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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7일 화요일

요즘 루틴


요즘 루틴이 단순합니다. 머리가 맑고, 몸도 건강하고 가볍습니다. 컨디션도 아주 좋습니다. 물건도 꼭 필요한 것만 두고 필요 없는 건 모조리 버리는 중입니다.

데일리 고정 루틴


  • 단백질 닭 150g 섭취
  • 독서 2시간
  • 수영

위클리 고정 루틴


  • 등산 1~2회
  • 헬스 1~2회
  • 유튜브 주말 라이브 1회

불규칙적이고 변동이 있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


  • 뭔가 꾸준히 식사 약속이 잡힘
  • 드라이브
  • 주간지, 잡지, 신문, 리포트 등 수시로 읽기
  • 글쓰기 (블로그, 에세이 작성 등)
  • 앱 개발 (생각 나는 것들 만드는 중)
  • 공연 관람 등

생각만 하고 있는 것들


  • 취미로 하는 일들 중 일부를 사업화 해볼까?
  •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짬내서 공부를 해볼까?
  • 책을 써 볼까?

권투는 늙으면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진작 중단하였습니다. 뇌에 충격을 자주 주면 안 좋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리오프닝도 되었으니 해외에 바람도 쐬러 가고 싶네요. 그런데 아직 백신접종을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아직 코로나에 감염되지는 않았네요. 어떤 나라에 어떤 시기쯤 나가볼지 다각도로 각을 재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23년 1월 17일
송종식 드림


2022년 12월 8일 목요일

진정한 자유


인간은 통제 당하고 억압당할 때 심적으로 큰 고통을 느낍니다. 인간의 역사는 자유를 쟁취해 온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자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포괄적 의미의 자유는 우리가 지켜야 할 지상최대의 가치입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개인에게도 그렇습니다. 개인적인 수준으로 시야를 낮춰봅시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종류는 아주 많습니다.

사유의 자유, 거주와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 모두 다 꺼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자유를 나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가장 화두가 되었던 것은 '경제적 자유', '시간적 자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두 가지의 자유는 아주 중요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만 좇으면 공허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얻게 되더라도 여전히 자유를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경제적 자유와 시간적 자유는 일부 정신적인 부분의 자유도 보장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 보면 '물질', '시간', '공간', '육체'와 관련된 물리적 자유입니다.

더 나은 공간을 선택하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며, 내 육체(+정신)를 조금 더 편안하게 보살피고자 하는 욕구가 그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고도 여전히 자유를 갈구하고, 사랑을 갈구하며, 타인에게 눈치보는 삶을 살고, 더 높은 수준의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혈투를 벌이는 사람들을 봅니다.

왜 그런가 오래도록 생각을 해왔습니다. '절제부족', '탐욕'같은 단어들로는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문득 어떤 희미한 해법 근처에 다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게 욕먹을 자신과 비난을 감수할 자신이 없다."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래도 꽤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조차도 타인들에게 욕을 먹거나 비난을 당하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조차 기꺼이 감당해 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있을 때, 그 사람은 비로소 진정한 자유, 그 어딘가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현실과 괴리가 큰 럭셔리한 삶을 쉼없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보다 3천 만원 짜리 낡은 지방 아파트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사는 삶을 공유하는 독거노총각님이 진정한 '자유'라는 진리에 몇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저는 솔직히 경차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남들 보는 눈 때문에 포르쉐나 벤틀리 같은 브랜드로 다음 차량을 바꾼다면, 저는 아직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지 못한 속박된 사람인 것이지요.

물론 그 반대 경우도 있습니다. 슈퍼카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페라리 296 GTB 정도는 우리가 군것질 하듯이 살 수 있는 재력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타인의 눈을 의식해서 군침만 다시며 제네시스를 타고 다닙니다. 그 역시 자유에 도달하지 못하고 속박 당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기분, 내 생각, 내 의사결정, 내 인생에 타인의 속박이나 시선 그리고 굴레의 영향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아야합니다. 그것이 자유로 가는 길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데도 스스로 만들어 놓은 무형의 정신적 감옥에 스스로 갇힌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을 깨야 자유의 길에 한발 내딛는 것이겠죠.

1,000억 부자에게 고개 숙이고, 서울대 출신에게 주눅들고, SPA 옷을 입는 것이 부끄럽고, 브랜드아파트에 살지 못해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자유의 반대편에 서서 속박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까, 사람들의 조롱을 당할까, 남들이 어떻게 볼까 싶어서 욕구를 감추고 살고 있나요? 하고 싶은 일을 주저하고 있나요? 자유의 반대편에 서서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또 다른 인터넷 필명이 '보헤미안'입니다. 어쩌면 저도, 제가 갈구하는 보헤미안들도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2022년 12월 8일
송종식 드림


2021년 12월 17일 금요일

공공도서관 출입을 저지당하다

Unsplash@ryunosuke_kikuno

어릴때부터 읽고 모아둔 책, 신입사원 때 꾸준히 월급의 일부를 떼어 사서 읽었던 책이 족히 1,000권은 넘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모아 둔 책을 집에다 쌓아뒀다. 그런데 그것도 너무 많으니 이래저래 짐이 되었고 처치곤란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그 책을 공공도서관에 몽땅 기부했다. 그렇게 한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대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열심히 빌려보고 있다.

빌린 책을 다 읽게되어 오늘도 책을 빌리러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출입저지를 당했다. 사실 나는 하루종일 집구석에만 있기 때문에 백신을 맞을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언젠가 백신을 좀 맞아볼까 싶어서 알아보니 나에게 배정된 모더나가 있다고 해서 맞으려고 한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쫄보인 나는 백신을 맞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백신을 맞기 전 까진 몰랐는데 직전에 들어보니 나는 고위험군이었다. 비만에 혈액질환, 간질환 등 위험인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종합병동 ㅠ_ㅠ

부작용 리스크가 클 수 있다고 하기에, 큰 리스크를 지고 백신을 맞느니 그냥 당분간 더 집구석에 있기로 했다.

