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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3일 금요일

위험한 조언이 난무하는 시대 (직장 생활 꿀팁 30가지?)


처세에는 답이 없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캐릭터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가 처한 사회적 위치도 다 다르고, 속한 조직의 사회적 특성도 모두 다 다르다. 좁게 보면 내 윗사람, 내 옆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만 가지고도 '이것이 답이야'라고 할만한 단 하나의 처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처세에 대한 조언은 삼가는 편이다.

특히, 사회초년생들에게 '직장 생활 잘 하는 법', '처세 잘하는 법'과 같은 조언을 할 때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송두리째 흔들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천으로 뜬 한 유튜버의 영상을 보았다. 제목이 '직장생활 잘하는 30가지 꿀팁'이었던가. 조회수가 무려 30만 회에 육박했다. 저런 영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를 고려해 볼 때 젊은 직장인 상당수에게 영향력을 미칠만한 숫자였다. 이 사람의 여러가지 조언 중 대부분은 '맞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답은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래 2가지 조언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볼 부분이 있다.

연초에는 열심히 하지말고, 연말에 몰아서 열심히 하라?


보통의 기업들은 연말에 인사평가가 몰려있다. 인사평가는 곧 연봉인상과 직결된다. 내년에 통장에 얼마가 더 찍히냐 하는 문제와 결부된 것이다. 그래서 이런 조언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 연초에는 아무리 큰 성과를 내봤자 연말에는 잊혀진다. 하지만 연말에 무언가 성과를 내면 그것이 인사고과에 플러스로 작용할 요인은 매우 높다. 인간의 기억력은 짧다. 고과를 주는 사람도 인간이다. 그래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위 조언이 아주 잘못된 조언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위의 조언을 비틀어서 생각해 보면 근본은 '눈치껏', '눈속임'을 하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연초에는 대충 탱자탱자 놀다가 연말에 최선을 다하거나, 다하는 척을 하거나, 열심히 했다고 상사에게 어필하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면 직장 생활은 아주 훌륭하게 해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저런 타성에 절대로 물들면 안된다.

직장인은 언젠가는 회사에서 나오게 된다. 그때 오롯이 내 두발과, 내 두손과, 내 지능과, 나의 정신력과 센스만으로 살아가야한다. 직장에서는 농땡이를 부려도 따박따박 월급이 나온다. 하지만 밖에 나오면 극한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내가 거대한 자산가가 아닌 이상, 내가 잠깐만 쉬어도 들어오는 수입이 딱 끊긴다. 그 고통을 현실로써 마주하게 되면 그때는 이미 늦다.

위와 같은 조언대로 살다가 타성에 젖으면 그렇게 될 확률이 높다.

위의 조언은 '눈속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인 '벼락치기 근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벼락치기 타입의 사람들이 잘 사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가령 상황하나를 예로들면 이런 것이다.

기획력, 디자인 능력, 감각과 센스, 영상 편집 능력을 갖춘 창수(가명)라는 친구가 퇴사를 목표로 잠시 휴직을 했다. 이 친구의 수중에는 일을 안하고 소비만 할 경우 1년 정도 버틸 수 있는 자금이 있었다. 하지만 별도의 현금흐름은 없었다.

창수에게 먼저 직장 생활 은퇴를 한 선배가 이렇게 조언한다.

