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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석유 고갈론

저는 1990년대에 초등학생(당시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시골에서도 한참 더 시골인 깡촌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엔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 장비가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대부분의 정보를 학교 도서관과 TV에서 얻었습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오면 동네 어르신들과 학교 선생님들에게 얻는 정보가 전부였습니다.

당시에 시골 초등학교의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있는 것들 말고도 어린 저희들에게 무언가 많이 주입시키고 가르치고 싶어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세상물정을 하나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정치적인 사상도 주입하려고 부던히 세뇌 작업을 하던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스승이 아니고 참 나쁜 어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론 소수의 그런 분을 빼면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현명하고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어렸으니 그런 개념조차 없었네요. 어쨌든 오늘은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당시에 몇몇 선생님들께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경고를 하셨던 것들이 있습니다. 근래 그 중 두어가지가 기억에 남아서 계속 제 머리를 맴돕니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석유는 고갈되어 있을 것이다


제 또래분들은 이 이야기가 기억이 날것입니다. 정말 기름이 곧 고갈된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에너지를 아껴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던 사람들은 선생님들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님들께서 악의적으로 저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닐것입니다.

석유 매장량 <자료 : 한국경제신문>

그때 자료들을 찾아보니 실제 그때는 석유고갈론이 실재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떠돌던 이야기는 아니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떠돌던 이야기였습니다. 석유는 앞으로 20~30년치 밖에 남지 않았다. 항상 이 이야기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걱정을 안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확인해보면 당시보다 석유 매장량은 훨씬 많이 늘어났습니다. 고갈되기는 커녕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펑펑 쓰고도 남을 유전이 발견되고 석유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른이 되면 물을 돈주고 사먹는 시대가 올것이다


사회시간이었나?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어른이 된 미래에는 물도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유는 환경오염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서야. 그리고 물도 점점 말라서 없어 질지도 몰라."

이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 중 원인은 틀렸고, 결과는 현재 맞아 떨어졌습니다. (국내 생수는 94년부터 시판)

자료 : 매일경제

일단 다른 나라의 사정은 잘 모르겠습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처한 상황이 워낙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는 환경 때문에 물을 사먹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희가 어릴때도 수돗물에 불소가 들어있으니 충치가 예방된다고 그냥 먹으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2020년대인 지금도 서울에서는 아리수는 그냥 먹어도 된다고 홍보를 합니다. 문제는 노후상수관이지 넓은 범주에서 보면 일단 제 삶에서 환경 때문에 물을 사 먹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건강과 기호를 위해서 설탕물 섭취를 줄이고 물을 사 먹는 경향이 더 큽니다. 그리고 물을 끓이거나 정수하기가 귀찮아서 편의를 위해서 생수를 사먹는 측면이 환경 때문에 먹을 물이 없다는 이유보다 더 큰 이유입니다.

과도한 공포마케팅에 현혹되지 말 것


위의 두 사례의 경우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습니다. 그 키워드는 '미래에 대한 공포'입니다.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나중에야 석유업자들과 국제 금융 권력이 만들어서 퍼트린 이야기라는 것이 정설이 되었습니다.

공포는 훌륭한 마케팅 수단입니다. 공포를 팔아 번영하는 분야는 대표적으로 보험과 종교가 있습니다. 

"살다가 병이 걸리거나 사고가 나면 막대한 돈이 지출돼. 그때는 감당이 안 될테니 보험하나 들어봐."
"우리 신을 믿지 않으면 너는 죽어서 평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 받게 돼. 그러니 우리 신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봐"

또한, 공포는 분노와 결합하여 정치인들의 표 장사를 위해서도 중요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권력을 장악하면 이 세상은 끝나고 말 것이라는 공포와 분노를 심어줍니다.

