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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3일 금요일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

알림 : 이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개요


작가는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인입니다.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파리에서 살던 호세이니 일가가 돌아가기에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평화로운 땅이 아니었습니다. 

공산화 된 조국을 떠난 호세이니 일가는 미국 서부에 터를 잡고 살아갑니다. 알레드 호세이니는 미국에서 차근차근 공부하여 생물학 학사학위를 받고,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됩니다. 호세이니는 원래 소설가는 아니었습니다. Cedars-Sinai 병원에서 내과 의사로 근무했습니다. 진료를 마치면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2001년부터 쓰기 시작해서 2003년에 세상에 나온 책이 바로 이 '연을 쫓는 아이'입니다.

할레드 호세이니 <자료 : 유엔난민기구>

호세이니의 첫 소설은 70여 개국에 팔립니다. 총 4,800만 여부가 판매됩니다. 그는 문학계에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한 번에 거물이 되었습니다. 후속작인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도 큰 호평을 받습니다.

'연을 쫓는 아이'가 아프가니스탄 남자들의 이야기라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여자들의 비극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천안문 시위,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독일 통일, 미국의 오일쇼크 등 굵직한 글로벌 이슈들 속에 약소국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철저히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할레드 호세이니가 그 비극을 멱살잡고 수면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이만한 애국, 이만한 홍보, 이만한 외교가 따로 있을까 싶습니다.

시대적 배경


소설에 등장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참담할 정도로 극적입니다.

카불이 영국령에서 벗어나고 1923년부터 1973년까지 바라크자이 왕조가 들어섭니다. 군주제긴 했어도 이 시기가 아프가니스탄 역사상 가장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였습니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이 시대에 해당합니다.

주인공 아미르는 부유한 아버지를 뒀습니다. 덕분에 수도 카불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동네에 살았습니다. 그 동네에서도 가장 좋은 집이었습니다. 좋은 시대였지만 극명한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아미르의 집에는 흙으로 대충 빚어서 지은 하인들의 집이 따로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하자라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미르 가족의 소일거리를 도우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산은 하인의 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인 아들인 아미르와 잘 어울려 다녔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비극, 소설에서 아미르 일가와 주변 사람들의 비극은 1973년에 시작됩니다. 자히르 샤 국왕이 해외 순방을 하던 중 무함마드 다우드 칸이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군주정은 폐지되고 공화정 체제로 바뀌지만 사실상 그냥 독재체제였습니다.

개혁정책이라고 실행한 것이 일단의 이슬람 물빼기였습니다. 노선은 '적극적 친 소련 노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함마드 다우드 칸 초대 대통령은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잔인하게 탄압하였습니다.

1978년,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이 다시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대통령 관저에서 다우드 칸 대통령과 일가족을 모두 처형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은 극좌 단체였습니다. 초대 대통령은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가 맡았습니다. 국민들에게는 그저 '다우드 칸 대통령이 건강상 문제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한다'라고만 했습니다.

새로 들어 선 정권은 이슬람을 강력하게 탄압했습니다. 종교탄압에 대한 반발로 무자헤딘 게릴라들이 정부군과 군사적 충돌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은 내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1979년, 소련은 인접 국가에 대한 안정화를 명목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소설에서 바바와 아미르 가족은 망명을 떠납니다. 아미르가 컴컴한 기름탱크 속에 숨 죽이고 있는 장면은 살이 떨리도록 긴장됩니다.

무자헤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멈춥니다. 그리고 침공한 소련군을 상대로 싸웁니다. 지리한 충돌끝에 1988년에 소련은 군대 철수를 결정합니다.

이후에도 무자헤딘과 새로 들어선 나지불라 정부군의 충돌은 계속 됐습니다. 1992년 무자헤딘이 카불을 점령하며 승리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무자헤딘 안에도 다양한 파벌이 있었습니다. 무자헤딘이 논공행상과 각종 이해관계로 산산조각 납니다. 이 틈을 타고 탈레반이 등장합니다.

