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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3일 금요일

친정회사 골프존 (기업분석 아님)

골프존. 내게는 친정과 같은 곳이다. 내 월급쟁이 생활의 종점. 2009년에 입사하여 5년 정도 근무했다. 창업과 스타트업을 전전하다가 안착한 곳이다. 월급쟁이는 길게 안 하리라 마음 먹었지만 오래 머물게 되었다. 이때 안정적이고 좋은 기업이 주는 복지와 급여의 달콤함과 무서움에 대해서 깨달았다. 직장 생활에서도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았다.

내가 입사했을 때 회사는 갓 매출 1,000억 고지를 달성한 때였다. 골프존은 2000년에 창업됐다. 삼성전자 출신 김영찬 회장이 창업자다. 창업자가 은퇴 후 '하루에 스크린골프 기계 한대만 팔면 10년 간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소일거리로 시작한 일이다.

2002년에 매출액 10억원을 찍었다. 이후에 2010년까지 매출액이 연평균 2배씩 성장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회사에 활기가 넘치던 때 였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성과급이 월급 배수가 아니라 연봉 배수로 지급되던 시기였다. 성장 곡선은 가팔랐다. 돈은 펑펑 쏟아졌고 내부는 활기찼다. 근무지는 강남의 사조빌딩에서 시작해서 해성빌딩으로, 그리고 청담동의 사옥으로 빠르게 업그레이드 되었다.

청담동 신사옥의 밥은 YG와 더불어 맛있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정말 그랬다. 회사의 복지에 취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회사에 다니는 동안 복지가 좋은 게 안 좋은 것 보단 낫지 않겠는가. 회사의 복지도 좋았고, 같이 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괜찮은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좋은 회사였다. 인재풀도 좋았다. 인근의 IT기업에서 고스펙과 좋은 경력을 가진 분들이 많이 넘어 오셨다. 그래서일까. 나는 입사면접을 한달에 걸쳐서 3번이나 보았다. 남들은 면접을 그렇게 많이 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가 아리까리한 계륵같은 면이 있었나 보다.

내가 입사한지 2~3년 차가 되어 회사는 상장 채비에 들어갔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연일 상장 관련된 이야기가 밥상머리 주제였다. 당시 직원들의 포지션은 3가지 정도로 갈렸다. '지금까지는 잘 했지만 앞으로 회사가 성장할 요인들이 안 보인다'하는 쪽과 '앞으로도 어떻게든 잘 하겠지'하는 쪽이 크게 갈렸다. 나머지 한 쪽은 '나는 회사에 충성한다'파로 갈렸다.

나는 당시에 회사를 몹시 사랑했다. 하지만 내 소중한 투자금을 태우기엔 애매했다. 나름대로 주식 좀 만져 봤다고 회사에 대한 밸류에이션도 해보았다. 답이 안 나왔다. 그래서 나는 우리사주조합 참여를 포기했다. 아마 회사 상부에서는 안 좋게 봤을 수도 있다. 애사심과 충성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우리사주를 취득하는 게 맞다. 하지만 내 생각은 흑백 논리가 아니라 투트랙으로 돌아갔다. 회사는 사랑하고 애사심이 넘쳤다. 하지만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골프존은 상장 후 10년 간 하락했다. 나는 2014년 경 퇴사했다.
<자료 : 네이버>

회사에서는 우리사주 매입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해 줬다. 금리는 0%로 이자는 받지 않았다. 상장 후 장기간 주가가 하락하자 회장님께서 사재도 출연했다. 자기 주식을 100주 갖고 있으면 회장님이 100주를 공짜로 주시고, 500주를 샀으면 추가 500주를 회장님이 공짜로 주셨다. 이때 '아 그냥 주식 좀 살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가는 장기간 하락했지만 어차피 내 돈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가가 영원히 오르지 않으면 빌린 돈은 갚아야 할 빚이기는 했지만.

코로나가 골프존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코로나를 계기로 회사는 다시 한 번 급성장 하고 있다.
<사진 : 네이버 증권>

회사 내부 사정은 알 수 없다. 그래서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서 확인해 보았다. 현재 우리사주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 우리사주를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12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다. 상장 당시에도 시가총액은 1조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뉴딘홀딩스와 영업회사를 합하면 시가총액이 1조 원 수준이다.

반면, 펀더멘털은 아주 좋아졌다. 2020년은 강력한 전염병으로 온갖 신기한 현상들이 역사에 기록될 해이다. 전 세계의 항공 교통과 관광이 멈출 정도였으니 그 위세는 대단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절 한국에서는 골프가 대유행을 했다. 그러면서 골프존의 실적과 주가는 멋지게 우상향했다. '미래가 없다', '더 이상 먹거리가 없다'는 말은 이미 10년도 넘게 계속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골프존은 멋있게 성장하고 있다.

줄줄이 어려움을 겪던 해외 진출도 요즘은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빠칭코 대비 수익성이 나빠서, 캐나다는 춥고 시장이 작아서, 미국은 그린피 가격이 스크린 보다 싸서.. 등의 이유가 당시 해외진출에 어려움을 줬던 이슈로 기억한다.

