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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0일 수요일

소하에게 배우는 안목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본래 불량배 출신이다. 그 자신에게 이렇다 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유방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게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다. 어쩌면 가장 갖기 어려운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유방은 리더의 자질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음흉한 속내도 지닌 사람이었다.

한삼걸 이야기


불량배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여 황제가 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세 사람이 있다. 그 세 사람을 '한 삼걸'이라 부른다.

첫째, 지략과 지혜의 장량이다. 장량은 '장막 안에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 정도로 판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책을 내는데 능한 사람이었다. 후세대가 뛰어난 후배에게 주는 가장 큰 칭찬 중 하나가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오'라는 말이다. 그 장자방이 이 장량이다.

둘째, 한신은 동양 역사에 남을 전쟁의 신이다. 젊어서는 동네 불량배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는 수모를 당하는 등 궁핍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원래 항우 진영에 있었지만 항우의 눈에 띄지 못했다. 유방 진영에서 눈썰미가 좋은 소하의 눈에 띄어 유방군 대장군에 발탁된다. 한신은 그야말로 전쟁의 신으로서 가는 곳 마다 승리한다. 위왕을 사로잡은 것을 시작으로 위(魏), 대(代), 조(趙), 연(燕), 제(齊), 초(楚)나라까지 줄줄이 6개국을 모두 멸망시킨다.

한때 한신이 움직이는 군사력이 유방을 넘어 서기도 했다. 이때 한신의 책사 괴철이 유방을 배신하고 천하를 3개로 쪼개 천하삼분지계를 하자고 계책을 낸다. 이때 한신이 괴철의 이야기를 따랐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전쟁 수행 능력에 비해서 한 없이 떨어지는 정치력을 가졌던 그는 결국 괴철의 이야기를 따르지 않는다. 훗날 한신은 유방의 본 부인인 여치에 의해 처형된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사실은 훨씬 이전 춘추전국시대 때 월나라 군사 범려에게서 나온 말

셋째, 소하는 행정의 신이었다. 유방 진영의 살림을 도맡에서 했다. 소하는 최전방에서 유방군이 전투를 잘 치를 수 있도록 후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어디서 쥐어 짜서 나오는지 모를 군량과 세금이 마르지 않고 유방군에게 흘러 들었다. 그 역할을 했던 결정적인 인물이 소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하는 유방 진영의 살림에 구멍나지 않도록 부지런히 일했다. 소하는 위대한 행정가였지만 장량에 뒤쳐지지 않을 처세와 지혜도 갖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유방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아서 훗날 개국공신들이 토사구팽 당하고 처형 당할 때 소하만은 살아 남는다.

함양궁에 입성한 소하가 챙긴 '이것'


유방은 항우와의 함양 입성 경쟁에서 승리한다. 항우보다 빨리 함양에 들어 온 유방은 진나라로부터 항복을 받는다. 이로써 진나라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진시황을 비롯해서 진나라는 큰 건축물에 집착했다. 함양궁과 아방궁을 건설하는 데는 장정 70만 명이 동원되었다. 공사는 수십년을 지속했다. 아방궁과 함양궁은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강성했던 진나라의 심장부에 들어선 유방과 그의 부하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식한 불량배 출신들 다웠다. 그들은 궁에 있는 보석과 보물, 그리고 여자를 챙기기에 바빴다.

그러나 소하는 달랐다.

소하는 모두가 보석과 보물 따위에 눈이 뒤집혀 있을 때, 조용히 서적들과 행정문서, 각종 행정자료들을 챙겼다. 그리고 그것을 잘 숨겨둔다. 당시의 책이나 행정자료는 죽간으로 되어 있어서 무게도 많이 나갔을 것이다. 모두가 금은보화에 눈이 멀어 있을 때, 소하는 아무런 빛도 내지 않는 죽간을 챙겼다. 그의 눈에는 그것이 당장의 금은보화 몇 푼보다 귀하다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함양궁에 입성해 행정자료들을 챙기고 있는 소하
자료 : 중국 안후이TV, KBS

이때 소하가 챙겨둔 이 행정자료들은 훗날 유방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한나라를 건국하면서 국가를 장악하고, 세금을 걷고, 군사시설을 이용하는 등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금덩이 몇 개와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 것이다. 소하의 통찰력과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잠깐 장량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유방 역시 무뢰배 출신이 아니던가. 그 역시 금은보화와 궁내 미인들을 보고 눈이 뒤집힌다. 이때, 장량이 유방에게 간언을 했다.

