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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4일 수요일

양평 4번 아지트 상황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좀 하고 있었다. 젊은 남자분이 말을 걸어 왔다.

"저기.."
"네?"
"혹시, 제가 아시는 분인가요?"
"네..?!"
"혹시, 유튜브나 블로그 같은 것 하시나요?"
"아아! 네네 맞습니다. 하고 있어요. 반갑습니다."
"아, 혹시나 싶었는데, 여기에 계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젊고 잘 생긴 청년은 내 블로그와 유튜브를 꽤 오래도록 애독한 것 같았다. 양평 시골 촌구석 어느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알아 볼 줄은 나 역시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그분은 나를 보며 반가워했다. 나 역시 양평 촌구석에 젊은 가치투자자가 있어서 반가웠다. 청년은 성격이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 막 서른이 된 청년이지만 가치투자에 대한 식견이 상당했다. 트레이딩은 기법이 중요하지만 투자는 철학이 중요하다. 철학을 놓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 보면 대번에 상대의 수준이나 식견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청년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미 프로 그 자체였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서 두어 시간쯤 대화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밖에 떠 있던 해는 어느 새 반대편 산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사방이 깜깜해져 있었다.

"벌써 어둑어둑 해지네요, 대화는 즐겁지만 제가 선배님 시간을 너무 많이 뺐은 것 같습니다."

청년은 나와 대화를 종료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연신 미안함을 내비쳤다. 청년이 귀가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했다.


열심히 노트북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아까 그 청년이 다시 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시간을 뺐어서 죄송하고 또 반가웠습니다. 별 건 아니지만 이거 드세요"

청년이 케이크 선물을 주고 갔다.

to. 양평 청년
제 블로그를 보실테니 지면을 빌어서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를 알아 본 사람은 5명째다.

네 분은 나에게 즉각 말을 걸어 오셨고, 한 분은 유튜브 댓글에 '아까, 파주 모 카페에서 봤어요'라고 댓글을 남겨 주셨다.

아마 내게 알려 주신 분이 다섯 분이니, 실제로 나를 봤는데 그냥 모른체 하신 분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 말이나 행동거지를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꼴랑 구독자 2만 명 규모의 채널을 갖고 있으면서 연예인병에 걸리면 꼴이 우스워진다. 그렇지만 연예인병 차원이 아니라 양평 시골에서도 알아 보시는 분이 계실 정도니 조신하게 다녀야겠다 싶은 생각은 든다.

현재까지 나를 알아 보신 분들 분포를 보면 서울에서 세 분, 파주에서 한 분, 양평에서 한 분이다. 

신기한 것이 일산에서 아직 나에게 말을 걸어 온 사람은 한 분도 없다. 일산에서는 호수공원 산책을 하루에 4시간씩 했는데도. 물론, 평일 낮에 산책을 하니 주로 내 채널을 봐 주시는 분들이 회사에 있을 시간대라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 그럴 가능성은 높다.

어쨌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처음으로 나를 알아봐 주신 분이다.

처음인 것도 신기했지만, 당시 여러 상황이 맞물려서 더 신기하게 다가왔다.

일단은 당시 내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5,000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새벽에 지인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큰 술집도 아니고 주택가 근처에 있는 아주 작은 가게였다.

또, 신기한 것은 가게 구조였다. 가게 맨 안쪽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안 보이는 방 하나가 있었는데 지인들과 나는 거기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잠깐 가게 홀로 나온 찰나에 구독자께서 나를 알아보신 것이다. 

"혹시, 아버님 아니세요? 주식 아버님 아니세요?" 라고 묻던 질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군복무 중인데 여자친구와 데이트 중에 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고작 구독자 5,000명 짜리 유튜버도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나. 그것도 새벽에..'