요즘은 '회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는다. 진심으로 너무 기분이 좋다. 내 친정집이 승승장구 한다는 데 누가 그런 기분이 안들까? 여러가지 불확실하고 어려웠던 것들을 걷어 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친정집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를 악 물고 많이 배운다. 내 소중한 친정집이 더 승승장구 했으면 좋겠다. 세계로 더 뻗어 나갔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돌이켜 보면 회사에 남긴 흑역사도 좀 있다. 

나한테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의 메일을 써서 기록으로 남긴다. 한번은 그 개인적인 메일이 CC로 워크샵을 같이 갔던 팀 사람들에게 들어가고 말았다. 나는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단축키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메일발송까지 순식간에 진행 되었다. 매우 민감한 내용들,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들이 담겼던 메일이다. 너무 부끄러워서 인생을 리셋하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또 한 번은 전사 메일로 부끄러운 짓을 했다. 2012년 여름에 어머니께서 소천하셨다. 소희가 태어나기 불과 3달 전이었다. 간발의 차이로 끊어지는 인연의 끈을 눈 앞에서 봤다. 한 많은 인생, 소희라도 보시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당시 내가 다니던 골프존과 여동생이 다니던 하이닉스에서 장례절차를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두 회사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어리고 아이 같기만 했던 우리가 장례를 치르는데 큰 고생을 했을 것이었다.

나는 회사에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래서 무려 "전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감사 메일을 썼다. 일단 '그냥 그날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고 했어도 됐을 터. 나는 무려 장문의 내용을 썼고, 온갖 단어를 한자로 변환했다. 와. 지금 생각하면 완전 도른자가 이런 도른자가 없었구나. 나름대로 격조를 챙긴다고 그렇게 한 것이었는데. 물론 그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회사에서 장례를 도와줬어도 누가 이렇게 전사 메일로 어머니 장례 잘 치른 걸 광고해.", "메일에 그 한자들 다 읽을 줄은 아니? 나는 못 읽겠다~!".  

지금 생각을 해 보면 이것도 다 이제는 추억이다.

회사가 남긴 귀한 사람들도 있다.

이제는 상근 등기임원이 된 철호형. 철호형과는 태국 워크샵에서 친해졌다. 나와 같은 호텔방을 썼다. 당시 나는 모르는 분이었다. 그래서 조금 부담됐다. 그러나 이내 친해졌다. 대화를 몇 번 나눠보니, 철호형은 서글서글한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했다. 인생을 살면서 적의 없고 상냥한 애티튜드를 가진 남자 TOP 5에 들어간다. 당시 팀원이었는데 금방 팀장으로 승진하셨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승진해서 지금은 임원이 되셨다. 역시 'Attitude is Everything!'

마침 서로 투자에 관심도 많아서 금방 친해졌다. 기업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수장이 되면서 예전처럼 수다를 많이 떨지는 못한다. 하지만 까먹을만 할 때 한번씩 연락을 한다. 일전에는 나와 친한 투자자들이 회사를 탐방할 때도 큰 도움을 주셨다.

그 다음은 진현이형. 진현이형은 화학과 출신이지만 컴퓨터를 더 잘 다루는 것 같다. 머리 좋은 사람의 표본이다. 학교 다닐 때도 빛의 속도로 실험을 끝내고 집에 가서 쉬었다고 한다. 일을 할 때도 뭔가 자동화 같은 걸 되게 잘 한다. 남들이 고생고생 할 일도 선배는 자동화를 시켜서 다 자동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 형은 지금까지도 나와 자주 연락한다. 진현이형은 필리핀 워크샵에서 나와 같은 호텔방을 썼던 일을 계기로 서로 큰 신뢰를 형성하게 되었다.

나는 종교는 없지만 형님의 신앙심에 경외를 느낀적이 몇 번있다. 그리고 형수님을 향한 무한한 사랑, 무한한 배려심을 보면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 두 선배와는 아직 인연의 끈이 이어져 있다. 나머지 분들과는 인연의 끈이 끊겼다. 하지만 카카오톡 연락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스윽 한 번 둘러보았다. 

나한테 바라는 것 아무것도 없이 아침마다 1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골프를 가르쳐 주던 KLPGA 'B' 프로님은 결혼을 하셨네. 행복하게 사시는 것 같다. 

우리 F2E팀 사람들도 저마다 결혼도 하고, 이직도 하고 잘 사시는 것 같다. 당시 내가 (인간적으로)좋아했던 부산출신 여자 팀장님은 무려 프로필 사진이 아직도 안 바뀌고 있다. 내가 퇴사한 게 언제더라. 네이버에서 오신 인재였는데, 따뜻한 리더십으로 팀을 잘 이끌어 가시던 분이다. 팀장님을 중심으로 점심 때 마다 티타임 갖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친했던 멤버들도 다들 결혼해서 아기 낳고 잘 살고 있구나. 모두 잘 살고 있어서 너무너무 기쁘고 다행이다.

취준생을 위한 TMI: 대기업도 좋지만, 시장 독점력이 있고, 높은 영업이익률과 ROE를 내면서도 성장까지 잘 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의외로 숨은 꿀직장인 경우가 많다.

2023년 2월 3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