"궁에 있는 보물들에는 손도 대지 마십시오. 고작 이거 손대려고 이 고생을 하셨습니까? 장차 적을 물리치고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검소한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유방은 이 조언을 듣고는 궁에 있는 귀한 것들은 손대지 않았고, 궁에도 머물지 않고 궁 밖에 머물렀다.

항우는 유방보다 늦게 함양에 도착한다. 이미 유방이 진나라로 부터 항복을 받아 냈다는 소식도 들어 알고 있었다. 유방은 검소한 태도로 백성들의 지지도를 끌어 올리지만, 항우는 20만의 진나라 병사를 모두 죽여버리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다. 게다가 함양성을 모두 불태워 없애 버리기 까지 했다. 이로써 항우는 당대 사람들에게 커다란 악명을 쌓게 된다. 이때부터 백성들의 마음이 누구의 편으로 기울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논공행상을 하면서 난리가 났던 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상벌을 주는 일 아닌가. 특히 개국공신들 중에서 누구에게 어떤 상을 줘야 하는지는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논공행상은 어려운 문제였다. 저마다 자기의 공이 크다고 싸워대는 통에 논공행상은 물론이고 국정 운영에도 큰 차질이 있었다. 논공행상은 몇년이나 걸렸다. 개중에는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마침내 유방은 소하를 차후에 봉했다. 소하를 천하통일 최고의 공신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그랬더니 전투에 참가했던 많은 공신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난동을 부렸다. 사람들은 전쟁의 선봉에서 늘 고생을 했던 조참을 소하보다 더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신들은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동안 소하는 후방에서 편안하게 지낸 것이 전부인데, 어째서 소하에게 최고 봉직을 주느냐며 큰 불만을 터트렸다.

이때 유방이 군신들의 소란을 잠재우고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여러분은 짐승을 잡아오는 사냥개의 역할을 했을 뿐이네. 하지만 사냥꾼은 사냥개에게 먹이의 소재를 알려주고 사냥개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살피지 않는가? 역할로 따지자면 그대들은 사냥개에 불과하고, 소하는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어떻게 하는가? 잡아 먹는다네."

저마다 자기가 공신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이내 숙연해졌다. 이에 유방이 한마디를 더 붙인다.

"그리고 천하통일이라는 먼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여러분들은 고작 몸뚱아리 하나만 나를 따르지 않았는가? 소하는 모든 일족이 목숨을 걸고 나와 함께 했다네."

이때, 유방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악천추가 발언한다.

"폐하가 전쟁에서 질 때 마다 소하는 병력, 식량, 자원을 모아 폐하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소하와 같은 사람들의 능력으로 세워진 것이지 조참과 같은 사람을 얻음으로써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소하는 폐하가 효산에서 여러번 패 하는 동안에도 관중지방을 굳건히 지켜 낸 공로도 있습니다. 반면에, 조참과 같은 사람이 100명이 있다고 한들 한 왕실에 무슨 영향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나라를 운영함에 있어서도 소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유방은 소하를 최고 공신으로 다시 한번 천명했다. 소하는 공신들 중 유일하게 칼을 차고 유방을 알현할 수 있었고, 유방 앞에서 격의 없이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보면 유방도 불량배 출신이기는 하나, 단순히 감정에 치우치거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혼군은 아니었던 듯 하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은 물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2022년 7월 20일
송종식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것

Unsplash@cmhedger

텔레그램과 유튜브를 자주 이용하다보니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자주 들린다.

"종식이형 덕분에 주식투자 제대로 배웠습니다. 이젠 주린이를 벗어나서 스스로 투자하고 있어요. 고맙습니다."

사실 뭘 바라고 블로그며 텔레그램이며 기록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 스스로의 공부와 생각정리 차원이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방문해서 몰랐던 것을 얻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그 다음이다. 그래도 일말의 사명감이 없지는 않기 때문에 투자와 관련된 글을 쓸 때는 꽤 신경을 써서 쓰는 편이다.

그냥 그런 느낌 정도로만 블로그와 텔레그램 같은 것을 운영했다.

