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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3일 금요일

친정회사 골프존 (기업분석 아님)

골프존. 내게는 친정과 같은 곳이다. 내 월급쟁이 생활의 종점. 2009년에 입사하여 5년 정도 근무했다. 창업과 스타트업을 전전하다가 안착한 곳이다. 월급쟁이는 길게 안 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오래 머물게 되었다. 이때 안정적이고 좋은 기업이 주는 복지와 급여의 달콤함과 무서움에 대해서 깨달았다. 직장 생활에서도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았다.

내가 입사했을 때 회사는 갓 매출 1,000억 고지를 달성한 때였다. 골프존은 2000년에 창업됐다. 삼성전자 출신 김영찬 회장이 창업자다. 창업자가 은퇴 후 '하루에 스크린골프 기계 한대만 팔면 10년 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소일거리로 시작한 일이다.

2002년에 매출액 10억원을 찍었다. 이후에 2010년까지 매출액이 연평균 2배씩 성장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회사에 활기가 넘치던 때 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성과급이 월급 배수가 아니라 연봉 배수로 지급되던 시기였다. 성장 곡선은 가팔랐다. 돈은 펑펑 쏟아졌고 내부는 활기찼다. 근무지는 강남의 사조빌딩에서 시작해서 해성빌딩으로, 그리고 청담동의 사옥으로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청담동 신사옥의 밥은 YG와 더불어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정말 그랬다. 회사의 복지에 취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동안 복지가 좋은 게 안 좋은 것 보단 낫지 않겠는가. 회사의 복지도 좋았고, 같이 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괜찮은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좋은 회사였다. 인재풀도 좋았다. 인근의 IT기업에서 고스펙과 좋은 경력을 가진 분들이 많이 넘어 오셨다. 그래서일까. 나는 입사면접을 한달에 걸쳐서 3번이나 보았다. 남들은 면접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아리까리한 계륵같은 면이 있었나 보다.

내가 입사한지 2~3년 차가 되어 회사는 상장 채비에 들어갔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연일 상장 관련된 이야기가 밥상머리 주제였다. 당시 직원들의 포지션은 3가지 정도로 갈렸다. '지금까지는 잘 했지만 앞으로 회사가 성장할 요인들이 안 보인다'하는 쪽과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하겠지'하는 쪽이 크게 갈렸다. 나머지 한 쪽은 '나는 회사에 충성한다'파로 갈렸다.

나는 당시에 회사를 몹시 사랑했다. 하지만 내 소중한 투자금을 태우기엔 애매했다. 나름대로 주식 좀 만져 봤다고 회사에 대한 밸류에이션도 해보았다.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사주조합 참여를 포기했다. 아마 회사 상부에서는 안 좋게 봤을 수도 있다. 애사심과 충성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우리사주를 취득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내 생각은 흑백 논리가 아니라 투트랙으로 돌아갔다. 회사는 사랑하고 애사심이 넘쳤다. 하지만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골프존은 상장 후 10년 간 하락했다. 나는 2014년 경 퇴사했다.
<자료 : 네이버>

회사에서는 우리사주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 줬다. 금리는 0%로 이자는 받지 않았다. 상장 후 장기간 주가가 하락하자 회장님께서 사재도 출연했다. 자기 주식을 100주 갖고 있으면 회장님이 100주를 공짜로 주시고, 500주를 샀으면 추가 500주를 회장님이 공짜로 주셨다. 이때 '아 그냥 주식 좀 살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가는 장기간 하락했지만 어차피 내 돈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가가 영원히 오르지 않으면 빌린 돈은 갚아야 할 빚이기는 했지만.

코로나가 골프존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코로나를 계기로 회사는 다시 한 번 급성장 하고 있다.
<사진 : 네이버 증권>

회사 내부 사정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서 확인해 보았다. 현재 우리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우리사주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12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다. 상장 당시에도 시가총액은 1조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뉴딘홀딩스와 영업회사를 합하면 시가총액이 1조 원 수준이다.

반면, 펀더멘털은 아주 좋아졌다. 2020년은 강력한 전염병으로 온갖 신기한 현상들이 역사에 기록될 해이다. 전 세계의 항공 교통과 관광이 멈출 정도였으니 그 위세는 대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절 한국에서는 골프가 대유행을 했다. 그러면서 골프존의 실적과 주가는 멋지게 우상향했다. '미래가 없다', '더 이상 먹거리가 없다'는 말은 이미 10년도 넘게 계속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골프존은 멋있게 성장하고 있다.

줄줄이 어려움을 겪던 해외 진출도 요즘은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빠칭코 대비 수익성이 나빠서, 캐나다는 춥고 시장이 작아서, 미국은 그린피 가격이 스크린 보다 싸서.. 등의 이유가 당시 해외진출에 어려움을 줬던 이슈로 기억한다.

요즘은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진심으로 너무 기분이 좋다. 내 친정집이 승승장구 한다는 데 누가 그런 기분이 안들까? 여러가지 불확실하고 어려웠던 것들을 걷어 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친정집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를 악 물고 많이 배운다. 내 소중한 친정집이 더 승승장구 했으면 좋겠다. 세계로 더 뻗어 나갔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돌이켜 보면 회사에 남긴 흑역사도 좀 있다. 