어쨌든 나는 백신 미접종자였기에 도서관 입구에서 출입을 저지당했다. 국가의 지침을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별 수 없었다. 그런데 돌아 나오는 길에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공공도서관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운영이 된다. 나는 신입사원 몇십년치 연봉에 달하는 금액을 이런저런 세금으로 냈다. 그런데 공공도서관 이용조차 제한을 당하고 있다니 이건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금을 많이 내건 적게 내건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님을 잘 안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보다 세금을 많이 내는 분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은 것도 알고 있고, 세금을 적게 내거나 내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로부터 나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어쨌든 내가 공공도서관 출입 저지에 황당함을 느끼는 이유는 나는 지금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카페는 이렇게나 자유롭게 출입이 가능한데 공공도서관은 왜 안 되는지 의문이다. 도서관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도서관에 가면 미리 빌려보기로 한 서적을 무인대출기를 이용해서 빌리고 금방 건물에서 빠져 나온다. 사람과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꼭 방역 문제만이 아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유독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간섭한다는 느낌이 심하게 든다. 게다가 내가 낸 세금을 제대로 돌려받고 있다는 느낌은 더더욱 없을 뿐 더러, 일관성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방역수칙들과 규제는 더더욱 사람을 맥빠지고 피곤하게 만든다.


2021년 1월 27일 수요일

저출산의 원인이 의외로 돈 문제만이 핵심은 아닐수도

투자환경에서 인구문제는 신경써서 봐야하는 중요팩터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재작년에는 저출산과 관련해서 만고 제 생각을 유튜브에 간단하게 찍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동물도 먹이 잡기가 힘들면 출산을 줄이는데 인간이라고 다르지 않을것이라는 점. 단순히 예산 100몇조를 투입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라는 점. 일정부분 인구감소와 인구충격을 피할수는 없겠지만 자연섭리에 맞춰 그냥 놔두다보면 저점을 찍고 언젠간 반등하지 않겠냐는 것이 영상의 주요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혼인 5년이하 신혼부부 동생들 몇몇을 인터뷰하면서 아주 재미있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 일수도 있는데다 제 주변 몇몇의 표본에 불과하다보니 이들의 생각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수도 있습니다. 통계적 가치는 전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젊은 신혼부부들의 생각 깊숙한 곳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애초에 동생들을 인터뷰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저런 이야기도 흘러나오게 되었습니다. 동생들은 대부분 맞벌이였고, 부부 모두 대기업 이상의 회사에 다니는 중산층이나 중상층 정도의 부부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생' 아이를 갖지 않기로 합의한 커플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부관계가 나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되레, 아이를 키우는 부부들보다 부부관계는 더 좋아보였습니다. '아이가 없으면 늙어서 외롭지 않겠느냐?', '그래도 핏줄은 남기고 싶지 않느냐?'와 같은 이야기들은 이미 숱하게 들어서 이골이 난 상태라고 합니다.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에 '돈'은 크게 관여하는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유'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생활을 문란하게 하겠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옛말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는 온 마을의 정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아이를 키우는데는 많은 품과 정성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에 무게를 두는 젊은 부부들이 많습니다. 아이에게 빼앗기게 될 젊음과 에너지와 시간에 대해서 두려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무자식으로 이를 차단하여 뺐기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그것을 오롯이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자와만 쓰겠다는 생각이 뿌리깊히 박혀 있었습니다.

이들 중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이가 없는 지금은 둘이 원하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있으면 그런 것이 안되지 않느냐는 대답도 많이 돌아왔습니다. 비단 여행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이기심 쯤으로 치부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이야기만 오가서는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또 타인의 삶과 가치관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 딩크족 부부들의 가치관과 삶도 존중합니다.

그들은 또 이런 이야기를 입모아서 말했습니다. 

"나라에서 백날 천날 돈 퍼다준다고 하고 집지어 줘도 애는 안 낳을거에요. 적어도 우리에겐 아이 안 낳는게 돈 문제가 아닌데 자꾸 돈 문제로 귀결 시키는 게 헛발질 하는 것 처럼 보여요."

연로하신 정책 당국자와 입법 관련자들은 이 부분을 확실히 알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들 중 일부 키맨은 이것을 알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구실로 막대한 저출산 예산을 잡아서 전혀 관련없는 곳에 돈을 퍼부으며 세금을 해먹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쨌든 앞서 서술하였듯이 이들 부부는 부부 모두 대기업에 근무하는 맞벌이가 많았습니다. 돈 문제 보다는 개인의 자유 문제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만약에 이들이 재벌이나 건물주 급으로 아예 자본이 많다면 아이를 하나나 둘 정도 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애매하게 중산층이나 중상층이라서 저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중산~중상층 부부는 굳이 아이 키우기가 아니라도 소비할 수 있는 자원과 시간이 많습니다. 여유 시간에는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고, 가끔은 네일아트를 받기도 하며, 부부끼리 의기투합하면 제주도나 일본쯤은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도 있고 분기에 한번씩 먼 곳 까지 여행을 다녀올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은데, 그것을 다 포기하고 육아에 내 인생을 갈아 넣는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을것입니다.

이들과 반대로 경제적으로 곤궁한 대부분의 젊은 부부들은 말 그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기 때문에 자연선택과 본능 그대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서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해방된 사람들만이 아이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젊은층이 개인의 시간적 자유 문제 또는 돈 문제로 인해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경제나 사회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인구도 일정부분 충격적으로 줄어들다가 다시 바닥을 찍고 오르는 시점이 있을것입니다. 다만 정책은 그 시점을 오지 않게 하거나 바닥을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잡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적으로 힘든 부부들에게는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주는 문제 먼저 해결해줘야 할것이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아이로 인해 자유를 뺐기기 싫어하는 부부들에게는 그에 합당하는 세분화 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전자에게는 당연히 믿을만한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이 이슈일 것이고, 후자에게는 아이를 낳더라도 자유를 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많이 개발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책 방향을 보면 소득 최하층의 일자리는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고, 또 그것을 부채질하는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일단 물리적으로도 가임기 여성의 숫자가 이미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아이를 둘씩 낳더라도 직면한 인구 충격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인구는 국가의 기본적인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인구 감소가 무산 계급에게는 도리어 복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복된 인구감소를 지배계급이 보고 가만둘리 없다. 생산 시설의 해외 이전이나 해외의 질 떨어지는 외노자를 대거 유입시켜 무산 계급의 해방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앞으로의 미래가 어떤식으로 펼쳐질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젊은층 중 많은 사람이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넉넉하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아이를 맞바꾸는 것을 꺼려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많은 기성세대가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21년 1월 27일
송종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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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5일 목요일

유명해지면 자유를 박탈당하기는 하는데.. (feat. 이근 예비역 대위)

'자본주의, 성장, 평가.. 그리고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이라는 제목의 글을 2013년에 작성한 바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유명세와 자유에 대한 부분을 간략하게 언급하였습니다. 해당 부분을 발췌하였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누구나 아는 내용입니다. 충분히 유명해 질 자질이 있는 분들이 몸을 사리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지은죄가 많건 적건 상관없습니다. 유명해지면 많은 불확실성과 스트레스가 생겨납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고 합니다(유명인들 피셜).

