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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1일 토요일

매수를 위한 매수, 낙찰을 위한 낙찰

출처 : http://quarizmi.com/blog


1년에 한건만 낙찰받아도 충분하다


2000년대 중반에 한창 부동산 경매에 빠져 있던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고수들 중 한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낙찰은 1년에 한건만 받아도 충분하다. 낙찰을 위한 낙찰을 주의해라."

법원 경매장에 가면 어쩐지 모르게 기분이 좋습니다. 심장도 두근거리고 벌써부터 내가 부동산 소유주가 된 냥 떨립니다. 그래서인지 충분히 권리분석과 시장분석을 해서 적정가를 산정하지 않고 고가 낙찰을 받는 사람들이 한두명이 아닙니다.

물론, 고가 낙찰을 받았다고 해도 긴 시간이 흐른뒤에 보면 가격이 훨씬 올라서 이익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가 낙찰을 받아서 돈이 묶이고, 이자 부담과 청산시 손실을 보면서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이런 간단한 원칙을 모를리 없지만 '일단 낙찰은 받고 봐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고가 낙찰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돈을 벌기 위해 낙찰을 받는건지, '낙찰을 위한 낙찰'을 받는건지 망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부동산 경매 시장은 어지간한 하자가 있는 물건이 아니면 안전마진을 확보하기는 커녕 거의 대부분 고가 낙찰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부동산 경매는 주식투자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충분히 안전마진이 있는 가격에서 사야지 추후 발생할 여러가지 변수로 부터 타격을 줄 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마진을 확보하고 사야 적어도 안전마진 만큼은 수익을 낼 확률이 올라갑니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누구나 만나게 되는 워런버핏은 '내가 원하는 공이 들어올 때만 배트를 휘둘러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버핏을 알기전부터 이미 경매 고수들은 '내가 원하는 가격대로 내려 온 물건'에만 고집스럽게 낙찰가를 써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응찰하면 대부분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간간히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낙찰받게 되면 낙찰받는 순간 돈을 벌며,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안전마진과 가치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움은 부동산 경매를 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위험 물건이 아니면 고가 낙찰이 속출하는 경매 시장에서는 제 실력으로 먹을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여 주식투자로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은 누구나 고수인 반면에 주식투자는 문외한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식시장에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헐값에 굴러다니는 주식이 많았습니다. 주식시장에 기회가 많았다고 보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부동산 경매 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본격적으로 넘어 온 이유입니다.

매수에도 인내심이 필요하다


주식 투자자들은 죽은 돈 들고 있는 걸 매우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투자로 수 십억, 수백억을 번 투자자들 중에서도 집을 사지 않고 전월세로 사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집값이 아무리 올라봤자 집에 깔고 있는 돈은 죽은 돈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그만큼 주식투자자들은 돈이 있으면 당장 주식을 사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시장에는 항상 주도주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주도주들이 시원하게 상승하는 모습을 보면 나만 뒤쳐진다는 느낌을 받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돈을 가만히 들고 있는 동안 우리는 인플레와 싸울 수 없고 인플레는 우리의 자산을 갉아먹는다는 공포도 그런 강박관념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주식투자는 다양한 지식과 기질이 필요하지만 종국에 가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림과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을 보유하고 나서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수를 위해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ㄱ'형님은 우리나라 가치투자계의 거목입니다. 가치투자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형님이고 가치투자 저변 확대와 후배 양성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형님과 운 좋게 1년여의 기간동안 동고동락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형님에게서 다양한 것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그것과 관련해서 글을 쓰겠습니다. 오늘은 '매수를 위한 기다림'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그분은 현재 업황이 망가져 있거나 위기에 처한 회사 중 향후 턴어라운드가 기대되는 기업에 투자하는데 달인이었습니다. 그 형님은 언제나 신고가 종목보다는 신저가 기업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시장이 관심도 없고, 사람들이 모두 부정적으로 보는 회사가 향후 오해를 깨고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회사를 골라 투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형님의 매수 방식에서 인내심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역사상 최저 PBR 그 이하로 깨고 내려 간 상태이고, 시장에서 회사에 거는 희망도 더는 없고, 차트도 몇년 동안 흘러내려서 바닥에 바닥을 기고 있는 그런 종목. 제 기준으로는 턴어라운드 또는 업황 개선이 기대된다면 사도 된다 싶은 그런 종목을 형은 쉽사리 매수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제는 살만 하지 않을까요?' 라고 여쭈면 그 형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아직 멀었어."