나한테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의 메일을 써서 기록으로 남긴다. 한번은 그 개인적인 메일이 CC로 워크샵을 같이 갔던 팀 사람들에게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단축키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메일발송까지 순식간에 진행 되었다. 매우 민감한 내용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들이 담겼던 메일이다. 너무 부끄러워서 인생을 리셋하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또 한 번은 전사 메일로 부끄러운 짓을 했다. 2012년 여름에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 소희가 태어나기 불과 3달 전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끊어지는 인연의 끈을 눈 앞에서 봤다. 한 많은 인생, 소희라도 보시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당시 내가 다니던 골프존과 여동생이 다니던 하이닉스에서 장례절차를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두 회사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어리고 아이 같기만 했던 우리가 장례를 치르는데 큰 고생을 했을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무려 "전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감사 메일을 썼다. 일단 '그냥 그날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고 했어도 됐을 터. 나는 무려 장문의 내용을 썼고, 온갖 단어를 한자로 변환했다. 와. 지금 생각하면 완전 도른자가 이런 도른자가 없었구나. 나름대로 격조를 챙긴다고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물론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회사에서 장례를 도와줬어도 누가 이렇게 전사 메일로 어머니 장례 잘 치른 걸 광고해.", "메일에 그 한자들 다 읽을 줄은 아니? 나는 못 읽겠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이것도 다 이제는 추억이다.

회사가 남긴 귀한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상근 등기임원이 된 철호형. 철호형과는 태국 워크샵에서 친해졌다. 나와 같은 호텔방을 썼다. 당시 나는 모르는 분이었다. 그래서 조금 부담됐다. 그러나 이내 친해졌다. 대화를 몇 번 나눠보니, 철호형은 서글서글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했다. 인생을 살면서 적의 없고 상냥한 애티튜드를 가진 남자 TOP 5에 들어간다. 당시 팀원이었는데 금방 팀장으로 승진하셨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승진해서 지금은 임원이 되셨다. 역시 'Attitude is Everything!'

마침 서로 투자에 관심도 많아서 금방 친해졌다. 기업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수장이 되면서 예전처럼 수다를 많이 떨지는 못한다. 하지만 까먹을만 할 때 한번씩 연락을 한다. 일전에는 나와 친한 투자자들이 회사를 탐방할 때도 큰 도움을 주셨다.

그 다음은 진현이형. 진현이형은 화학과 출신이지만 컴퓨터를 더 잘 다루는 것 같다. 머리 좋은 사람의 표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빛의 속도로 실험을 끝내고 집에 가서 쉬었다고 한다. 일을 할 때도 뭔가 자동화 같은 걸 되게 잘 한다. 남들이 고생고생 할 일도 선배는 자동화를 시켜서 다 자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 형은 지금까지도 나와 자주 연락한다. 진현이형은 필리핀 워크샵에서 나와 같은 호텔방을 썼던 일을 계기로 서로 큰 신뢰를 형성하게 되었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형님의 신앙심에 경외를 느낀적이 몇 번있다. 그리고 형수님을 향한 무한한 사랑, 무한한 배려심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두 선배와는 아직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다. 나머지 분들과는 인연의 끈이 끊겼다. 하지만 카카오톡 연락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스윽 한 번 둘러보았다. 

나한테 바라는 것 아무것도 없이 아침마다 1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골프를 가르쳐 주던 KLPGA 'B' 프로님은 결혼을 하셨네.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다. 

우리 F2E팀 사람들도 저마다 결혼도 하고, 이직도 하고 잘 사시는 것 같다. 당시 내가 (인간적으로)좋아했던 부산출신 여자 팀장님은 무려 프로필 사진이 아직도 안 바뀌고 있다. 내가 퇴사한 게 언제더라. 네이버에서 오신 인재였는데, 따뜻한 리더십으로 팀을 잘 이끌어 가시던 분이다. 팀장님을 중심으로 점심 때 마다 티타임 갖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했던 멤버들도 다들 결혼해서 아기 낳고 잘 살고 있구나. 모두 잘 살고 있어서 너무너무 기쁘고 다행이다.

취준생을 위한 TMI: 대기업도 좋지만, 시장 독점력이 있고, 높은 영업이익률과 ROE를 내면서도 성장까지 잘 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의외로 숨은 꿀직장인 경우가 많다.

2023년 2월 3일
송종식


2023년 1월 8일 일요일

Memories of Sofie


만0세 - 2013년, 인생 첫 도서관~ 어리둥절~

만2세 - 2015년 7월 22일, 아빠와 즐거운 저녁 물놀이

만2세 - 2015년 9월, 유치원 끝나고 아빠 전업사무실에 놀러 온 소희

만2세 - 2015년, 아빠랑 물놀이~


만2세 - 2015년, 맛있는 음식 기다리며 신남!

만2세 - 2015년, 아장아장 조심조심

만2세 - 2015년, 신나는 물 세례~

만2세 - 2015년, 베엠베~~

만4세 - 2017년 2월, 발차기 갓 배운 어린이, 깡 좋게 쭉쭉 치고 나간다

만4세 - 2017년, 라라랜드 후유증~🎵

만4세 - 2017년, 날쌘 아빠와 둔한 딸래미

만4세 - 2017년, 더워 죽겠지만 맛있어!

만4세 - 2017년, 뽀뽀타임~

만6세 - 2019년, The Star-Spangled Banner

만6세 - 2019년, 초코쇼~

만6세 - 2019년, 몸꽝의 마방진 흉내

만6세 - 2019년, 핑크 람보르기니

만7세 - 2020년, 바다와 대륙 너머에서 온 편지(워드 숙제)



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석유 고갈론

저는 1990년대에 초등학생(당시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시골에서도 한참 더 시골인 깡촌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엔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 장비가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대부분의 정보를 학교 도서관과 TV에서 얻었습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면 동네 어르신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얻는 정보가 전부였습니다.

