 발목을 잡아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기폭제가 된다. 그런 인성으로 공부 잘해서 고위 관료가 되면 뭐하나.

아무튼 몇몇 사람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각박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개인주의가 만연한다고 하지만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상을 보면 여러모로 안타깝다.

2015년 4월 15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