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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8일 토요일

실망스러운 한국의 주주총회 문화

올해도 주총시즌이 끝나갑니다. 매해 그렇듯 올해 주총도 여지없었습니다. 한날한시에 담합해 주총을 열었고, 회사 쪽 주총꾼이 분위기를 끌어가며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회사에게 유리한 안건만 속도감 있게 처리되고 주총이 마무리되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형식적 주총이 왜 필요한지 의문입니다.

주주들이 안 왔으면 좋겠어


기업들은 주총장에 주주들이 많이 안 오길 바라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주들 많이 와봐야 말만 많아지고 피곤해서 일까요. 그래서 대표적으로 하는 악행(?) 중 하나가 한날한시에 집단적으로 주총을 여는 것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었습니다. 3월 20일에는 409개 회사가 주총을 열었고, 3월 27일에는 810개 회사가 주총을 열었습니다. 시간도 대부분 9시나 10시기 때문에 대리인을 쓰지 않는다면 여러 회사 주총에 참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요일도 대부분 금요일에 집중돼 있습니다. 일반 직장인들은 주총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고, 금요일이기 때문에 주총에서 발생한 이슈나 문제점들에 대해서 언론사들의 오후 보도가 거의 없다는 점을 노린 듯합니다.

기업들이 주총 날짜를 의도적으로 담합하여 최대한 주주들이 못 오기를 바란다는 것이 주총 날짜에서 느껴집니다. 기업들이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안건 의제 설정과 그에 대한 찬반은 우리 마음대로야


회사 쪽에서 심은 사람들이 곳곳에 앉아 있습니다. 주총장 분위기는 그렇습니다. 회사 쪽 직원들, 숨겨놓은 차명 지분 관련 인물들, 회사에서 고용한 주총꾼들.. 이 사람들이 분위기를 회사 쪽으로 몰아갑니다.

어떤 안건이 나오면 무조건 동의하고, 사람들은 '옳소'를 외치며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띄웁니다. 주총 의장은 아주 빠르게 이 안건을 통과시키려고 합니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는 회사와 소통하고 싶습니다. 그게 인지상정이죠. 궁금한 점도 많고 물어볼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영업 상황을 보고받고자 하거나, 올해 회사의 영업 전략에 대해 물어보고자 하면 '조용히 합시다!', '당신 주식 몇 주나 가지고 있어?', '그런 건 개인적으로 물어보고 그냥 넘어갑시다.'라고 말하는 바람잡이들이 목청을 높입니다. 그러면 곳곳에서 '옳소'하는 소리들이 나오고 의장은 그냥 넘어가려고 합니다.

저 사람들이 진짜 주주일리는 없겠죠. 주주라면 저런 기본적인 것들이 궁금한 건 당연한 건데 왜 입을 막으려 할까요. 거의 모든 회사의 주주총회장 분위기는 이런 식입니다.

간혹, 주총장에서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회사 주주들이 부러울 정도입니다. 그게 당연한 건데도 말입니다.

저런 식으로 어물쩡어물쩡, 연봉 수십억 원을 받는 이사가 선임되고, 회사를 집중 감시해야 하는 감사가 선임되고, 배당금이 책정됩니다. 어처구니없는 노릇입니다.

공시된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데도..


공시된 대주주 지분율이 과반수가 안되는데 주총장 분위기가 앞서 말한 분위기와 비슷한 경우도 많습니다.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20~30% 수준인데도 주총에서 회사 쪽 안건이 무리 없이 통과되고, 분위기 또한 바람잡이들이 바람을 잡는 대로 흘러간다면 차명지분이 상당한 수준이라고 의심을 해도 무방하다 봅니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주총 문화를 보면 소액주주와 소통은 불가능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차명지분까지 상당하다면 대주주 일가의 도덕성까지 의심을 해야 합니다. 뭐 차명 지분이 없는 대주주 일가가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지만요.

이변이 있었다


이처럼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처참하게 무시됩니다. 분명히 내 돈을 투자했고, 내가 소유한 회사인데도 주인 행세를 전혀 못 합니다. 사실상 의결권 수에서 밀리기 때문입니다. 소수주주들이 주주제안도하고 회사에 소송도 걸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사례는 많습니다. 다만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바위가 깨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난 27일, 많은 소수주주 제안이 기각됐지만 2개사에서 소수 주주가 승리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먼저, 부산주공입니다. 네비스탁을 중심으로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30% 이상 모였습니다. 소액주주들이 제안한 이종경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선임 건이 회사 측과 큰 충돌 없이 통과됐습니다.

GS가 소속 회사인 삼양통상은 소액주주들이 제안한 배당금 확대(주당 8,000원)와 비상근감사 선임 안건에 대응하고자 정관을 변경하는 초강수를 뒀습니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의결권을 30% 가까이 모았고, 지분 6.08를 보유하고 있는 조광피혁도 소액주주들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날 주총에서 소액주주들의 제안은 찬성 74%가 넘으면서 통과됐습니다. 대기업을 상대로 소액주주도 자기 목소리를 내고 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역사에 기록하게 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지면 좋겠습니다.

주주총회는...


주주총회는 기업의 최고 단계에 있는 의사결정 기구입니다. 이사회보다 힘이 쎕니다. 회사의 운명과 직결된 가장 큰 결정들을 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내 주식은 몇 주 되지도 않는데 참여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행동이라 생각합니다.

단 1주의 의결권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주라면 주주총회에 꼭 참석하셔서 의결권을 행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의치 않으시면 의결권을 위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본업에 충실하면서도 주주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는 회사, 투명한 회사는 장기적으로 성장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회사는 주주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삼양통상과 같은 일들로 한국의 주주총회 문화도 점진적으로 바뀌고,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도 조금씩 회사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3월 28일
송종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