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이 되기 전 까지는 전쟁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위협받던 어린 나날들이었습니다. 집이 부자가 아니어도 괜찮았습니다. 단지 부모님이 해주시는 따뜻한 밥만 먹고 자랐으면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보낸 10대 시절이었습니다.
20대 때는 군 전역후에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냈습니다. 중학교 때 부터 생업 전선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는 친구들과 만들었던 벤처기업의 창업멤버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도 몇번의 작은 창업과 실패를 연속으로 겪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역량이 너무나 부족한 시기였습니다. 백기투항한 저는 스타트업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스타트업을 발판으로 중견기업도 5년 남짓 다녔습니다. 조직에서 일을 배운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좋은 사람들, 많은 배움, 감사했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홀로 낭인이 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20대 시절에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때는 삶의 기반을 많이 쌓아 두었습니다. 제가 존경하던 형님이 창업한 회사에 다닐 때는 완전히 충성하며 다녔습니다. 새벽에 연락이 와도 자다가 튀어 나갔습니다. 시키는 건 무엇이든 했습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했습니다.
회사 밖에서는 개인 커리어도 열심히 개척했습니다. 투자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소비도 극도로 절제했습니다. 극빈층 모드로 살았습니다. 열심히 돈을 모으고 굴렸습니다. 사이드 잡을 되는대로 잡아서 처리하면서 현금흐름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거의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잠을 잤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새벽에 수영을 꼬박꼬박 나갔습니다. 20대때 현명한 여성을 만나서 결혼도 하였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주머니에 고향서 상경하는 버스비만 달랑 들고 올라왔던 서울 생활이 떠올랐습니다. 서울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지금 제가 알게 된 사람들, 손에 쥔 것들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30대 때는 무작정 열심히 사는 것은 내려놓았습니다. 30대 이후로는 '설렁설렁 열심히' 사는 모드가 되었습니다. 분명히 심적으로 훨씬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음 외적인 부분도 물론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면 제가 사는 걸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할 건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설렁설렁 열심히' 이게 남들이 보면 유유자적처럼 보입니다. 물론 제 마음 속에서도 많은 여유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또 이것저것 열심히 합니다. 어떻게 보면 상충되는 말이지만 당분간도 '설렁설렁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은 유튜브와 같은 소소한 소일거리도 하면서 지냅니다. 덕분에 '설렁설렁 열심히'에 걸맞게 더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블로그, 유튜브, 텔레그램 등을 통해서 소통해 주시는 다른 투자자들께도 늘 감사드립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활동도 즐겁고, 활자를 읽는 것도 즐겁습니다.
이렇게 '설렁설렁 열심히' 살다가, 또 제가 진정 투신할 일거리가 발견되면 20대때 처럼 열정을 불태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의 삶의 질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욕심 부리지 말고 꾸준히 한걸음씩 조용히 따박따박 걸어가겠습니다.
사진 : 송종식 |
덧1) 앞으로 어디가서 '전업투자자'라고 저를 소개하는 걸 줄일까도 생각합니다. '전업투자'라고 하면 의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종일 화면 앞에 붙어서 주식을 사고 팔며 전쟁을 하는 사람'. 하지만 저는 HTS는 아예 사용을 안합니다. MTS도 가끔만 확인합니다. 주식 매매는 1년에 몇 번 하지도 않습니다. 주식을 사고 파는데 인생을 전혀 쓰고 있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 화면 밖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화면 앞에 앉아 있을 때도, 가끔 팔로업 하는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를 정리하거나 글을 쓸 때 뿐입니다. 그리고 인생이 '전업투자'에 갇히는 것도 지양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이미 많은 일들을 벌이고 있고, 벌일 궁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덧2) 전업투자 초기 시절.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투자자 형들과 태국 여행을 할 일이 있었습니다. 지명도 생소한 곳을 지나다가 즉석으로 러시아식 사우나에 들렀습니다. 그곳의 샤워장은 야외에 있었습니다. 샤워를 하면서 하늘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예뻤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내 머리 위에 누가 없는 것도 다 행복했습니다. 오래도록 제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도 꼭 그런 삶의 여유가 생기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 해봅니다.
2024년 10월 17일
2024년 10월 17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