큰 틀에서는 어쩌면 우리 인생 거의 전체가 이 공포를 기반으로 한 불안이 삶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어느 정도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무 매몰되면 세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일어난다고 믿으면서 엉뚱한 곳에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과도한 공포를 갖지 않아도 해당 분야에서 열심히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투자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리스크는 냉정하게 판단하고 관리 되어야 하지 미래를 온통 부정적으로만 보고 공포로만 보면 제대로 된 투자를 영위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미래에 대한 통찰과 전망을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합니다. 또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는 미리 생각과 준비를 해두고 언제든 대응은 할 수 있어야 합니다만, 100가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 중에서 어떤 단 하나의 사안에만 매몰되어 편견을 갖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동 당하기 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


저희들에게 석유 고갈론을 설파하셨던 선생님들 역시 국제 투기자본 세력과 석유업자들에게 선동을 당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생각의 거리를 한뼘만 더 늘려보았다면 의구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유전은 계속해서 새롭게 발견되며, 인류의 기술도 계속해서 발전합니다. 유전을 발견하는 기술, 시추 기술,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할 기술 그리고 에너지의 효율을 높일 기술 등이 있습니다.

물 오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애초에 물을 덜 오염시키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오염된 물을 정수처리 할 수 있는 가능성 등 다양한 가능성의 문도 열어놓고 생각을 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물을 사 먹는 지금 시점에 생각해 볼 점도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도 누구나 공짜로 쓰고 있는 자원들. 그러니까 공기나 바람, 눈, 비와 같은 것을 파는 시장도 큰 시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공기를 사다 마신다는 이야기도 제가 태어나기 전 부터 나왔던 이야기고 이미 공기를 파는 업체들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습니다만, 아직 물 시장만큼 대규모 시장으로 키우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ESG, 기후변화 아젠다


원래 존재했건 존재하지 않았건 어떤 용어가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에게 급격하게 번지면서 회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퍼뜩 떠오르는 단어 중에 웹2.0이 그랬습니다. 최근에 메타버스라는 단어도 그렇죠. 그리고 ESG도 그렇습니다.

메타버스나 ESG나 올해 들어서 갑자기 온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들은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오랫동안 연구되고 다뤄지고 있던 것들입니다. 

특정 용어가 이렇게 갑자기 이슈가 되는것을 촉발하는 것은 언론입니다. 몇몇 언론에서 크고 굵은 폰트로 몇번만 대서특필하며 사람들에게 '마 이게 유행이다!'하고 논조를 밀어 붙이면 실제 그게 유행이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보통 자본가들이 있습니다.

이런 패러다임이나 유행어는 자세하게 까보면 대부분 크게 색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뭔가 이들이 색다른 것 처럼 포장을 하고 돈이 몰리도록 만듭니다.

기후변화? 무섭지 않아?


환경에 대한 경각심, 그 중에 특히 기후변화에 대한 부분은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이 오래토록 경고를 해오고 있는 부분입니다. 방구석 일개 블로거인 저는 제 마음대로 글을 쓰지만 환경과 관련한 연구를 하는 수 많은 기관 소속 연구원 분들과 교수님들은 여러가지 근거와 팩트를 가지고 말씀을 하시죠. 그리고 그분들이 내놓는 연구 결과와 팩트들은 그분들의 화려한 스펙과 콜라보를 이루면서 위압감과 권위가 넘치는 자료가 되어 전세계에 타전되어 활용됩니다.

특히 그 자료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세계의 대자본가들에게 요긴하게 쓰입니다. 위에서 했던 이야기를 연결해보면 기후변화도 사람들에게 과도한 공포를 심어주면서 자본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려는 시도중에 하나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내 안의 작은 음모론 하나가 있습니다.

과거에도 엄청난 대기근들은 많았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가 멸절할 정도의 대혼란도 있었습니다. 저는 지구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이 오롯이 인간들의 활동 때문인건지에 대한 의문이 많습니다. 학자들은 몇몇까지 과거와 다른 패턴들을 들어서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물론 이분들의 위대한 노력 덕분에 인간들의 삶이 더 나아지는 것도 사실이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최근의 환경 변화가 설령 사람들의 업보의 결과라 칩시다. 저는 그래서 발생하는 전염병의 증가, 기후의 변화 조차도 모두 우주와 지구의 자연 치유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끔 블로그에서 언급하지만 인간들이 정말로 지구에 해를 끼치고 있다면 지구 입장에서 인간은 암세포와 같습니다(저 역시 지구에겐 암세포입니다). 인간을 때려 잡는 질병과 환경 요인들은 모두 지구 입장에서는 백신인 것이구요.

