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추운 겨울을 제외하면 깊은 바다에서 친구들과 물장난을 하며 놀았고, 방파제는 친구들과 쌓아 둔 추억도 많은 곳이다.
어린시절 우리는, 외지에서 해수욕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에게 객기를 부리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동네 친구들은 경계선을 한참 넘어 간 깊은 바다에서 놀았다. 나름대로 그렇게 바닷물질에 대한 자부심을 뽐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쥐똥만한 어린이들이 그러고 놀았다는 것 자체가 아주 위험한 행위였다. 안 죽고 살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리고 그렇게 논다고 누가 '와 너희들 용감하네!' 하면서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참 치기 어리고 어린 아이들다운 행동이었다.
어쨌든 그러다 보니 가끔 누군가로부터 시시껄렁한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는 질문을 들으면, 나는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다!'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산은 내 머릿속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친밀하게 느껴지는 바다에 비해서, 산은 뭔가 어색하고 거리감도 느껴지고 조금의 두려움도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러던 나도 살다가 보니 작은 산봉우리 하나를 정복할 기회가 있었다. 산으로 향한 것은 내가 자발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발로 산봉우리를 정복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 경험을 얻은 곳은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있을 때였다.
당시 해병대 기초훈련 기간은 7주였다. 훈련 막바지에 일주일 간 극기주를 치른다. 극기주 기간에는 강도 높은 훈련들이 기다리고 있다. 훈련도 훈련지만 수면시간을 확 줄이고, 공급하는 음식량을 줄인다. 시종일관 졸려서 비몽사몽에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에 이른다.
천자봉은 해병대 훈련병들이 받는 훈련의 피날레이자 백미이다.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30kg 정도의 군장을 몸에 이고 왕복 40km를 도보로 이동한다. 중간중간에는 뛰어서 이동하라고 한다. 넋이 나간다.
운제산 천자봉의 해발은 482m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그리고 이미 극기주로 다 소진된 체력에 육중한 군장까지 메고, 빠른 걸음으로 행군해서 산을 오를 때도 단 1초도 쉬지 못하고 끝까지 한번에 산에 올라야 한다. 인간 한계를 시험받는 고통을 맛보게 된다.
우리 기수에서는 낙오자 한 명이 나왔다. 나머지는 결국 천자봉 정복에 성공했다. 우리는 큰 성취감을 맛 보았다.
그리고 이때 말로만 듣던 DI(교관)의 위엄을 보았다. 낙오된 친구를 등에 업고 천자봉에 올라왔다! 그는 지친내색 하나 없었다. 병들이 간부는 무시해도 DI만큼은 리스펙 하는 이유가 있다.
천자봉 정상에 올랐을 때, 딸기 패스츄리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받았다. 그게 그렇게 꿀맛이었다.
젊음이 좋았다. 지금은 하산을 할 때 무릎 연골이라도 나갈까 조심조심 걸어서 내려온다. 하지만 저 때는 30kg의 군장을 하고도 산에서 거의 날다람쥐처럼 내려왔다. 폴짝폴짝 뛰어서 순식간에 하산하고 교육훈련단으로 돌아왔다. 발걸음이 다들 가벼웠다.
젊고 혈기왕성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대망의 빨간명찰 수여식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슴에 빨간명찰을 달면 병과와 소속을 불문하고 해병이 된다. 이걸 달려고 7주간 고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훈련단에서 젊은 햇병아리 병사들은 3번 운다.
한밤중에 연병장에 끌려 나와서 혹독한 기합을 받는다. 다들 땀이 범벅이 된다. 이때 갑자기 로봇같던 DI가 무드를 잡는다.
"다들 현재 위치한 곳에서 그대로 뒤로 눕는다."
잠시 몸이 편안하고 살랑바람에 몸이 시원하다. 하늘을 보니 별들이 반짝거린다. 머릿속이 편안해 진다. DI가 갑자기 멘트를 친다.
"지금 너희가 보는 저 별. 너희 부모님도 함께 보고 계신다. 지금까지 너희를 먹여주고, 키워주고, 또 이렇게 멋있는 사나이로 만들어 군에도 보내 주셨다. 다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 싶을 줄 안다. 다들 어머니 마음 노래 부를 줄 알지?"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 마음을 다 같이 불러보겠다. 시작해"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이때 온 훈병들이 울기 시작한다. 훈병들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다. 정말 감정이 벅차 오른다.
이때 한번 운다.
두 번째는, 천자봉 정복을 마치고 훈단에 돌아와서 가슴에 빨간 명찰을 달 때 운다. 이거 하나 달려고 그 고생을 했으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건 당연하다.
끝으로 훈련단 교육을 수료 하고 실무 배치가 될 때다. 동기들과 헤어지면서 눈물바다가 된다.
등산이라는 취미를 시작했다. 틈틈이 내가 올랐던 산에 대해서 간단한 기록을 남겨 볼 생각이다. 이번 포스팅은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2022년 11월 8일
송종식
으헉 귀신잡는 해병대 출신 이셨군요!! 조금 놀랐습니다. ㅎㅎ 저도 최근에 앞산 뒷산 운동삼아 오르고 있습니다. 송선생님 유튭 들으면서 걸으면 기분도 좋아요. 산 사진 앞으로도 많이 올려주세요
답글삭제남자의 인생에서 가장 울보가 되는 시절 ㅎㅎ
답글삭제어린시절 이야기를 읽다보니 제 어린시절이 생각나고 향수에 잠깐 잠겼네요.^^ 오..해병대 출신인줄은 몰랐습니다. 과연.. 대단하신 분이네요.^^
답글삭제사람을 업고 산을 오르다니 엄청난 교관인데요
답글삭제어머니의 마음 부르면서 안우는 사람이 있을까도 싶고
무릎연골 나갈까 조심조심 내려와야 하는 지금도 완전 다 공감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