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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7일 화요일

요즘 루틴


요즘 루틴이 단순합니다. 머리가 맑고, 몸도 건강하고 가볍습니다. 컨디션도 아주 좋습니다. 물건도 꼭 필요한 것만 두고 필요 없는 건 모조리 버리는 중입니다.

데일리 고정 루틴


  • 단백질 닭 150g 섭취
  • 독서 2시간
  • 수영

위클리 고정 루틴


  • 등산 1~2회
  • 헬스 1~2회
  • 유튜브 주말 라이브 1회

불규칙적이고 변동이 있지만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


  • 뭔가 꾸준히 식사 약속이 잡힘
  • 드라이브
  • 주간지, 잡지, 신문, 리포트 등 수시로 읽기
  • 글쓰기 (블로그, 에세이 작성 등)
  • 앱 개발 (생각 나는 것들 만드는 중)
  • 공연 관람 등

생각만 하고 있는 것들


  • 취미로 하는 일들 중 일부를 사업화 해볼까?
  •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짬내서 공부를 해볼까?
  • 책을 써 볼까?

권투는 늙으면 몸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진작 중단하였습니다. 뇌에 충격을 자주 주면 안 좋다고 합니다. 본격적으로 리오프닝도 되었으니 해외에 바람도 쐬러 가고 싶네요. 그런데 아직 백신접종을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운이 좋게도 아직 코로나에 감염되지는 않았네요. 어떤 나라에 어떤 시기쯤 나가볼지 다각도로 각을 재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2023년 1월 17일
송종식 드림


2023년 1월 8일 일요일

Memories of Sofie


만0세 - 2013년, 인생 첫 도서관~ 어리둥절~

만2세 - 2015년 7월 22일, 아빠와 즐거운 저녁 물놀이

만2세 - 2015년 9월, 유치원 끝나고 아빠 전업사무실에 놀러 온 소희

만2세 - 2015년, 아빠랑 물놀이~


만2세 - 2015년, 맛있는 음식 기다리며 신남!

만2세 - 2015년, 아장아장 조심조심

만2세 - 2015년, 신나는 물 세례~

만2세 - 2015년, 베엠베~~

만4세 - 2017년 2월, 발차기 갓 배운 어린이, 깡 좋게 쭉쭉 치고 나간다

만4세 - 2017년, 라라랜드 후유증~🎵

만4세 - 2017년, 날쌘 아빠와 둔한 딸래미

만4세 - 2017년, 더워 죽겠지만 맛있어!

만4세 - 2017년, 뽀뽀타임~

만6세 - 2019년, The Star-Spangled Banner

만6세 - 2019년, 초코쇼~

만6세 - 2019년, 몸꽝의 마방진 흉내

만6세 - 2019년, 핑크 람보르기니

만7세 - 2020년, 바다와 대륙 너머에서 온 편지(워드 숙제)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명동에 온기가 조금씩 돈다

항상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평당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으로 위상을 떨치던 명동. 그런 명동이 사드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고 폭삭 주저앉아 버린지 벌써 몇년째입니다.

죽어버린 상권, 명동 공실은 정말 어마어마했죠. 지금도 명동에 가보면 공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랜만에 명동 시내를 좀 걷다 왔는데 분위기가 아주 미묘하게 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숫자상 리서치도 동반하지 않은 포스팅입니다. 그냥 가끔 명동 시내에 나가보면서 느끼는 제 개인적인 센티에 불과하니 실제 현실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점은 감안하고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카카오지도에서 제공하는 로드맵은 사진을 찍은 기간별로 화면을 분할하여 비교하면서 볼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여러 시기별로 해당 길거리의 분위기를 파악하기에 매우 용이하다. 한편, 2021년 7월 명동의 공실률은 거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으나, 9월 들어서는 공실률이 다소 완화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에 불과하다.
자료 : 매일경제신문, 카카오지도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낮에 명동시내 산책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쓰겠습니다.

왕훙인가?


우리나라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싸기로 유명했던 자리에 현재는 네이처리퍼블릭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 앞에서 방송 촬영팀이 뭔가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다가가 보았습니다. 촬영팀은 중국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데다 정확한 상황판단이 어려워서 뭐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중국에서 건너 온 왕훙일수도 있고, 아니면 네이처리퍼블릭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한 마케팅을 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중국 보따리상들이 명동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화장품 섹터도 너무 안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이 드문드문 눈에 보인다는 것은 발빠른 사람들이 앞으로 업황 개선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게 아닌가 하는 혼자만의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왕래하는 사람이 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타이틀만 명동이지 지방 여느 도시의 시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걷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끔 보이는 행인들이 외로워 보일 정도로 거리는 텅 비어버렸었는데요.