저는 독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인내심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저PBR 가치투자 원리주의자인 제가 보기에도 혀를 내두를 만한 수준 그 이상이었습니다.

기다리다가 놓쳐버린 종목은 내것이 아니라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지만 형이 매수를 한다면 틀림없이 수익을 내고 나오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싸게 사니 주가가 반등하면 수익률도 남들보다 월등히 좋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운용자금이 크시다보니 매수를 시작하면 시장에 머리 일부는 떼어줘야 했고, 매도를 시작하면 시장에 꼬리 일부를 떼어주는 출혈은 어느 정도 감수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도 있을 줄 압니다. 성장 가치주 투자자분들은 반문할 것입니다.

'미래에 회사가 지금보다 더 성장해 있으면 언제 사도 상관없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저PBR + 턴어라운드 투자를 좋아하는 저도 포트의 일정 부분은 성장가치주에 투자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이런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매수를 기다리는 것, 그것 또한 마켓타이밍을 재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오해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켓타이밍을 재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버핏이 '내가 원하는 영역에 들어 온 공만 친다'고 말한 것, 위의 부동산 경매 고수 형님이 '내가 원하는 가격대로 내려오는 물건만 응찰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됩니다. 마켓타이밍을 예측할 순 없지만 현재 위치는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위치가 내가 배트를 휘둘러야 하는 위치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배트를 휘두른다고해서 한번에 투자자금을 다 밀어넣는 것이 아니라 길고 긴 분할매수의 여정을 시작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매수를 위한 매수'보다는 '하나를 사더라도 더 좋은 가격에 잘 사자'하는게 이번글의 취지입니다.

2020년 1월 11일
송종식 드림

2014년 11월 4일 화요일

한 경매인 일가족의 죽음을 보며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인천의 한 일가족이 자살을 했다. 그 가족의 가장은 경매 사업을 하는 사람이다. 사업이 신통치 않아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고 한다. 주택을 16채나 소유했는데 자산 대부분이 부채였던 것 같다. 월세가 걷히지 않았거나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아 현금 흐름이 나빴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동산 투자는 본질적으로 현금이 풍부한 사람이 하지 않으면 주식보다 더 위험한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출을 권장하고 주택하나에 큰 돈을 몰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인구 성장이 멈춘 시기에 20~30년전 패러다임으로 투자하는 건 자살 행위다.

문득 경매에 미쳐있던 내 과거가 떠올랐고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전에 나는 부동산 경매에 미쳐있었다. 시중에 나온 부동산 관련 책은 다 찾아 읽었다. 지금은 머리속에 주식 생각뿐이지만 그때는 경매 생각 뿐이었다. 공인중개사 공부도 하고 민법 공부에도 푹 빠졌다. 현장 답사도 열심히 다녔고 업계에서 성공하신 분들도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만났다.

이 에너지는 결혼후에도 이어져 쭉 경매에 푹 빠졌다. 둘이서 참 부지런히 임장(현장답사)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천안이나 대전까지 내려가서 해뜨기 전 오전부터 해질 무렵 저녁까지 쉬지 않고 경매 물건들을 보러 다녔다. 점심도 거르고 신발이 닳도록 돌아다녔다.

그때 얻은 경험과 추억은 지금도 귀하다. 참 세상은 넓고 별의 별 사연도 많구나 하는 걸 느꼈다. 무엇보다 투자를 할 때는 현장을 답사해서 직접 내눈으로 투자 대상의 실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도 임장을 하면 할수록 절실히 느꼈다. 사진이나 서류상에서 느끼는 부분과 실제로 현장을 봤을 때 느끼는 부분은 분명 매번 달랐다.