펀더멘털 없이 떡상하면 곧장 떡락한다 (갑작스런 유명세의 위험성)


이근 예비역 대위는 정말 '순식간에' 유명해졌습니다. 바닥을 다지는 어떤 일련의 과정은 그다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났더니 벼락스타가 되었습니다.

저는 단숨에 스타가 된 그분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 너무 불안한데?"
"왜?"
"인생도 주식이랑 비슷하거든. 급등하고 가격 유지되기 쉽지 않어. 급등하면 대부분 급락할텐데. 그냥 느낌이 그래."

오지랖이 넓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대한 관조는 누구나 할 자유가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꼭 유명인이 아니어도 우리는 매일 정치며 경제며, 세상을 관조하며 사니까요. 하여튼 저는 갑자기 뜬 이근 예비역 대위를 보면서 위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 지근거리 지인들과만 가볍게 나눈 이야기입니다. 공개된 곳에서는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제가 저렇게 이야기를 하고 머지 않아서 이근씨에게 여론 위기가 터졌습니다. 지인과의 소액 금전거래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독자가 5만 명 정도되는 유튜버라면 논란도 안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7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 그리고 공중파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보니 논란은 금방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이근 대위 스스로도 '아차!' 했을거라고 봅니다.

"유명해지면 위험하고 아픈거구나"

제가 이근씨의 절친이었다면 이렇게 조언하였을 것 같습니다.

"속도조절 하면서 가야한다"

제 개인적인 취향은 이렇습니다. 죽을 때 까지 천천히 매일매일 나아지는 삶이 좋습니다. 

도달할 수 있는 최고점에 단기간에 도달해버리면 위험합니다. 그러면 하락세만 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양 문화권에서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어려운 삶이라면 대중의 동정이 따릅니다. 그러나 성공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 나를 떨어뜨리려는 저격수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가파른 성공은 많은 대중들의 배아픔과 반감을 삽니다. 높은데서 떨어질수록 회복 불능의 부상을 당합니다. 높은 곳에 오르기 전엔 생각과 처신을 잘해야 됩니다.

속도 조절을 할 절제력이 없었다면 적어도 주변 정리는 잘 해놨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피해 입혔던 사람들에게는 미리미리 찾아가서 사죄하고, 금전관계도 미리 정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이근씨 본인의 근본적인 펀더멘털에 대해서는 제가 측근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이근씨나 가짜사나이에 별 관심이 없기도 하고요. 워낙 유명해서 하도 귀에 자주 들리니 유명하시긴 정말 유명하신 것 같습니다.

유명해지는 게 겁나서 유튜브를 안한다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유명해지면 자유가 없어져. 유명해지면 고통을 받을텐데. 뭐하러 고생을 자초해?"

유튜브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핑계를 댑니다. 가장 많은 핑계가 이것입니다.

"유명해지기 싫어"

사실은 용기가 없거나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면서요. 유튜브에 대한 언급이 잦으면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미련이 있다는 소리지요. 많은 사람들이 쉼 없이 유튜브 이야기를 합니다. 한편으로는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유튜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면서 유튜브를 안해야 되는 온갖 핑계를 댑니다. 그중 가장 많은 핑계가 저 이유입니다. '유명해질까봐 두렵다.'

그러면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ㅎㅎ"

유튜브를 해서 유명해지고, 또 그래서 자유가 없어지고 고통을 받을 정도가 되는 건 어렵습니다. 구독자가 아무리 적어도 20만 명은 넘어야 됩니다. 구독자가 5만 명이어도 그냥 일반인입니다. 길에 나가면 알아봐 주는 사람도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뭔가 사고를 쳐도 신문에 유튜브 이름 걸린 기사한 줄 안납니다.

한마디로 유명해 질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레발입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런 걱정 하는 분들 상당수가 작정하고 유튜브를 해도 구독자 5만은 커녕 5,000명도 모으기 힘든 분들입니다. 하물며 구독자 20만 명은 어림도 없습니다. 자기애가 강해서 '내가 하면 분명 뭔가 획을 긋고 유명해질거야'라고 생각하는 건 순전히 그분들의 착각입니다.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는 것이죠.

그러니, 유튜브를 하시고 싶으면 그냥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의외로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경험하고 도전해 본 사람만이 거기에서 또 무언가를 배웁니다. 유튜브를 해 본 사람이 안 해본 사람보다 경험 몇개가 더 많지 않겠습니까?

유명해지는 공식은 있는 듯


물론 기본 준비물은 필요합니다.

전문지식 또는 지식 외 컨텐츠 또는 외모 정도 되겠습니다. 유튜브를 하면서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입니다. 모두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모두 없어도 됩니다. 셋 중 하나만 있어도 떡상 유튜브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모든 조건은 '그리고'가 아니라 '또는'입니다.

이중 하나라도 갖추었다면 유튜브의 떡상과 유명세를 얻기 위한 주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주일에 3개이상 영상을 자주 올린다.
2) 영상을 꾸준히 올린다.
3) 다른 대형 유튜버와 콜라보를 자주한다.
4) 유튜브 이외의 매체에 모두 얼굴을 비춘다.

컨텐츠가 의미있거나 재미있어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리고 위의 4가지 조건을 꾸준히 충족합니다. 그러면 그 유튜브 채널은 거의 대부분 '떡상(채널 급성장)'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채널을 급격하게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주의해야합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갑자기 크면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유튜브 채널도 속도 조절을 하면서 키울 수 있습니다.

