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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9일 토요일

역사에 회자 될 명연, 2025 빈 필 내한공연

올해 세계의 굵직한 악단의 공연이 많았습니다. 일정상 베를린필의 공연은 예매를 못했습니다. 올해 베필의 공연도 좋았다고 해서 아쉬움이 살짝 남습니다. 

저는 RCO와 빈필의 공연을 예매했습니다. 메켈레가 지휘하는 공연은 처음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기대도 컸건만 RCO 공연은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지도 않을 정도로 임팩트가 없었습니다. 리뷰를 찾아보면 '역시 메켈레'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렇게 호평이 많은데 저에게는 왜 안 좋은 공연으로 기억이 남았을까요.

아마도 그날 저는 제 주변에서 관크를 제대로 당해버리는 바람에 이 공연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경험으로 남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스럭소리가 나는 옷을 입고 시종일관 몸을 움직여 대던 옆자리 아저씨, 끝 없이 수다를 떨던 옆자리 여성분들, 단체로 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수시로 이야기를 주고 받던 앞뒤 자리 좌석 사람들까지요. 아마도 단체로 초대권을 받아서 오신 분들 한 가운데에 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5분만에 매진된 공연이었고 티켓 가격도 싸지 않았는데 그런 일이 제게 생길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모든 공연을 제 돈을 주고 관람합니다.
<사진 : 송종식>

빈필 공연도 조마조마했습니다. 제 오른쪽에 앉은 분이 소위 대포 카메라를 들고 오셨습니다. 그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끝없이 비닐봉지를 만졌습니다. 빈 필 단원 분 몇분이 그분을 쳐다 보면서 '비닐 좀 그만 만져'라고 눈치를 주었습니다. 틸레만 아저씨도 비닐소리가 거슬렸는지 지휘를 시작하지 않고 한참을 그냥 서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에 계시던 분이 뒤늦게 눈치를 챘습니다. 비닐 만지기를 중단하고 드디어 조용해졌습니다. 그제서야 틸레만이 지휘를 시작하며 웅장한 공연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제 옆자리 분은 이후에는 매너있게 공연을 관람하셨고 더 이상 불편을 끼치지는 않으셨습니다.

빈필의 공연은 19일과 20일, 이틀간 있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둘 다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19일에 검진 일정도 잡혀 있어서 20일 공연만 들어야 했습니다. 더 걱정이었던 것은 20일 공연이 무려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이었다는 점입니다. 19일 공연이 '슈만 3번, 브람스 4번이라 조금 더 듣기는 편했을텐데' 싶은 아쉬움도 조금 있었습니다.

예습으로 브루크너 5번을 부지런히 들었습니다. 아무리 들어도 난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2악장과 3악장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아직 제가 초보 청취자라 조예가 깊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연을 들은 결과는 제 예상을 아득히 벗어났습니다. 예습할 때는 길게만 느껴졌던 1시간 20분이 마치 10분으로 느껴질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지루하거나 난해할 틈이 없었습니다. 틸레만을 건축가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를 확실히 느꼈던 하루였습니다. 틸레만이 지휘하는 브루크너 5번은 마치 프랙탈 구조를 돌 듯이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큰 것이 작은 것으로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건축가 같다'는 명성에 걸맞게 그는 1악장에서 조심스럽게 시작해서 점차 힘차게 벽돌을 한장한장 쌓아 올려 나갔습니다. 마침내 4악장에서는 틸레만과 빈필이 가진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털어 넣으며 폭발하는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이번 공연의 백미는 공연이 끝나고 난 약 10~20초 간의 시간이었습니다. 폭풍같은 마지막 악장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박수를 치다가 말았습니다. 옆에 누군가가 제지를 했거나 눈치껏 멈추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옥의티는 용서가 될 정도의 전율이 흐르는 시간이었습니다. 침묵은 약 10~20초간 지속되었습니다. 숨소리 하나 안 들릴 정도의 적막함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하늘을 향해 있던 틸레만 지휘자의 손이 흐느끼듯 떨리며 조금씩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감정이 터져버린 듯 그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전율을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틸레만 지휘자의 손이 아주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마침내 틸레만의 손이 지상을 바라보며 연주가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그리고도 다소간의 침묵이 흘렀습니다. 잠시 후, 비로소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기립했습니다. 감동에 북받친 사람들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연주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의례 박수가 터져 나오는 것이 한국 공연장의 현실입니다. 박수 치는 분들을 나무랄 순 없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정말 기적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날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종종 이런 공연이 있다고는 했지만 이날의 감동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이날 틸레만이 지휘하고 빈필이 연주했던 브루크너 5번은 앞으로도 자주 회자될 명연으로 남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진/영상 : 송종식

📹 틸레만 지휘자의 발 구르기 영상보기 : https://youtube.com/shorts/PzX5GMUFxrw?si=dG-CW0WnSV6NXulI

틸레만 지휘자가 포디움에 올라서 '쿵' 하면서 발구르기를 해주었습니다. 관객들의 함성에 화답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도 박수를 계속 치다가 중간에 찍은 영상인데, 운 좋게 발구르기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영상 촬영 후 저도 기립하여 박수를 보냈습니다.

좋은 추억과 경험을 남겨 준 틸레만과 빈필에 감사합니다. 빈 필과 틸레만이 우리에게 좋은 경험을 주었듯 우리도 좋은 기억을 남겨주면 좋겠다 싶었는데요. 빈필이 방문했던 시기 한국엔 하필 미세먼지가 자욱하였습니다. 올해 내내 모든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깨끗했던 대기질이 왜 하필 이 시기에 뿌옇게 변했는지 한탄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한경 직원들과 공도 차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제 생에 앞으로 브루크너 5번의 실연은 안 들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 간단하게 그날의 기억을 글로 남깁니다.

. 쓸데없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정확하게 누군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세컨드 바이올린의 슈켈젠 돌리로 추정되는데요. 1열 제 옆옆옆에 앉은 밝은색 옷을 입은 한국 여성을 계속 쳐다 보면서 눈웃음을 지어 주었습니다. 공연 시작 때 부터, 끝날 때 까지 시종일관 그랬습니다. 두분이 사귀는 사이인지, 그저 한국 여성팬에게 보내는 웃음이었는지 지금까지도 궁금합니다. 저와는 한번 눈을 마주쳐서 눈인사를 나눴습니다.

2025년 11월 29일
송종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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