+ 창수야, 넌 얼마 정도 쉴거니?
= 1년 정도 쉴 자금이 있어요.
+ 쉬었다 복직할거야?
= 아니요. 아예 직장으로 복귀는 안하고 싶어요.
+ 퇴사를 고려하고 있구나. 1년치 생활비 남은 건 좀 빡빡한데. 그래도 1년이면 뭔가 해보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지. 유튜브라도 살살 시작해봐. 너가 가진 재능에 딱인데.
= 아 형, 안 그래도 저도 유튜브 하려고요.
+ 그래, 처음부터 힘 많이 쓰지 말고 쉽게쉽게, 꾸준히라도 올려봐. 넌 주변에 소재도 많고, 재능도 많으니 잘 할거야.
= 예 형.
+ 지금부터 바로 해보는 게 좋을거야. 유튜브라는게 시작한다고 바로 수익이 나거나, 잘 되는 게 아니거든.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 1년 쯤 뒤에 조금씩 결과가 나와. 그래고 유튜브에만 의존하면 위험하니까 너 예전에 쇼핑몰도 했잖어. 그것도 병행하고, 돈 들어올 구멍을 기본 2~3개 이상 구축하는 작업을 바로 해보는 게 좋겠어.
= 그래 볼게요.

6개월 후,

+ 창수 잘 지냈니?
= 예 형.
+ 유튜브하고 쇼핑몰은 잘 돼?
= 그게 형, 아직 시작을 못했습니다.
+ 아니, 왜? 
= 노니까 시간이 너무 잘 가네요. 한다한다 하면서 벌써 6개월이나 흘렀네요.
+ 너, 이제 생활비로 쓸 자금도 얼마 안 남았을거 아냐?
= 그래도 아직 6개월 남았으니까요
+ 허허. 너가 하려는 게 알바처럼 한다고 돈이 바로 딱 나오는 게 아니라 이젠 시간이 좀 촉박할 것 같은데. 그래 뭐 너의 일이니까.
= 항상 잔소리 해주셔서 고마워요 형.

11개월 후,

창수가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남은 생활비는 1개월치라는데.. 창수의 채널에 들어가 보았다. 영상이 폭풍 업데이트 되고 있다. 하루에 영상이 4개씩, 5개씩 올라온다. 엄청난 벼락치기다. 그래 이게 한국인이지. 영상이 한달만에 100개가 넘게 올라갔다. 하지만 구독자는 아직도 10명이다. 하긴 벼락치기로 될리가 없지.

쇼핑몰도 만들고 있다고 해서 들어가봤다. 아직 오픈소스 그대로다. 별달리 손 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얼마 후,

창수는 회사에 복직을 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 우리의 창수는 '자유를 쟁취할' 중요한 시기와 순간들을 제 손으로 놓치고 만 것이다. 하나의 캐릭터로 예를 들었지만, 이게 대부분 한국인의 모습이다. 특히, '연말에만 몰아서 일을 열심히 하라' 저런 조언이 더 독이 되는 이유다. 저런 타성에 젖어 버린다면, 퇴직 후 가난의 길로 가는 것은 필연이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절대로 벼락치기 따위를 하지 않는다. 일단 멀리 보고 준비하고 움직인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즉시처리한다. 항상 일은 미리 처리를 해둔다. 미루는 법이 없다. 놀때 놀더라도 할일은 해놓고 논다. 더 잘 하는 사람들은 할일을 미리 해놓고, 시간이 넉넉해지면 다른 일까지 처리한다.

생각보다 게으른 사람은 많다. 부지런한 사람들 중에서도 핵심가치를 파악하고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하는 사람은 또 줄어든다. 이러니 자수성가 하는 사람의 숫자도 줄어드는 것이다.

이런 습성으로 가난해 지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시각을 크게 보면 국가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주 예민한 소수를 제외하면 어떤 사회적 변화에 대한 더듬이가 민감하지 못하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분명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터지고, 피를 흘리고 나서야 뒤늦게 벼락치기로 수습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미국, 일본, 중국과 같은 이웃 국가들은 항상 멀리 바라보고 의사결정과 행동을 한다. 당장 닥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닥친다는 태도로 미리미리 준비한다. 국가도 그래야 하고, 개인도 그래야 한다. 그래야 짧게는 밥을 굶지 않고, 길게는 피를 흘리지 않는다.