채널이 너무 빨리 큰다 싶으면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면 됩니다. 일종의 브레이크입니다. 

1) 영상을 당분간 올리지 않는다.
2) 타 대형 채널들과 콜라보를 중단한다.
3) 방송국 등 타 매체의 인터뷰와 출연 제안을 모두 거절한다.

이렇게 속도 조절을 하는 게 안전한 것 같습니다. 유명해질 가능성이 거의 없어집니다. 만약 본인이 위에 열거된 자질이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는 털면 먼지 많이 난다' 싶은 사람들은 속도 조절을 확실히 해야겠지요. 그리고 구독자 상한선도 설정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독자를 5만 명 이상은 키우지 않겠다던지 하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꼭 '먼지털이' 그런것이 아니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유튜브는 해보고 싶은데 사람이 너무 몰리는 건 싫다' 싶으신 분들도 해당됩니다. 위에 열거된 브레이크 따위를 만들어 두세요. 채널이 너무 빨리 크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유튜브를 하시면 됩니다.

어쨌든 우리 삶에도 투자와 관련된 공식이 곳곳에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급하면 체합니다. 그리고 적을 만들면 안됩니다.

2020년 10월 15일
송종식 드림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전업투자자, 정신 번쩍 드는 방법

전업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당연히 다시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 저녁으로 출퇴근 하는 것, 개인의 자유가 사라지고 생계를 위해 월급에 의존해야 하는 것. 그것을 가장 두려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업투자를 장기간 하였다면 재취업은 당연히 힘들테니 투자로 실패하면 사회 밑바닥을 전전하게 될것입니다. 배고프고 어려웠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나태함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전업 주식쟁이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전업트레이더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로 그런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이죠. 하루종일 모니터 앞에 붙어서 매매를 합니다. 호가창을 놓칠세라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해외 증시를 체크합니다. 장 마감후에는 복기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생계형 전업 비중이 많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전업투자자입니다. 매매를 자주 안하는 가치투자자들이 많습니다. 가치투자 지향형 전업투자자들은 스타일이 다양합니다. 사업보고서를 읽으며 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업탐방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있고, 취미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낮잠을 즐겨 자는 사람이 있기도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전업투자자 중에서는 하루 일과를 정해진 루틴대로 사는 분도 많습니다. 부지런하게 일어나서 전업사무실에 출근을 하고 그날 나온 리포트를 모두 훑은 후, 회사와 통화도 하고 기업분석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장이 마감하면 곧장 집으로 퇴근합니다.

또, 반대로 저 처럼 게으른 전업투자자도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놀러 다니고, 읽고 싶으면 읽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등 정해진 루틴없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삽니다. 옆에서 혹은 위에서 누가 이끌어주거나 혼내는 사람이 없으니 저 처럼 게으르고 고삐풀린 망아지는 갈수록 나태해집니다.

투자는 운이 크게 작동하는 분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기본적인 성실함이 배제된다면 투자자 생활을 꾸준히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게으른 전업투자자분들은 한번씩 정신이 번쩍 들만한 충격요법이 필요합니다.

버스나 전철 첫차 타보기


지역마다 회사마다 편차는 있습니다만, 보통 지하철이나 버스는 새벽 4시 30분~5시 30분 정도에 첫차를 운행합니다. 직장인들도 좀처럼 타보기 힘든것이 첫차라 생각됩니다.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으로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딴 세상에서 운행되는 차량들입니다. 그리고 상상조차 하지 못하죠.

새벽 4시 버스 첫차 <출처 : hani.co.kr>

지하철 첫차나 버스 첫차를 타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질거라 생각합니다. 첫차는 만석 수준이 아니라 사람으로 미어차서 운행됩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시간인데도 그렇습니다. 세상이 정말 부지런하게 돌아가는 걸 느낍니다.

그 중에는 사장님도 있을 것이고 부지런한 직장인도 소수 있긴 할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일용직이나 막일을 다니는 분들입니다. 몸에 차고 있는 장비들이나 옷차림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절대로 그분들을 비하할 의도로 작성하는 글은 아닙니다. 그분들도 다 각자가 가진 사연들이 있을테니까요. 다양한 사연들이 있겠지만 그들은 첫차 그득 몸을 싣고 일터로 향합니다. 표정들은 거의 대부분 일그러져 있거나 행복하지 못한 표정들입니다.

내가 나태해서 계좌 수익률을 까먹거나, 올바르지 못한 판단으로 실패를 할 경우 이렇게 첫차를 타고 생계를 유지해야 할 수 있음을 피부 깊숙히 상기해보면 정신이 번쩍듭니다. 아둥바둥 살 필요는 없지만 늘 현명한 판단을 내리고 기본적인 성실함은 유지해야 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지금 먹고 살만하다 싶으면 나태해지기 쉬우므로 한번씩 새벽 첫차를 타고 나도 노가다 현장으로 나간다는 마인드를 상기해보면 머리가 번쩍 깨입니다.

아르바이트나 직장인(프리랜서) 체험 해보기


"내 주머니에는 지금 1원도 없다. 나는 생계를 위해서 이것을 한다." 이렇게 단단히 세뇌를 합니다. 그리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신문배달, 대리운전 등의 일을 한두달 해보면 이것도 정신이 번쩍듭니다. 원치 않는 시간에 원치 않는 노동을 하는 괴로움. 그리고 박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함. 온갖 사람들로부터 당하는 갑질과 모욕.

두번 다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머리 좀 굴려서 기업발굴을 하고 손가락 까딱까딱해서 과분한 수익을 올리며 사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새삼느끼게 됩니다.