당시에 시골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있는 것들 말고도 어린 저희들에게 무언가 많이 주입시키고 가르치고 싶어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상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정치적인 사상도 주입하려고 부던히 세뇌 작업을 하던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스승이 아니고 참 나쁜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소수의 그런 분을 빼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현명하고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렸으니 그런 개념조차 없었네요. 어쨌든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몇몇 선생님들께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경고를 하셨던 것들이 있습니다. 근래 그 중 두어가지가 기억에 남아서 계속 제 머리를 맴돕니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석유는 고갈되어 있을 것이다


제 또래분들은 이 이야기가 기억이 날것입니다. 정말 기름이 곧 고갈된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에너지를 아껴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사람들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님들께서 악의적으로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것입니다.

석유 매장량 <자료 : 한국경제신문>

그때 자료들을 찾아보니 실제 그때는 석유고갈론이 실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떠돌던 이야기는 아니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떠돌던 이야기였습니다. 석유는 앞으로 20~30년치 밖에 남지 않았다. 항상 이 이야기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걱정을 안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확인해보면 당시보다 석유 매장량은 훨씬 많이 늘어났습니다. 고갈되기는 커녕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펑펑 쓰고도 남을 유전이 발견되고 석유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물을 돈주고 사먹는 시대가 올것이다


사회시간이었나?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른이 된 미래에는 물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유는 환경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서야. 그리고 물도 점점 말라서 없어 질지도 몰라."

이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 중 원인은 틀렸고, 결과는 현재 맞아 떨어졌습니다. (국내 생수는 94년부터 시판)

자료 : 매일경제

일단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워낙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는 환경 때문에 물을 사먹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희가 어릴때도 수돗물에 불소가 들어있으니 충치가 예방된다고 그냥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인 지금도 서울에서는 아리수는 그냥 먹어도 된다고 홍보를 합니다. 문제는 노후상수관이지 넓은 범주에서 보면 일단 제 삶에서 환경 때문에 물을 사 먹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건강과 기호를 위해서 설탕물 섭취를 줄이고 물을 사 먹는 경향이 더 큽니다. 그리고 물을 끓이거나 정수하기가 귀찮아서 편의를 위해서 생수를 사먹는 측면이 환경 때문에 먹을 물이 없다는 이유보다 더 큰 이유입니다.

과도한 공포마케팅에 현혹되지 말 것


위의 두 사례의 경우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미래에 대한 공포'입니다.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나중에야 석유업자들과 국제 금융 권력이 만들어서 퍼트린 이야기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공포는 훌륭한 마케팅 수단입니다. 공포를 팔아 번영하는 분야는 대표적으로 보험과 종교가 있습니다. 

"살다가 병이 걸리거나 사고가 나면 막대한 돈이 지출돼. 그때는 감당이 안 될테니 보험하나 들어봐."
"우리 신을 믿지 않으면 너는 죽어서 평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 받게 돼. 그러니 우리 신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봐"

또한, 공포는 분노와 결합하여 정치인들의 표 장사를 위해서도 중요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이 세상은 끝나고 말 것이라는 공포와 분노를 심어줍니다.

큰 틀에서는 어쩌면 우리 인생 거의 전체가 이 공포를 기반으로 한 불안이 삶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매몰되면 세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일어난다고 믿으면서 엉뚱한 곳에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과도한 공포를 갖지 않아도 해당 분야에서 열심히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투자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리스크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관리 되어야 하지 미래를 온통 부정적으로만 보고 공포로만 보면 제대로 된 투자를 영위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통찰과 전망을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합니다. 또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과 준비를 해두고 언제든 대응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100가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 중에서 어떤 단 하나의 사안에만 매몰되어 편견을 갖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동 당하기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


저희들에게 석유 고갈론을 설파하셨던 선생님들 역시 국제 투기자본 세력과 석유업자들에게 선동을 당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생각의 거리를 한뼘만 더 늘려보았다면 의구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유전은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며, 인류의 기술도 계속해서 발전합니다. 유전을 발견하는 기술, 시추 기술,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할 기술 그리고 에너지의 효율을 높일 기술 등이 있습니다.

물 오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물을 덜 오염시키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오염된 물을 정수처리 할 수 있는 가능성 등 다양한 가능성의 문도 열어놓고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을 사 먹는 지금 시점에 생각해 볼 점도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도 누구나 공짜로 쓰고 있는 자원들. 그러니까 공기나 바람, 눈, 비와 같은 것을 파는 시장도 큰 시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공기를 사다 마신다는 이야기도 제가 태어나기 전 부터 나왔던 이야기고 이미 공기를 파는 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만, 아직 물 시장만큼 대규모 시장으로 키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ESG, 기후변화 아젠다


원래 존재했건 존재하지 않았건 어떤 용어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급격하게 번지면서 회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퍼뜩 떠오르는 단어 중에 웹2.0이 그랬습니다. 최근에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그렇죠. 그리고 ESG도 그렇습니다.

메타버스나 ESG나 올해 들어서 갑자기 온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연구되고 다뤄지고 있던 것들입니다. 

특정 용어가 이렇게 갑자기 이슈가 되는것을 촉발하는 것은 언론입니다. 몇몇 언론에서 크고 굵은 폰트로 몇번만 대서특필하며 사람들에게 '마 이게 유행이다!'하고 논조를 밀어 붙이면 실제 그게 유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보통 자본가들이 있습니다.

이런 패러다임이나 유행어는 자세하게 까보면 대부분 크게 색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뭔가 이들이 색다른 것 처럼 포장을 하고 돈이 몰리도록 만듭니다.