다시 직장 이야기로 돌아가자. 내가 초년생 직장인이라면 이런 태도로 살고 있을 것 같다. '윗사람에게 인정 안 받아도 그만이다.' 회사에서 배울 것 열심히 배우고, 내 스스로를 강력한 스킬로 무장하고,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길게 보고 나 자체가 걸어 다니는 하나의 기업체, 그런 기업체를 소유할 오너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연말에만 눈속임하는 삶, 남들에게 눈치보는 삶은 살지 않을 것이다.

회사는 내일 당장,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제 그만 나오세요."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떤 대비가 되어있는가? 단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다. 금전이 차지하는 문제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메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 증거를 남겨라?


증거를 남기는 것은 중요하다. 법적 분쟁의 결과도 대부분 증거로 결판이 난다. 증거를 남기는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탐대실'하지 말자는 것이다.

먼저, 증거를 남기는 삶을 살더라도 '내가 그런 사람이다'하는 것은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당신을 좋게 봤던 사람들 조차, 당신을 두려워 하거나 곁에 다가가지 않으려고 할 수 있다.

'쟤랑은 말할 때 조심해야겠어. 쟤한테는 거리를 둬야겠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람들로부터 이런 인식을 쌓는 것은 아주 큰 소탐대실이다. 그러니 내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모두 기록으로 그리고 증거로 남기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를 주변에서는 모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사소한 잘잘못을 따지겠답시고 '제가 이메일로 증거를 남겼는데요!' 하면서 일일이 증거를 들이밀어서 상대를 곤욕스럽게 만드는 것은 삼가야 한다. 나를 좋아하는 1,000명의 지지자 보다, 1명의 적이 무서운 법이다.

이런 경우 2가지 정도의 '대실'을 하게된다. 

하나는 상대를 궁지로 몰아서 곤욕을 치르게 할 경우, 그 상대는 돌아올 수 없는 적이 된다. 이렇게 되면 이 적은 도처에서 나타나 내 삶과 커리어에 발목을 잡고 어깃장을 놓을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해당 일처리를 하면서 실수를 한 것일수도 있는데, 그저 잘잘못을 따져 나에게 책임 씌워지는 것이 싫다고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행동전에 수백번 숙고해야한다.

두번째는 모든 사람들에게 당신을 각성시키는 것이다. '쟤는 저렇게 이메일 문구 하나하나에 함정을 파두고, 증거를 남기고, 무섭게 구는 애구나'. 당신과 업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에는 안 그랬어도, 이제는 증거를 남기려고 할 것이다. 특히 당신과 업무를 하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의 그런 태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더욱 강력한 방법으로 증거를 남기고, 함정을 팔 것이다.

사회초년생은 잃을 것 보다, 얻을 게 많다. 증거를 남겨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만큼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도 않는다. 증거라는 것은 열심히 수집은 하되, 타인은 나의 그런 태도를 몰라야 한다. 그렇게 수집한 증거들은 내 인생을 건 아주 큰 단 한번의 승부에 제대로 써야 한다. 시시껄렁하게 '나는 증거남기는 사람이요.'하면서 돌아다니면 허당이다. 사람잃고, 신의도 잃고 남는 건 소탐대실뿐이다.

작은 증거들로, 작은 책임회피를 하면서 살면 무엇하겠는가? 그러는 과정에서 사람을 하나하나 잃어갈텐데, 직장 생활은 짧고 인생은 길다.

2023년 1월 13일
송종식


2022년 7월 20일 수요일

소하에게 배우는 안목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본래 불량배 출신이다. 그 자신에게 이렇다 할 능력은 없었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유방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게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다. 어쩌면 가장 갖기 어려운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유방은 리더의 자질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음흉한 속내도 지닌 사람이었다.

한삼걸 이야기


불량배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여 황제가 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던 세 사람이 있다. 그 세 사람을 '한 삼걸'이라 부른다.