최근에 알게된 것인데 프리랜서도 회사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출퇴근은 하는데 정규근로자는 아닌 특이한 형태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리랜서는 정식 채용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보통 한달이나 두달 단위로 계약을 하고 일을 종료하는 방식인데 이것도 한번씩 해보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자차로 다니면 안됩니다. 모든 직장인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출퇴근 시간 콩나물 시루같은 전철을 타고 며칠만 왔다갔다 해보면 정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누가 나에게 잔소리 하고 관리하지 않는다고 나태하게 살면 안되겠구나.", "투자금을 모두 잃으면 생계를 위해서 정말 평생 이렇게 출퇴근 해야되는 수가 생기는구나.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해당 직종이나 직군에 대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의사 결정과 게으름으로 투자금을 잃게 되면 다시 종자돈 모으는 기약 없던 시절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의 두려움을 알고 부지런하고 진지하게 투자하자는 의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1초, 계좌에 있는 100원의 소중함


한번씩 저런 체험을 하다보면 내게 주어진 1초가 새삼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계좌에 있는 숫자도 그냥 화면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진짜 돈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나를 지켜주는 최후의 그 숫자들. 현재 가진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잃지 않는 투자를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철학적 토대 다지기.. 이런것들을 상기할 수 있게 됩니다.

고통 체험은 짧게 가끔씩만


'고시원에 살기'나 '쪽방촌 깔세방 한달 살기' 같은 다양한 체험도 정신 차리기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충격 요법은 나태할 때 가끔씩만 해야합니다. 그리고 체험후에는 반드시 5성급 호텔에서 쉬든, 여행을 가든 뇌에게 회복기를 줘야합니다. 일부러 어려운 체험을 한다고 해도 자칫 뇌가 가난한 쪽으로 방향을 틀고 굳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합니다.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는 용도이어야지 나의 잠재의식과 뇌가 다시 가난을 향하도록 두어서는 안됩니다.

* 덧 붙이는 글 : 누군가에겐 삶일지언데, 누군가에겐 '체험'이라고 하니 상당히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크게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글이고요. 다만, 저희 전업들은 저희들 위치에서 정신을 차릴만한 방법들은 늘 필요한 법이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가난과 부는 순식간에 뒤집어 질 수 있는 것이고, 누구의 운명이든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힐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철, 버스 첫차에 몸을 싣고 자기 할일을 묵묵히 하시는 분들을 응원합니다. 그분들의 삶도 술술 잘 풀려서 머지 않은 미래에는 고생을 덜 하고 사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2019년 12월 1일
송종식 드림


2019년 10월 24일 목요일

자본주의 체제에 살면서 얻는 진정한 개인의 자유에 대해

뻔하고, 당연하고, 기본적이고, 누구나 아는 오래된 생각


한국 최고의 가치투자자 중 한 분인, 남산주성님의 개인 순자산 성장표
<출처 : 가치투자연구소 김태석>

1) 세상에 하나뿐인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남에게 제공하면서 돈을 버는 건 한계가 명확하다. 나도 24시간, 이건희 회장님도 24시간을 산다. 그 매커니즘으론 돈을 벌 수 없다(노동). 남들의 시간과 노동력이 나를 위해 일하게 만들고 나는 그 위에서 자유를 누려야 한다(투자). 한 사람에게서 1시간을 취할 수 있다면,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 24명만 있으면 나는 자유인이 된다. 그러니 직원이 10만명인 회사의 소유주가 된다면 무한 자유를 얻게 되는것이다.

2) 돈은 근육의 힘으로 버는게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힘으로 버는 것이다.

3) 돈은 단리가 아니라 복리로 버는 것이다. 부를 쌓는데 가장 중요한 핵심엔진이다.

4) 돈은 내가 버는게 아니라 남들이 벌어 주는 것이다. 나는 올바른 판단만 내리면 된다.

5) 대부분은 용기가 없어서 노예가 된다.

6) 용기있는 사람 중 다수는 최소한의 공부와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패가망신한다.

7) 약간의 분별력과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8) 시간적 물리적 자유를 얻는다면 비로소 자아를 성찰하고 영적 자유를 얻기 위한 단계로 돌입할 수 있다. 먹고 사는데 치이면 인간의 기본권을 상실한다.

9) 약간의 여행, 약간의 휴식, 약간의 허세, 무리해서 사는 외제차.. 그런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회사의 멋진 시설들도 주주들의 소유이지 직원 소유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한다. 회사와 직원은 계약관계이고 회사의 주인은 주주다.

10)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러므로 남들의 화려한 인스타에 주눅들거나 부러워 할 필요도 없다. 허세로 포장된 삶을 한꺼풀 까보면 거진 다 별거 없다. 그러므로 나만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2019년 6월 21일,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생각을 블로그로 옮김
송종식


2013년 2월 6일 수요일

자본주의, 성장, 평가.. 그리고 영원하고 궁극적인 것

들어가며..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살고 있다. 체제의 단점이 많이 노출되고 있어서 이를 보완할 여러가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체제의 뿌리가 당분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몸에 흐르는 피는 돈이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돈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고 물질과 서비스의 가격을 평가하고 교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 그 자체다.

사람들은 때로는 돈을 동경하고 또 때로는 돈의 미천함에 치를 떨기도 한다.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굳이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돈을 부정하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인간이 조개껍데기를 사용하면서 부터 현재까지 돈의 힘은 굳건히 유지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의 폐해도 있고 고쳐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지만 이번 에세이에서 그런 주제는 다루지 않고 조금 다른 포인트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은 '성장'과 '평가'


'평가'라는 개념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 메카니즘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기업체를 먼저 살펴보자. 기업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생활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상품과 서비스를 적시에 공급하고 이윤을 추구한다.

기업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상품과 서비스를 잘 만들어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팀을 만들어서 일을 한다. 각자 맡은 임무를 나눠 좋은 제품이 나오도록 힘을 합해 일한다. 팀에는 팀원도 있고 팀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들도 있다. 팀단위 매니저 위에는 조직 규모에 따라서 본부장, 사장 등의 상부 인사들도 있다. 기업에 따라서 이 구조는 조금 다를수도 있다.

기업에서 팀 구성원들은 중간 관리자들에게 평가를 받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간혹 서로 평가를 주고 받기도 한다. 팀장은 다시 자신의 상부 보스에게 평가를 받고, 중간 보스들은 기업의 대표자에게 평가를 받는다.

기업에서는 돈을 쓰고 직원을 고용한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제대로 효율을 내고 있는지 늘 체크해야 한다. 평가에 있어서 말단 사원이 가장 자유롭지 못하며 평가를 받기만 할 뿐 평가를 할 권한은 없다. 물론 최근에는 팀원이 팀장을 평가하는 회사들도 있지만 이는 보편적이지 못하며 팀장도 급여생활자라는 관점에서는 사원들끼리 평가를 주고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본이 사람을 평가한다


그러면 기업 구성원 모두를 평가하는 대표자는 평가에서 자유로울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대표자는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회사내 여러가지 자원을 배분한다. 그렇게 생산한 제품의 평가를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받는다. 그리고 주주들에게 경영성과를 평가 받는다.

