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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양평 용문산 가섭봉에서 겸손을 배우다 - 등산일기 EP.3

용문산, 겸손을 가르쳐 준 산

"그깟 산 타는 게 별거야?"라고 쉽게 생각했다. 멋 모르고 해맑게 올라갔다. 하산 하면서 극한의 체력고갈을 느꼈다. 자칫 큰 일이나겠다 싶었다. 조금 오버하면 목숨이 위태로웠을지도 모르겠다.

1. 등산일자 : 2022년 11월 7일
2. 코스 : 용문사 -> 가섭봉(1,157m)
3. 난이도 : 등산(매우 높음), 하산(매우매우 높음)
4. 소요시간 : 등산(3시간 45분), 하산(3시간 15분)
5. 동반인원 : 단독 산행
6. 준비물 : 별도로 챙기지 않고 맨 몸만 올라감 (이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됨)
7. 의미 : 사전 리서치의 중요성, 겸손의 중요성을 배움, 초인적인 힘으로 난이도가 높은 악산을 정복하고 내려옴

용문산 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슬슬 올라간다. 용문사에서 출발해서 용문산 가섭봉을 정복하는 루트를 택해서 움직였다.
<자료 : 카카오맵, 송종식>

자, 그럼 출발!

용문사->가섭봉 루트가 어려운 이유


1) 바위산, 돌산이다. 등산로라고 존재는 하지만 길을 잃기가 쉽다. 사람들이 어디를 밟고 다니는지도 불분명하고 이정표도 불친절하다. 까딱 잘못하면 길을 잃기 쉽상이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걷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2) 등산로 전반적으로 길이 엉망진창이다. 등산인들은 그런 경우에 '너덜산'이라고 부르는 것 같더라. 그런데 여기는 너덜산 수준이 아니다. 산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올라 갈 거면 가고, 말거면 말아라' 진짜, 온갖 깨진 바위에 돌들이 끝 없이 널부러져 있다. 뾰족한 돌, 미끄러운 돌들도 많아서 정말 조심해서 다녀야 한다.
3) 전반적으로 산의 경사가 가파르다. 그래서 체력 소모가 매우 심하다. 게다가 길도 가깝지 않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다 왔나?' 싶으면 또 길이 있고, '진짜 다 왔나?' 싶으면 또 길이있다.
4) 산에서 귀신 나올 것 같은 분위기에 사람도 없다. 그 어둡고, 크고, 험한 산에 혼자 있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일단 묘하게 별로였다.(ㅋ)

내가 목숨의 위협을 받은 이유


1) 우선 지식도 경험도 없으면서 그저 산을 만만하게 보고 도전했다.
2) 출발 전 필요한, 산에 대한 사전 정보 체크와 준비물 준비를 하지 않았다. 동네 뒷산 정도로 생각한 채 그저 실행하고 올랐을 뿐.
3) 시간 안배에 실패했다. 늦가을이라서 해가 빨리 떨어질 것을 어느 정도 감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마터면 어둠 속 산 중턱에 갇힐 뻔 했다. 탈수 증상 등으로 체력이 소진되어 이동 속도가 현격히 떨어질 것을 고려하지 못함.

주차장~용문사 구간


용문산관광단지의 입장료는 2,500원이다. 알록달록한 YONGMUNSAN 글씨가 반겨준다.
<사진 : 송종식>

여기는 나름 거리가 있는 산책로라고 생각하고 걸었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 나가지만 유모차를 미는 관광객들도 쉬엄쉬엄 오를 수 있을 정도다.

