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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5일 수요일

암사도서관의 우산 도둑

여름으로 진입 중이다. 가뭄 해갈을 재촉하는 비가 자주 온다. 다행이다. 어제도 비가 많이 왔다. 그런데 어제 내린 비는 우리 집 식구들에게는 꽤 아픈 비였다.

소희는 암사도서관 유아도서실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주 데려간다. 오전에는 내가 자주 데려가는데 어제는 와이프가 데려갔다. 책이 젖으면 안되므로 도서관 입구 우산 꽂이에 우산을 보관하고 입장한다. 당연한 규칙이다. 유아도서관은 어린이자료실 가장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소희가 특별히 좋아하므로 어제도 와이프는 소희와 거기서 시간을 보냈나 보다.

한참을 놀다 나오니 우산이 없어졌단다. 소희와 와이프는 비를 흠뻑 맞으면서 귀가했다고 한다. 그 연락을 받고 암사도서관에 연락해서 CCTV 영상 열람을 요구했다.

CCTV 영상을 보니 우산 도둑은 의외의 사람이었다. 30대 중후반 ~ 40대 초반쯤 되는 아주머니였다. 위층 열람실에서 자연스럽게 내려와서 아무렇지 않은 듯 우산을 채갔다. 그렇다고 차림새가 허름하지도 않았다. 중산층 이상 되는 고급스러운 차림새였다. 와이프와 나는 소위 멘붕에 빠졌다.

우산만이라도 찾고자 했는데 아마도 우산을 못찾을 것 같다. 그 우산 도둑 아주머니는 단지 본인이 비를 맞기 싫어서 우리 우산을 훔친거다. 본인은 비를 피했겠지만 정작 우산 주인들은 비에 젖은 생쥐꼴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어쨌든 그러한 목적으로 우산을 훔쳤으니, 그 우산은 자기 집 근처 어디에서 처참하게 버릴것이 분명하다. 들고 다녀봐야 후한만 생길 테니. 속상하다. 흠.. 그런데 CCTV가 돌아간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나보다.

고급스러운 차림새의 아주머니가 단지 본인이 비에 젖기 싫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우산을 훔쳐가는 모습은 당분간 못 잊을 것 같다. 세상 참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지만..

나는 장중에 주식 매매를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서 낮에 소희와 있는 시간이 길다. 그리고 도서관에도 자주 간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 다니면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자주 본다. 아기 엄마들, 취업준비생, 재수생과 같은 사람들이다.

걱정스러운 모습들을 자주 목격한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 아기 엄마들은 자기가 있던 자리를 어질러 놓고도 뒷정리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뜬다. 만나기만 하면 이것저것 자랑하기 바쁘고, 여러 가지 신경전에 온 정신을 곤두세우는 모습이 재미있다. 누가 학원을 더 많이 보내느냐 하는 의미 없는 이야기도 경쟁거리가 된다. 진학할 초등학교 학군에 대해 열띤 토론도 마다 않는다. 그게 무슨의미가 있지? 그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떻게 클까.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친구들보다 똑똑한 친구들일것이다. 공부를 하려는 의지들이 있으니. 그런데 '머리에 활자만 많이 밀어 넣으면 뭘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성공부'가 필요한 친구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기가 지나가는데 유리로 된 두꺼운 문을 자기만 쏙 지나가고 그냥 놓고 가버려 사고 위험까지 몰고가는가 하면, 얼굴에는 웃음이나 여유를 찾기 힘든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일일이 다른 뒷 사람들이 지나가라고 문을 잡아주는 내가 바보인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타인의 작은 실수는 곧잘 도서관 운영진에게 고발 형식으로 제출된다. 고발 내용을 보면 책장 넘기는 소리나 연필로 필기하는 소리도 시끄럽다고 한다. 필기도 아주 조심스럽게 해야한다. 이리저리 떠밀려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니 예민한 건 이해하지만 벼슬이 따로 없다는 생각도 든다.

심지어는 청소하는 분에게 '청소따위나 하는게 자랑이냐'하는 이야기도 그 학생들(청년들?)입에서 나온다. 공부도 중요하고 실력도 중요하고 스펙도 중요하지만, 애티튜드가 엉망이라면 모래성 위에 쌓아올린 공든탑일 뿐이다.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인성과 애티튜드는 본인이 공부를 아무리 잘 해도 인생 언젠가 반드시 발목을 잡아 수렁으로 끌어내리는 기폭제가 된다. 그런 인성으로 공부 잘해서 고위 관료가 되면 뭐하나.

아무튼 몇몇 사람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각박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개인주의가 만연한다고 하지만 인정이 메말라가는 시대상을 보면 여러모로 안타깝다.

2015년 4월 15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