물론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경영자나 개인 회사를 경영하는 경영자라면 소비자의 평가는 받는다 치더라도 간섭하고 평가를 가할 외부 주주들은 없으니 이 이야기는 논외다.

아무튼 경영자는 매 분기 실적을 주주들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 실적은 작년보다 좋아야 하며 내년 실적은 올해보다 좋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경영자는 시장 점유율을 확대 하거나 신규 시장을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사업을 키워야 한다. 그게 힘들다면 비용을 줄이거나 제품 가격을 올려 매해 실적 향상을 꾀해야 한다.

모든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영자의 KPI는 재무제표 개선에 있다. 재미있는 점은 말단 사원으로 갈수록 다양한 업무 영역의 KPI가 적용되지만 경영자의 경우는 어떤 회사든 KPI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대개 기업이 성장을 하다보면 커다란 자금 수요와 인재수요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비공개 적으로 투자를 받아 외부 자금을 유치하거나, 공개적으로 증권시장에 상장하여 자금을 조달 받아야 하는 단계가 온다. 혹은 외부의 부채를 끌어다 쓰기도 한다.

상장을 하는 중요한 이유 중 또 하나는 창업자가 자신의 지분을 안전하게 exit 시키기 위함에 있다. 그리고 더 높은 가치를 평가 받으며 필요시 언제든 시장에서 지분을 현금화 할 수 있다는 장점도 꼽을 수 있다.

암튼 이런 저런 이유로 주주나 채권자가 제공하는 외부 자금 지원을 피해서 사업을 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상장 법인이라도 주주들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업내 최고 실력자인 경영자를 평가하는 사람들은 경영성과가 저조하면 경영자 해임이나 급여 삭감 등의 방법으로 경영자를 문책할 수 있다. 이보다 소극적인 방법으로 보유 지분을 팔아치워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즉,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는 물론이고 거기 속한 기업과 사람 등 구성물들도 모두 '성장'해야 한다. 성장을 가하는 중요한 요소는 '평가'다. 자본이 우리에게 내리는 심판이 평가다. 자본금이든 부채든 남의 돈을 끌어다 쓰면 이 돈들은 이제 경영자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놓고 보면 기업 경영자도 소유 경영자가 아니라면 자본주의 최종 승자라고 할 수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 최종 승자는 주주들일까?

기업 생태계 최종 평가자 '소비자와 주주'


경영자를 평가한다고 했던 소비자와 주주를 한번 보자.

소비자를 평가할 사람은 없다. 소비자는 오직 평가할 뿐이다. 그러니 자의에 의해 소비 행위를 하는 소비자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평가 스트레스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간혹 불량품을 구입하고서 받는 스트레스는 다른 이야기이니 논외로 하자.

소비자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하다. 우리 모두가 소비자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자든 우리 모두는 소비자다. 그러니 소비자라는 지위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가치는 일단 이 글에서는 없어 보인다.

주주는 어떤가? 주주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기업에 자본을 대는 사람들이다. 자본을 대는 방법은 부채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채권자와 주주의 입장은 법률적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자본을 댄다는 측면에서는 입장이 비슷하다.

다만 채권자는 계약된 이자를 정해진 시기마다 받지만 주주는 기업의 경영 성과에 따라 자산가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고, 지급받는 배당 금액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회사의 소유자인 주주들은 경영자가 경영을 잘 하는지 특별히 감시하고 이들의 경영성과를 면밀히 평가한다. 이사회 위에 이사 선임이나 해임권한이 있는 주주총회가 있는 것이다. 즉, 기업의 최종 의사 결정 기구는 주주총회다. 말하자면 자본 흐름의 기본 메카니즘은 '평가'에서 오는 셈이다.

CEO타이틀을 달고 있으면 겉은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 소유 경영자가 아닌 이상은 바지사장에 불과하고 CEO 개인의 자유도 제한된다. 늘 열심히 일해야 하고 평가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전주(錢主)


주주나 투자가가 최종 승자라고 했지만 엄밀히 들어가면 투자가나 자본가도 여러 부류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투자를 받아 2차 투자를 하는 투자업체 대표자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 고용된 펀드매니저들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자본주의 승자라고는 할 수 없다. 최종 승자는 자기 자본으로 기업이나 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결국 투자자들에게 돈을 제공하는 전주가 숨은 승자인 것이다.

개인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자본주의


자본주의 사회는 일하지 않고도 넉넉하게 즐기며 사는 소수 집단이 있다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이것은 비단 자본주의만의 문제는 아니다. 왕정 시대에도 풍요롭게 놀고 먹는 집단이 있었다. 봉건시대에도 그랬고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에서도 놀고 먹는 소수는 늘 존재했다. 이들은 노동의 존귀함을 대중에게 설파하며 모두가 노동의 가치만 아름다운 것으로 인지 하도록 세뇌시켰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노동하지 않고 풍요롭게 시간과 재화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자본주의는 이전의 시대들 보다 조금 나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봉건제, 왕정과  같은 시대 배경 하에서는 개천에서 태어난 사람은 놀고 먹는 자리까지 올라가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태어난 혈통이 그 사람의 일생을 낙인 찍어버리는 것이다.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보다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지만 조금만 열심히 살고 길을 찾아보면 금방 놀고 먹는 방법을 찾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지만 노력하고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꼭 거대 자본가가 될 필요도 없다. 샐러리맨 급여 수준의 자유소득만 있어도 그 사람은 노동과 평가에서 평생 해방된다.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다양한 기회를 접하며 사는 곳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영원할까?




자본주의는 성장을 기반으로 한다고 했는데, 무한정 성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경제 기반은 지구에서 나오는 자원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복리로 이루어지는데 자원을 복리로 캐면 언젠가는 자원이 고갈된다. 그리고 재화의 확산은 필연적으로 시장포화를 불러온다.