지금은 그때보다 구독자가 5배 정도 늘었다. 이미 주식쟁이들 사이에서는 얼굴도 여기저기에 팔렸나 보다. 혹자는 '유명해지지 않고, 돈만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유명해지면 자유가 제한되고, 이상한 사람들이 해코지를 할 수 있으니 일견 동의가 되는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 유명해지지는 않되 특정 부문에서 아주 조금만 얼굴이 알려지는 정도는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얼굴과 이름 자체가 명함이 되고, 어디에 가서 나를 별도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해 본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과 희열을 주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내 얼굴을 유튜브가 아니었다면 누가 길에서 알아봐 줄까 싶다. 새삼 유튜브의 위력도 느끼고, 아무것도 아닌 일반인인 내가 유튜브에 영상 몇개 올렸다고 여기저기서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생기는 것도 참 신기하다. 인생을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해 본 것도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랩탑을 들고 다니면서 자주 작업하는 나만의 아지트가 몇 군데 있다. 

일산에 4곳, 파주에 2곳, 인천에 여러 곳, 양평에 5곳, 원주에 1곳 정도다. 이 중에서 양평 아지트 1곳은 구독자께 뚫렸다. 하하.





사진 : 송종식

나의 양평 아지트 중 한 곳이 뚫렸다. 그곳은 투썸플레이스 양평 오빈점이다. 세차장도 붙어 있어서 편리하다. 나는 여기서 세차도 자주한다. 이곳은 뚫렸으니 블로그에 일단 공개를 하고, 나머지 아지트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잘 숨어 다녀야겠다(웃음).

맑은 날도 좋고, 비가 오는 날도 좋다. 특히 이번 여름은 날씨도 좋을 뿐 아니라 공기질도 좋아서 모든 것이 선명했다. 위 사진은 아지트에서 일을 하다가 잠깐 짬을 내서 찍은 사진들이다. 아지트에서 바라 본 바깥 풍경들이다.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재간둥이 송선생은 다음 턴에는 또 어디서 발견될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 고맙고도 신기하다.

2022년 9월 14일
송종식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고속도로 위에서의 망상 (스트레인저, 어나니머스, 대중과 개인, 인연에 대해)

#1

유튜브에 재미있는 영상이 업로드 된다. 영상의 조회수는 1회, 10회, 100회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간다. 1만회, 10만회, 100만회가 되기도 한다. 숫자만 보면 무미건조하다. 그런데 영상을 본 100만 명에게는 100만 개의 인생이 있다.

1,000,000회라는 조회수를 숫자만 놓고 보면 별 감흥이 없다.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667,521번째 누군가를 콕 집어서 만나보면 그 사람도 우리처럼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살고 있는 똑똑한 누군가 일것이다.

#2

서울서 부산까지, 그리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움직인다. 멀고 노곤한 길이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수 많은 차량들이 내 옆을 스쳐간다. 그 안에는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 당연히 누군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근거리에 내 옆에 지나가는 것 자체가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량들이 내 옆을 슝슝 지나가면 서로의 존재 여부도 알지 못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실수를 해서 나와 사고를 내면 나는 그 사람과 실질적 인연으로 엮인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 묘하다.

누군지도 모를 수 많은 차량들을 도로에서 지나친다. 그 차량 중 아무 차량이나 세워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도 역시 나 처럼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고, 똑똑한 사람일 것이다. 숫자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수 백만대의 차량 중 한 대일 뿐이겠지만, 어느 차량 한대만 콕 집으면 각자의 인생과 재미있는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자료 : 연합뉴스

#3

민족성과 언어라는 것도 신기하다. 30년을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있다. 30대 중반쯤 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알게 돼 친구가 되었다. 친해진 다음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옛날 80, 90년대 이야기들이 나온다. 국민학생 시절의 생활, 그때 유행하던 유행가 등을 놓고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수 백, 수 천만 명의 사람들이 동일한 기억, 동일한 정서, 동일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서로는 살면서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우리는 서로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수 많은 차량들. 그 중 아무 차량이나 한대를 세워 말을 건다. 한국어를 쓴다. 말이 통한다. 해외 여행을 하다가 한국인을 만난다. 말을 건다. 나는 지방 출신인데 그 친구는 서울 출신이다. 한국말이 통한다. 나는 이렇게 살면서 서로의 존재도 몰랐던 이들이 하나의 언어로 생각이 통한다는 사실에도 가끔 놀라운 경이로움을 느낄때가 있다. 누군가가 '언어는 사람 버전의 프로토콜이다'라고 한 적이 있다. 정말 프로토콜처럼 느껴진다.

