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독(Shoe Dog),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 자서전


연매출 30조 원. 전세계 임직원 63,000명. 신발 생산 공장은 12개국에 107개. 공장 근로자만 46만 명. 한때 시가총액 200조 원을 육박했던 거대한 다국적 기업 나이키. 아마 문명화 된 국가에 살면서 나이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나이키의 브랜드 가치는 어패럴 분야에서 루이비통을 제치고 1위, 전체 회사를 통틀어서도 10위 안에 들어갑니다. 브랜드 가치만 31조 원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슈독(Shoe dog)"은 이 거대한 제국을 만든 창업자, 필나이트 회장이 남긴 귀하디 귀한 책입니다. 책상머리 지식으로 쓴 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스타트업이던 나이키를 창업해서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 키우기까지 모든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창업자가 겪는 상황은 선배 창업자가 겪는 상황과 같을 수 없다지만 그래도 창업자나 투자자들이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창업과 투자의 살아있는 지침서와도 같습니다.

여행에서 얻은 사업 기회


필나이트 회장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세계일주를 시작합니다. 여행자금은 아버지께 빌렸죠. 그는 1962년 일본에 도착해 일본 여행을 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그는 아식스의 전신인 오니츠카를 발견합니다. 육상 선수이기도  했던 필나이트 회장은 일본 운동화의 경쟁력을 알아보고 미국으로 들여와 유통하기 시작합니다. 신발을 들여오는 자금도 아버지에게 빌립니다. 이때 회사 이름을 블루리본(Blue Ribbon Sports)이라고 짓는데, 이 블루리본이 나이키의 전신입니다.

매번오는 위기, 그것을 뛰어넘는 수완


오니츠카와 계약을 할 때 사실 그는 가진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무실은 아버지 집 지하실을 빌렸고, 신발을 사는 자금도 초반에는 아버지에게 빌린 소액이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블루리본이 규모가 되는 회사인냥 오니츠카와 계약을 했고 나중에는 미국 서부 전체의 판권까지 따냅니다. 성공하면 사업가고 실패하면 사기꾼이라는 말은 필 나이트 회장의 이 아슬아슬한 거짓말과 수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니츠카 타이거는 미국에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동부에서 활동하던 "말보로맨"과 판권 소송에서 이겨 미국 전역에서 오니츠카 타이거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보로맨을 유심히 관찰하였고 잘 대응하였습니다.

오니츠카 타이거가 미국에서 인기가 있자 오니츠카 본사에서 미국 판권을 빼았으려 했습니다. 그는 일본까지 방문했고, 오니츠카 본사에 간자를 심어두었으며, 각 인물들의 내면 깊은 곳 까지 파악하여 일일이 대응을 하였습니다. 오니츠카에게 판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아예 제조업에 손을 대면서 직접 제조를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의사결정도 하였습니다. 이는 지금 생각해보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자금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이 거부되자 새로운 자금원을 찾았는데 바로 일본의 "니쇼"였습니다. 니쇼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그의 전략과 사고방식은 탁월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니쇼에게 갚는다는 의사결정도 돌아보면 훌륭한 의사결정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스타가 될 자질이 있는 선수들에게 나이키의 스우시(Swoosh)가 찍혀있는 런닝화를 신겨 스타 마케팅을 시도한 것도 훌륭했습니다. 스폰서십을 체결할 선수를 고르는 방법, 선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이에 대응하는 방법.. 필나이트의 크고 작은 수완은 매번 훌륭했습니다.

그로스해커(Growth hacker)


필나이트 회장은 탁월한 그로스해커 입니다.

회사를 창업하고 회사를 키워나가면서 자기 자본 비율을 높이기 전까지 그가 선택한 건 오직 "성장"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외형 성장 즉, 매출의 성장에 집착하였습니다. 자기자본비율은 바닥이고 늘 빚 잔치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돈을 빌려 더 많은 제품을 팔고, 돈을 더 빌려 더 많은 제품을 파는데 집중했습니다. 회사의 외형은 성장하는데 회사에 돈이 없어서 회장 본인은 6년간 월급도 못 받았습니다.



어떻게보면 신용카드 돌려막기와도 비슷합니다. 전세금으로 집을 사, 또 그 집의 전세금으로 집을 사는 투자방식과도 비슷합니다. 다만 필나이트 회장이 남달랐던 것은 제품을 보는 안목, 육상에 대한 철학,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 그리고 주변의 훌륭한 인재풀이었습니다. 그는 매출을 올리면 그 돈을 재투자하고 빚을 더 추가해서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식으로 고속성장의 J커브를 그려나갔습니다.

매출은 고속성장하고 이익은 거의 못내는, 부채비율이 엄청 높은 상태로 회사의 외형을 계속 키워왔습니다. 이런 회사에 잘만 투자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텐데, 투자 안정성을 1순위에 두는 투자자라면 쉽게 손이 안가는 회사였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는 탁월한 그로스해커였고, 회사를 고속으로 키우고 안정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제조를 시작하다, 아시아를 선택하다


오니츠카에서 미국 판권을 회수하려고 하자 필나이트 회장은 직접 제조에 뛰어들 생각을 합니다. 이때 조력을 해준 집단이 니쇼입니다.

