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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6일 월요일

하이퍼플래닛 (오프닝, 엔딩 음악)

희귀한 영상을 찾았다. 아니 음원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유튜브 이용자 y0ungmin님이 하이퍼플래닛 오프닝, 엔딩 음악을 올려놓았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오랜만에 들으니 아련한 기분이든다.

하이퍼플래닛 오프닝




하이퍼플래닛 엔딩




하이퍼플래닛은 윈도우 3.1 기반의 CD-ROM타이틀이었다. 89년에 발매(한국에서는 90년대 초반에 발매)된 타이틀이다. 콘텐츠가 빵빵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교하게 잘 만든 타이틀이다.

삼성 매직스테이션을 사면 번들로 들어있던거였다. 내 컴퓨터는 금성 심포니였기 때문에 이 타이틀이 있는지 몰랐다. 8살 때였나? 10살때였나? 암튼 20여 년 전 코흘리개 시절에, 제일 친한 친구가 삼성 매직스테이션을 가지고 있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 타이틀을 보고 한 번에 홀딱 빠졌다.

그때 살던 곳이 시골이었다. 어차피 친구도 많지 않던 동네였다. 다만 애로사항은 집 근처에 대규모 공단이 있어서 밤에 별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산이나 어두운 곳으로 자주 들어갔다.

2012년 운제산에서 바라 본 포항 공단, 20년 전보다 개발이 진척됐어도 아직 시골이다
<사진:블로거 산사나이님, 출처:http://blog.daum.net/kbtsc/5781350>

내가 실종된 줄 알고 어른들이 나를 찾으러 자주 다니셨다. 어른들 애를 많이 먹였던 것 같다. 하도 밤만 되면 애가 없어지니 나중엔 어른들이 포기하셨다. 가끔 집 앞에서 밤잠도 잊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때는 동네 어른들이 '안됐네 쯔쯔.' 하며 혀를 차셨던 기억도 있다. 정신이 나간 애인 줄 알고. 당시 내 꿈은 어린이답게 천문학자 겸 우주비행사였다. 나 어릴 적 트렌드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대통령이랑 과학자가 많았다. 지금은 교사랑 연예인이던가.

어린이라면 하나씩 다 전문분야가 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어릴 적에 전문 분야가 하나씩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어린이 시절에 내 전문분야는 이쪽이었다. 별자리와 신화, 항성들의 등급과 표면온도, 크기나 지구와의 거리 같은 걸 줄줄이 꿰고 있었다. 계절-시간대별로 고개만 들면 별과 별자리를 척척 찾아냈다. 물론 지금은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모교 포항 남성초등학교 <출처:doopedia>
2009년에는 입학생이 4명에 불과해 폐교 위기에 몰려있다 ㅠ_ㅠ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도서관은 어지간한 소형 아파트거실보다 작았다. 책도 몇권없었다. 푹 빠져있던 우주/과학 서적은 단숨에 몽땅 다 읽었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학생대백과 사전도 종이가 너덜너덜해지고 내용은 달달 외울 정도로 봤지만, 콘텐츠에 대한 갈증이 해소가 안됐다. 시골이다 보니 콘텐츠나 문화 접근성이 더 떨어졌던 것 같다. 하이퍼플라넷은 그때 등장한 소낙비 같은 존재였다.

그 소낙비를 다시 맞아보려고 타이틀을 구매할 수 있나 찾아봤다. 그런데 일단 한국어로는 하이퍼플라넷 정보 자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시간도 오래됐고 많은이의 기억에서 잊힌 듯하다.

일본에서 만든 것이니 일본 사이트들을 찾아봤다.

야후!재팬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하이퍼플래닛 중고CD
출처 : http://page16.auctions.yahoo.co.jp/jp/auction/u55739547

우와. 1,090엔에 물품이 올라왔다! 글을 쓰고나서 윈도우 3.1에서만 구동되는지, 경매 참여는 어떻게 하는지 알아봐야겠다. 갖고 싶다.

We’re alone in the universe <출처 : lmao-pics.net>

우주는 공간적인면에서 압도적이다. 빛은 1초에 30만km를 움직인다. 지구를 7바퀴 반 돈다. 지구에서 출발한 빛은 8분 19초 후에 태양에 도달한다. 빛으로 8분 19초 거리인 이 1억 5천만km가 천문단위로 1 AU 이다.

태양과 명왕성의 평균거리는 39 AU다. 태양계만 놓고 봐도 엄청난 크기. 그러나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에서도 아주 구석진곳에 덩그러니 위치하고 있고 먼지에 지나지 않는다.

빛이 1년간 달려 도달하는 거리는 광년(ly)이다. 천문단위로 3.26광년을 1파섹(pc)으로 표기한다.

우리 은하는 지름이 약 10만 광년이다. 빛으로 10만 년을 달려야 은하 끝에서 끝까지 갈 수 있다. 태양계는 은하 중심에서 약 26,000광년 떨어져 있다. 우리 은하는 2,000억 개 이상의 별로 구성돼 있다. 그 별들 중 태양은 볼품없다.