첫째, 지략과 지혜의 장량이다. 장량은 '장막 안에 앉아서 천리를 내다보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 정도로 판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책을 내는데 능한 사람이었다. 후세대가 뛰어난 후배에게 주는 가장 큰 칭찬 중 하나가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오'라는 말이다. 그 장자방이 이 장량이다.

둘째, 한신은 동양 역사에 남을 전쟁의 신이다. 젊어서는 동네 불량배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는 수모를 당하는 등 궁핍하고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원래 항우 진영에 있었지만 항우의 눈에 띄지 못했다. 유방 진영에서 눈썰미가 좋은 소하의 눈에 띄어 유방군 대장군에 발탁된다. 한신은 그야말로 전쟁의 신으로서 가는 곳 마다 승리한다. 위왕을 사로잡은 것을 시작으로 위(魏), 대(代), 조(趙), 연(燕), 제(齊), 초(楚)나라까지 줄줄이 6개국을 모두 멸망시킨다.

한때 한신이 움직이는 군사력이 유방을 넘어 서기도 했다. 이때 한신의 책사 괴철이 유방을 배신하고 천하를 3개로 쪼개 천하삼분지계를 하자고 계책을 낸다. 이때 한신이 괴철의 이야기를 따랐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전쟁 수행 능력에 비해서 한 없이 떨어지는 정치력을 가졌던 그는 결국 괴철의 이야기를 따르지 않는다. 훗날 한신은 유방의 본 부인인 여치에 의해 처형된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사실은 훨씬 이전 춘추전국시대 때 월나라 군사 범려에게서 나온 말

셋째, 소하는 행정의 신이었다. 유방 진영의 살림을 도맡에서 했다. 소하는 최전방에서 유방군이 전투를 잘 치를 수 있도록 후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행정력을 보여주었다. 도대체 어디서 쥐어 짜서 나오는지 모를 군량과 세금이 마르지 않고 유방군에게 흘러 들었다. 그 역할을 했던 결정적인 인물이 소하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소하는 유방 진영의 살림에 구멍나지 않도록 부지런히 일했다. 소하는 위대한 행정가였지만 장량에 뒤쳐지지 않을 처세와 지혜도 갖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유방에게 많은 조언을 했다. 열심히 일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아서 훗날 개국공신들이 토사구팽 당하고 처형 당할 때 소하만은 살아 남는다.

함양궁에 입성한 소하가 챙긴 '이것'


유방은 항우와의 함양 입성 경쟁에서 승리한다. 항우보다 빨리 함양에 들어 온 유방은 진나라로부터 항복을 받는다. 이로써 진나라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진시황을 비롯해서 진나라는 큰 건축물에 집착했다. 함양궁과 아방궁을 건설하는 데는 장정 70만 명이 동원되었다. 공사는 수십년을 지속했다. 아방궁과 함양궁은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강성했던 진나라의 심장부에 들어선 유방과 그의 부하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식한 불량배 출신들 다웠다. 그들은 궁에 있는 보석과 보물, 그리고 여자를 챙기기에 바빴다.

그러나 소하는 달랐다.

소하는 모두가 보석과 보물 따위에 눈이 뒤집혀 있을 때, 조용히 서적들과 행정문서, 각종 행정자료들을 챙겼다. 그리고 그것을 잘 숨겨둔다. 당시의 책이나 행정자료는 죽간으로 되어 있어서 무게도 많이 나갔을 것이다. 모두가 금은보화에 눈이 멀어 있을 때, 소하는 아무런 빛도 내지 않는 죽간을 챙겼다. 그의 눈에는 그것이 당장의 금은보화 몇 푼보다 귀하다는 것이 보였을 것이다.

함양궁에 입성해 행정자료들을 챙기고 있는 소하
자료 : 중국 안후이TV, KBS

이때 소하가 챙겨둔 이 행정자료들은 훗날 유방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한나라를 건국하면서 국가를 장악하고, 세금을 걷고, 군사시설을 이용하는 등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금덩이 몇 개와 비교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 것이다. 소하의 통찰력과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잠깐 장량의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자. 유방 역시 무뢰배 출신이 아니던가. 그 역시 금은보화와 궁내 미인들을 보고 눈이 뒤집힌다. 이때, 장량이 유방에게 간언을 했다.