그런데 텔레그램과 유튜브는 양방향 소통이 된다. 그러다보니 위와 같은 감사의 메시지를 많이 받게 된다. 최근 들어서 유독 저런 메시지를 많이 받는데, 큰 보람도 느끼고 기분이 아주 좋다.

그리고 저렇게 메시지를 보내 주시는 분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곱씹게 되고 나 역시 저렇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는 분들께 역으로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미 시장에서 한참동안 굴러다니고 있기 때문에 누가 언제쯤 시장에 진입했는지, 누가 언제쯤 주린이였는지, 또 그 사람이 언제쯤부터 실력이 일취월장 했는지 어렴풋이 지켜보며 알고들 있다.

그리고 물론 그들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누구의 글과 말로 배웠는지, 누구를 특히 좋아하고 따라하려 했는지와 같은 것들도 이미 시장에서 오랫동안 굴러먹고 있던 사람들은 속속들이 알고 있다.

입문자 누구나 한 1~2년이나 3년쯤 열심히 하다보면 풍월은 읊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그들도 귀여운 병아리 시절의 털을 벗겨내고 제법 남들에게 투자 조언도 하고 자기만의 철학을 하나씩 만들어 가면서 글도 쓰고 시장에서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조금씩 서게 되는 것을 많이 지켜본다.

그런 것들은 한 사람이 훌륭한 투자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물론 즐겁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 중 일부의 태도다.

아무것도 몰라서 망망대해에서 떠돌때는 'OO님 존경합니다.', 'OO님 오늘도 많이 배웠습니다.' 하면서 감사함은 물론 심지어 존경심도 마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머리에 뭐가 좀 들어가고 이제 이 바닥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고 '내가 원래 낸데?'하면서 안면을 몰수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한테 배운거 하나도 없는데?'
'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투자자인데?'
'아 그 사람? 그 사람 손절했는데, 배울거 하나도 없던데?'

하는 식으로 말을 바꾸고 스승들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아주 많이 본다.

종목을 찍어주는 것 보다는 주식투자의 근본 원리와 철학, 토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답을 그냥 알려주는 사람보다는 왜 그런 답이 나오는지 과정을 알려주는 사람이 진정한 스승이다.

'스승이 없이는 너도 존재할 수 없다'고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들은 참 스승이 아니다. 평생 당신을 이용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진정한 스승은 한 사람이 홀로서기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가감없이 알려준다.

투자나 프로그래밍과 같은 것은 한번 배우면 평생에 걸쳐서 써 먹을 수 있다. 또한 내 삶의 질을 바꿔 줄 강력한 무기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그런 것을 가르쳐 준 스승들에게 밥은 한번 못 사고, 따뜻한 감사의 말을 나누지는 못할 망정, 이제와 그 사람은 필요없다며 안면을 몰수하고 말을 바꾸고 등 뒤에서 칼을 꽂지는 말자.

사람들은 모두 눈과 귀가 있어서 말은 하지 않지만 다들 유심히 보고 들으며 사람들의 태도에 대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수집, 인지하고 있다.

감사함을 표할 줄 아는 사람들은 시간이 갈수록 잘될 것이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도와주려는 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갈수록 고립될 것이다.

난 이미 많이 배우고 깨우쳐서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저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기엔 '글쎄.. 아직 아닐걸..'인 케이스가 더 많은 것이다.

그리고 살다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태도가 나빴던 사람들은 그동안 지켜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칼을 하나씩 꽂을 것이고, 태도가 좋았던 사람들은 도와주려는 손길이 더 많은 것이다. 누구든 삶의 굴곡은 있다. 살다가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순간도 오고, 손하나가 아쉬운 시기도 반드시 온다.

문득 나도 주린이 시절에 검은 건 글씨요, 하얀건 종이라고 가나다 좀 뗐다고 투자모임에서 잘난체 하고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이미 나보다 훨씬 더 먼저 높은 고지에 올라가서 나를 지켜보던 선배들은 나를 어떻게 봤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렇지만 그런 용기 덕분에 나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태도가 엉망인 사람들과 나의 차이점은 나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혜택을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은 1mg도 잃지 않고, 또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아직 가야할 길이 너무나 멀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밥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여러 스승님과 선배들에게 늘 감사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감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