1970년대. 평소 니쇼와 쌓아 온 신뢰 덕분에 필나이트는 대만과 한국 등지의 저렴한 인건비를 토대로 자체 브랜드를 붙인 신발을 제조하기 시작합니다. 니쇼에게 일본과 대만의 공장들을 소개받아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중국에는 1981년 생산기지를 확보했습니다.

나이키는 현재까지도 거의 전량의 제품을 아시아의 제조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어패럴 분야는 어차피 브랜드와 인건비 싸움이기 때문에 필나이트 회장이 아시아를 제조 기지로 삼은 것은 좋은 전략이었습니다.

훌륭한 조력자들과 참모들


필나이트 회장을 보면서 떠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을 통일하고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입니다. 필나이트 회장 본인의 수완도 좋았지만 주변 참모들과 인재들이 나이키 제국을 건설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치를 하든, 사업을 하든 참모를 잘 쓰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수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이키 공동 창업자인 바우어만(Bill Bowerman) 교수는 다재다능하고 지칠 줄 모르는 인재였습니다. 이미 전국구 유명인사였던 그는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하기 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육상 강자들을 배출하는 오리건 대학에서 선수들을 가르쳤고, 늘 무엇인가를 발명했습니다. 그의 발명품이 실제 나이키의 제품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글도 썼고, 책도 썼습니다. 초기에 블루리본 자본금을 댔으며 필나이트가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지역사회 명사였기 때문에 가용할 수 있는 자원도 많았습니다.

최초로 고용한 직원인 제프존슨(Jeff Johnson)은 터질듯한 열정과 헌신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육상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블루리본스포츠를 사랑했습니다. 초반에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그는 미국 곳곳에 나이키의 제품들을 판매하려 다녔습니다. 초반에는 자기돈을 써가며 일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필나이트에게 엄청난 편지 공세를 퍼부으며 사소한 것들 하나까지 보고했습니다. 이 편지는 수량이 엄청나서 필나이트가 다 읽어보기도 힘들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고객들에게도 일일이 손으로 편지를 써주며 연락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블루리본스포츠의 신뢰를 높여나갔습니다. 타고난 영업인이고 마케터였던 셈 입니다. 블루리본 매출 상승에 제프 존슨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블루리본 창업초기 6년간 월급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재정상황이 안 좋았기 때문에 그는 대학에서 회계학 강의를 하면서 낮에는 회계사로 일했습니다. 이때 만난 회계사 동료 일부도 그에게 좋은 멘토들이 되어주었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변호사였고, 지역 언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명사였습니다. 주변 인맥들로부터 받은 법률 지원도 튼튼했습니다.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던 육상 선수 출신 우델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창업 초기에 셋업되는 팀 구성원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중요합니다. 일단 훌륭한 팀을 구성할 수 있다면 그 팀의 성공 가능성은 절반은 먹고 시작하는거라 생각합니다. 필나이트 회장의 판단력과 수완도 좋았지만 훌륭한 조력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이키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목차


동틀 녘


1부
1962년, 미친 생각
1963년, 성공할 수 있을까?
1964년, 자동차에서 신발을 팔다
1965년, 자기자본 딜레마
1966년, 말보로 맨과의 전쟁
1967년, 신발에 미친 괴짜들
1968년, 나의 파트너, 팍스 나이트
1969년, 사장으로 산다는 것
1970년, 현금, 현금, 현금이 필요해
1971년, 부도 위기, 그리고 나이키의 탄생
1972년, “우리의 방식, 아이디어, 브랜드로 승부합시다”
1973년, 프리폰테인 정신 : 내일이 없는 것처럼 뛰어라
1974년, 오니쓰카와 결별하다
1975년, 돌려막기 인생

2부
1975년, 당신은 규정을 깬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1976년, 버트페이스 : 나이키가 문제를 해결하는 법
1977년, 에어 쿠션, 스포츠 스타, 미국판매가격
1978년, 급격한 성장, 그리고 좌충우돌
1979년, 내부의 적과 중국이라는 기회
1980년, 결승선은 없다

해 질 녘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목차출처 : 네이버 책>

필나이트 회장이 나이키를 창업하던 당시 아디다스는 이미 규모가 있는 회사였습니다. 오니츠카도 말할 것 없이 규모가 있는 회사였습니다.

필나이트 회장이 보따리상으로 오니츠카에게 물건을 팔아 미국에 팔기 시작하던 것을 생각하면 가장 격세지감을 느낄 사람은 필나이트 회장 본인일거라 생각합니다. 아식스의 전신이었던 오니츠카는 이제 나이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쪼그라 들었습니다.

동네 보따리상이었던 필나이트 회장의 나이키는 어느새 아디다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이미 나이키는 아디다스를 뛰어넘은지 오래입니다. 오리건 대학의 육상 선수 출신이었던 필나이트 회장의 성장 우선 전략은 적중했고, 그의 회사는 세계적인 규모의 다국적 기업이 되었습니다.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 또는 이미 사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 그리고 투자자 여러분들께서는 시간을 내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은 자서전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기적의 유전자도 멋진 일들을 펼쳐내길 기원합니다.

2017년 8월 8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