어제(9월 30일, 목요일)는 거리에 활기가 조금씩 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꽤 늘었습니다.

아직 예전 전성기 만큼의 유동인구는 아니었지만 바닥을 찍고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는 정도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관광안내원 분들의 얼굴에도 모처럼 생기가 돌았습니다.

물론, 어제 하루만 그랬을 수도 있고 저의 단편적인 시각일 수도 있습니다. 명동 근처에 계시는 분들이 조금 더 긴 시계열을 갖고 조사를 해보시는 게 정확하실 것 같습니다.

공실 상가에 가게들이 들어온다


명동 거리에 임장을 나갈 때 마다 공실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익숙했던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가게들을 보면서 마음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공실이 더 이상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공실이 너무 많은데다, 존버하며 남아있는 업체들은 대부분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 계열 업체들이거나 아니면 코로나 정도는 가뿐히 즈려밟고 계속 장사를 잘 하고 있는 가게들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되레 새롭게 들어오는 가게들을 보았습니다. 약국과 식당하나가 새롭게 입점하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걷다보니 비어있는 상가 또 다른 곳 앞에서는 여러명의 중년 남자들이 모여서 가게 계약과 인테리어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제 명동 상권도 최악의 상황을 지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패기 좋은 사업가들이 들어왔다가 역시 얼마 못 버티고 떨어져 나갈 것인지도 매우 궁금했습니다.

금발머리가 자주 보인다


금발머리 외국인 관광객이 꽤 자주 목격됩니다. 아마 관광객들이 자주 목격된 것은 올해 들어서인 것 같습니다. 어제는 외국인 관광객이 평소보다 유독 많이 보였습니다.

8월 출입국자 현황 <자료 : 법무부>

궁금해서 찾아보니 통계적으로도 2020년보다는 확실히 출입국자 숫자가 느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 입국자 수 추이 <자료 : 법무부>

시계열을 늘여놓고 보더라도 2021년 들어서 외국인 입국자가 유의미한 트렌드로 늘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년 1월에는 코로나가 서서히 터지기 시작한 시기고 2월 부터는 여행에 제약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작년 2~4분기가 코로나 최악의 상황이었고 최악의 상황은 슬슬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관광업이 전성기일 때 만큼 복구가 되려면 한참 멀었지만 지표들이 슬슬 올라오고 있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작년보다 상황이 더 나빠져서 이 지표들이 다시 꺾여 버린다면 그때야 말로 정말로 모두가 크나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일이 설마 올까 싶다가도 금융시장에서 '설마', '절대'라는 단어는 조심해야 하니 경각심을 같고 관련 지표들을 트래킹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제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률도 높아지고, 격리도 풀리고, 관광업도 점점 살아나고 다시 조금씩 일상을 찾는 시작점이면 좋겠습니다.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장사하는 사람의 태도 (손님은 걸레짝?)


점심시간이라 식당엔 손님들이 많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즐기는 직장인 손님들도 꽤 있었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나는 가게 맨 구석에 딱 하나 있던 2인석에 자리를 잡았다(이 가게는 기본테이블이 4인석이다). 

그런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급하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옆으로 한칸 더 들어가 달라는 주문이었다. 점심시간이니 단 한 자리라도 더 효율적으로 돌려서 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은 잘 이해한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맨 구석의 작은 테이블에 앉은 것이다. 혼자서 다인석을 잡고 앉아 있으면 민폐임을 아니까. 

나의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내가 더 깊숙한 테이블로 이동하길 요구했는데 그 테이블은 내가 보기엔 못 쓰는 테이블인 줄 알았다. 

걸레인지 수건인지 모를 청소도구들이 세탁된 채 주렁주렁 널려 있었기에. 그런 자리에 앉으라니 기분이 몹시 나빴다. 그래도 식당이 가장 바쁜 시간이고 나만 참으면 그만이니 밥만 빨리 먹고 그 가게를 뜰 생각이었다. 

내 손으로 의자와 테이블에 널려 있는 말린 걸레 같은 걸 일일이 치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서 밥을 기다렸다. 잠시 후에 밥이 나왔다.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사장님이 왔다갔다 하면서 계속 내 자리를 쳐다 보셨다. 물론 내 자리만 쳐다본 건 아니었다. 손님들이 가급적 밥을 빨리 먹고 자리를 비워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테이블 회전에 목숨을 건 눈빛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손님을 케어해 주기 위한 눈빛은 아니었다. 너무 눈치가 보여서 밥을 코로 마시듯이 위장으로 마구 쏟아넣고 나왔다. 

