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한때는 워런버핏을 따라하겠답시고 이런류의 밸류에이션에 목을 매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쓴웃음이 난다. 인간의 미래란 한 치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다. 특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세상과 유기적으로 엮여 돌아가는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기란 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보는게 맞겠다. 어쩌다 몇번 고장난 시계가 두번 정도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게다가,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기업의 미래는 더욱 예측하기가 어렵다. 대외 변수 변동에 취약하고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 겸 동반자도 나타났다. 비지니스의 생명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있고, 기술 혁신으로 어떤 사업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는 아무도 섣불리 예단하기 힘든 시대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그 기업의 2년 후, 5년 후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러한데 주식 투자를 하면서, 그것도 개인투자자가 기업의 밸류에이션 툴을 DCF나 RIM과 같은 류의 현금흐름할인 방식을 쓴다면 과연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적정가에 대한 종교적 가치 그 정도의 가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기업들을 대상으로 미래 10년치의 현금흐름을 예측해서 할인하고, 심지어 영구적인 현금흐름의 가치를 추정하여 사용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참, 말도 안되는 일을 하였구나.'하는 생각을 들게한다.
이런류의 툴이 통하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1) 기업이 속한 국가의 군사력, 경제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장기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는가?
2) 기업의 브랜드가치와 영업적 해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한가?
3)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의 업황은 변동성이 적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4) 투자자는 그 어떤 중간중간의 작은 휩쏘에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있는가?
그나마 이 정도가 돼야 DCF, RIM 등의 툴을 적용해 볼만하다. 물론 이런 상황이 받쳐줘도 DCF는 미래의 추정에 대한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주식 투자를 할 때는 반드시 '투자자의 추정'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추정은 틀리게 마련이다.
추정이 현실과 더욱 크게 틀리게 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추정에 필요한 변수가 많아지고,
2) 추정을 하는 미래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
DCF나 RIM은 추정 기간이 길 수밖에 없고, 중간에 어떤 변수에 의해서 적정주가는 심하게 왜곡된다. 중요 팩터의 변수값을 살짝만 조정해도 목표가가 크게 변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을것이다. 이것을 내 입맛대로, 구색대로 하다가는 큰 낭패를 본다. 사실 DCF나 RIM은 사칙연산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툴이지만, 그 이면에 내재된 여러가지 변수에 대한 사용 기술, 철저한 기업의 질적 분석이 뒤따르지 않으면 사용이 매우 까다로운 툴이다
그리고 또 문제가, COE나 CAPM, WACC과 같은 도구들은 상아탑에서나 유용하지 실제 시장에서 얼마나 유용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암튼, 추정에 필요한 변수는 최대한 줄이는 심플한 투자, 추정 기간은 본인이 내다보는 선에서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되려 개인투자자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약에 굴리는 자금 규모가 크고, 내다보는 안목이 길다면 그 사람은 어느 정도 트레이더에서 인베스터로 진화중인 사람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고 그나마 워런버핏의 흉내 정도는 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시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현금흐름할인방식의 밸류에이션 도구를 아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에게 있어서 그 툴은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툴임에는 분명하고 유용한 것도 사실이다. 다만, 한국이 처한 경제 환경과 그런 환경에서 투자하는 개인투자자가 과연 저런 툴을 이용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다는 것이다.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했으며, 회계 법인에서 일했던 회계사 친구(4대 펌에 있다가 지금은 VC로 이직). 주식 투자로도 곧잘 수익을 내는 그 친구가 한말이 생각난다.