기후변화? 무섭지 않아?


환경에 대한 경각심, 그 중에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부분은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래토록 경고를 해오고 있는 부분입니다. 방구석 일개 블로거인 저는 제 마음대로 글을 쓰지만 환경과 관련한 연구를 하는 수 많은 기관 소속 연구원 분들과 교수님들은 여러가지 근거와 팩트를 가지고 말씀을 하시죠. 그리고 그분들이 내놓는 연구 결과와 팩트들은 그분들의 화려한 스펙과 콜라보를 이루면서 위압감과 권위가 넘치는 자료가 되어 전세계에 타전되어 활용됩니다.

특히 그 자료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세계의 대자본가들에게 요긴하게 쓰입니다. 위에서 했던 이야기를 연결해보면 기후변화도 사람들에게 과도한 공포를 심어주면서 자본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려는 시도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내 안의 작은 음모론 하나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엄청난 대기근들은 많았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절할 정도의 대혼란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오롯이 인간들의 활동 때문인건지에 대한 의문이 많습니다. 학자들은 몇몇까지 과거와 다른 패턴들을 들어서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물론 이분들의 위대한 노력 덕분에 인간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근의 환경 변화가 설령 사람들의 업보의 결과라 칩시다. 저는 그래서 발생하는 전염병의 증가, 기후의 변화 조차도 모두 우주와 지구의 자연 치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끔 블로그에서 언급하지만 인간들이 정말로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다면 지구 입장에서 인간은 암세포와 같습니다(저 역시 지구에겐 암세포입니다). 인간을 때려 잡는 질병과 환경 요인들은 모두 지구 입장에서는 백신인 것이구요.

재미있는 것은 일단 지금까지 인간들은 여러가지 숱한 위기들을 넘기면서 인구를 불려왔습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은 지구 환경과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이 승리하여 꽤 오랫동안 번영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환경을 마구 파괴하면서 살자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니 오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ESG? 사다리 걷어차기?


개인적으로 최근 중국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 참 비호감입니다. 그렇지만 ESG는 확실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싶었습니다.

ESG. 명분은 아주 좋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명분들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희 주식쟁이들 입장에서도 ESG 점수가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겠구요. ESG는 전문분야입니다. 꽤 오래전 과거부터 존재하던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CSR이 주목을 받았고 ESG는 크게 주목을 못 받았습니다. CSR과 ESG가 아주 다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결은 또 다릅니다.

어쨌든 아주 커다란 틀에서 보면 올해 들어서 갑자기 ESG가 급부상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저는 미중패권 경쟁을 꼽습니다. 미중패권경쟁 나아가 서방권의 국가들과 범중화권의 힘 싸움 중에 튀어나와 사용되는 카드 중 하나가 ESG입니다. 중국은 E, S, G 모든 부문이 취약합니다.

글로벌 시장을 주무르는 몇몇 연기금들은 ESG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켜서 투자합니다. 여기서 벌써 많은 중국 기업이 탈락합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E, S, G 무엇하나라도 지키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환경을 지키면 가격을 앞세우는 중국산 제품들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사회와 지배구조 문제는 정말 풀기 힘든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ESG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환경보호 같은 건 허울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기업들에게 실제 ESG 지표가 투자 집행에 사용되는 것은 긍정적으로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나아가 지배구조 문제나 소액주주에 대해서도 부당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ESG의 힘이 쎄져서 중국이 좀 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을 알지만서도...

어쨌든,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 전 지구의 석학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큰 형님들이 똥을 된장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된장입니다. 투자자는 유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힘의 방향이 어느쪽을 향하고 있는지 더듬이를 세워두고 형님들에게 역행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형님들이 환경쪽에 돈을 쓸거라고 하면 저희 같은 소시민은 그 이야기에 잘 따르고 투자하면 됩니다.

기후변화에서 살아남는 법


곧장 내린 결론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역사서를 보면 한 국가나 지역이 통으로 대기근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오랫동안 기근이 진행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왕왕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그 지역의 통치자나 부자는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이 지냅니다. 대기근으로 백성들이 죽어 나가도 통치자는 맛있는 음식을 문제 없이 즐기며 평온하게 지냅니다.

이 사례만 놓고 봤을 때, '기후 변화로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부자들은 큰 문제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벌써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맹렬한 폭염에도 하루종일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지냅니다. 그러나 에어컨을 돌릴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나 국가의 사람들은 폭염에 쓰러져 갑니다. 

빙산이 녹으면서 해안저지대가 침수되기 시작하면 고지대의 땅 값이 당연히 올라갈테죠. 저도 생각한 부분인데 모 서울대 교수님께서 벌써 이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고지대의 땅값은 올라갈 것이고 자연적으로 해안가 저지대에서 주택 침수 피해를 입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요. 뭐 이것 말고도 숱한 현상들이 생길 것입니다.

어쩌면 기후변화에 살아 남는 법으로 부자가 되시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사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급진적인 학자들은 지구가 이산화탄소로 뒤덮혀 가면서 금성처럼 죽음의 별이 될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에 공포를 느끼면서 지금을 살아가는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현재를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는거지'라고 생각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레 현명합니다. 인류가 다 사라지고 다시 지구가 식으면서 새로운 생명체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겠지요.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사는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500년 후 인류 멸망을 걱정하면서 현재 눈앞에 놓인 맛있는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에 더 나은 삶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공포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2021년 8월 29일
송종식 드림


2021년 7월 26일 월요일

나는 UFO를 본 적 있다

요즘 부쩍 UFO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기분탓인가. 내가 어릴적,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UFO 이야기가 붐을 이뤘던 적이 잠시 있다. 그때는 대부분 공포요소나 미스테리 요소로 다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최근의 UFO에 대한 이야기는 그런 요소보다는 뭔가 그것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돌아 다니고 있음을 확신한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다.