사장 아주머니는 계산대에서도 최악의 태도를 보여 주셨다. 내가 결제를 하겠다고 서서 기다리는데도 명품백에 든 현금을 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앞팀에서 현금 결제를 하고 갔고 가방에 모아 둔 현금과 계산을 하기 위함이었나보다. 

돈을 다 세셨는지 사장님은 내 카드를 낚아 채듯이 가져가서는 결제 후 카드를 손에서 손으로 전해주는게 아니라 결제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휙 놓았다. 

나는 너무 화가 났지만 이 자리를 뜨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하며 도망치듯 가게에서 나왔다. 그 사장님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다음 업무를 위해 자리를 바삐떴다. 

식사비가 싼 것도 아니고 공짜로 밥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참담한 기분을 느껴야 되는지 모르겠다. 

그 여사장님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파는게 아니라 손님들을 돈 복사 기계 정도로 보는 사람이었고, 짧은 인상에서 돈미새(돈에 미친 새x) 냄새가 강하게 났다. 

앞으로 그 가게는 두번 다시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동네에 놀러오는 손님 접대도 종종 하는 편이다. 단골을 트면 손님들을 많이 몰아 주는 편인데, 그 가게는 아웃이다. 불쾌함이 가시지 않아서 아까 먹은 점심을 토할 것만 같다. 

* 지나친 돈미새가 되레 돈과 멀어지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위의 사례: 손님이 떨어져 나감.


2020년 12월 13일 일요일

눈이 소복이 쌓인 아침

창 밖을 보니 밤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밟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대충 입고 집 밖으로 뒤쳐 나갔습니다.

온 동네를 하얗게 물들인 2020년 12월의 첫 함박눈 <사진 : 송종식>

스마트폰을 챙겨 들고 동네로 나가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습니다. 눈은 아직 밟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지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신나서 함박눈을 맞으며,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눈을 밟고 다녔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성인일 될 때 까지 살던 포항은 눈 구경을 하기가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살면서 눈을 본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기후 영향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된 지금도 눈만 보면 아이들처럼 즐거운 마음이 듭니다.

누군가가 먼저 발도장을 찍어 두어 반가움에 카메라를 땅에 바짝 대고 찍어 보았다 <사진 : 송종식>

약간의 속살만 힐끔 보여주며 서 있는 나무들과, 온 세상을 하얗게 물들인 정발산의 함박눈 <사진 : 송종식>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평소에 즐기던 산책과는 색다른 기분이었습니다. 함박눈이 듬뿍 쌓여있는데, 신기하게도 크게 춥지는 않았습니다. 동네를 쭉 걷다가 정발산에 도착하니 정발산 언덕에는 눈썰매를 가지고 놀러 온 어린이들이 보였습니다. 저도 그들과 섞여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눈이 되도록 빨리 녹지 않기를 바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비치면서 눈은 빠르게 녹았습니다. 잠시나마 꿈 속을 걷던 것 같은 아침이었습니다.

2020년 12월 13일
송종식


2020년 11월 19일 목요일

길 위의 레밍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으면 더욱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모르는 사이가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특히,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무섭기까지 하다.

치안 좋기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리고 치안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서도 잘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소수의 레밍같은 사람들 때문에 길거리에 나서기가 두렵다. 앞서 말했듯 무섭기까지 하다.

#1

나는 운전대를 잡으면 가급적 양보를 하는 편이다. 좁은 길에서 다른 차와 마주 보는 경우라고 하자. 다른 차가 저 멀리서 골목에 진입하고 있으면 나는 진입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편이다. 먼저 지나가라고. 

이미 진입해서 앞차와 마주보고 있으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선에서 먼저 후진을 해서 차를 빼 주는 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게 바보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도로를 수월하게 빠져 나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삶에서 괜한 분쟁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은 양보하면서 사는것이 밤에 두 발을 뻗고 자는 방법 중 하나다.

그런데, 의외로 마주보는 도로에서 시비가 붙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서로 차를 빼주기 싫어서 버티다가, 급기야는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본다. 서로의 시간 낭비이며,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가 아닌가? 말다툼을 해서 이긴들 남는 것이 무엇인가? 만에 하나 상호간 흉기 범죄라도 일어나면 남은 인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사람들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을터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레밍떼처럼 그렇게 돌격한다.