"밸류에이션이요? 1년치 예상 EPS에 주고 싶은 PER 퉁 때리는게 그나마 제일 정확해요." 농담삼아 던진 말이지만 깊이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2015년 9월 22일
송종식
[가투소 포즈랑님 댓글]
답글삭제주식은 '실시간' 가치, 그 중에서도 '회계적'이익의 가치의 반영이 가장 직접적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장기 우상향 기업과 동행하기 위한 가치투자자의 로망은
1년치 예상 EPS에 대한 밸류를 보다는 더 긴 시간적 개념으로 접근해야지만 가능하고,
또한, 그 동행하는 기간동안에 더 수익율이 좋아보이는 투자처에 눈감아야지만 가능한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결국, 수익을 알뜰히 모두 가지려하지 않고 적당히 흘려버려야지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투자규모가 작다면 시간지평을 너무 길게 잡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투자규모가 커질 수록 점점 더 흘려버릴 건 흘려버리는 자세가 필요한 듯도 싶습니다.
가투소에서조차 가치투자에 대한 의견차이가 나는 부분은 결국 이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포즈랑님 댓글에 대한 저의 답변]
오랜만입니다^^
포즈랑님의 투자 철학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장기적으로 순이익과 자본총계가 우상향하는 기업에 올라타서 기다리면 되는투자.. 그게 제일 좋죠^^
기본적으로 저 또한 그런 투자 방법을 지향하지만 그 투자 철학에 맞는 회사를 찾는게 쉬운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나마 오뚜기, 이씨에스, 하이록코리아와 같은 꾸준한 기업이라면 1년 후 EPS가 아니라 5년 이나 그 이상도 바라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EPS보다는 BPS중심으로 봐야하는 회사도 있을거구요...^^
다만, DCF는 개인이 사용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툴이라는 생각이 더 확고해지네요. 기업 환경도 그렇지만, 기업에 대한 철저한 질적 분석이 뒤 따른 후에야 겨우 DCF와 같은 툴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도 하구요..^^
그리고 굴리는 금액이 크고 천천히 가도 되면 괜찮지만 굴리는 금액이 적고 조금 공격적으로 할 필요성이 있는 분들이라면 가치투자를 하더라도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가투소 JeanLuc님 댓글]
답글삭제Buffett의 경우 DCF방법에만 의존한다기 보다는 안전마진과 결합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DCF방법에 의한 평가액이 현재주가보다 충분히 높아야만 (즉 안전마진이 충분) 투자하는... DCF방법의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요. Buffett는, 할인률로 장기국채수익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Hagstrom 책에서.)
[제 의견]
아마 노련하신 분들은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러가지 툴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EPS * PER, BPS * PER, BPS ROE만 볼 뿐 아니라 DCF, RIM을 활용하거나, 배당수익률을 따지거나, 대차대조표를 다 뜯어서 안전마진도 찾구요. 여러가지 툴을 사용해도 공통적으로 저평가로 나오거나 미래에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다면 매수를 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히 잘 봤습니다.
답글삭제저도 현재는 그나마 사용할줄 아는 적정가 계산 방법이 DCF밖에는 없네요. 그런데 이런 툴을 통해서 어떤 기준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없이 그냥 BM만 보고 진입하거나 해서는 작은 요동침에도 버티기가 쉽지 않더군요. DCF를 적용하다보니 꽁초투자밖에는 안되고 있어서 고민이긴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저도 현재는 그나마 사용할줄 아는 적정가 계산 방법이 DCF밖에는 없네요. 그런데 이런 툴을 통해서 어떤 기준에 적합하다는 판단이 없이 그냥 BM만 보고 진입하거나 해서는 작은 요동침에도 버티기가 쉽지 않더군요. DCF를 적용하다보니 꽁초투자밖에는 안되고 있어서 고민이긴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답글삭제DCF는 민감도에 따라서 적정주가 산출되는 값이 휙휙 틀어져서 제대로 사용하려면 회사 탐방도 50번쯤 가고 아주 디테일 하게 회사의 미래를 파악할 수 있을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어려운 툴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숫자 놀음으로만 접근했는데, DCF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고도로 정밀한 회사의 질적 분석과 미래 예측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바 있습니다. 밸류에이션 툴은 스스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위한 역할도 하므로 자기 자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삭제제이님 감사히 잘 봤습니다 ^^
삭제이렇게 좋은글을 읽을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답글삭제저도 DCF를 단순한 숫자로 인식하고자 했는데 "민감도에 따라 적정주가 산출이 달라진다", "디테일 하게 회사의 미래를 파악할 수 있을때"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말이네요.