고작 이웃한 화성에도 정착하지 못한 초보적인 인간이 과연 우리 은하계나 벗어나 볼 수 있을까? 언젠가는?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이웃 은하 중 하나가 안드로메다 은하다. 우리 은하에서 빛으로 220만 년을 달려야 도착한다. 22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살던 시절 출발한 안드로메다의 모습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를 비롯해서 30~40개의 은하가 국부은하군을 이룬다. 이 국부은하군의 지름은 약 500만 광년이다. 은하군보다 큰 은하단은 수백 개에서 수천 개의 은하로 구성돼 있다. 은하단의 직경은 보통 2~10메가파섹(Mpc)이다. 1메가파섹은 3.26 x 100만 광년이므로 큰 은하단은 최대 직경이 3,260만 광년에 이른다.

우리 은하계와 은하단을 포함하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은 길이가 153메가파섹에 이른다. 5억광년이다. 그리고 '대규모 구조' 그보다 큰 개념의 '거대한 벽'이 있다.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 압도적인 수의 은하들이 이 거대한 벽안에 갇혀있다. '우주의 크기는 190억 광년이다, 900억 광년이 넘는다.'말들이 많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우주의 미세 먼지도 안되는 지구를 벗어나지도 못했다는 사실이다. 작은 점에서 망원경 가지고 추측해봐야 그건 추측이다. 우리가 모르는 900억 광년 너머의 엄청난 세상이 있을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재미로 보자.

우주는 시간적인 면에서도 인간들을 압도한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잡자. 빅뱅이 일어나고 나서 9월 첫째 주에 태양계가 형성된다. 태양의 나이는 45억 살이다. 비교적 미래가 창창한 젊은 별에 속한다. 인간의 조상인 유인원이 12월 31일 자정이 다 되기 몇 분 전에 나타난다. 인간의 문명은 자정이 되기 전 몇 초도 안돼 완성된다. 인간의 역사란 우주의 시간에 놓고 보면 이처럼 보잘것없다.


조지소로스와 42세 연하 세번째 부인 타미코 볼튼 <출처:로이터, 뉴스1>

투자 철학이나 사회에 남긴 부정적인 면은 빼자. 트레이더나 돈을 다루는 카리스마 넘치는 면모 자체는 배울 점이 많은 조지 소로스. 소로스는 42세 연하의 여성 사업가 타미코 볼튼과 결혼을 했다. 많은 사람이 그 나이 차를 보면서 놀랐고, 타미코 볼튼이 소로스의 돈을 보고 결혼했다는 둥 갖은 뒷말을 만들어냈다.

소로스와 타미코볼튼의 나이 차이 42년은 지금까지 우주 나이로 봤을 때 0.0000000028%밖에 안되는 시간, 지구의 나이로 봤을 때는 0.0000000093%, 인류가 최초 등장한 시간을 기준으로 해도 0.000014%밖에 안되는 시간이다.

지금까지 우주의 나이를 24시간으로 환산하자. 자정을 기점으로 시계가 돈다고 치면, 소로스와 타미코볼튼의 나이 차이 42년은 0.000486초밖에 안된다. 자정에서 출발한 초시계가 1초도 못 움직인 시간. 그야말로 찰나이다.

찰나. 동시대에 살아있는 사랑으로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간혹 남녀 간 나이 차이가 10살이 난다, 20년이 난다하면서 사람들이 놀라워 하는데 우주적 관점에서는 엄청난 인연이 만난 것이다. 인간계 시간이야 부질없는 것이다. 찰나의 인연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다.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티끌도 안되는 지구에서 티끌도 안되는 삶이란 부질없다. 자칫 회의주의에 빠지면 위험하다. 그러나 겸손할 필요는 있다.

월급을 200만원 받니, 500만원 받니. 이런 것. 니 잘 났니, 내 잘 났니. 이런 것.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의미 없다. 인간의 역사? 문명? 유산?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의미 없다. 큰 우주 앞에서 겸손해야 하고 찰나를 사는 삶이 행복해야 한다.

나는 투자를 한다고 온갖 똑똑한 척은 다 하고 있는데, 사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참 웃음밖에 안나는 일이다.

그 어릴적 세속의 물이 하나도 들지 않았을 때 가슴은 큰 우주를 향했다. 그러나 그때보다 훨씬 아는 것도 많아지고 세속의 물이 든 지금의 나는 어떤가. 이 작은 지구별에서 그저 티끌도 안되는 인간사 아웅다웅하겠다고 큰 우주를 놓치며 사는 건 아닌가.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꽤 된 것 같다. 하지만 가슴속에 꿈은 잊어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언젠간 작은 인간들의 세속적 삶에서 한발 물러서서, 어두운 산에 들어가 큰 우주를 눈과 가슴으로 품으며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다. 어릴적 삶이 한번 엎어져서 모든게 틀어지고, 공부도 그다지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도권 과학자의 길은 이제와서 요원하게 됐지만 혼자 꾸는 꿈이야 아무리 꾼들 어떠하리.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돈 드는 일도 아닌데.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지만 영속적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되려면 지구를 벗어나야 하고, 은하를 개척해야 하고, 은하단을 개척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들의 미래는 또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나는 그런 인간들의 발걸음을 위해 콩알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이퍼플래닛 글이 왜 이렇게 끝나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2015년 3월 16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