재미있는 것은 일단 지금까지 인간들은 여러가지 숱한 위기들을 넘기면서 인구를 불려왔습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일단은 지구 환경과 인간의 대결에서 인간이 승리하여 꽤 오랫동안 번영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환경을 마구 파괴하면서 살자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니 오해가 없으면 좋겠습니다.

ESG? 사다리 걷어차기?


개인적으로 최근 중국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 참 비호감입니다. 그렇지만 ESG는 확실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생각은 다 비슷하구나 싶었습니다.

ESG. 명분은 아주 좋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명분들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저희 주식쟁이들 입장에서도 ESG 점수가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좋겠구요. ESG는 전문분야입니다. 꽤 오래전 과거부터 존재하던 개념입니다. 과거에는 CSR이 주목을 받았고 ESG는 크게 주목을 못 받았습니다. CSR과 ESG가 아주 다르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지만 결은 또 다릅니다.

어쨌든 아주 커다란 틀에서 보면 올해 들어서 갑자기 ESG가 급부상 하는 가장 큰 이유를 저는 미중패권 경쟁을 꼽습니다. 미중패권경쟁 나아가 서방권의 국가들과 범중화권의 힘 싸움 중에 튀어나와 사용되는 카드 중 하나가 ESG입니다. 중국은 E, S, G 모든 부문이 취약합니다.

글로벌 시장을 주무르는 몇몇 연기금들은 ESG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지켜서 투자합니다. 여기서 벌써 많은 중국 기업이 탈락합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E, S, G 무엇하나라도 지키기가 힘든 실정입니다. 환경을 지키면 가격을 앞세우는 중국산 제품들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사회와 지배구조 문제는 정말 풀기 힘든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ESG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환경보호 같은 건 허울좋은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기업들에게 실제 ESG 지표가 투자 집행에 사용되는 것은 긍정적으로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환경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나아가 지배구조 문제나 소액주주에 대해서도 부당한 행위를 할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ESG의 힘이 쎄져서 중국이 좀 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변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을 알지만서도...

어쨌든, 실체적 진실이 무엇이 되었든 전 지구의 석학들과 자본가들, 그리고 큰 형님들이 똥을 된장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은 된장입니다. 투자자는 유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 사람들이 주장하는 힘의 방향이 어느쪽을 향하고 있는지 더듬이를 세워두고 형님들에게 역행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형님들이 환경쪽에 돈을 쓸거라고 하면 저희 같은 소시민은 그 이야기에 잘 따르고 투자하면 됩니다.

기후변화에서 살아남는 법


곧장 내린 결론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역사서를 보면 한 국가나 지역이 통으로 대기근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오랫동안 기근이 진행되면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 먹는 수준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왕왕 서술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그 지역의 통치자나 부자는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이 지냅니다. 대기근으로 백성들이 죽어 나가도 통치자는 맛있는 음식을 문제 없이 즐기며 평온하게 지냅니다.

이 사례만 놓고 봤을 때, '기후 변화로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부자들은 큰 문제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벌써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자들은 맹렬한 폭염에도 하루종일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지냅니다. 그러나 에어컨을 돌릴 경제적 능력이 안되는 사람이나 국가의 사람들은 폭염에 쓰러져 갑니다. 

빙산이 녹으면서 해안저지대가 침수되기 시작하면 고지대의 땅 값이 당연히 올라갈테죠. 저도 생각한 부분인데 모 서울대 교수님께서 벌써 이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고지대의 땅값은 올라갈 것이고 자연적으로 해안가 저지대에서 주택 침수 피해를 입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고요. 뭐 이것 말고도 숱한 현상들이 생길 것입니다.