그렇게 열심히 임장도 다니고 법정에도 드나들었지만 투자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기껏해야 실거주 목적으로 서울에 집 한채를 낙찰받은 정도가 가장 마음에 드는 성과였다.

임장의 열정을 법정까지 끌고 가지 못했다. 법정에 갈때마다 경매에 대한 나의 열정은 식어가고 있었고, 어느덧 부동산 경매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경매에서 손을 뗀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경쟁에 관한 부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성에 대한 부분 때문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경쟁을 싫어한다. 그리고 물건의 본래 가치보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것도 싫어한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 몸에 맞는 옷은 주식 가치투자자였을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경매 시장이 언제부턴가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실제 입찰자와 학원에서 온 수강생 등 여러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 경매 법정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찼다. 법정이 몰려온 인파를 수용할 수 없어서 법정 복도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었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joins.com>

아니나 다를까 매번 고가 낙찰도 속출했다. 1억 5천짜리 빌라에는 수 십명이 몰리는 일이 흔했고, 서울의 어지간한 10억대 아파트도 수십명이 응찰하여 고가 낙찰 받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실 수요자가 아닌 단순 투자자라면 저래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

내 자금 수준에서는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저가 낙찰을 받아서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주식판에서 실적이 부진한 회사의 실적이 앞으로 개선될 것을 기대해 최고 바닥에서 투자하는 턴어라운드 투자 방법이 있듯이 경매 시장에서도 위험 물건만 골라내 투자하는 방법이 있다. 일반 경매 참여자 보다는 프로들의 영역이다.

위험 물건에 내재한 위험이 실제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파악해 법의 허점을 찾아내고 이를 이용해서 낮은 경쟁에 비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위험 물건 투자 방식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래서 특정 사례만을 지칭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위험 물건의 투자는 시나리오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적게는 응찰 보증금에서부터 크게는 투자금 전체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다(-.-)

그렇게 리스크가 높은 위험 물건에 대한 응찰 경쟁률 마저도 점점 높아졌다. 리스크 대비 수익률이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고 나에게는 투자 매력이 상실되어갔다.

그나마 매력적으로 보였던 건 500억 짜리 물건을 1~200억대에 단독 낙찰 받아가는 한 아저씨였다. 금액이 워낙에 커서 경쟁자가 없으니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다. 느긋하게 몇번 더 유찰되기를 기다리다가 충분한 안전마진이 생겼을 때 유유히 물건을 낙찰 받아갔다. 경매 투자의 본질인 '이겨놓고 싸운다'는 전법에 딱 맞는 투자였다. 그런데 나에겐 100억이 없지 않았는가?

경매에서 손을 떼게 된 계기 중 또다른 하나는 남의 피눈물로 돈을 벌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다. 이론적으로는 경매 낙찰자 덕분에 채무자가 빚을 갚을 수 있고 채권자도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물건을 싸게 낙찰 받아야 하는 낙찰자의 입장과 최대한 비싸게 부동산이 낙찰돼야 행복해지는 채무자, 채권자 그리고 세입자의 입장이 정면으로 대치된다.

명도(거주자 내보내기) 과정에서는 대부분 큰 저항이 따르게 되고 사정이 딱한 집주인이나 세입자가 많다. 이들을 명도해야 하는 과정도 마음 아픈 일들의 연속이다. 이런 일들은 내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할 일들이지만 내 손으로는 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들의 소중한 주거지를 가지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내 성향에는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경매에서 손을 뗐지만 경매라는 도구 자체는 매우 매력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지금도 수시로 경매 물건을 주시는 하고 있다.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토지는 경매로 획득하는 편이 여러 귀찮은 법적 절차를 피할 수 있어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경매 물건의 공급이 응찰을 하려는 수요자보다 크게 늘어나면 그때엔 다시 경매 법정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투자의 본질은 항상 같다. 경쟁은 피하는게 상책이다. 싸우기 전에 이겨놓고 싸워야 하고, 질 것 같은 싸움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 때 사서 대중들에게 관심이 폭증할 때 팔아야 한다. 그리고 투자엔 항상 위험이 따르므로 나 역시도 늘 리스크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모쪼록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4년 11월 4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