#2

우리나라의 보도는 좁은 편이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자전거, 킥보드, 오토바이 등이 보도 이용에 합세하면서 가뜩이나 좁은 보도가 더 좁아졌다.

그래서 통행 시 특별히 유의하는 편이다. 길에서도 나는 극도로 조심하는 편이다. 앞에 누군가가 걸어오면 상대가 지나가기 편하도록 길을 바짝 비켜주는 편이다.

역시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반대로 내가 싸울 힘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요즘 세상이 무섭다. 괜히 부딪혀서 적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그렇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어깨 부딪힘으로 하루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마주보는 서로가 자기 갈 길로 쭉 가면 몸이 부딪히든, 어깨가 부딪히든 반드시 충돌하게 된다. 내가 양보하지 않으면 서로 치고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 조금씩 잘 비켜주고 지나간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대방에게 기싸움이라도 걸 듯이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일부러 몸을 치고 가려고 작정하고 걸어오기도 한다. 이것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는 것 같다. 일부 남자분들만 그런 것 같지만 여자분들도 젊으나 연세가 있으나 의외로 걸어오는 상대를 고려하지 않고 돌격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돌격하는 레밍떼 같아서 무섭다.

#3

보행신호가 파란불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좌우를 충분히 살피고 길을 건넌다. 확실히 차량이 멈췄거나 오는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야 발걸음을 한다.

그리고 신호가 없는 곳에서 길을 건널 때도 마찬가지다. 차량이 보이면 차량을 우선 보내고 나중에 길을 건넌다. 혹시 내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차량이 오면 뛰면서 길을 빨리 건너 가 준다.

반대로, 운전자 입장에서는 탱크같은 보행자를 자주 목격한다. 내 차가 아직 정차하지도 않았는데, 무심한 듯 느그적느그적 길을 건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만에 하나, 운전자가 음주운전자거나 잠깐 다른 짓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냥 죽는다. 

혹시라도 보행자를 배려를 하지 않고 질주하는 차량이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나처럼 조심하니까 보행자가 안 죽는 것이다. 그래도 만에 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몸이 탱크도 아니고 무슨 배짱으로 차량이 오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도로위를 슬렁슬렁 건너 다니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무단횡단을 하면서도 그러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소름 돋는다. 이들이야 말로 길 위의 레밍같다.

물론, 차량이 보행자를 배려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보행자도 충분히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나면 자기만 손해이다.

#4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줄을 서 있다. 내 앞에는 한 사람이 서 있다. 엘리베이터가 왔다. 앞 사람이 탄다. 나도 탄다. 그런데 문이 닫히면서 내 발이 걸린다. 왜 이렇게 문이 빨리 닫히나 봤더니, 앞서 탄 사람이 타자마자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다.

이런 경우가 한 두번이 아니다. 사람이 타고 있는데 버튼을 누르기 바쁜 사람이 적지 않다. 나는 탔으니 그만이라는거다. 반대로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는데 누군가가 닫힘 버튼을 막 누르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몇번은 엘리베이터를 잡아줘서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가급적 뒷 사람을 위해서 엘리베이터를 잡아주는 편이다. 그게 차라리 기분이 낫다. 닫힘 버튼 그거 죽어라고 눌러봤자. 별 효과도 없다. 누르는 본인도 기분만 안 좋다.

닫힘 버튼 누른다고 어차피 엘리베이터 탈 사람이 안 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그 버튼을 눌러대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레밍같다.


#5

신호가 없는 동네 골목의 사거리. 골목 두 곳에서 차량이 온다. 이럴 때 어느 한쪽이 양보하면 수월하게 빠져나간다. 그러나 다른 골목에서 오는 차를 보고도 앞으로 돌격하는 차량들이 적지 않다. 저러다가는 사고가 날텐데 싶은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두 차량은 사고 직전에야 브레이크를 밟는다. 이건 서로 못 봐서 그런게 아니다.

이것도 일종의 기 싸움이며, 나부터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이기심의 발로에서 시작되는 행동이다.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지는 걸 이들도 알거다. 알면서도 일단 브레이크는 안 밟는다. 적지 않은 차량들이 이런 행태를 보인다.

무시무시한 레밍이다.

#6

길 위에서의 양보는 일단 나 자신에게 큰 이익을 준다. 배려가 손해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 기다리고 배려하는 것을 손해로 인식한다. 무조건 들이대고, 돌격하고, 구겨 파고 들고, 밀어 붙이면 되는 줄 안다. 그게 비단 성격이 급한 것 만의 문제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편하고 보자는 발생의 발로가 아닐까? 상대에 대한 배려 부족이 아닐까? 길에서 발생하는 작은 충돌로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무지가 아닐까?