어쩌면 기후변화에 살아 남는 법으로 부자가 되시라고 말한 것은 매우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사실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급진적인 학자들은 지구가 이산화탄소로 뒤덮혀 가면서 금성처럼 죽음의 별이 될거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에 공포를 느끼면서 지금을 살아가는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현재를 희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는거지'라고 생각하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레 현명합니다. 인류가 다 사라지고 다시 지구가 식으면서 새로운 생명체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겠지요.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사는게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500년 후 인류 멸망을 걱정하면서 현재 눈앞에 놓인 맛있는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에 더 나은 삶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공포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대응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2021년 8월 29일
송종식 드림


2021년 6월 26일 토요일

이대남을 위한 변호 (feat. KBS)

최근 KBS의 시사기획 창에서 굉장히 좋은 다큐멘터리 하나를 내놨습니다. 586세대가 살아 온 길, 그리고 그들이 현재 사회에 눌러 앉아서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들이 만드는 빈부격차와 사회 갈등을 전반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시사기획 창 팀은 이 다큐를 만들면서 초대형 여론조사 결과를 도출하였습니다.

총 210개 항목의 질문과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도 1,200여 명에 달했습니다. 연령대는 현재 청년층에 속하는 20살~34살 젊은 사람들과 586세대에 속하는 사람들로 양분하였습니다.

자료 출처 : KBS

광범위한 항목과 인식에 대해서 조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는 유독 위의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특히, 그 소란의 중심에 '20대 남자들은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른다'라는 날선 비판이 주를 잇고 있습니다.

통계에 묻어 있는 숫자와 그래프는 아무리 단순해도 많은 것을 이야기 해줍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래프를 자기 입맛대로 해석하거나, 단차원으로만 바라봅니다. 위의 결과를 놓고 단순히 '20대 남자는 이기적이다'라고 해석하기엔 너무나 많은 오류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깃거리도 이면에 숨어 있을거라 봅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위의 그래프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혹시 제가 놓치는 것이 있거나, 20~34세 사이에 해당되는 남자분들께서 첨언해 주실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첨언해 주셔도 좋습니다. 저도 배우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세대별 자산격차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비로소 남들이 사는 것에도 시선을 둔다는 이야기 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성인군자급 인물이 아니고서야 보통의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의 앞가림을 해나가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

최근에는 '부자들이 더 착하고, 가난하면 더 사악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이 부분은 굉장한 편견을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아주 부정하기도 어려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3D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이 증언합니다. 부자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인사성도 좋고 예의도 더 바르며, 부자 고객들이 더 예의가 바르고 사려깊은 반면에 가난한 동네에 가면 사람을 하대하고 무시하기 일쑤라는 증언들 말입니다. 모두를 싸잡아 그렇게 바라볼 순 없지만 그런 현상이 아주 없다고도 말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위의 조사 대상에 포함된 중년, 특히 586세대는 사회 진출을 수월하게 시작하여, 평생 직장 개념을 가지고 회사에 다녔으며, 그동안 고도 경제 성장으로 자산 가격 상승의 덕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미 상당한 자산을 보유한 계층입니다.

반면, 조사에 포함된 청년 세대는 말 그대로 허덕이는 세대입니다. 세상 어떤 청년이라도 가난을 피해가기 어렵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지금 청년 세대는 기본적으로 일을 시작할 기회조차 잡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세대별로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가지고 있는 자산의 격차에 따른 하나의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고소득 청년 남성은 왜 그 반대인가?


뒤에서 경제 성장률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만, 미리 그 이야기를 조금 다루어 보겠습니다. 국가의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는 시기에는 국가 경제 성장이 멈추었거나 후퇴하는 시기보다 대체로 부의 분배가 더 잘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고도로 경제가 성장하는 추세에 있는 나라의 국민들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국민들보다 행복감을 더 많이 느낍니다.