미 공군이나 NASA가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한 존재를 인정하는가 하면 CCTV나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기에서 UFO가 촬영되고 있다. 촬영기기의 보급으로 과거보다 곳곳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찍힐 가능성이 확연히 높아졌다. 또, 과거보다 영상 판독 기술도 좋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어설픈 합성 따위로 사람들을 속이지 못한다.

요즘 UFO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나도 20여 년전 UFO를 목격한 추억이 떠 올랐다.

때는 군복무를 하던 시절. 장소는 포항의 모 해안초소. 보통 해안 경계 근무는 2인이 1조가 되어 서게 된다. 당시에 나는 짬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근무는 항상 선임들과 들어갔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야간 해안 경계 근무를 서게 되면 선임들은 들어가자마자 초소에서 잠을 잔다. 후임은 서서 경계를 서는데, 보통은 바닷가 쪽을 안보고 간부가 오는지 안 오는지를 지킨다. 간부가 들어오면 잠자는 선임을 깨운다. 그게 경계 근무를 서는 후임의 주요 임무 중 하나였다. 이건 국방부장관님도 모르실 1급 군사 기밀인데 이렇게 누출해도 되나 모르겠다.

군에 다녀오지 않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시면 몹시 불안감을 느끼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이렇게 허술하게 경계를 서는 것 같아도 의외로 바닷가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면 놓치지 않고 잘 잡아낸다. 그러니 든든하게 두발을 뻗고 주무셔도 된다.

해안쪽도 가끔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았다. 군용 초소는 일반인들이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에 숨어 있었다. 그래서 가끔 민간인이 진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 해변 끝단까지 차량들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다. 한밤중에 그런 곳에 들어오는 민간인 차량들은 목적이 대부분 뻔했다. 우리는 가끔 그런 차량에 무슨 군사작전을 하는 마냥 조심스럽게 접근하여, 차량 유리창에 몰래 붙어서 좋은 구경을 하곤했다.

어쨌든 이날 야간 경계근무도 그렇게 평소처럼 평화로웠다. 선임은 초소 안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나는 초소 바깥에서 야시경으로 부지런히 바닷가 쪽과, 해안쪽을 감시했다.

야시경으로 하늘을 보면 별이 무척 잘 보인다. 나는 어릴적부터 별을 좋아했다. 그래서 경계근무를 서면서도 나는 이따금씩 야시경으로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한 불빛이 잡혔다.

일단은 가만히 있으면 다른 별들과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빛은 움직임이 있었다. 현대 인류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형태의 움직임과 속도였다. 나는 탄성을 질렀다. 혹시 인공위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지만 평소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는 나는 인공위성과, 항공기의 움직임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인공위성은 아니었다.

눈에서 야시경을 떼고 보았다. 야시경을 쓰지 않아도 그 빛은 아주 잘 보였다. 동쪽 하늘에서 서쪽 하늘로 순식간에 이동하는 모습이 경이로웠다. 서쪽으로 이동한 불빛은 1초 정도 급정거를 하여 제자리에 멈춰있더니, 순식간에 3개로, 그리고 6개로 분열되었다. 내가 가진 기초적인 물리학적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아마 그것을 보았다면 누구나 그리 느꼈을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보아서 그렇지 상당한 거리를 저 정도로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계속 나를 경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6개의 불빛은 다시 하나로 합쳐져서 순식간에 동쪽 하늘로 사라졌다. 커브를 틀어 이동하는 속도도 정말 순식간이었다. 비행기나 인공위성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곧장 90도로 방향을 틀어 순식간에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형태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들은 것이 아니면 어떤 사실에 대해서 잘 믿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그때도 내가 피곤해서 헛것을 보았나 싶어서 멍하니 서 있었다. 하늘을 계속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아까 그 불빛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이번에는 초소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 선임을 용기내서 깨웠다. 자고 있는 선임을 깨우거나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자살 행위이다. 당시에 나는 짬밥도 거의 먹지 않은 상태였고, 같이 근무를 서던 선임은 떨어지는 낙엽도 멈춰 세운다는 상병 말호봉이었다.

"OO해병님, OO해병님"
"왜? 간부 올라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아.. 새끼야 근데 왜 깨워"
"그게 아니라 하늘에 UFO가 있습니다"
"아, 이 미친놈아, 기어이 돌았나. 그런거 없으면 쳐 맞을 줄 알아라"

잠을 자던 선임은 나의 긴박한 행동에 귀찮다는 듯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입으로는 온갖 짜증을 다 내뱉으면서.

밖으로 걸어나온 선임에게 내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선임은 입에서 탄성을 질러댔다.

"와, 저게 뭐야. 와 뭐야 저게 도대체 우와!!"

이제는 나보다 선임이 더 신난 것 같았다. UFO도 UFO지만, 그 자리에 그 친구들이 있어줘서 고마웠다. 혹시라도 사라졌으면 나는 그날 가루가 되게 얻어 터졌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는 게 입증되었다. 나는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UFO 이야기를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에 나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UFO가 외계인이 타는 비행체라고는 단정하지 못해도 뭔가 신기한 비행체가 실재하기는 하는구나!"

