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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5일 화요일

긴 글을 읽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

짧은 글에는 힘이 있다. 잘 써진 짧은 글은 독자들을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생각하게 한다. 짧은 글에는 영감이 있고 글을 짧게 줄이는 것은 글쓰기 최고의 기술 중 하나다.

그렇다고 무조건 긴 글보다 짧은 글이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긴 글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묘사나 논리 구조가 필요할 때도 잦다. 긴 글은 꼼꼼하며 감성적이다. 많은 지성인의 토론은 대개 긴 글이 오가며 이루어졌고 긴 글을 써 내려가면서 자신의 논리나 철학을 집대성해왔다. 그렇게 소중히 다듬어 온 글을 다른 지성인이 꼼꼼히 읽고 비판하면서 조용하지만, 힘 있게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해 왔다.

요즘은 압도적으로 긴 글이 천대 시 당하는 사회다. 무수히 많은 짧은 글이 생성되어 유통되고 사람들은 짧은 글에 열광한다. 신문기사도 첫 문장부터 자극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 글쟁이들은 저마다 짧고 자극적인 문구로 사람들에게 선택당하기를 기다리고 있고 사람들은 더욱더 짧고 자극적인 글을 찾아 쉼 없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리저리 헤맨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널리 퍼지면서 누구나 짧은 몇자의 글로 파워를 얻게 되었다. 파워를 얻으려면 쇼킹해야 하고 재미 있어야 한다. 콘텐츠가 팔리려면 지루하면 안되는 것이 정설이 되었다. 이는 장사를 목적으로 한다면 응당 옳은 말이며 또 당연히 이 대세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내 블로그는 장사를 위한 블로그가 아니다. 나 자신의 사색을 위한 도구고, 내 눈높이와 맞는 분들과 함께 그 사색을 나누기 위한 아고라요 카페테리아다.

얼마전에는 내 블로그 글이 너무 길어 알맹이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단 읽히지 않는 글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글이다. 그분은 분명히 내 글을 읽지 않고 그런 말을 하셨을 것이다. 그러니 그분에게 내 글은 쓸모 없는 글이다.

그렇지만 다른 분들에게 내 글은 읽힌다. 물론 많은 대중들에게 읽힐 수는 없는 글들이지만 나와 마음이 비슷하거나 진심을 담아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계신다. 그것으로 내 글은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단 한 분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시면 그 분 덕분에 내 글은 충분히 빛난다. 그것이 내가 굳이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이유다.

글을 쓰면 나 자신의 발전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어떤 주제에 대한 방향성 잃은 조각조각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틀이 되도록 도와준다. 블로그에 글을 정리하는 첫번째 목적이다. 두번째 목적은 누군가 내 글을 성심껏 읽어주고, 또 그분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내 글은 흥미를 좇는 난독증 환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분들은 내 블로그 글을 읽지 않아도 좋다. 진지한 지적 토론을 나누는 정감어린 이웃들과 조용히 블로그를 꾸려가고 싶다. 종이책을 사랑하고 긴 글을 진중하게 읽을 수 있는 분들과 계속 좋은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다. 경박단소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부화뇌동 하지 않는 사람들은 놀때는 놀더라도 진중할 때는 진중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놀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잔소리 듣는 일은 힘든 일이다.

2013년 3월 5일
송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