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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15일 목요일

한국시장은 제대로 작동해오지 않았다

개인투자자들 중에서도 금투세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이유는 '너무나 강한 정치적 성향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친 민주성향 투자자들은 금투세에 반대하고 있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상식이 우선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반면, 강한 정치적 성향을 바탕으로 금투세 찬성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해 보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근본적 주장에 이어 '과거에 이러이러한 정책들이 시행 되었으나,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우리나라 시장은 아무 문제없이 잘 작동해왔다'는 논리가 주로 뒤따라 붙었다.

정말 우리나라 시장은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해 왔을까?

대한민국 GDP 변화
<자료 : 통계청, 송종식>

1996년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는 490조 원이었다. 약 25년 후 2021년에는 2,027조 원으로 성장했다. GDP 규모가 약 4.1배 성장했다. '이것밖에 안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 성장은 70~90년대에 두드러진다. 70년대 부터 시작하면 훨씬 가파른 성장률이 나온다.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자료 : 통계청, 송종식>

주식시장은 경제를 비추는 거울이다. 거울답게 주식시장 규모도 빠르게 커왔다. 같은 기간 코스피 시장의 시가총액은 117조 원에서 2,203조 원으로 무려 19배 가까이 커졌다. 코스닥 시장은 1997년에 7조 원으로 시작해서 2021년에는 446조 원으로 63.7배나 커졌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게 지수도 상승했을까?

한국 양대 주식시장의 지수 상승률
<자료 : 통계청, 송종식>

지수 상승률은 충격적이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지수 산출 방식과 진입, 퇴출된 회사를 모두 감안하더라도 상승률이 너무 낮다. 시가총액은 각각 19배, 64배 커졌다.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는 3.92배 상승했고, 코스닥 지수는 되레 1.3% 하락했다. 오래전부터 지수 ETF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기업에 투자할 자신이 없으면 지수 ETF에 투자하고 잊어버리라'는 버핏의 조언은 우리나라에서는 결과적으로 틀렸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제대로 작동해 오지 않았다. '아무 문제없이 잘 작동해왔다'는 사람들의 말은 거짓이다.

또한, '주가는 기업의 가치에 수렴한다'는 말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일정 부분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시장의 특성 덕분에 우리나라에서 큰 돈을 번 사람들은 1) 가치투자를 표방한 모멘텀 트레이더, 2) 정말 운 좋게 펀더멘털이 가격에 잘 반영된 기업에 장기투자를 해 온 사람, 3) 단타의 신 정도 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미국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모멘텀 성향이 굉장히 강하게 작동하는 시장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신뢰 기반이 약한 것에서 출발한다. 시장으로 국한해 보면 투자자들이 시장과 기업에 대한 신뢰가 지극히 낮아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마음놓고 회사에 거금을 투자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장기투자를 할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상장사의 수
<자료 : 통계청, 송종식>

투자자가 시장과 기업을 가장 불신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내 지분 가치가 희석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중 단연 압권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주식 수', 그렇다 그것이 가장 문제다. 시장에 자금은 제한적인데 공급되는 주식 수가 늘어나면 당연히 주가는 오르지 못한다. 우리나라 시장의 근본적 문제는 이것을 막는 것에서 출발한다.

혹자는 시장에 신규 상장 기업이 많은 것이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위에서 보듯 그것은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다. 1996년부터 2021년까지 생각보다 기업의 수는 많이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상장을 했다가 퇴출된 회사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현재 시가총액의 성장 수준을 보면 그런 부분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재벌산하의 초대형 대기업들의 알까기식 시장 진입은 영향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또, 시장에 혁신적인 기업이 많이 진입하면 더 좋다. 시장에 활기가 돌면 좋은 것이지 나쁠 게 없다.

위의 몇가지 지표를 보고 눈치 빠른 사람은 눈치를 챘으리라.

'주식시장에 들어 온 엄청난 양의 자금을 소수의 누군가가 편법적으로 모조리 빨아들였다. 우리의 부(富)는 어디로 증발했는가?' 

이런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국민들과 주주가 누려야 할 부의 상당액이 소수 재벌들과 대주주들 주머니로 흘러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끝없는 유상증자, CB/BW 발행, 물적분할과 같은 관행들이 있을것이다.

상속세와 증여세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시장에서 주식 수가 불필요하게 늘어나는 부분이 가장 먼저 고쳐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상법 제382조의3 (이사의 충실의무)' 개정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아마 '거버넌스 개선', '상법개정'과 같은 문제들이 재벌들의 이해관계와 정면충돌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초기득권인 그들의 벽을 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고쳐내지 못하면 우리 모두의 부(富)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소수의 사람들에게 착취될 것이다. 이제 이 정도면 눈치를 채야한다.

저출산 고령화, 금투세, 저급한 거버넌스와 투자환경 등. 한국 시장을 보면 당장 암울함 투성이다. 그렇지만 거버넌스 문제만 해결되면 코스피 지수가 4,000포인트나 5,000포인트로 치솟지 말라는 법도 없다. 거버넌스만 개선되어도 한국 시장은 투자하기에 아주 매력적인 시장이 된다. 지금까지 낮은 멀티플을 유지해 온 것 자체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망가진 시장이라는 증거다.

자금 공급보다 신규 발행되는 주식의 공급이 많았다. 그런 결과로 지금까지는 시장의 자금들이 수직으로 솟구치지 못하고, 수평으로 퍼져 버렸다. 시장의 잘못된 관행과 구조들을 개선하면 우리나라 시장의 막대한 잠재력을 수직으로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2월 15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