근무를 함께 섰던 선임과 나는 아침 식사 시간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당연히 모두 믿지 않았다. 우리 둘만 미친 인간들 취급을 받았다. 상병 말호봉 선임은 병장 선임들에에게 엄청난 놀림을 당했다. 나는 내 윗 선임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같이 UFO를 본 선임과 나는 무척 억울했다. 어쨌든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 선임과 나는 확실히 보았고,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야간 경계근무 장소에 진입하는 해병대원들 <자료: 연합뉴스>

내가 가끔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늘상 되묻는 이야기들이 있다.

질문 1) 야시장비에 뭔가 묻었거나 빛이 번진것은 아닌가? 이건 확실히 아니다. 베테랑 군인이 빛 번짐과 이상한 비행체가 날아다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리가 없다. 그리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야시 장비를 쓰지 않고 맨눈으로 보아도 그 빛은 잘 보였다.

질문 2) 날파리나 날벌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UFO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이것도 아니다. 당시 초소는 빛이 거의 없었다. 그런 것도 가로등 빛이나 무언가 있어야 할텐데 어두컴컴한데 날벌레가 보일리가 없다. 또한, 날벌레가 움직이는 패턴과 그 비행체가 움직이는 형태는 확실히 다르다. 베테랑 군인들이 날벌레 날아다니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리도 없다. 당시 나는 시력이 2.0이었다.

질문 3) 인공위성 아닌가? 이 부분은 어릴적부터 별을 보았기 때문에 확실히 구분한다. 그리고 동쪽 지평선 부근과 서쪽 지평선 부근을 순식간에 왔다갔다 하고 빛이 3개로, 6개로 분열되는 군무까지 보여줬는데, 인공위성은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한다. 나 뿐만 아니라 그 선임도 탄성을 질러댔으니.

질문 4) 드론 같은 것은 아닐까? 당시에 드론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드론의 움직임을 보았을 때 드론으로는 택도 없는 움직임을 가진 물체였다. 그리고 드론이 그렇게 떠 다닌다면 아마 우리 방공망이나 감시장비에 감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소초 옆에는 TOD를 운용하는 소초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높은 고도에서 움직이는 비행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체였으므로 절대로 드론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그 비행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외계에서 온 것일까? 우리 후손들이 타고 온 미래의 비행체일까? 아니면 어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비밀리에 연구하는 비행체였을까?

2021년 7월 26일
송종식


2015년 12월 7일 월요일

태국 방콕 여행 사진 대방출 (데이터 주의)

월급으로 탱자탱자 먹고 살던 시절. 직장 동료들과 함께 한 방콕 여행.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다가 재미있는 영상들이 나와서 새벽에 잠도 안오고 두서없이 포스팅. 난 뭐든 체계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하는 병적인 증세가 있는데. 이거는 그러지 말고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대충 막 올려보자. 여행 포스팅은 귀찮아서 자꾸 미뤄지게 됨.



동영상 감성이 금주 누나 감성이다. 금주 누나가 찍은건데 막 일케 올려도 되나 모르겠지만 일단 올리고 봄. 나중에 뭐라하면 지워야지.

2011 필리핀 플레이샵에서 웹개발2팀 형님들과

복지가 좋은 회사( 1 / 2 / 3 / 4 )였다. 여러 좋은 복지제도 중 플레이샵이라는게 있었다. 이걸 1년에 한번씩 보내줬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골프를 치러가던지 여행을 가면 된다. 골프회사다 보니 골프는 밥 먹듯이 쳐서 좀.. 무슨 배부른 소리냐 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밥도 매일 먹으면 질림. 잉?

출처 : 네이버 금융

다니던 회사는 시가총액 1조는 가뿐히 넘을 줄 알았는데, 1조의 벽을 못 넘고 있다. 최근에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똑똑한 분들 많고 저력 있는 회사니 잘 이겨나가겠지. 부자는 걱정하는거 아니랬나?

뛰어서 가자 태국 ㅋㅋ

어쨌든 밥 먹듯이 치는 골프는 넘 지루했다. 진짜 밥 먹고 골프만 쳤다. 업무 하다가도 골프, 점심 먹고도 골프, 워크샵은 거의 무조건 골프장. 그래서 2013년 플레이샵때는 골프 여행 말고 방콕 여행을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여행이 내게는 마지막 플레이샵이 됐고, 결정적으로 좋은 인연들과 멋진 추억을 쌓은 계기가 됐다. 이 여행이 끝나고, 얼마 못 가 전업투자 할거라고. 자유를 찾겠다고 퇴사 결정. 나 퇴사한다니까 금주 누나 울먹했음. 사람들과의 이별은 언제나 슬픈것임.

출국전엔 언제나 설렘설렘

금주 팀장님 누나랑 터미널에서 비행기 기다리면서..
간다~

6시간 정도 날아간 듯. 넘 심심해서 비행기 안에서 종목 분석했음. 옆에 팀장님이 앉았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종목 분석. 지금 생각해보면 왤케 찍힐 행동을 많이 했을까. 직장인 분들, 종목 분석은 집에서 은밀히.

방콕 무사 입국 기념. 방콕팀 단체 샷.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단체샷을 한컷 찍고 일정시작. 도착하니 늦은밤. 하여간 방콕팀 무지무지 많다. 다 골프치기 싫어서 방콕으로 도피 온 사람들 맞나.

Sukhumvit 5 Alley의 한국인 떼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안 풀고 술부터 찾아떠남. 정말 멋진 술꾼들이다.

태국에 왔으면 싱하형~

싱하. 널 만나고 싶었다. 워밍업은 싱하로. 각자 한병씩 들고 마셔마셔.

