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4일 화요일

유행은 왜 돌고돌까

나이든 세대가 향유하는 문화를 젊은 세대는 '쉰내난다', '꼰대같다'고 하면서 놀리기도 한다. 세상은 항상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받고 있고 이것은 인간이 멸절하기 전 까지는 영원히 있을 일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시간이 흐르면 재미있는 현상들이 목격된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문화를 다시 자신들이 유행하는 문화로 만들곤 한다. 이것은 이들이 과거의 문화에 대해서 스터디를 하거나 일부러 노리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정반합이다. 힘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면, 사람들은 의례 반발심이 생기고 그 반대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정반합과 정반합이 돌고 돌면서 세상의 유행도, 사람들의 생각도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갔다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지루함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당시 우리 또래들에게는 매우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있다. 음식, 음악, 패션은 물론 사고방식 심지어 직업들까지 모두 포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현재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힙하고 쿨한 것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을 본다. 

우리가 어릴 때는 촌스러워서 아무도 하지 않던 패션을 지금 젊은 세대들은 그것을 다시 살려내 멋지게 소화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천시받던 직업들을 지금 젊은 세대들은 아주 힙하고 멋진 직업으로 바꿔 놓기도 한다. 옛날에 유행했던 노래나 머리 스타일을 다시 살려내서 복고풍의 문화를 현대식으로 아주 세련되게 살려 놓는 경우도 많이 본다.

유행이 돌고 도는 이유로 나는 먼저 세상의 정반합 이치를 꼽았다. 그 다음 내가 꼽는 이유는 인간의 기억력과 수명의 한계다. 인간의 기억력은 매우 짧다. 그리고 수명도 그리 길지 않다. 만약, 우리의 수명이 500년쯤 되고 살아가는 동안 모든 기억을 생생하게 해낼 수 있다면 한번 별로라고 생각한 것은 꽤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하니, 옛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던 것들도 새로이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다시 수용될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옛 사람들이 향유하던 것이라도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새로운 것은 뭔가 남들과 다르게 여겨진다.

한때는 옛것을 소환해서 인기몰이 하는 것을 '복고풍'이라고 불렀고 요즘은 이것을 '레트로 감성'이라고 부른다. 
<사진출처 : 홈플러스>

그리고 우리의 기억력은 좋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에 나빠 보였던 것이 지금은 좋아보일 수 있고, 과거에 좋아 보였던 것이 지금은 나빠보일 수 있다. 사람은 집단의 행동에 편승하면 과거의 기억쯤은 말끔하게 지우거나 바꿔버릴 수 있다. 또, 현재 살아가는 것이 팍팍하고 힘에 부치면, 과거를 그리워 하는 중노년 세대의 심리가 젊은 세대의 레트로 감성과 맞물리면서 유행이 발생하기도 한다.

끝으로 유행이 결국은 돌고 도는 이유로 내가 자주 꼽는 것이 있는데, 인간은 누구나 팔다리 두개가 달려 있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1000년 전에도 그랬고, 100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물리적인 몸의 모양이나, 인간이 할 수 있는 물리적인 행위에는 상당한 제한이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걷거나 달릴 수 있지만 날 수는 없다. 수영을 할 수는 있지만 물에서 살 수는 없다. 정신적 유희는 사색이나 게임으로 풀 수 있지만 그 이상 나아갈 수는 없다. VR/AR이 가져다 주는 정신적 즐거움의 시대에 살게 될 먼 미래에도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은 섹스일 것이다.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 이런 점들도 유행이 돌고 돌게 만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상당한 제약과 한계를 갖고 살아가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행이라는 것을 선도하는 것은 젊은 세대다. 어쩌면 젊음이라는 것 자체가 유행일지도 모른다. 여행 중에 잠깐 길에서 노숙 비슷한 것을 하면서 쉰다고 생각해보자. 나이든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측은하게 보일테지만, 젊은 여행객이 그러고 있으면 그 자체로 낭만적으로 보인다. 젊음은 그 자체로 값지고 아름답다고 여겨진다. 이런 것이 유행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우리의 편견이고 사고방식이다.

2021년 8월 24일
송종식


댓글 17개:

  1. 온고지신, 복고, 레트로, 뉴트로 용어만 바뀌지 돌고돌죠. 보통 문화의 순환성에 대해서는 오히려 기업이나 시대 환경적인 요소가 더 크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인간의 물리적인 형태 (shape) 가 고정이기 때문에 제약이 있다는 발상은 안해봤는데, 흥미롭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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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맞다. 복고이전에 '온고지신'도 있었네요. 말씀하신대로 시대 환경적인 요소가 더 큰 것도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왜 그럴까 싶어서 인간이 가진 몸의 물리적 형태의 한계와 기억력의 한계, 회복탄력성, 쉽게 지루해지는 특성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게임도 한 10개 깔아놓고 하다가 어떤 게임 지루해지면 직전에 지루했던 게임이 또 땡겨서 하게 되고, 그게 또 지루해지면 직전에 지루했던 게임이 또 땡겨서 하게되고.. 그렇게 되듯이요. 항상 소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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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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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 글을 보니 요즘 최신게임은 영 재미가 없어 게임을 잘안했는데 오랜만에 중학생때 정말 재밌게 했던 디아블로2의 리메이크버전을 시간가는줄 모르게 재밌게한 제모습이 떠올랐네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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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맞아요. 지루하다고 던져 놨던 게임들이 한번씩 당기기도 하죠. 그것도 어찌보면 돌고 도는 유행의 작은 이유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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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간에게 가장 큰 자극은 ㅅㅅ보단
    케바케긴 하지만 도박(하이리스크,리턴), 타인의 관심(+내면의 약함)
    이거 맛들이면 뇌가 도파민에 절여져서....
    보통 ㅅㅅ를 넘기면 망가져버릴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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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예전에는 촌스러워서 안 한다는 것도
    지금은 레트로 감성이라 하며 힙하고 쿨한 것으로
    자리매김하다니 정말 유행은 돌고 도나 봐요.
    한번은 요새 어떤 떡볶이집을 갔는데 옛날 초록색 분식집 그릇에 음식 담아주고, 물병도 델몬트 주스 유리병에 나와서 옛날 초등학생 때 생각 나 재밌게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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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록색 분식집 그릇이 다시 인기 끄는 걸 보니까 확실히 더 그렇게 생각되더라구요. 그리고 델몬트 주스병은 진짜 추억이네요~ 그 물병 있는 집은 좀 사는집이었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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