남의 말을 좋게 하자
<사진 : 송종식>

내가 내 입으로 실패했다고 입 밖으로 꺼내기 전 까지는 절대로 실패한 것이 아니다. 또한, 내 존재를 잃지 않았다면 아무도 나에게 실패라는 허울을 덧 씌울 수 없으며 인생 또한 계속된다.
<사진 : 송종식>

한참을 걸어 올라오면 용문사가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등산 시작이다. 딱 이 때까지만 행복하다.
<사진 : 송종식>

용문사 입구에 큰 은행나무가 이곳의 자랑이라고 한다. 미처 사진에 담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용문사~마당바위 구간


본격적으로 난장판 길이 시작된다. 쉬고 싶어도 어디 편하게 눕거나 앉는 것도 힘들다. 산이 계속 말한다. 

"이래도 올라 갈거야? 그래 니 마음대로 해. 갈거면 가고 말거면 말아라~ 하지만 쉽지는 않을거야~"

그래도 등산 초반 타임이라서 뾰족한 돌에 찍히는 것, 미끄러운 돌과 낙엽의 콜라보에 미끄러지지 않는 것, 갑자기 큰 돌을 밟고 올라가야 해서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 정도만 조심하면 꾸역꾸역 올라 갈 만하다. 

문제는 하산할 때 이 구간이 거의 죽음의 구간이 된다.

마당바위~깔딱고개 도는 지점 삼거리 구간


이 구간이 용문사 등산의 하이라이트다. 위 지도상으로 보면 거리가 짧아 보인다. 그만큼 급경사 구간이다. 그리고 길은 용문사~마당바위 구간보다 더 엉망진창이다. 이 구간을 오를 때 사람이 정말 처절해진다. 큰 육체적 한계와 고통을 시험 받으면서 오르게 된다.

이 깔딱고개를 다 오르면 작은 마루가 하나 나온다. 상원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와 마주치게 되는데 그 판상에서 잠깐 쉬다가 마지막 구간을 정복하기 위해 이동하면 된다.

깔딱고개 도는 지점~가섭봉 정상


이미 체력이 상당히 소진된 상태다. 그 상태에서 이 구간도 쉽지가 않다. 일단 생각보다 길이 멀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다 올라온 것 같은데도 능선이 계속 있는 신기한 구간이다. 그리고 이 구간에서는 계단이 무척 많다. 그리고 계단 폭이 좁고, 경사가 가팔라서 매우 조심해야 한다. 계단하나 헛 디디면 저 세상행. 전반적으로 떨어지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이 위협 받을 수 있는 구간이 많다. 그리고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마지막 체력 빼기를 위한 피날레 구간이기에 이 구간도 쉽지 않다.

용문산 가섭봉의 정상석
<사진 : 송종식>

용문산 주변은 산세가 험하고 높은 봉우리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가섭봉은 주변의 봉우리들을 아우르는 느낌이 들어 웅장했다. 하지만 훨씬 해발이 낮았던 백운봉에 비해서 경치가 멋있지는 않았다. 멋진 경치를 기대하고 가섭봉에 오르면 안 될일이다. 그리고 하필 또 이날부터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가뜩이나 안 멋있는 경치에 미세먼지까지 깔려서 더 별 볼일이 없었다.(그나저나 중국 공장들 다시 돌아가나..?)

가섭봉에서 공군부대 방향으로 바라 본 뷰
- 보안에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
<사진 : 송종식>

등산을 시작했던 용문사관광단지와 용문면 방면으로 바라 본 모습, 평지였어도 꽤 먼 거리다. 이 험하디 헌한 협곡을 타고 올라왔다고 생각하니 큰 성취감이 몰려왔다.
<사진 : 송종식>

가섭봉은 원래 공군부대가 출입을 통제하던 곳이다. 출입통제가 풀리면서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근처에 군부대 건물들도 보인다. 

양평 어디서나 보이는 이 안테나는 KT안테나였다.
<사진 : 송종식>

거대한 통신 안테나는 양평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힘들고 나쁘기만 한 산이었나?


아니다! 힘들었던만큼 큰 성취감도 주었던 산이다. 그리고 포스팅 도입부에 썼듯이 겸손함을 가르쳐 준 산이다. 그리고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 산이었다.