수심 2.6m 풀장에서도 여유있는 아재들

나도 그렇고 다들 그란데 센터포인트 터미널 21 호텔을 가고 싶어했다. 다른 분들은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풀장때문에. 그런데 우리 방콕팀 인원이 너무 많아서, 방이 모자라서 부킹 실패. 결국 랜드마크 호텔로 오게됐다. 풀장 진짜 별로별로. 사방이 다른 빌딩에 다 막혀있어서 답답하고 크기도 작음. 수심만 깊어. 짧고 굵은 느낌. 그란데 센터포인트 터미널 21은 내 꼭 가고 만다.

랜드마크는 나나역쪽이라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그란데 센터포인트 터미널 21은 아속역에 붙어있어서 걸어다니면서 놀기에는 위치가 훨씬 좋다. 아. 랜드마크 아침 식사는 괜찮았음. 만족.

먕이 누나랑
금주 누나랑
참 좋은 사람 철호형이랑

이분들 풀장에서 남직원들하고 안 마주치려고 몰래몰래 숨어다니다가 딱 걸림. 걸린 기념으로 기념 사진 찰칵찰칵.


방콕 왕궁

왕궁 진짜 오지게 더웠음. 몇몇 직원분들은 다른 여행자들의 리뷰를 읽고 무지무지 덥다는 정보를 입수. 그래서 왕궁 안옴.

왓 프라깨우를 배경으로 친구 성기랑 좋은 사람 철호형이랑

그래서 동갑내기 동료 성기랑, 철호형이랑 나랑 셋이서만 왕궁 탐험 도전.

좋은 형 철호형이랑 다정 컷
성기랑 다정 컷

정말 무지무지 더웠다. 가만히 있어도 사우나에 온 것 처럼 땀이 뻘뻘. 가슴팍에 땀 좀.. 차오프라야 강을 끼고 있어서 그런건지, 도대체 왜 왕궁만 이렇게 더운건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됨. 실제로 국왕들이 집무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더운 곳에서 어찌 지내셨을까나.



독특한 외관을 가진 스타벅스. 근데 인테리어는 여느 곳과 똑같음.



왕궁을 보고 나서 철호형이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우리 사서 고생 좀 할까?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닐까?"
"네."
"택시 타지 말고 걷자, 여행지도 버리고 아무곳이나 걷자, 여행 리뷰에 없는 곳으로 가자, 현지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자."
"네."

성기랑 나는 그런거 좋아해서 흔쾌히 동의.
지저분하고 비좁은 골목을 돌고 돌아 이름도 모를 이런 허름한 밥집을 발견했다.



이게 바로 현지인들이 먹는 진짜 팟타이. 성기랑 나는 이미 팟타이 중독이 돼 있었다. 가격도 관광지에서 파는 가격의 1/5수준.



나름 물가에서 먹으면서 운치도 있었다. 이런거 좋다좋아.



여기는 시암스퀘어. 택시 기사분에게 말할때는 '시암'이라고 하면 잘 못 알아 듣고, '사이암'해야 알아들음.











허세 ㅋㅋㅋㅋㅋ


어르신 거기서 뭐하세요(ㅋㅋㅋㅋ)

난도질 당한 망고 이거 맛남
성기, 재경이형, 철호형, 종식
사진 찍기 바쁨
한 입 하실래예

망고탱고는 진리. 어차피 방콕 여행자들은 꼭 한번씩 들러보겠지만. 정말 머스트 잇. 단점이 있다면 줄을 무지무지 오래 서야 함. 거짓말 조금 보태서 줄 서느라 반나절 중 절반은 날아간 듯.

한입 하실래예
망고탱고 옆집
망고탱고 옆옆집
유부남들의 딸래미 옷 구매

성기랑 나랑은 참을성이 없다. 그래서 형님들과 누님들을 줄 세워두고 몰래 빠져나와 쇼핑을 했다. 망고탱고 옆에 이름 모를 군것질거리도 사먹었다. 그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옷가게들이 쭉 있다. 거기서 고국에 있는 딸래미들에게 줄 옷을 몇벌 샀다. 글로벌 딸바보들.

희수 누나, 재경이형, 금주누나, 성기, 종식

뱃속에 망고탱고 충전하고 다음 행선지로 출발.

유람선을 기다리며~
우리 유람선은 언제오나~
유람선 타니까 기분 좋다
귀여운 어벤져스 재경이형


라마 7세(쁘라차티뽁) 다리
엠.. 엠..?
가면 쓰신 분 나쁜 손 ㅋ
유람선에서 저녁먹기 전 단체샷

좋은 사람 철호형의 제안으로 오르게 된 유람선. 첨에 다들 반발이 장난 아니었음.
"팀장님 저런건 연세 많으신분들이 타고 유람하는거에요.. 우린 좀 ㅠ.ㅠ"
다들 이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유람선에 탑승하고, 공연보고, 맛있는 저녁 먹고, 밖에 나가서 방콕의 수상 야경을 즐기면서, 분위기 반전. 다들 옳은 선택이었다고 엄지 척! 차오프라야강의 평화로운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희수 누나, 먕이 누나, 좋은 사람 철호형

나나역에서 슬금슬금 걸어서 아쏙까지 옴. 아쏙의 맛집이라 하는 쑤다에서 아점섭취. 그냥 야외 밥집 느낌인데, 얼마나 맛있나 볼까.

쑤다에서 주문한 똠양꿍

말레이시아의 그 이상한 향신료, 베트남의 고수, 중국 사람들이 파는 뻔데기에 전갈 어지간하면 다 즐겼는데 왜 똠양꿍은 못 먹겠지. 다른 사람들은 맛있다고 잘만 먹던데. 이거 향이 진짜 >.< 여행 중 몇번 도전했지만 똠양꿍 10숟갈 이상 섭취에 실패.