길에서는 그렇게 1분이라도 빨리 이동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해놓고, 일상에서는 시간을 허비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차라리 일상에서 시간을 아껴쓰고, 길에서는 여유를 갖는 것이 어떨까? 후자가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9월 21일 일요일

tvN 오늘부터 출근?

tvN은 콘텐츠를 참 잘 만들어 내는 것 같다. 공중파는 공공재라 넥타이를 매고 점잖은척 해야한다. 반면에 케이블은 공중파에 비해 제약이 적다. 어린 학생들도 알만한 뻔한 이야기를 공중파에서 못하는 부분만 골라다가 시원하게 담아낼 수 있다. 케이블은 알몸에 삼각 팬티만 입은채로 조금 더 인간 본성 그대로를 거침없이 말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공감을 쉽게 얻는다.

감기가 걸렸는지 새벽부터 아기가 울길래 아기를 달래고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인간 본성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잘 만드는 tvN에서 '오늘부터 출근'이라고 하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작했나보다. 벌써부터 인기가 뜨겁다.

'다시보기'로 봤는데 로이킴씨, 예원씨, 박준형씨, JK김동욱씨가 회사원이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카메라에 담겼다. 출근 첫날은 회사에서 점심도 먹고 카페에서 커피 내기도 하고 그런 장면들이었다.

우리집은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풍비박산이 났다. 처음 내손으로 돈을 번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신문배달이었다. 아르바이트로 한게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했다. 비교적 빨리 내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살기 힘들었던 환경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항상 주류이기 보다는 아웃사이더에 속했다. 항상 그랬다. 살면서 다수의 틈바구니에 있어 본 시간이 짧다. 나는 어딜가나 항상 외부에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또래들이 틈만 나면 이야기하는 '연봉이 얼마나 오를까?', '승진은 언제할까?', '취업하려면 토익은 몇점 받아야 되지?' 같은 이야기에는 공감을 못했다. 지금도 공감을 못한다.

되려 '사업을 하다가 말아 먹어서 알거지가 돼 길거리를 전전하는 사람'의 이야기나 '자수성가해서 글로벌 억만장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것에 더 귀가 열리고 마음도 끌린다. 스스로 생각해도 극단적인 성격이다. 하지만 밥은 굶을지언정 나의 이런 자유영혼을 앞으로도 파괴하고 싶지는 않다.

나도 월급쟁이를 했었다. 직원 10명 남짓의 소규모 벤처에서 시작했다. 사실 급여는 몇푼 되지도 않았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벤처'라고 하는 로켓에 올라타 멋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한 월급쟁이 생활은 생각지도 않게 7년간이나 계속됐다. 나중에는 몸값을 올려가면서 점점 큰 회사로 옮기게 됐고 어느 덧 나의 사고방식은 육식동물이나 억만장자의 마인드가 아니라 초식동물, 월급 100~200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뼛속까지 직장인이 돼 있었다.

그렇게 사는게 내 인생에 죄짓는 것 같아서 또래 중에서는 나름대로 고액에 속하는 연봉을 버리고 직장을 나왔다. 

사람들은 '그 좋은 회사를 포기하고 나왔냐?'라고 안타까워하지만 나는 회사 복지나 급여 같은건 전혀 아깝지 않다. 회사 복지가 좋다고 회사 건물이 내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니고 급여가 많다고 한들 내가 가지고 싶어하는 걸프스트림 바퀴 하나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무엇보다 시간과 월급을 바꾸면 한정된 자원인 자유를 희생해야 하니까.

아무튼 그렇게 돌아선 곳인데도 tvN의 '오늘부터 출근'에서 팀원들끼리 커피 내기를 하는 장면을 보니, 월급쟁이 생활이 아련하다. 좋은 추억이었다. 딱 내가 저렇게 지냈던 것 같다. 점심시간 기다리고, 점심 먹고 나서는 커피한잔씩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떨고. 사소한 행복이 크게 다가왔던 시기였다. 

그땐 또 그때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소소하고 행복했던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예능보다가 혹해서 다시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뻔했다(ㅋㅋ)

어찌되었든 우리같은 사람들(?)은 우리만의 갈길이 있고, 직장인은 직장인의 갈길이 있겠지만 모두가 다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새벽에 예능보다가 횡설수설 몇자 끄적여본다.

2014년 9월 21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