"궁에 있는 보물들에는 손도 대지 마십시오. 고작 이거 손대려고 이 고생을 하셨습니까? 장차 적을 물리치고 천하를 얻고자 한다면 검소한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유방은 이 조언을 듣고는 궁에 있는 귀한 것들은 손대지 않았고, 궁에도 머물지 않고 궁 밖에 머물렀다.

항우는 유방보다 늦게 함양에 도착한다. 이미 유방이 진나라로 부터 항복을 받아 냈다는 소식도 들어 알고 있었다. 유방은 검소한 태도로 백성들의 지지도를 끌어 올리지만, 항우는 20만의 진나라 병사를 모두 죽여버리는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다. 게다가 함양성을 모두 불태워 없애 버리기 까지 했다. 이로써 항우는 당대 사람들에게 커다란 악명을 쌓게 된다. 이때부터 백성들의 마음이 누구의 편으로 기울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논공행상을 하면서 난리가 났던 일


유방이 천하를 통일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바로 상벌을 주는 일 아닌가. 특히 개국공신들 중에서 누구에게 어떤 상을 줘야 하는지는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논공행상은 어려운 문제였다. 저마다 자기의 공이 크다고 싸워대는 통에 논공행상은 물론이고 국정 운영에도 큰 차질이 있었다. 논공행상은 몇년이나 걸렸다. 개중에는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마침내 유방은 소하를 차후에 봉했다. 소하를 천하통일 최고의 공신이라고 천명한 것이다. 그랬더니 전투에 참가했던 많은 공신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난동을 부렸다. 사람들은 전쟁의 선봉에서 늘 고생을 했던 조참을 소하보다 더 인정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신들은 자신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동안 소하는 후방에서 편안하게 지낸 것이 전부인데, 어째서 소하에게 최고 봉직을 주느냐며 큰 불만을 터트렸다.

이때 유방이 군신들의 소란을 잠재우고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여러분은 짐승을 잡아오는 사냥개의 역할을 했을 뿐이네. 하지만 사냥꾼은 사냥개에게 먹이의 소재를 알려주고 사냥개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살피지 않는가? 역할로 따지자면 그대들은 사냥개에 불과하고, 소하는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사냥개는 사냥이 끝나면 어떻게 하는가? 잡아 먹는다네."

저마다 자기가 공신이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고개를 떨구고 이내 숙연해졌다. 이에 유방이 한마디를 더 붙인다.

"그리고 천하통일이라는 먼 여정을 함께 하는 동안 여러분들은 고작 몸뚱아리 하나만 나를 따르지 않았는가? 소하는 모든 일족이 목숨을 걸고 나와 함께 했다네."

이때, 유방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악천추가 발언한다.

"폐하가 전쟁에서 질 때 마다 소하는 병력, 식량, 자원을 모아 폐하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소하와 같은 사람들의 능력으로 세워진 것이지 조참과 같은 사람을 얻음으로써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소하는 폐하가 효산에서 여러번 패 하는 동안에도 관중지방을 굳건히 지켜 낸 공로도 있습니다. 반면에, 조참과 같은 사람이 100명이 있다고 한들 한 왕실에 무슨 영향이 있겠습니까? 앞으로 나라를 운영함에 있어서도 소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유방은 소하를 최고 공신으로 다시 한번 천명했다. 소하는 공신들 중 유일하게 칼을 차고 유방을 알현할 수 있었고, 유방 앞에서 격의 없이 편하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보면 유방도 불량배 출신이기는 하나, 단순히 감정에 치우치거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보는 혼군은 아니었던 듯 하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은 물론,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2022년 7월 20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