1970년대 서구적인 복장의 카불 여성들
지금 저러고 다니면 즉결처형 대상이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탈레반은 극단주의 종교단체입니다. 1996년 이들은 카불을 점령하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오랜 전쟁과 폭력 그리고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탈레반이 이 혼란을 끝내 주리라 믿고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탈레반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더 크고 끔찍한 고통이 다가올 것을 모른채..

등장인물의 간략한 캐릭터


아미르


파슈툰족. 바바의 아들. 바바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한다. 카불의 가장 좋은 집에 사는 도련님. 그는 생각이 많지만 겁도 많다. 때로는 야비한 면도 있다. 하지만 연민도 많다. 복잡한 인물이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하산이 강간당하는 것을 보고도 모른체 한다. 하산은 강간을 당하면서도 도련님을 위한 연을 지켜낸다. 아미르는 그 연을 들고 바바에게 인정받는다. 아미르는 이것을 평생의 마음의 짐으로 안고 살아간다.

바바


아미르의 아버지. 꽤 성공한 사업가이자 자선사업가. 카펫 수출사업, 2개의 약국, 하나의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사업은 잘 됐다. 주변 사람들을 아낌없이 도왔으며 고아원을 자비로 지어서 운영했다. 그는 서구 자유주의에 가까운 사고를 하는 사람이었다. 능력있고 냉철한 사람이었다. 아들 아미르에게도 그랬다. 그는 아미르가 강인한 남자이길 바랐다. 성에 차지 않았는지 차갑게만 대했다. 되레, 하인의 아들이었던 하산을 남자로서 더 인정하는 면도 있었다. 바바는 자존심도 강했다. 소련군의 총구 앞에서도 할 말은 했다. 미국에서도 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주는 식료품 지원 카드를 집어 던지고 주유소에서 고생하면서 일을 하는 성격이었다.

아세프


공군조종사의 아들. 아세프의 아버지는 바바와 친구였다. 아세프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문제아였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꽤나 칭찬받는 아이였다. 흉기를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그런 그도 바바는 무서워 했다. 바바 덕분에 아미르는 아세프의 직접적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세프는 군주제 붕괴를 환영했다. 어려서부터 야망이 대단히 컸다. 그는 히틀러를 추종했다.

라힘 한


바바의 동업자. 바바의 집에서 함께 자주 시간을 보냈다. 아미르에게는 정서적으로 아버지인 바바보다 더 가까운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제2의 아버지,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라힘 한은 바바의 글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어른이었다. 아미르와 하산이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도 바바와 함께 공유하는 사람이었다.

하산


알리의 아들. 아미르의 친구. 충직한 하인이다. 의리와 용기가 있는 친구다. 주인님을 위해서는 천 번이라도 희생하겠다는 우직한 캐릭터다. 연날리기 대회에 재능을 갖고 있다.

알리


하산의 아버지이자 아미르 가족의 하인이다. 한편으로 아미르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 역시 우직한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아미르가 꾸민 모종의 나쁜짓으로 인해서 알리는 하산을 데리고 평생을 함께했던 아미르의 집을 떠나게 된다.

소라야


아미르가 미국 망명생활을 하면서 만난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장을 열었는데 거기서 만났다. 이슬람 문화권 특징상 남녀가 자유롭게 말을 걸고 연애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둘은 첫눈에 반하고 눈빛으로 대화를 나눈다. 나중에는 소라야 어머니의 배려로 자주 만날 수 있게 된다. 소라야는 한 번의 파혼 경험이 있다. 아미르는 이를 모두 눈 감아준다. 소라야 역시 마음씨가 따뜻한 여성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힘들어 했지만 소랍을 내 아들처럼 받아 들인다.