국가의 경제가 고도로 성장하고 있으면 사회 구성원들에게는 플러스섬 마인드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마이너스섬의 마인드가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 청년 세대는 국가 경제의 고도성장이 끝나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경제는 심리이며 심리는 벌어질 일을 선반영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이 멈추거나 후퇴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마이너스섬의 감정이 자라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플러스섬으로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 보다는 이미 있는 파이를 남들과 다투어서 쟁취하는 사람이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마인드와 행동의 결과로 청년 부자들이 나오는 것이고 위의 그래프는 그 결과가 나타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경제 성장률의 시대를 살았는가


통계에 나온 '중년'은 586세대로써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던 80년대 중반에서 말 사이의 시기는 그야말로 성장과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경제 성장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던 폭발적 희망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기업 인사팀에 있던 사람들은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다'라고 기억을 더듬어 말해주었고, 당시 청년들은 '어떤 대기업이든 이력서만 넣으면 쉽게 들어가던 시대였다'고 했습니다.

자료출처 : 통계의 늪에 빠지다<biti.tistory.com>

586세대가 청년이던 시절과 비교해서 지금은 확실히 성장 엔진이 꺼져 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위에 첨부한 그래프고 그것을 확실하게 말해 줍니다. 앞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할 수 밖에 없지만, 현재 청년 세대는 역시 먹고 사는 문제가 팍팍하다 보니 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우위시대


확실히 이미 자산을 많이 가진 중년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젊은 여성들보다 남들을 돕는데 더 우호적인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남들을 돕는데 훨씬 우호적인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소득이 낮은 젊은 여성이나 소득이 높은 젊은 여성이나 별 차이도 안 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 권익 신장을 위해서 정치권과 사회가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에는 오히려 여성 정책이 더 중요시 되고 남성들은 차별 받는다고 느끼는 감정이 거세지는데다, 젊은 남성들은 여러가지 사회 복지와 제도적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범위에서도 벗어난 경우가 많아서 더욱 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위의 그래프를 보고나서 들었습니다.

남성과 여성 간 생물학적 차이


남자와 여자의 공감 능력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입니다. EBS에서도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바 있습니다.

중년 남성들이야 이미 먹고 살만 하니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것이고, 이를 제외하면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타인의 아픔에 조금 더 공감 능력이 높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소득이 적은 청년 남성의 경우가 특이합니다. 저 경우는 자신에게 더욱 많은 혜택이 돌아오길 바라고 저런 대답이 나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저소득 청년 남성들은 벼랑 끝으로 몰리기 직전이며 정부에 손을 벌리는 처지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앞서 언급했던 플러스섬과 마이너스섬 이야기의 결과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설문결과와 실제 행동의 괴리는 클 수 있어


저런류의 질문에는 많은 위선적 대답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설문조사에서는 '남을 돕겠다'라고 쓰고 실제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라는 점을 전제로 놓고 생각해 보면 차라리 고소득 청년 남성들의 응답이 솔직해서 좋다라고 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반대로 설문에서만 냉정하게 응답하고 실제로는 남을 돕는 행위를 잘 할 수도 있습니다.

조사 결과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위해서 했던 이야기는 그래프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저의 생각을 끄집어 내어 활자로 펼쳐 써 본 것입니다. 저의 생각이 맞을수도 있고, 단순 편견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저는 위의 통계에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각 연령별 응답결과를 이은 선이 저렇게 깔끔한 형태로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중간에 그 어떤 굴곡이나 변동도 없이 자로 잰듯이 저렇게 아름다운 곡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저는 통계 전문가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상하다고 생각만 할 뿐, 진짜 이상한 것인지 실제로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게 알지 못합니다. 통계를 전공하신 분들께서 이 부분은 알려 주시면 감사합니다.

최근 이대남으로 불리는 20대 남성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정치지형을 바꾸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이들의 이미지를 나쁜 쪽으로 먹칠하고 망가뜨리려는 정치적인 시도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길 바랍니다.

2021년 6월 26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