어찌보면 DCF를 이용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들 자체가 이미 DCF를 한것과도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콩딱님. 그렇습니다. 그리고 단순 PER 멀티플을 줄 때도 기업의 양적, 질적 분석을 동반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의 밸류에이션 툴을 쓰더라도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는 비슷할 것 같습니다.
삭제글과 댓글을 읽고보니 투자라는것이 더 어렵고 멀게 느껴집니다ㅠ
답글삭제심플하게 생각하면 한 없이 심플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면 한 없이 복잡한 게 투자인 것 같습니다.
삭제선생님이 알려주신것들에서 공식을 정확히 대입하긴보단 여기서 더 패널티를 주는구나 플러스를 주는구나에 대해 생각을 해서 틀을 잡았던거 같습니다. 그래도 기업에 대한 간략한 그림과 사면안되는걸 알려주는건 밸류에이션적인 툴이 무척 도움이 되는건 맞는거 같습니다 ^^
답글삭제박수 짝짝짝! 정확한 의견입니다!
삭제일요일 아침부터 문득 벨류에이션을 더 정확히 공부해보자 하고 돌아다니다가 송종식님의 블로그에서 문뜩 이 글이 눈에 띄었네요.
답글삭제eps x roe, 동종업계 per 비교, 동일기업 역사적 per 비교, bps x pbr 등등...더 손쉽게 보이는 방법보다는 dcf나 rim 계산 방식이 어려워보이기도 하고, 상대적 평가가 아닌 절대적 평가방식이라는 글도 귀동냥으로 듣고 하다보니 놀랍고 신비해보이기도 했습니다.
찾아보니 구글앱스토어에서 dcf 계산식을 담은 어플을 천원에 받을 수도 있더군요.
하지만 결국 벨류에이션은 어떤 도구를 사용하든 가격 밴드의 폭(?) 설정에 영향을 줄 뿐 절대적인 가치 창출을 할 수 없다는 점...본문에 말씀해주신 "진짜" 리서치로만 가능한 자료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허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되네요.
무엇보다 같은 기업에 대해 잘 알려진 벨류에이션 방법으로 추정한 가격치가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거나 하진 않는 듯 하다는 점도 마음에 걸리네요.
벌써 5년 전에 쓰신 글이니, 이미 그 훨씬 전부터 고민하셨던 내용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예전 정무문에서 이연결이 절대법칙은 없고 물 흐르듯 변하는 것이 권법이라고 했듯이 밸류에이션도 그렇고 투자도 그렇고 다양한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 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게 답인 듯 합니다. 밸류에이션을 해주겠다고 정해진 공식에 재무제표 숫자만 집어넣어서 단순 계산해주는 앱들도 많던데.. 다 쓸모가 없지요.. ^^;;
삭제안녕하세요, Robin K 입니다. 밸류에이션 툴을 배움에 있어서 늘 들었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신 것 같습니다^^ 근거로 화려하고 멋지게 내세울 수는 있는 방식이지만 정작 그 과정의 본질(미래를 다루는 방식)이 취약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밸류에이션도 할 줄은 알아야겠지만 결국 정말 중요한 것은 핵심적인 정성적인 요소와 통찰력의 발휘, 이를 넘버스로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절차라고 생각해봅니다. 투자를 하다보면 참 뻘짓할 요소가 많다는 걸 느낍니다. 미래 예측, 지수 예측, 매크로 전망, 들으나 마나한 쓸데없는 강연과 글과 책들 등..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은 정말 험난하기만 합니다. 하다보면 계속 가까워지겠죠?
답글삭제마지막 물음엔 그렇다고 대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구요. 주신 의견은 전부 저도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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