태국 여행중에는 짬나는대로 꾸준히 마사지를 받아야 함. 그리고 나중에 가면 마사지 받는거 말고 딱히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 내내 마사지만 받았다는데 그러면 근육 망가질텐데. 그건 오바.



기다리는 동안 다들 심심해서 이러고 놀았다.

Utaitip(อุทัยทิพย์)

헬스랜드에 다녀 온 사람은 이 차를 잊지 못한다. 진짜 맛있다.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암튼 진짜 정말정말 맛있음.



찐한 이미지. 분위기 묘하네.



마사지실은 깔끔하고 무난하다. 당연히 남직원들과 여직원들이 다른방에 분리돼 마사지를 받았다.



Soi Sukhumvit 11 길가에 위치한 고급레스토랑 로사비엥.



로사비엥 마을과 역을 중심으로 레스토랑의 모티브를 잡았다.

카우팟옵싸파롭

파인애플 밥. 카우팟옵싸파롭이라고 부름. 저기 위에 짚단처럼 생긴거는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한입 먹는 순간. 우와 신세경. 입에 들어가자 마자 살살 녹으면서 달달함.





좋은 사람들과 낮술 한잔. 캬~ 좋다.



같은 시각. 성기네 팀은 역시 고급진 레스토랑인 반 카니타 입성.



나도 가고 싶었던 곳인데, 반 카니타. 배쉰자들.

외쿡인 아저씨들 초상권은 못 지켜드림
카오산로드 진입

전세계 젊은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 카오산로드에 드디어 진입. 좋다 좋아. 전세계 온 인종 다모여서 술판을 벌리고 친구를 먹는 핫플레이스.

꼬마 파퀴아오
꼬마 옹박

카오산로드에서 꼬마 파퀴아오를 만났다. 덤볐다가는 맞아죽을 것 같았다. 그 녀석 참 귀엽네. 아저씬 너한테 못 이긴다. 훌륭한 파이터가 돼라~

 사와디 캅




이분들 서로 마주보고 셔터누르고 난 가운데 껴서 ㅋㅋ
카오산로드의 저녁, 밤에 더 빛나는 곳.. 곧 있음 빛난다
딸바보 1
딸바보 2

성기랑 나는 틈틈이 아기 옷을 샀다. 딸을 낳으면 누구나 딸 바보가 된다. 아이가 셋이나 넷쯤 됐으면 돌아오는 가방 가득히 아기옷을 샀을텐데, 외동딸이라 그게 아쉽다. 태국에 왔으니 코끼리 옷 하나쯤 사야지 싶어서 샀다. 성기는 원피스 타입으로 나는 아들래미 컨셉으로 하나샀는데 집에와서 입혀봤더니 잘 어울리고 귀여웠다.



















카오산에서 빠져나오면서 발견한 노점 과자들.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무지 맛있었다.

사랑하는 철호형과 다정한 시간 1
좋은 사람 철호형과 다정한 시간 2
사람 좋은 철호형과 다정한 시간 3
반얀트리 1층에서

반얀트리 도착. 숙박 때문은 아니고, 루프탑 바에서 놀려고~ 반얀트리 루프탑바 버티고 & 문바의 기본 드레스 코드는 슬리퍼, 반바지 입장 불가.

룸피니 공원 방면으로 뷰

방콕에는 시로코, 바이욕, 레드스카이 등 루프탑 바가 몇개 있다. 다른 곳은 혼잡할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우리는 반얀트리로 향했다. 위에 보면 왼쪽 저 멀리 우뚝 솟은 건물이 바이욕 스카이 호텔이다. 3성급 호텔인데 루프탑 바 때문에 유명하다고 한다.



차오프라야 강 방면 뷰






음료 주문은 태블릿으로


루프탑 바의 분위기는 대충 이럼. 태국 본토 애들은 잘먹고 잘 사는 금수저 애들. 금수저들이 외제차에 예쁜 여자들 데리고 와서 데이트 하는 분위기. 외국인들은 우리처럼 티셔츠 쪼가리 허름하게 입고 와서 즐기는 분위기... 어쨌든 커다란 달도 뜨고 날씨도 좋고, 분위기도 좋았다. 그렇게 방콕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여기는 라바나스파

또 마사지 받으러 옴. 태국 여행 중에는 틈틈이 마사지를 받아야 함. 정말 끝없이 마사지.. 마사지.. 마사지 정말 싸다.





기다리는 동안 차도 마시고, 아이스크림 한 입 하면서...



사진도 찍고.



마사지 먼저 끝난 사람들의 대기. 벌써 밖은 어둑어둑.

수완나품의 두 한국 젊은이

이젠 슬슬 집에 가야 할 시간.



네, 님들 한국 사람 맞고요~



팟타이에 중독된 성기와 나는 수완나품 공항에서 또 팟타이를 찾아 헤맸다. 공항이라고 꽤 깔끔하게 나옴. 가격은... 헐. 아~ 팟타이 먹고 싶다.


요거 올해 어떤 일본인이 찍어서 올린건데. 우리가 탔던 OZ742편, 우리 비행기에는 윙렛이 없었는데. 편명만 같고 비행기 기종은 다른거. 이 일본인이 탄건 A330 계열인듯. 어쨌든 집에가는 비행기 그 기분. 살짝. 이륙할 때 느껴지는 힘은 언제나 좋다.







인천 도착.

별첨 : 방콕의 맛집과 숙박시설, 관광지 지도

2015년 12월 5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