소랍


하산의 아들이다. 하산이 탈레반에게 처형 당하고 소랍은 탈레반에게 끌려간다. 탈레반에게 감금과 성폭행을 당하는 등 모진 생활을 하며 지내다 아미르에게 구출된다. 새총을 잘 쏘았다. 아버지 하싼의 새총은 중요한 순간에 아미르를 구했다. 그러나 소랍의 새총은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 새총 한 발 덕분에 소랍은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소랍은 새총 쏘는 실력만 출중한 것이 아니라 용기도 금빛으로 빛났다. 그것은 아버지 하산의 유전자를 물려 받았기 때문이리라. 신분제가 없는 미국에서 꿈을 펼치며 잘 살았길 바란다.

연이 의미하는 것


연 날리기는 아프가니스탄의 전통놀이다. 연의 씨줄과 날줄은 나라의 운명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운명도 격자로 동조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듯 하다.

연을 날리는 모습은 자히르 샤 국왕 시절에 한번 묘사된다. 그리고 소설 말미에 미국 집회 장소에서 연을 날린다. 초반부 연은 평화의 상징이었고, 후반부의 연은 자국의 평화를 희망하는 작가의 염원을 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군은 2021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다.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갔다.

극 중 연은 아미르가 아버지 바바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아주 중요한 표식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산의 능력과 희생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아미르의 인생은 그 연과 함께 쭉 가슴속에 묻어 둔 고통,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소련과 탈레반, 그리고 미국


왕정이 붕괴되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차지한다. 그리고 다양한 세력이 내전을 일으킨다. 나중에는 미국이 개입해서 잠시 평화가 찾아 오는 듯 싶었다. 하지만 미군이 철수하면서 다시 탈레반 소굴이 된다.

천년만년 같은 땅. 하지만 지배하는 세력은 계속 변한다. 그 과정에서 선 인지 악 인지도 모를 폭력이 계속된다. 사람들은 우리편일 것 같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머잖아 그들이 총칼로 우리를 억압한다. 도대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가.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내 망상이기는 하다. 내가 항상 머릿속에 갖고 있는 생각을 소설이 적나라하게 풀어냈다. 반짝이고 활기찬 도시 서울이 폐허가 된 모습. 거리를 떠도는 부랑인들과 거지들. 끊겨버린 전기와 상수도. 망가진 건물들에서 흩날리는 시멘트 먼지들. 디젤 냄새와 썩는 냄새들.

카불은 서울에 초가집이 가득하던 시절에도 꽤 발전한 도시였다. 사람들의 옷 차림은 서구적이었고, 경제도 활기찼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카불은 폐허의 도시가 되었다. 폭력과 살육의 도시가 되었다. 세상과 단절됐다. 여자들은 이제 부르카를 착용하고 다녀야 하며 혼자서 거리를 다닐 수도 없다.

악담이 아니라 우리나라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다. 우리나라도 내전이 잠시 멈춰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그리고 세계의 분쟁을 몰고 다니는 미국, 중국, 러시아의 힘이 충돌하는 곳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 나라를 자손들에게 잘 물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평화와 풍요의 생활은 얼마든지 어제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겪지 못한 꿈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아슬아슬한 우리나라가 그나마 버티는 건 강력한 경제력과 한미동맹 덕분이다. '강력한'이라는 단어를 썼지만 어떻게 보면 연약한 유리 같을지도 모른다. 방심하는 사이 그것은 깨질 수 있다. 며칠 전에 썼던 '사소한 한뼘 차지하기'게임이 한반도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은 있다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말로 표출한 것이다. 아마 대답을 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은닉하는 것 까지 포함하면 인간은 거짓말을 생산하는 기계라고 봐도 될 정도다. 물론 나도 인간이기에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설 속 인물들도 거짓말을 한다. 극 중 아미르는 바바에게 1등 연을 자기가 쟁취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하산을 도둑으로 몰아 집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알리와 하산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아미르의 거짓말에 눈을 감아준다.

