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우정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우정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3년 11월 8일 수요일

결혼정보회사 전성시대, 그리고 진정한 사랑과 우정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임기 여성의 절대적인 숫자도 감소중이라고 한다. 젊은 세대가 출산은 물론 결혼도 안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잘 성장하는 분야가 있다. 그건 바로 결혼정보업체들과 연애컨설팅 업체들이다.

데이팅앱이 돈이 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쪽 시장은 벌써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유튜브를 켜면 요즘은 온통 재회 상담이니 픽업이니 하는 콘텐츠가 주르륵 쏟아진다. 심지어 주식 리딩방을 하던 블로거들도 연애 상담 리딩방을 만들어 신사업을 속속 시작하고 있다. 이게 얼마나 돈이 되는 분야인지 새삼 실감한다. 연애 콘텐츠는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중년층과 노년층을 상대로 한 연애 콘텐츠도 정말 많아졌다. 바야흐로 전국민 연애 전성시대다. 비록 결혼과 출산은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열심히 만나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1~2년 사이에 돈을 쓸어 담는 업체들이 있다. 바로 결혼정보업체들이다. 3~5년 전의 재무제표를 보면 '이게 회사가 맞나' 싶은 정도로 처참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회사들이 최근에는 매출액이 폭풍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익률도 아주 환상적이다. 거의 무자본 창업에 가까우니 영업이익률이 아주 높은 것은 당연하다. 무명의 결혼 정보 업체들이었던 이들은 이런 트렌드를 타고 단숨에 서울 노른자 위에 자가 빌딩을 속속 세우고 있다. 그 정도로 현금흐름이 좋은 사업이다. 이 트렌드가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이들의 주요 마케팅 수단은 역시 첫째도 유튜브, 둘째도 유튜브다. 유튜브 채널이 커지는 것과 비례해서 업체의 매출도 커지고 사세도 확장되는 듯 하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기본 작동 원리는 '몰아주기'다. 사람들의 클릭이 단기간에 많이 발생하면 노출을 점점 늘려준다. 그래서 유튜브의 추천으로 떡하니 뜨는 영상을 보면 현재의 시대상, 짧게는 지금 이슈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최근 1~2년 동안은 결혼 정보업체, 연애와 재회 상담을 업으로 하는 무자본 창업가들의 영상이 우후죽순으로 추천되었다.

이 업체들이 올린 영상들은 조회수도 꽤 높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한번씩 영상을 돌려본다. 결혼정보 업체들의 영상을 보면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다. 이들은 대부분 '팩트폭격'을 내걸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돼지고기와 소고기의 출하 등급을 판정하듯이 사람 등급을 매긴다. 이 여자는 3등급, 이 여자는 1++등급, 이 남자는 1+ 등급, 이 남자는 2등급...

소고기 등급표. 이 등급표를 만들고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다양한 병폐를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업체들이 하는 일이 원래 그런 것이니 그러려니 싶다. 충분히 이해하면서 영상을 보는데도 속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을 참기가 어렵다. 순자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하고, 학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야 한다는 게 이들 업체의 지론이다. 키가 작거나, 돈이 없거나, 학력이 낮으면 '결혼할 생각을 버리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조언한다. 뭐 스펙으로 엮어주는 곳이니 딱히 틀린 의견도 아니다. 

지난 금요일 밤, 나는 예술의전당에 있었다. 이곳에서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라는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해설이 있는 현대음악 공연이었다. 음악들이 아주 난해했다. 하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서 시간도 잘 갔다. 이 공연의 마지막에는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이 연주되었다.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 팸플릿. 가을 밤의 정취에 빠져들었다
<사진 : 송종식>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은 원래 6중주로 연주하는 곡이지만 이 날은 7중주로 연주가 되었다. '정화된 밤'은 독일의 시인인 리하르트 데멜의 동명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교향시였다.

시의 내용은 두 파트로 되어있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한 여인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갖게 돼 남자에게 사죄하는 것, 두 번째 파트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 그리고 둘은 사랑하는 것. 어둡게 시작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내용이다.

중간중간에 여자와 남자의 표정, 감정 표현이 섬세하다. 현장에서는 벽에다가 시를 뿌려 주어서 낭만적이었다. 혹시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공연이 유튜브에 있나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아쉽게도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공연이 올라 온 것은 없었다. 다만, 롯데콘서트홀에서 했던 다른 공연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그 영상을 아래에 첨부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는 형식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 드는 것 같다.