수확체감하는 자본주의 생산/소비체계에 반하는 몇몇 수확체증 적용 분야가 있다. 수확체증 법칙이 가장 잘 적용되는 지식 정보 분야의 자원은 디지털 데이터와 네트워킹 그리고 데이터 베이스이지만 결국 여기도 핵심 자원은 사람이다. 사람은 식량 자원을 소모해야 한다.

다만, 인간이 우주를 개척하거나 슈퍼 푸드를 개발하면 인간은 영원히 성장하고 번영할지도 모른다. 아직 우주를 개척하지 못한 시대이니 무한 성장 기치에서 약간의 다른 가치를 가진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놀고 먹는 계층은 존재할 것이고 화폐도 존재할 것이다. 이는 인간 본성이자 인간 사회 구조 본능이라 영원히 바뀌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집단 체제를 이루면서 거친 자연과 싸워 이겨왔고, 공동의 힘으로 거대한 문명을 지탱했다. 집단 체제는 앞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집단에서 거래나 노동력의 분산은 필연적이다. 그러면 새로운 이데올로기 하에서도 부의 집중은 다시 시작될 것이고 지불 가치의 유효성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체제변화 문제는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이 시대 변화에 어떻게 영민하게 대처하냐에 따른 대응 가능한 문제라고 본다.

노동은 나쁜 것이고 가치 없는 것인가?


지배 계층은 대중에게 노동을 하라고 선동하고 포장한다. 노동은 고귀하다고 까지한다. 그러나 인간이 70년 정도 살아가면서 놀고 먹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놀고 먹으면서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해서 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 또 즐겁게 살아가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물론 모두가 놀고 먹을 수는 없다. 경제적 가치는 노동에서 창출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노동에서 손을 놓으면 맛있는 음식도 즐길수가 없고, 예쁜 옷을 입을수도 없다. 그것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모두가 노동에서 손을 놓을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시스템 체계를 이해하고 사는 사람도 소수이거니와 다수가 이런 체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해도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도록 사회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시스템 체계를 계속 업그레이드 해나가기 때문이다.

놀고 먹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지만 자유소득을 얻기 전에는 반드시 노동을 해야한다. 자영업이든 샐러리맨이든 노동을 통해서 창출한 이윤을 모아 이를 투자해서 자유 소득자의 길로 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무조건 부모에게 상속을 받거나, 가진 것도 없이 놀고 먹고 하는 인간의 모습은 나도 반대다. 땀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자유 소득의 가치도 알고 이를 오래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는데 아직 자유소득을 창출할 만큼 자본을 축적하지도 않았으면서 놀고 먹지는 말아야겠다.

일단 일정 수준이상의 자본이 모이면 이 자본이 자본을 벌어들이기 때문에 돈이 % 기준으로 벌리기 시작한다. 가속도가 붙는다. 등가로 늘어나는 급여와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무일푼에서 자수성가로 억만장자가 되는 사업가나 투자가들의 비밀은 바로 꾸준함이다. 꾸준히 자산을 % 단위로 늘려가는 것이다. 10조원의 거부가 이듬해 10%의 자산 증가를 이루면 11조원의 재산을 소유하게 된다. 일반 샐러리맨이 급여 저축 마인드로 1조를 모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아인슈타인이 복리가 핵보다 무섭다 했다. 누구나 복리 수익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평가 받지 않고 평가만 하는 사람은 무한 자유인, 자유는 자아실현을 도와준다


그리고 자유소득을 누리기 시작하면 자아를 찾아 떠나야 한다. 자유가 주어졌다고 무한정 놀고 먹기만 하면 개나 돼지와 다를바 없다. 숨겨뒀던 자아를 꺼내 실현해 나가고 사회와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소소한 일거리는 뭐가 있는지 찾아다니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유인은 이런 일들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평가 받지 않는다. 이것이 큰 이점이다. 스스로 선택할 일을 누구의 평가도 받지 않고 재미있게 할 수 있으며 원하면 언제든지 여행도 떠날 수 있고 사람도 만날 수 있다. 또 학교에 등록해 시간과 돈의 구애를 받지 않고 공부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돈이 얻어주는 무한자유의 가치는 거기 있다.

왜 계속 놀고 먹는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하면 시대를 막론하고 사회 제도의 틀안에 갇혀서 인간의 재능과 존엄성이 억압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인간의 개성이 말살된다. 왕권사회는 왕말고 다른 인간은 인간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사람을 줄세우고 줄을 선 순서에 따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모두가 노동을 중단하고 유유자적 할 수는 없다. 자유는 소수 선택된 사람이나 극도로 노력한 사람만이 얻는 선물이다.

내 위에 평가자는 없고 내가 최종 평가자가 돼 무한 자유를 누리며 산다면 비로소 인간 본성의 고귀함에 충실하거나 자아 실현을 위한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영업과 사업


일반적으로 자영업은 사업주 스스로 자기 사업체에 피고용주가 돼 일을 하는 방식으로 사장이 일을 멈추면 사업체도 곧 몰락한다. 사업은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어서 창업주나 소유자가 장기간 자리를 비워도 알아서 굴러간다. 스스로 사람을 채용하고 비지니스를 진행하며 회계 장부를 작성하는 등 일 처리가 자동으로 돌아간다.

아마 많은 자영업자들의 꿈이 스스로 굴러가는 온전한 사업체를 만들고 이를 소유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 과정이 험난해도 일단 안착만 하면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굉장한 자유 시간을 얻을 수 있다. 자영업은 급여 생활자보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일의 성취감은 다른 이야기다.

그리고 사업의 영속성은 어떤가. 자영업은 수 많은 체계적/비체계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영업을 하더라도 이런 리스크를 재빨리 감지하고 기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면 지속적인 생존을 할 확률이 올라가지만 대부분은 대기업과의 싸움이나 정치경제 환경의 체계적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1년도 못 버티고 무너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영업은 진입 장벽이 낮으며 그 경쟁도 치열하고 수익성이 떨어진다.