반대로 바바는 아미르에게 죽을 때 까지 하산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함구한다. 거짓말도 도둑질이라고 가르치던 바바는 아미르에게 가장 큰 도둑질을 하고 세상을 떠난다. 아미르는 바바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아미르는 평생의 짐을 덜기 위해 탈레반 소굴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하산의 아들 소랍을 구해낸다. 그 과정에서 치아가 함몰된다. 갈비뼈는 몇개나 부러진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수도 있었다. 아세프에게 죽도록 폭행을 당하면서 아미르는 웃는다. 어쩌면 평생의 짐을 그렇게 덜어 낸다는 생각에 홀가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랍을 양자로 입양한다. 하산에게 지은 죄를 그렇게 씻어낸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는 만큼,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은 있다. 다만, 세상의 수 많은 거짓말과 비밀이 발각되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수 많은 비밀들과 거짓말이 발각된다면 세상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투명해 지기 보다는 폐허가 될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상대의 거짓말을 알았을 때도 어느 정도는 눈을 감고 포용하는 태도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나에게 큰 피해를 끼치는 것만 아니라면. 그것이 관계를 위한 기술이다.

가령 어떤 모임이 있다고 하자. 그 모임에 나온 사람들이 해왔던 거짓말, 그리고 숨겨 둔 치부들을 몽땅 테이블 위로 꺼낸다고 치자. 그 모임은 폭파되고 말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해야 살아갈 수 있다. 관계를 위해 불가피한 거짓말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많은 사람들의 거짓말과 치부를 알고 있지만 내 가슴 속에 모두 묻었다. 나 역시 완벽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는 내 치부를 가슴에 묻어 뒀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죄의 시간은 필요하리라.

실재하나 꿈이고, 꿈인 듯 실재하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상류층의 삶을 살던 바바는 미국에서 극빈층의 삶을 살아간다. 겨우 일자리를 하나 구했지만 주유소 주유원이었다. 바바의 손은 갈수록 갈라졌다. 얼굴에는 주름이 늘었다. 허리는 굽어가고 피부는 검어졌다. 총명하고 여유있던 바바는 화를 버럭 잘 내는 그런 괴팍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다. 얼마나 황망한가.

부유한 삶을 누리게 만들어 준 물질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살아 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 관계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특히, 바바가 본국에 있을 때 도와 주었던 사람들은 바바의 죽음에 모두 슬퍼했다. 그것이 그가 남긴 유산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을 해야 하는 부분이다.

내가 자주 인용하는 탈무드의 이야기가 있다.

'해적들이 우리가 평생 모은 재산을 가져가도 상관없다. 일단 우리 목숨만 붙어 있으면 된다. 그리고 우리 머릿속에 지혜와 지식만 남아 있으면 된다. 그것은 그 누구도 훔쳐갈 수가 없다.'
 
한편, 아미르는 미국에 머문지 20년 정도 되었다. 작가로도 성공했다. 가정도 이뤘다. 풍요로운 캘리포니아를 떠나 희망이 없는 고향땅을 밟는다. 고향땅은 앞서 서술한 대로 폐허다.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들은 이렇게 다르다. 굳이 미국과 아프가니스탄만큼 멀어질 필요도 없다. 아마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사는 우리네 인생도 그럴 것이다.

사소한 판단과 선택으로 개인의 삶은 극명하게 갈린다. 어쩌면 신의나 의리 같은 것들이 그렇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아미르는 미국 시민권, 소라야, 소랍과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고 나머지는 모두 잃었다. 라힌 함과 하산은 의리와 신의를 지키고 나머지를 모두 잃었다. 절대 선, 절대 악이 없듯이 이 부분도 너무나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래서 소설이 더 비극적이다.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서 즐거음과 행복을 찾고, 옆에 함께 하는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며 매 순간을 살면, 그 뿐인지도.

사진 : 송종식

작가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대해서 세계에 널리 알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현재 아프간 난민이 미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처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질디 모진 인생을 살다 간 하산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충직하고, 올곧으며, 의리와 신념이 있는 친구입니다. 게다가 머리도 좋고 성실합니다. 하산이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여운이 많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2023년 2월 3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