시 속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 여자는 자신의 잘못을 남자에게 솔직히 시인하였다. 남자는 여자의 약점을 이해하고 받아 주었다.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받아 주기로 한다. 세 사람의 미래엔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다.

짧지만 강렬한 이 시에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이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위의 결혼정보업체 등급표를 기억하는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재는가? 그것은 내 것을 주고 싶은 마음보다 남에게서 '취하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 엮어져서 결혼을 하면 행복할까? 물론 같이 살다가 보면 없던 사랑이 생길 수 있다고도 한다. 사랑이 없어도 우정으로 살고, 정으로도 산다고 한다.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르니 그런 의견들도 다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 최우선이다. 사랑만 먹고 살라고 하면 그럴 수 있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 사랑하다 죽고 싶다. 그런 내 시각에서 볼 때 현 세태는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사랑은 이기적으로 취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다 나눠 주고도 더 주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랑을 해봤었나.

사람이 살다가 보면 상황은 변한다. 환경도 변한다. 조건도 변한다. 그래서 사랑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 가치이다. 그 사람, 사람 그 자체가 너무 좋은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인간이 한 인간에게 끌릴 때 그 끌림을 이론적으로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어릴 적 또래 남자들은 '비행기 승무원'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걸 간파라도 한 듯 실제 승무원을 하는 이성 친구들이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대시를 하는 많은 남자들에게서 진정성이 안 느껴져. 그냥 내가 승무원이라서 좋아하는 게 느껴져. 내가 승무원을 그만두면 나를 안 좋아할건가? 내가 제복을 벗으면 사랑도 식는건가? 그냥 나를 나로서 온전히 좋아해 주는 사람이면 좋겠어."

그녀들은 이미 그런 고충이 있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없지만 돈을 보고 결혼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서 돈이 없어지면 떠날건가? 예쁘고 잘 생겨서 결혼했는데, 늙어서 외모가 불품없어 지면 그 사람을 버릴건가? 날씬해서 좋아했는데 살이 찌면 헤어질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 그 자체, 변하지 않는 가치가 아니라 외적인 것, 주로 시간이 흐를수록 변하는 가치에 집착하다가 사랑도 식고 만다.

물론,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필 명문대 출신이면 솔직히 더 좋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필 부자면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되지 싶다. 사랑이 우선이고 조건이 다음이다. 조건은 없어도 그만이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조건을 앞세운다. 조건이 떨어지면 사람 자체를 별로라고 인식하는 사회인 듯 하다.

그런 관점에서는 나도 진정한 사랑을 해 본적이 있는지 반문한다. 최근에야 사랑이 무언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상대가 아프면 정말로 내 가슴도 아프고, 내가 가진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은 그런 진한 사랑을 하면서 한 세상 살다가 가고 싶다. 사람이 사는 큰 이유이지 않겠는가?


가슴 깊이 사랑하는 아내 영란씨를 보낸 창원씨는 눈물로 나날을 보냈다. 아직 너무 젊은 아내가 병에 걸리면 저 정도로 간병을 해줄 수 있는 사랑이, 그런 사랑을 떠나 보내고도 잊지 못해 가슴에 품고 사는 그런 사랑이 아직 한국에는 이토록 많을거라고 믿는다.


영란씨를 떠나 보낸지 어언 10년.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에 다른 여자를 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창원씨는 여전히 영란씨를 잊지 못하고 눈 시울을 적시며 산다고. 지금은 영란씨가 떠난지도 20년이 다 되어 간다. 창원씨는 지리산 어딘가에서 영란씨를 품고 산다고 한다. 진짜 사랑이다. 하지만 이제 창원씨도 자기 몸 좀 추스르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


가수 이승환씨가 이 다큐를 보고 감동 받아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이 노래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살다가 보면 우리는 많은 연애를 한다. 하지만 '진짜 사랑인가?', '정말로?' 라고 반문해 보면 쉬이 대답하기 어려운 케이스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번씩 이렇게 내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인연이 잘 이어지면 오래도록 잘 지내기도 하지만, 인연이 아니면 가슴 아프게 이별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가 정말 마음 아픈 경우일 것이다.

2023년 11월 8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