#4

운명과 인연이란 하늘이 주는 것인가? 내가 만드는 것인가? 고속도로를 지나다가 만나는 수 많은 차는 나에게는 가상의 존재나 마찬가지다. 그저 내 눈앞에 펼쳐지는 도로 위의 아이템들이다. 수 많은 자동차와 거기에 탄 사람들은 나와 아무런 인연도 관계도 없다. 그런데 내가 누군가의 차로 달려가 돌격해서 접촉사고를 일으키면 그 사람과는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된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인가? 아니면 그것 조차 하늘이 계획한 인연인가?

#5

특정 주제를 목적으로 카카오톡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다. 그 곳에는 약 200여 명의 사람들이 들어 와 있다. 전원이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대화명은 제 각각이다. '농부', '삐약삐약', '곰탱이', 'ㅇㅇ', '웃으며살자' 등. 필명 앞에는 카카오가 만든 귀여운 캐릭터들이 붙어 있다.

참 많은 사람들이 들어 와 있지만 저런식으로 나열된 익명의 사람들을 보면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별 감흥이 없다. 그저 PNG 이미지 한장에 필명 텍스트 한 줄이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을 끄집어 내보면 확실히 그 사람은 자기만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똑똑한 어떤 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연의 가짓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메타버스가 이런 무한대의 것들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을까? 

똑똑한 지인들이 익명으로 여러 단톡방에 들어가 있다. 그들은 그 방에서 말도 안한다. 어찌보면 병풍이나 허수아비 같다. 그러나 그 지인들은 실제로는 매우 멋들어진 집에 살고 있으며, 생각도 많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떠드는 사람은 소수이고 저런식으로 지켜보는 조용한 다수가 아주 많다는 것을 느끼고 또 그것이 무섭게 여겨진다.

#6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지구상 80억 명은 각자의 인생들을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구는 성공적인 삶을, 누구는 힘든 삶을, 또 누구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또 누구는 책을 읽으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람들 각자의 삶을 조목조목 상상해보면 경이롭고 또 경이롭다.

세상 사람 대부분은 똑똑하다. 돈이라는 자원을 함부로 길 바닥에 버리는 바보는 없다.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량들을 운전하는 사람들은 전부 차량 조작법을 알고 교통체계를 이해하고 움직인다.

실제로도 5200만 명의 대중들 중에서 3,970만 1121번째 사람을 콕 찍어서 새롭게 사귀어 인사를 나누어 보면 바보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 저 마다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똑똑하게 그리고 열심히들 살아간다. 모두 자기 생각이 있고, 스펙이 있고, 고집이 있으며, 삶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궁금한 것이 있다. 왜 그렇게 개인만 놓고 보면 똑똑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대 대중으로 뭉치면 개인일 때 보다 멍청한 선택을 하게 되는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상에는 만만한 사람이 없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다 나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못 났다. 그런데, 그런 개개인이 대규모로 뭉친 대중들은 왜 고작 나보다도 멍청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늘어 놓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7 

고속도로가 꽉 막혀있다. 엄청나게 많은 차량들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내 어깨 위에 날개가 돋아난다. 고속도로 위로 스윽 날아오른다. 그 엄청난 차량들 중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한 두명이라도 알아보면 정말 신기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반대로 날아오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또는 유재석씨 같은 인지도 99.99%의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이 알아볼 것이다. 유명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나는 저들을 모르는데, 저들은 모두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까? 쌍방향 인연일까? 단방향 인연일까?

오늘의 두서없는 망상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망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