이미 일정 궤도에 오른 사업가는 자영업자 보다는 환경이 낫지만 사업가 역시 체계적 위험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사업가는 늘 매력적인 시장을 찾아야 한다. 시장만 잘 찾으면 한동안은 회사가 잘 성장한다. 반면 잘못된 의사 결정이나 시대의 변화로 아무리 큰 회사라고 해도 한순간에 역사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큰 회사의 의사 결정자인 만큼 의사결정의 범위도 크고 무게도 무거울 것이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소유 경영자가 아니라면 주주들에게 매해 경영 성과에 대한 평가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건데 가장 이상적인 사업가는 기업 지분만 쥐고 있는 주주가 아닌가 생각된다.

사업과 투자


사업을 영위중인 시장에 발생한 악재로 회사 경영이 힘들어져서 사업을 철수하려면 이 철수 업무 또한 만만한게 아니다. 사람을 해고하거나 조직을 재편성 해야하고 신규 사업 발굴이 안 된 상태라면 기업은 큰 위기에 직면하기도 한다. 반면에 사업가를 평가하는 투자자들은 이보다 수월하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변경할 수 있다. 요즘에는 버튼 클릭 한번으로 철강회사 소유주에서 모바일 게임 회사 소유주로 순식간에 업종을 갈아탈수도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기민하게 대처하기는 이보다 빠른 업무 영역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투자가는 체계적 위험에 대한 대비도 빠르게 할 수 있다. 범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징후가 보이거나 특정 자산에 대한 위험 회피가 필요한 경우 자산 배분을 다른 국가로 이전할 수 있으며 주식, 채권, 원자재, 외환 등을 넘나들며 투자 포트폴리오를 변경할 수 있다.

그리고 포트폴리오 배분만 잘 해두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투자 자산의 시세차익은 물론이고 배당, 이자 소득을 재투자해 자산을 더욱 늘리거나 더 큰 자유를 누릴 기회가 생긴다.

이자, 임대료, 배당소득은 불로소득인가?


이자, 임대료, 배당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개인에게 무한대의 자유가 주어진다. 그러나 이도 엄밀히 말하면 불로소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 장기간 고생해야 한다. 또 투자 포트폴리오를 배분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야 하고, 거기다 나름대로 투자 스트레스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내 의사결정에 대한 부분을 평가하고 그 평가에 따라서 내 자산이 증가하거나 감소한다. 임대업도 마찬가지다 임대 보증금은 가만히 앉아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관리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유소득으로 생활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그나마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투입하는 시간 중 가장 적은 시간을 투자하는 집단이 이 소득을 올리는 집단이고, 모든 의사 결정에 대한 자유와 책임, 그리고 지적 도전에 대한 즉각적인 재미까지... 본인이 스스로 기획하고 감당하기 때문에 성취감도 크다.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 그리고 성공한 샐러리맨


공무원이나 샐러리맨도 결국은 급여라는 종이조각(요즘은 컴퓨터 화면에 찍히는 숫자)과 인생의 소중한 일부인 시간을 교환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자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간혹 큰 회사에서 승승장구하여 임원이 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은 주주들의 고급 노예일 뿐이다.

고위 공무원은 어떤가? 그들은 자본가들의 자산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정책을 만들거나 법을 집행할 수 있으며 여러가지 힘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소불위처럼 보이는 권력도 유통기한이 있으며 하나의 국가를 벗어나면 힘이 현저히 약해진다.

그에 반해 자본의 힘은 국가를 넘나들며 그 위력을 발휘한다. 심지어 자본이 한 나라의 정치나 경제를 뒤흔들수도 있으며 이는 자손대대로 대를 이어 증식될수도 있다. 자본의 주인이 바보짓만 하지 않고 기민하게 움직이면 그 힘은 영원토록 지켜질 수 있다.

너무 유명해지면 자유를 박탈 당한다


직업을 유지하는데 '인기'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하는 직업들이 있다. 정치인, 연예인 등이 그런 예인데, 이런 경우 직장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평가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직장인은 보통 한두사람에게 평가를 당하지만 이 사람들은 적게는 수백명 많게는 수천만명에게 평가 당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래서 이들은 자유가 박탈당한다. 혹시 평가자들의 눈 밖에 나면 그 동안 누렸던 인기나 권력, 재력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영속성을 보장 받기도 힘들다.

자본주의 평가 체계에서 살짝 비켜간 직업들


이를테면 사회단체, 대학 등의 기관에서 일하는 직업들은 꼭 자본의 평가만 가지고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 대학교수의 경우에는 학생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입장이지만 자신이 학생들에게 가하는 평가 권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대학 기구 내에서는 절대 권력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대학 바깥에서는 돈이 필요하다. 석좌 교수가 아닌 이상 그들도 해고될 수 있으며 일을 꾸준히 해야 생계가 유지된다는 점에서는 이들도 꾸준히 누군가의 평가를 받고 있으며 개인의 자유를 100% 누리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겠다.

마치며..


자유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명예나 올바른 가치관, 그리고 깊은 지성과 사람에 대한 사랑과 같은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외에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고귀한 인간성이나 품성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자. 모든 사람은 죽고 죽음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죽어서도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혜택과 풍요를 남기고 갈 수 있는 그런 가슴 따뜻한 사람이 되자.


제 경우 건강이나 가족과 같은 단어를 빼고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자유'입니다. 사고할 자유, 여행할 자유, 시간을 마음 껏 사용할 자유 모든 자유를 중히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안에서 제가 가진 취미나 세상을 위한 일들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특히 무언가를 만들거나, 별자리를 관측하는 등의 취미는 돈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일들을 즐기고 자아를 성취하려면 경제적 자유가 필연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리고 자유와 더불어 영속적이고 궁극적인 힘이 무엇인가 늘 찾고 있습니다. 결국은 우주겠죠.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영속성과 궁극성은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니 이런 생각들을 글로 풀어 쓰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직업에 있어서 중요한 다른 요소들을 배척한 것 같은 글이 되었습니다만 전혀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또, 그런 여러가지 요소들을 모두 존중합니다. 모든 직업이 자유나 돈만 쫓지는 않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곤궁해도 성취감이 큰 직업도 있고, 직업 내에서 큰 자아성취를 이루는 분들도 많을 것 입니다. 세상 모든 분들의 직업을 존중합니다.

개인적 생각을 에세이로 풀어내는 공간이며, 특정 직업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제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며 글로 풀어낸 것이니 글을 읽으면서 언짢은 분들이 없으셨기를 바랍니다.

2013년 2월 6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