또, 중간에 시냇가 옆을 한참 걷는 구간이 있다.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조용하고 경이로운 분위기도 한껏 만끽했다.

긴급상황 직전까지 갔다가 깨달은 점(하산 시 폰 배터리 방전...)


쉽게 생각하고 올라갔지만 정상에 도달했을 때 부터 약간의 탈수 증상이 있었다. 돌아 온 코스로 그대로 내려 가는데 다리가 덜덜 떨렸다. 체력이 바닥나고 보니 등산보다 하산이 훨씬 더 고되고 힘들었다. 게다가 '욕'문산으로 부른다는 이 용문산은 등산로도 엉망진창이다.

거의 초주검 상태에서 깔딱고개를 겨우 내려왔다. 내려 오면서 몇번을 누웠는지 모른다. 도저히 누울 수 없을 것 같은 돌무더기 위에서 끝도 없이 누웠다가 일어나서 걷기를 반복했다. 

마당바위 인근까지 겨우 내려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진짜 비몽사몽 상태로 돌 무더기 위에 누웠다. 나중에 집에와서 보니 등에 상처 투성이였다. 누워있는데 하늘은 빙빙돌고 탈수 증상이 와서 눈이 뒤집혔다. 입에서 단내가 났다. 다리는 덜덜 떨렸다. 다리를 한걸음씩 움직이는 것 조차 너무 무거워 고통스러웠다.

'여기서 주저앉거나 쓰러지면 정말 죽을수도 있다.'

날이 밝은데도 오면서 몇번을 미끄러졌다. 다행히 허리 등 다친 부위는 없었다. 밝은데도 그 정도인데 어두워지면 절대로 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뾰족한 돌무더기 위에서 잠을 청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늘에는 까마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못해서 탈수증상에 공복 후유증도 상당했다. 정말 온 정신력을 다 끌어 모아서 죽을 힘을 다해 걸었다.

'제발 사찰에라도 당도하자. 가서 물을 한 그릇 얻어 먹으면 될테니...'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사방이 완전히 어두워 질 즈음 용문사 사찰에 겨우 도착했다. 마침 사찰 입구에 영업을 종료 중인 카페가 하나 있었다. 

"혹시 지금 닫으시나요? 닫으시면 안되는데.."
"저희 이제 영업 종료해요. 뭐 만들어 드리는 건 안돼요."

눈을 이리저리 굴려 보니 다행히 물과 음료를 팔았다.

"그럼 저거라도 주세요. 물하고 음료하고..."

물과 음료를 계산하자 마자 벌컥벌컥 들이켰다. 정말 신기하게도 물을 마시자 마자 컨디션이 살아났다. 

'와 이 물 한병이 없어서 그 고생을 했구나.'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용문산 가섭봉을 갔다왔다는 내 이야기에 영업을 종료하던 아주머니들께서 깜짝 놀라서 튀어 나오셨다.

"용문산은 정말 위험한 악산이에요. 실종자도 생겨요. 정말 큰일날 뻔 하셨네. 잘 내려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용문산이 악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뒤늦게 용문산 등산에 대해서 블로그글과 유튜브 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등산을 자주 하는 사람들 입에서도 어려운 산이라는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이 리서치를 왜 등산 전에 하지 않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서 이제야 하고 있을까?' 싶었다.

나는 이 정도 산이면 쉬이 올라갔다가 내려올 수 있을거라 우습게 봤다. 하지만 산은 그런 나를 호되게 두들겨 팼다. 다음부터는 어떤 일도 쉬이 보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다. 그리고 뭐든지 시작 전 리서치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찾아 보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실행맨'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일단 지르고 시작하고 본다. 그것이 이번 산행에서 나를 극도의 상황까지 밀어 넣은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실행도 좋지만 실행 전 리서치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등산할 때는 배낭가방에 물과 음식을 꼭 챙겨서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등린이는 이렇게 개고생을 하면서 등산도 배우고 인생도 배운다.

2022년 11월 11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